매월당 시집 제6권 6-1
6 수답酬答 묻는 말에 答하기
1 화기수운和箕叟韻 기수의 운에 화답하다. 15首
1
요락정려추흥장寥落精廬秋興長 쓸쓸한 수도처에 가을 흥취 길어지니
랑음시작방옹광朗吟時作放翁狂 소리 내 시 읊으며 때때로 육방옹 처럼 미치광이가 돼본다.
산성취우수잔서山城驟雨收殘暑 산성에 소나기 오니 남은 더위 거두어 가고
풍수소선열만량風樹疏蟬咽晚涼 바람 부는 나무엔 이따금 매미가 늦추위에 울어대네.
상점눈한경로골湘簟嫩寒驚老骨 상湘 땅 댓자리는 곱고 서늘해 늙은 뼈를 놀래키고
혜천감렬완고장惠泉甘冽浣枯腸 혜천수로 끓인 차는 달고 맑으니 마른 창자를 씻어 주누나.
년래두각성상변年來陡覺星霜變 요즈음 들어서 갑자기 세월의 변화를 깨닫고
학취소단위백양學取燒丹魏伯陽 위백양처럼 단을 굽는 법을 배워 얻는다오.
쓸쓸하고 깨끗한 오두막 가을 흥취 더하니
높이 읊으며 때때로 방옹처럼 미쳐 일어나네.
산의 성에 소나기 내리니 남은 더위 거두고
바람 부는 나무 느린 매미 서늘한 저녁 목매네.
상강 대자리 경미한 추위에 노인 뼈가 놀라고
혜천은 달고 맑아 약해진 창자를 씻어버리네.
여러해 전부터 갑자기 세월이 변함을 깨닫고
단약을 익히는 걸 위백양에게 배워 다스리네.
►기수箕叟 기산수箕山叟 기산의 늙은이,
은거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누구인지 모름.
►정려精廬 정사精舍. 여기서는 불교 사원, 사찰.
►방옹放翁 육유陸游(1115-1210)의 호, 字는 무관務觀.
►‘찰 렬(열), 맑을 례(예)冽’ (맵게)차다, 한랭寒冷하다. (맵게)춥다
►취우驟雨 소나기,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 그치는 비.
►만량晚涼 저녁 무렵의 서늘한 기분.
►상점湘簟 상점눈한湘簟嫩寒, ‘상湘’은 호남성湖南省 지방,
그곳에 竹[대나무]가 많이 생산되고 그 대로 자리를 만드는데
여름에 그것을 깔면 매우 시원하지만 가을이 되면 차가워져 맞지 않다는 말.
►‘咽 목구멍 인, 삼킬 연, 목멜 열咽’
►위백양魏伯陽 후한後漢 사람. 道術을 좋아하여 장생불사한다는 丹藥을 연구.
제자 세 사람과 같이 산중에 들어가서 단약을 구워 만들어서 신선이 되었다 한다.
道家의 연단양생법鍊丹養生法을 논한 책 <참동계參同契>가 유명하다.
기수箕叟는 늙은이, 노인이라는 뜻인데 보통 기산수箕山叟로 은거하고 있는 노인을 일컫는다.
하남河南 등봉현登封縣에 있는 기산箕山과
하남河南 임영현臨潁縣에 있는 영수潁水는 은자가 사는 은거지를 대표한다.
이 시의 화운처和韻處인 ‘기수箕叟’는 누구의 시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요락寥落’은 쓸쓸한 풍경을 말하며
‘정려精廬’는 精舍와 같은 의미이니 불법이나 도를 닦는 이의 집을 말한다.
‘방옹放翁’은 송나라의 문신이자 시인인 육유陸遊로 보인다.
그는 금나라를 정벌하자 주장하였으나 북벌이 실패하자 파직과 입직을 반복하였던 애국자였다.
무예를 좋아했고 시에도 능했던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스스로 지은 호가 방옹이었다.
매월당과는 100여년의 나이 차이였다.
‘상점湘簟’은 호남성湖南省 상湘땅에서 나는 대[竹]를 쪼개어 만들은 고운 자리를 말한다.
여름에 그것을 깔면 매우 시원하지만 가을이 되면 도리어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혜천惠泉’은 무석無錫에 있는 샘으로 이 물로 차를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라 한다.
또 이 물로 만들은 술은 무석혜천주無錫惠泉酒라하여 명주로 꼽힌다.
경련頸聯의 ‘상점湘簟’이나 ‘혜천惠泉’은 우리나라에 있을 리가 없으니
댓자리나 찻물이 그처럼 시원하고 맛있다는 말이겠다.
‘위백양魏伯陽’은 漢나라 때 사람이다.
도술道術을 좋아하여 장생불사한다는 단약丹藥을 연구하였다.
제자 세 사람과 같이 산중에 들어가서 단약을 구워 만들어서 신선이 되었다 한다.
그의 저술에 <참동계參同契>라는 것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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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생사업이무장平生事業已無長 한 평생의 사업은 이미 나아 갈 수 없으니
견흥불여시주광遣興不如詩酒狂 흥취 풀지 못해 시와 술에 미친 것 같구나.
절력림천경야우浙瀝林泉經夜雨 숲의 샘에 비 오는 소리 밤을 지새워 내리고
참차정수입신량參差庭樹入新涼 들쭉날쭉 뜰의 나에 서늘한 기운이 드네.
종전오학도룡계從前誤學屠龍計 이제까지 용을 잡는 계획 잘못 배웠으니
말로공회토서장末路空懷吐鼠腸 말년에 헛되이 쥐의 내장 뱉을 생각하네.
하처청산감양졸何處靑山堪養拙 어느 곳의 청산에서 졸렬함 참고 기르나
현공비폭수추양懸空飛瀑漱秋陽 허공에 날리는 폭포에 가을볕을 헹구네.
►절력浙瀝 비나 눈이 오는 소리, 가을바람이 부는 소리.
►신량新涼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
►도룡계屠龍計 도룡지기屠龍之技, 용을 잡는 기술.
아무리 교묘해도 실용적 가치가 없는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평만朱泙漫이란 사람이 지리익支離益에게서 용을 잡는 법을 배워
3년 만에 재주가 완성되었으나 그 재주를 쓸데가 없더라함.
►서장鼠腸 서장훼성鼠腸虺性,
쥐의 창자와 뱀의 성품이라는 뜻으로 간사하고 음흉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3
지벽인희오몽장地僻人稀午夢長 땅이 궁벽해 사람도 드물어 한 낮의 꿈만 긴데
만년편학하감광晚年偏學賀監狂 만년엔 일부러 사명산의 광객 하지장을 배우네.
운수청장류잔조雲收靑嶂留殘照 구름 거둔 푸른 산봉우리에 저녁 햇살 머물고
우적홍초핍만량雨滴紅蕉逼晚涼 홍초의 빗방울에 저녁의 서늘한 기분 닥치네.
뢰락생애동학화牢落生涯同鶴化 적적하고 쓸쓸한 형편이라 학이 함께 따르고
전빈활계효구장全貧活計效龜腸 모두 가난하니 살 계책은 거북의 마음 본받네.
소당청초무인공小堂淸悄無人共 작은 집은 맑고 고요해 함께 할 사람도 없는데
지저명와사자양池底鳴蛙似子陽 연못 아래에서 우는 개구리는 자양과 같구나.
►하감賀監 하지장賀知章(659-744)
당唐나라 詩人, 書法家. 자字는 계진季眞ㆍ유마維摩. 호號는 사명광객四明狂客.
증성證聖 원년(695)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은 국자사문박사國子四門博士,
태상박사太常博士, 예부시랑禮部侍郎, 비서감秘書監, 태자빈객太子賓客 등을 역임했다.
태자의 빈객일 때 이백을 한번 보고는 ‘적선인’이라 불렀다.
이를 듣고 이백은 술을 사 함께 즐겼다고 한다.
이백을 현종 임금에게 추천한 이도 하지장이다.
시와 글뿐 아니라 초서와 예서에도 능했고 광초狂草로 널리 알려진 서법가 장욱과 친교를 맺기도 했다.
그는 성격이 소탈했고 술을 아주 좋아하는 풍류인으로도 이름이 높아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도 호주인豪酒人으로 손꼽혔다.
장욱張旭, 회소懷素와 더불어 ‘당초삼걸唐草三傑’로 일컬어지고 또 이백李白, 이적지李適之,
왕여양王汝陽,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장욱, 초수焦遂 등과 더불어 ‘취팔선醉八仙’으로 알려진다.
만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浙江성의 四明山에 들어가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자칭하며 신선의 도를 닦았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고향 오중吳中으로 돌아갈 때 현종은 경호鏡湖의 한 구비를 그에게 하사하였고
그 호수를 ‘하감호賀監湖’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의 시는 절구가 뛰어난데 대부분 실전되었고 지금은 약 20수가 전해진다.
대표작품으로 <영류詠柳><회향우서回鄉偶書>가 있다.
아래는 50여 년 만에 귀향하는 마음을 노래한 <회향우서>이다.
소소이가노대회少小離家老大回 젊어 집을 떠나 늙어 돌아와 보니
향음무개빈모쇠鄕音無改鬢毛衰 고향의 말씨는 그대로되 머리는 희어졌구려.
아동상견부상식兒童相見不相識 아이들은 만나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는데
소문객종하처래笑問客從何處來 웃으며 묻나니 “손님은 어디에서 오셨어요?”
당나라 재상 육상선陸象先과 친하였는데 그가 말하기를
“계진은 청담풍류淸談風流라 내가 하루만 안 보면 마음에 꾀죄죄함이 생긴다.”고 했다.
하지장의 글씨는 천진하면서 고매한 흥취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씨집에 <초서효경草書孝經>이 있다. 천보天寶 3년(744) 귀향한 뒤 병사했다.
경호무하감鏡湖無賀監 통곡혜산도慟哭嵆山道
경호에 하감 같은 이 없어 혜산의 길에 통곡하네/<소동파>
►홍초紅蕉 홍초과紅蕉科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2미터이며 잎은 큰 타원형楕圓形이고 끝이 뾰족하다.
여름과 가을에 꽃잎 모양의 수술을 가진 꽃이 잎 사이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총상總狀 화서花序로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로 10월에 익는다.
관상용觀賞用이고 말레이시아, 인도차이나가 原產地로 各地에 分布한다.
►뇌락牢落 마음이 넓고 비범함, 드문드문 섬김, 적적하고 쓸쓸함.
►구장龜腸 거북이 창자,
옛 사람들이 거북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직 氣만 마시고 산다하여 傳하여 굶주린 창자.
►자양子陽 공손술公孫述(?-AD36)의 字, 후한後漢 때의 무장.
처음에는 왕망王莽을 섬겼으나 후에 成都에서 병사를 일으켜 파촉을 평정하고
25년에 天子라 칭하고 국호를 成家라고 하였다. 뒤에 광무제에게 멸망하였다.
<백제성白帝城>
중경시重慶市 봉절현奉節縣에 白帝山 위에 있는 성곽.
서한西漢 말 책략가인 공손술公孫述이 촉蜀지역을 점거하였을 때 세운 성이다.
성을 세우고 나서 성 안의 우물에 자주 하얀 기운이 어려서 마치 하얀 용과 같았는데
공손술이 여기에서 자신의 호를 백제白帝라고 하였기에 백제성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三國 시기 촉蜀나라의 유비劉備가 세상을 떠나며 제갈량諸葛亮에게 아들을 맡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과 관련된 문학 작품으로 唐代 李白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 등이 있다.
조사백제채운간朝辭白帝彩雲間 아침에 白帝城의 아름다운 구름 사이를 떠나
천리강릉일일환千里江陵一日還 천리 길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양안원성제부주兩岸猿聲啼不住 양쪽 산기슭에서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건만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 가벼운 배는 이미 만겹 겹친 산을 지나쳤네.
유수는 東漢을 건국하고 광무제가 되었지만 전국은 여전히 군웅들이 날뛰는 상태였다.
당시 최대의 세력 중의 하나인 공손술은 사천지방에서 황제가 되었다.
한편 감숙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외효는 정치적인 출로를 찾기 위해 마원을 공손술에게 보냈다.
마원은 공손술과 동향이었므로 그가 자신을 환영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마원은 공손술의 의례적인 접견에 매우 실망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와서 외효에게 말하였다.
자양子陽은 정저와이井底蛙耳라 이망자존대而妄自尊大하니 불여전의동방不如專意東方이라
/<後漢書 마원전馬援傳>
“공손술은 진지한 마음으로 인재들을 받아들여 함께 일을 하려고 하기는커녕
스스로 잘난 체 교만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식견이 얕은 사람으로서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을 뿐이며
스스로 잘난 체하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뜻을 동쪽의 유수에게 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외효는 마원을 다시 뤄양으로 보냈고 광무제는 마원을 만나자 성심성의껏 대접했으며
마원은 이런 후한 대접에 감동해 외효에게 돌아가지 않고 광무제 휘하에 있기로 결심했다.
마원은 광무제에게 귀순해 많은 공을 세웠으며 천하가 평정된 후에도 복파장군이 돼
이민족을 몰아내고 변방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후로 유수가 차례로 외효와 공손술을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고 후한의 광무제가 되었다.
4
락엽충사추일장落葉蟲絲秋日長 거미줄에 잎 떨어지는 가을 날 길기만한데
고음야득소릉광孤吟惹得少陵狂 홀로 읊다 이끌어 깨달은 소릉은 정처 없었지.
삼삼수죽천간벽森森脩竹千竿碧 무성하게 늘어선 가는 대 일천 그루 푸르고
절절비천일도량浙浙飛泉一道涼 살랑살랑 날리는 물줄기에 한 길은 서늘하네.
고구소래차세태故舊疏來嗟世態 오랜 친구 드물게 옴에 세상 형편 탄식하고
성현중후활시장聖賢中後活詩腸 성인과 현인은 중 후반에 시의 정취 활발했네.
만정괴수청음정滿庭槐樹淸陰靜 뜰 가득한 회하나무에 맑은 그늘 고요하고
시청조당롱석양時聽蜩螗弄夕陽 때로 듣는 쓰르라미 소리가 석양을 희롱하네.
►‘이끌 야, 비방할 약惹’
►소릉少陵 두보杜甫(712-770), 자는 子美,
두릉杜陵의 포의布衣 또는 소릉少陵의 야로野老로 알려짐.
►삼삼森森 나무가 무성하다. 나무가 우거지다. 매우 차가운 모양. (두려워서) 오싹한 모양.
►수죽脩竹 밋밋하게 자란 가늘고 긴 대.
►절절淅淅 ‘강 이름 절淅’ 살랑살랑. 솔솔.
►비천飛泉 절벽에서 곧장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조당蜩螗 ‘쓰르라미 조蜩’ ‘털 매미 당螗’
매밋과의 곤충昆蟲을 통틀어 이르는 말.
몸의 길이는 1.2~8cm이며 머리가 크고 겹눈은 突出되어 있으며 세 個의 홑눈은 정수리에 붙어 있다.
날개는 막성膜性으로 투명透明하며 시맥翅脈은 굵다.
더듬이는 털처럼 가늘고 짧으며 입은 긴 대롱 模樣이다.
수컷은 發音器官과 공명 기관器管이 있어 ‘맴맴’ 소리를 낸다.
6~12년의 애벌레기를 거쳐 성충成蟲이 된다.
5
로거봉추상감장老去逢秋傷感長 늙어 가니 가을 만나면 항상 생각 애태우고
십년인사부시광十年人事付詩狂 십년의 사람들 일이 시에만 미쳐 의지하네.
투한각희음위수投閑却喜吟爲祟 한가히 보내면 도리어 기뻐 읊는 빌미 되고
청은무심주박량淸隱無心酒博涼 무심하게 한가히 숨으니 술 많아도 외롭구나.
심자일조요작미心字一條搖鵲尾 마음 心자 한 가지로 까치 꼬리 향로 흔들며
월단천할요양장月團千轄遶羊腸 둥근 달 밭두렁 다스려 꼬불꼬불한 길 두르네.
평생지요시명장平生只要詩名壯 평생에 오직 웅장한 시의 명예만 원했는데
하필봉후득무양何必封侯得舞陽 하필이면 꼭 제후에 봉해져 무양을 얻을까
►작미鵲尾 까치 꼬리,
작미형병향로鵲尾形柄香爐 까치 꼬리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병 향로.
►시명詩名 시를 잘 지어서 얻은 명예.
►무양舞陽 무양후舞陽侯에 봉해진 번쾌樊噲인지 모르겠다.
<중국 고대 시인들의 별호别号>/강진신문 2021.12.20 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5)
1. 시신詩神 소식苏轼(1037-1101)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당송 8대가 중의 한 명이다.
소식은 시, 사, 산문, 서예, 그림 등 다방면에 최고의 경지를 이룬 문학가이면서 특히 그의 시는
시의 제목과 소재가 광활하고 청신 호방하며 과장 표현이라도 선용하였으며
독창적인 시적 견해를 표방하여 '시신詩神'이라고 불렸다.
2. 시선詩仙, 이백李白(701-762)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적선인謫仙人,
당나라 시대의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으로서 친구 사귀기와 술을 좋아한 고대 낭만주의 문학가의 최고봉이다.
이백은 7언절구의 최고 시인으로서 후인들이 그를 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이백의 시상은 풍부하고 기이하지만 풍격은 웅휘하고 자유분방하였으며
세밀한 언어 구사와 청신한 자연미를 표현하여 하늘에서 귀양 온 '詩仙'이라는 영예를 누렸다.
3. 시성詩聖, 두보杜甫(712-770) 호는 소릉야노少陵野老.
唐代의 위대한 현실주의 시인으로서 평생 3천 首의 시를 남겼으며
특히 안록산의 난을 겪으면서 겪어야 했던 백성들의 고충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시를 썼다.
두보는 평생 제대로 된 관직을 맡지 못하고 방랑하여
도연명 시인과 함께 가장 가난한 일생을 보낸 불우한 시인이었다.
두보의 시는 세상살이에 대해서 실질적이면서도 종합적으로 논하고 생각은 깊으며
거론하는 것은 깊고 광활하여 사람들은 그를 '詩聖'이라고 불렀다.
4. 시불詩佛, 왕유王維(701-761) 자는 마힐摩詰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마힐거사를 표방하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唐代의 시인이자 화가로서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의 대가,
아울러 수묵 산수화에 뛰어나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명성이 높다.
왕유의 많은 시는 자연을 바탕으로 한 서정시로서 인생을 관조하는 불교 선종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禪을 시에 반영하여 '詩佛'이라 불리게 되었다.
5. 시마詩魔, 백거이白居易(772-846) 자는 낙천樂天, 호는 香山居士.
唐代의 위대한 현실주의 시인으로서 대중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쓴 민중 시인이다.
백거이 시의 소재는 광범위하며 형식도 다양하고 사용된 시어는 평이하고 통속적이며
그는 시 작품 하나하나에 각고의 노력을 했다.
후세 사람들은 '술 귀신이 시의 마성을 불러왔고
오전의 비탄은 해 질 무렵까지 갔다'라고 하면서 '詩魔'라는 별칭을 붙였다.
6. 시귀詩鬼, 이하李賀(791-817) 자는 長吉,
어려서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여, 唐 황족의 후예로 알려졌다.
그의 시 대부분은 생전에 맛보지 못한 비탄과 내적인 고민을 토로한 시가 많았으며
이상과 포부에 대한 추구 시가 많았는데 이는 당시의 환관과 권신들의 횡포에 핍박받는 민중의 고통을
반영하였으며 불과 26살에 요절한 천재 시인이다. 대표작 몽환적인 시 한 수 들어보자.
<몽천夢天> 하늘의 꿈
노토한섬읍천색老兎寒蟾泣天色 늙은 토끼와 두꺼비 하늘에서 우는 듯
운루반개벽사백雲樓半開壁斜白 반쯤 열린 구름 사이로 밤하늘이 열린다
옥륜알로습단광玉輪軋露濕團光 달 수레 이슬을 밟았는지 달무리 졌고
란패상봉계향맥鸞珮相逢桂香陌 난새 패옥 드리운 선녀 계수향 가득한 길에서 만나네
황진청수삼산하黃塵淸水三山下 신선의 산 아래 육지는 바다가 되고
경변천년여주마更變千年如走馬 천년의 세월도 말 달리듯 변해 가는데
요망제주구점연遙望齊州九點煙 멀리서 내려다보니 아홉 점 연기 같고
일홍해수배중사一泓海水杯中瀉 넘실대는 바닷물은 술잔에 떨어지는 물 한 방울
늙은 토끼와 추워 보이는 두꺼비 하늘빛 보고 울고 있는데
구름 걸린 누각 문 반 만큼 열려 그 사이로 흰 벽 비스듬히 보이고
옥륜玉輪 이슬에 젖어 둥근 물방울 반짝이는데
난패鸞珮를 찬 선년들 계수나무 향기 그윽한 길 서로 오가네.
三山 아래엔 황진 이는 가 했더니 맑은 물 흐르는데
그 급변하는 모습 마치 천년 동안이나 달리고 있는 말과 같고
바라보니 중국 九州도 아득한 연기 속에 하나의 작은 점
하나의 깊은 바다 같은 호수 물도 잔속에 한 잔 물과 같아.
이하의 시는 용광로 속에서 아름답게 용해되어 조화를 이루는 시의 언어들이며 생각의 나래는 끝이 없고
상상 속의 시어는 고금 신화를 넘나들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신비경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詩鬼'라고 불렀다.
7. 시걸詩杰, 왕발王勃(650-676) 자는 子安,
유학자 가문 출신으로 당나라 초기 '初唐四)' 중의 선두를 차지하는 인물이었으나
아버지를 찾아가다 익사하여 26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왕발은 5언 절구 시에 달인이며 시의 흐름이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고
표현된 시어는 자유롭고 소박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적 풍격을 지녔다.
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짧은 인생에서 시의 언어를 맘껏 구사한 그를 '詩杰'이라고 불렀다.
8. 시광詩狂 하지장賀知章(659-744) 자는 계진季眞, 만년에 스스로 호를 짓기를 '四明狂客'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부터 시문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백을 조정에 천거하는 등 많은 사람과 교유하여
'청담 풍류'라는 미명을 얻기도 하였다.
하지장의 시문은 시 문단 하나하나가 절구이며 마치 제문을 낭독하듯이 자연스럽고 시어는 경치를 그림으로
그려내듯이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마음속의 추억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독특한 시풍을 개척하였고
참신하면서도 호방하였다. 따라서 후세 사람들은 시에 미친 그를 '詩狂'이라고 불렀다.
9. 시노詩奴, 가도賈島(779-843) 자는 랑선浪仙으로 유년 시절에 승려가 되었으나
그 유명한 '문을 밀 것이냐(推), 아니면 두드릴 것이냐(敲)'의 시어 선택에 골돌 하다 당시 경조부윤이던 한유의
가마와 부딪힌 인연으로 환속하고 벼슬길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가난한 시인 생활을 면치 못했다.
가도는 가난한 시인으로서 詩作은 호구지책이었다.
시어는 한때 승려였던 점을 감안하여 깊은 선정의 의미를 담은 시가 많으나
일생 동안 가난으로 시문으로 연명해야 하는 가도를 후세 사람들은 그를 '詩奴'라고 불렀다.
10. 시혼詩魂, 중화시조中華詩祖, 굴원屈原(BC340-278)
전국시대 초나라 대부였으나 소인배의 참소와 음해로 궁중에서 밀려나 전국을 돌며
시와 사를 지으며 초나라의 애달픔을 노래했다.
굴원은 중국 역사상 제일의 애국시인이며
그의 출현으로 중국 시가는 한 단계 상승하는 독창적인 신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작품으로는 '이소' '어부사'가 있으며 후세 사람들은 그를 '詩魂' '中華詩祖' '사부지조辭賦之祖'로 불렀다.
11. 능운시재凌云詩材, 이상은李商隱(813-858)
唐나라 말기 시절의 저명 시인으로 이상은 시인은 불과 46세에 요절하였으나
사실 당나라 시절의 수천 명 시인 중 재능이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 명이다.
이상은의 시적 구성은 자유분방하며 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특히 인간의 애정 표현에 대해서
제목을 정하지 않고, 無題라는 명목으로 사랑과 아름다움을 미화하고 간절한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해서
민중들로 하여금 널리 애송하게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이상은에게 뛰어난 재질을 갖춘 시인이라는
'능운시재凌云詩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시인'DL라는 미명을 선사했다.
12. 은일시인지종隱逸詩人之宗 도연명陶淵明(352/365-427)
자는 원량元亮, 정절靖節이라고 하며 일명 정절 선생이라고 한다.
그는 東晉 말에서 南宋 초기의 위대한 대 시인이자 辭賦의 대가이며 중국 제일의 전원시인이다.
도연명은 자연을 읊은 시의 수량은 가장 많으며 수준 또한 가장 높은 전원시의 창시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연에 귀의해서 은일 생활을 하면서 뿜어내는 그의 시어는 순박하고 탈속한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중국 한시의 수준을 한 단계를 높여 놓았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은일시인지종隱逸詩人之宗'이라고 칭했다.
6
파각한중세월장頗覺閑中歲月長 자못 한가한 중에 세월이 더함을 깨닫고
봉가료화접여광鳳歌聊和接輿狂 봉새 노래로 에오라지 미친 접여 화답했네.
가동적아영생박家僮謫我營生薄 집의 아이 나의 박한 삶을 영위함 꾸짖고
과객진여담소량過客嗔余談笑涼 지나는 손님 나의 담소 쓸쓸함에 책망하네.
경유송황성속이徑有松篁醒俗耳 솔과 대숲에 지름길 있어 속된 귀 깨우치고
준무령록뇌수장樽無醽醁惱愁腸 술통에 좋은 술 없어 마음 시름이 괴롭히네.
이래풍미다한고邇來風味多寒苦 요즈음 맛보는 바람은 춥고 괴로움만 많아
의시전신맹률양疑是前身孟溧陽 무릇 몸 앞에는 율양현위 맹교를 의심하네.
►접여接輿 춘추시대 초楚 나라 육통陸通의 자字.
소왕昭王 때 정령政令이 무상하므로 머리 풀고 거짓 미친 체하여 벼슬에 나아가지 않아 楚狂이라 불리었다.
공자가 초나라를 방문하자 공자의 ‘수레 여輿’ 옆에 ‘붙어서 접接’ 노래했다.
초광접여楚狂接輿 가이과공자왈歌而過孔子曰 초광 접여가 노래하며 공자 옆을 지나갔다
봉혜봉혜鳳兮鳳兮 하덕지쇠何德之衰 봉이여, 봉이여, 어찌 덕이 쇠하느뇨?
왕자불가간往者不可諫 이미 가버린 자는 탓하지 않거니와
내자유가추來者猶可追 오는 자는 쫓을 수 있을지니
이이이이已而已而 그만 둘지어다. 그만 둘지어다,
금지종정자태이今之從政者殆而 지금의 썩은 세상 정치를 좇는 자는 위태로우니라.
/<논어論語 미자微子>
부치접여취復値接輿醉 다시 접여를 만나(배적裵迪을 만나) 술에 취하고
광가오류전狂歌五柳前 오류의 문 앞에서(도잠陶潛의 문 앞에서) 미친 노래 부르노라.
/왕유王維 <망천한거증배수재적輞川閑居贈裵秀才迪>
봉가홀향문전과鳳歌忽向門前過 접여의 봉황 노래가 문득 문 앞을 지나가니
노아방장전골계老我方將傳滑稽 늙은 나는 붓을 들어 골계전(익살스런 얘기)을 지으려네.
/이색李穡 <작조雀噪>
►속이俗耳 속인의 귀, 세인의 귀.
►영록醽醁 좋은 술.
►이래邇來 가까운 요마적, 지나간 얼마 동안의 아주 가까운 때.
►맹률양孟溧陽 율양현위溧陽縣尉를 지낸 맹교孟郊(751-814)
唐나라의 시인. 자는 동야東野로 흔히 맹동야孟東野[]라고 부른다.
당시 최고의 학자이자 문인인 한유韓愈와도 교분이 깊었다.
작품은 대부분 오언고시이며 처량한 색채를 띠고 있음.
가도賈島와 비견하여 ‘교한도수郊寒岛瘦’라고 일컬어지며 저작으로 <孟东野集> 등이 있다.
맹교는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고 46세의 나이에 진사에 합격하여
51세에 비로소 율양현위라는 미관말직을 얻었다.
그러나 직무에는 별반 관심이 없이 시나 읊고 다니는 꼴을 보지 못한 현령이
봉급을 반으로 줄이고 다른 사람을 대리 현위로 삼자 맹교는 바로 벼슬을 던져 버렸다.
말년에 지인의 추천으로 역시 미관말직을 하나 얻어 임지로 가던 중 병으로 죽었다.
일생이 회재불우懷才不遇했던 시인이었다.
7
소년서검인배장少年書劍引杯長 어린 나이엔 학문과 무예에 항상 술잔을 땡기다
대은동봉로갱광大隱東峯老更狂 동쪽 봉우리에 깨달은 은자 더욱 미쳐 늙어가네.
운우세정동거허雲雨世情同蘧栩 구름과 비 세상 물정에 놀라 황홀하게 함께하며
풍파환해기염량風波宦海幾炎涼 험한 벼슬길 풍파에 세력의 성함과 쇠함 살피네.
봉후리장비범골封侯李將非凡骨 제후에 봉해진 이광 장수 평범한 사람 아니었고
극음주생유별장劇飮周生有別腸 지나치게 술을 마신 주생은 창자가 따로 있었네.
요상공여진산간遙想公如晉山簡 멀리 생각해보니 진 나라의 산간 공과 같은지라
풍류일일취고양風流日日醉高陽 멋스럽고 풍치 있게 날마다 고양에서 취하였다네.
►대은大隱 크게 깨달아 번뇌와 의혹을 모두 떨쳐버린 은자.
►풍파風波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 분란이나 분쟁.
►거허蘧栩 정신이 아주 기쁘거나 황홀한 상태
‘패랭이꽃 거, 패랭이꽃 구蘧’ 패랭이꽃. 연꽃
‘상수리나무 허, 땅 이름 우栩’
►환해宦海 관리의 사회, 험난한 벼슬길. ‘벼슬 환宦’
►염량炎涼 더위와 서늘함,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는 슬기. 세력의 성함과 쇠함.
►봉후리장비범골封侯李將非凡骨 제후에 봉해진 이광李廣 장수 평범한 사람 아니었고
여기서 이장李將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이광李廣'은 아니다.
<다음이 그 이유이다/無無>
왕발王勃은 <등왕각서滕王閣序>에서 이렇게 읊었다.
풍당이로馮唐易老 풍당은 등용되기 전에 늙기 쉬웠고
이광난봉李廣難封 이광은 공적이 있어도 봉해지기 어려웠다.
‘李廣’은 서한西漢의 명장으로 문제文帝와 경제景帝 때 여러 차례 흉노를 정벌하여
흉노군들이 그를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부를 정도로 공을 세웠지만 끝내 제후의 작위를 얻지는 못했다.
용우당적勇于當敵 적을 만나면 용감했고
인애사졸仁愛士卒 휘하의 군졸들을 자애로운 마음으로 사랑했다.
호령불번號令不煩 또한 호령은 번거롭지 않고 간결하여
사도향지師徒鄕之 장수들이나 군졸들의 마음을 얻었다.
작作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第49 그래서 <이장군열전> 제49를 지었다.
옛날 이광은 그의 사촌 동생 이채李蔡와 함께 효문제를 모셨다.
경제가 서자 이채는 자신이 세운 군공으로 이천석의 녹봉을 받게 되고 효무제 때는 대나라의 상국이 되었다.
원삭元朔 5년(BC124)에 경거장군輕車將軍이 되어 대장군 위청의 원정에 종군한 이채는
흉노의 右賢王을 공격하여 세운 공로로 락안후樂安侯에 봉해졌다.
원수 2년 BC121년 공손홍公孫弘의 후임으로 승상이 되었다.
이채라는 위인은 하품에서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형편없는 사람으로 이광의 명성에 비해 한참 떨어졌다.
그러나 이광은 작위에 따르는 식읍을 얻을 수 없었고 관직도 구경을 넘지 못했으나
이채는 열후에 봉해졌고 관직은 삼공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이광의 부대에 종군했던 군리와 사졸들 중에도 후에 봉해진 사람도 있었다.
일찍이 이광은 운기雲氣를 보고 점을 치는 왕삭王朔이라는 사람에게 물었었다.
“한나라가 흉노를 공격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 사람은 그 현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소.
그런데 재능이 중간에도 못 미치는 여러 부대의 교위校尉 이하의 장졸들이
흉노의 군대를 공격하여 군공을 세워 후侯에 봉해진 사람이 수십 명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만은 유독 재능이나 군공이 다른 사람에게 뒤떨어지지 않음에도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하여 봉읍을 받지 못했으니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소?
내 상이 후에 적합하지 않아서요? 아니면 내 운명이 그래서인 것이오?”
왕삭이 대답했다.
“장군께서는 한 번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옛날 원한을 살만한 일을 저지른 적이 있으셨습니까?”
“내가 옛날 농서태수로 있을 때 반란을 일으켰던 羌族을 유인하여 항복을 받아 냈는데 모두 8백 명에 달했소.
내가 그들을 속여 같은 날 모두 죽였소.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한스럽게 생각하는 일이오.”
“항복한 사람을 죽여서 받는 화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아 그 일 때문에서 장군께서는 후侯의 작위를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극음劇飮 술을 지나치게 마심.
►주생周生 당唐나라 사람,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道術이 있어 제운취월梯雲취取月 구름을 타고 달을 취했다.
►별장別腸 주유별장週有別腸,
술 마시는 사람은 창자가 따로 있다는 뜻으로 酒量은 몸집의 크고 작음에 관계가 없음을 이르는 말.
►산간山簡
위진魏晉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의 다섯 번째 아들 .
자는 계륜季倫. 술을 무척 좋아하였다.
山簡의 음주에 얽힌 일화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표현만도 굉장히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번거로울 정도다.
산옹취山翁醉·건도대巾倒戴·접리도接䍦倒·접리경도接䍦傾倒·백접리白接䍦·도착접리倒著接䍦·도재倒載·
산공상마山公上馬·산공도재山公倒載·산공좌지山公坐池·산공연빈객山公延賓客·산공유상山公游賞·산공흥山公興·
산공행처山公行處·산공음山公飮·산태수山太守·산옹도재山翁倒載·소문병주아갈笑問幷州兒葛·
소마상갈강笑馬上葛僵·거편문擧鞭問·갈강葛强·명정酩酊·취도산공醉倒山公 등등.
백접리白接䍦는 두건頭巾의 이름이다.
진晉 나라 때 풍류로 이름이 높던 산간山簡이 술을 좋아하여 매양 원지園池 가에
나가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 돌아오므로, 당시 아동兒童들이 노래하기를
산공출하허山公出何許 산공이 어디로 나가는가,
왕지고양지往至高陽池 고양지로 가는구나.
일석도재귀日夕倒載歸 날 저물면 있는 술 다 마시고 돌아와
명정무소지酩酊無所知 곤드레가 되어 아무 것도 모른다오.
시시능기마時時能騎馬 때로는 말을 타고 오면서
도저백접리倒著白接罹 백접리를 거꾸로 쓰기도 하네/<晉書 卷42>
8
진비자맥구가장塵飛紫陌九街長 티끌 날리는 도성 거리 큰 거리로 나아가니
조우청시희전광遭遇淸時喜轉狂 태평한 시대 서로 만나니 즐겁게 미쳐 맴도네.
모퇴옥당성착락暮退玉堂星錯落 저물어 물러난 옥당에는 별이 떨어져 섞이고
조추금전일창량朝趨金殿日蒼涼 아침에 달려간 금빛 전당엔 햇살이 처량하네.
장궁장기이오지臧宮壯氣伊吾志 장궁의 장한 기운 이에 나의 뜻한 바가 되고
위관충성순근장衛綰忠誠醇謹腸 위관의 충성심은 마음으로 도탑게 공경하였네.
종차서추선성화從此西樞宣聖化 이로부터 서추로서 성인의 덕화를 베풀었으니
공명종불와남양孔明終不臥南陽 제갈공명은 마침내 남양에서 누워보지 못했네.
►자맥紫陌 도성의 길.
►구가九街 도성 뒤쪽에 있는 큰 거리.
►조우遭遇 신하가 뜻에 맞는 임금을 만남. 우연히 서로 만남.
►청시淸時 청세淸世, 평화스러운 시대, 태평스런 시대.
►옥당玉堂 화려한 궁정이나 전각, 홍문관의 부제학, 교리, 부교리, 수찬, 부수찬.
►‘어긋날 착, 둘 조錯’ 어긋나다. 섞다
►장궁臧宮(?-58) 영천潁川 겹현郟縣 사람, 자는 군옹君翁,
동한東漢 시대의 名將으로 운태雲台 28將 중 한 사람이다.
본래 작은 벼슬아치였으나 農民軍에 참가한 후에 유수劉秀에게 투항하였다.
벼슬은 보위장군輔威將軍, 좌중랑장左中郎將을 지냈고 촉지蜀地를 평정한 공으로
성안후成安侯, 기사후期思侯, 찬후酂侯, 낭릉후朗陵侯로 봉해졌다.
사후에 시호는 민후湣侯이다.
<후한後漢>
후한은 기원전 202년에 유방劉邦이 세운 전한前漢이 왕망王莽의 신新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유수劉秀가 다시 세운 한나라로 전한과 구별하기 위해 ‘후한’이라고 한다.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
광무제光武帝(후한의 초대 황제. 재위25~57년)의 본명은 유수劉秀로 전한 황실 출신이지만
농사를 짓던 평범한 귀족이었으나 전한 나라가 망하고 신나라(9~23년)가 들어섰다.
그러나 개혁정책의 실패로 민심을 잃게 되어 반란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때 유수도 신나라의 황제인 왕망을 반대하는 세력인 '녹림군'에 합류한다.
23년에 신나라의 수도인 장안이 함락되고 왕망이 죽으면서 신나라는 멸망한다.
처음에는 유수의 형인 유연劉縯이 황제가 되려 했으나 다른 세력의 견제로 암살당하게 되어
유수는 조용히 힘을 키우며 후한을 건국하기 위한 능력 있는 장수들을 모은다.
이때부터 운대28장의 장수들과 만나게 된다.
여러 반란군과 세력들이 서로 다투는 가운데 유수는 군사적, 정치적으로 점점 강해졌다.
25년 유수는 결국 洛陽에서 스스로 황제를 선포하고 후한을 세워 '광무제光武帝‘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27년까지 각지의 반란세력을 건국공신인 28명의 장수들과 함께 진압하고 중국을 재통일한다.
<운대雲臺 28將>
운대雲臺는 후한의 광무제가 28명의 개국공신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수도 낙양洛陽에 세운 벽화.
운대 28장은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광무제가 신뢰했던 동료이자 후한 건국의 주역이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강한 팀워크를 보여주었고 전투뿐만 아니라
정치·외교·행정에서도 후한의 기초를 다졌다.
후한 왕조의 충성스러운 공신으로 후대에도 존경받았다.
광무제는 뛰어난 리더였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다.
운대 28장은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며 나라를 세운 영웅들이었으며
그들의 공로는 광무제가 세운 "운대"를 통해 역사에 남아있다.
1. 초기 만남(22~23) 광무제의 세력 형성기
광무제가 신新나라(왕망의 정권) 타도를 결심하고 반란군에 가담한 시기,
그는 점차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며 유능한 장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① 등우鄧禹와의 첫 만남
서기 22년경, 광무제는 후한 부흥을 꿈꾸고 있었다.
등우는 유씨 황실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광무제에게 황제 즉위를 권유했다.
등우는 후한 건국을 위한 첫 번째 측근이 되었고 곧바로 군을 정비하는 임무를 맡는다.
② 오한吳漢, 마성馬成, 왕량王梁의 합류
이들은 호족 출신으로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인물들이었다.
광무제가 반신反新 세력을 모으던 시기, 이들은 그의 리더십에 감명을 받고 합류.
서기 23년, 신나라의 대군과 맞서 싸울 때 이들은 주력 부대의 장수로 활약했다.
2. 곤양昆陽 전투 전후(23년) 주요 장수들의 집결
<후한서後漢書> 기록에 따르면 곤양 전투(23년)는 후한 건국의 결정적 계기였다.
③ 가복賈復, 진준陳俊, 경감耿弇, 두무杜茂, 구순寇恂, 부준傅俊과의 첫 만남
곤양 전투를 앞두고 광무제는 전국의 반신 세력을 결집시킨다.
가복, 진준, 경감, 두무 등은 각지에서 반란군을 이끌고 있었으나 광무제의 대의명분에 공감하며 합류.
서기 23년 곤양 전투에서 활약 특히 경감耿弇은 전술적 능력으로 큰 공헌을 한다.
곤양 전투에서 이들은 광무제의 최정예 지휘관들로 떠오르게 된다.
곤양 전투 이후 광무제는 이들을 핵심 장군으로 임명하고 본격적인 후한 재건을 추진한다.
3. 후한 건국기(24~25년) 대규모 합류
곤양 전투 이후 광무제는 후한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인재들을 영입한다.
④ 잠팽岑彭, 견담堅憺, 풍이馮異, 왕패王覇, 주우朱祜, 임광陰嵩과의 첫 만남
광무제는 전국을 평정하기 위해 각지로 원정을 떠난다.
잠팽과 풍이는 원래 신나라 관리였으나 광무제의 덕망과 능력을 보고 귀순.
왕패, 주우, 임광 역시 지역 호족 출신으로 광무제와 협력하며 후한 세력에 편입.
서기 24년부터 이들은 각 지역 정벌 작전에 참여한다.
이들은 후한의 확장을 위한 핵심 세력이 되었으며 광무제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한다.
4. 후한 제국의 확립(25~27년) 마지막 공신들의 합류
서기 25년, 광무제가 후한 황제로 즉위한 이후
전국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주요 장수들이 합류한다.
⑤ 제준祭遵, 이충李忠, 경단耿純, 만수萬脩, 합연蓋延, 비융邳肜, 요기姚期,
유식劉植, 경순耿恂, 장궁臧宮, 마무馬武, 유융劉隆과의 첫 만남이 이뤄진다.
이들은 광무제가 즉위한 이후, 각지에서 잔존하는 세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합류한다.
제준, 이충, 경단 등은 유능한 군사 지휘관으로서 서북 지역에서 반란을 진압하고
만수, 합연, 비융 등은 각지에서 광무제의 명을 받고 지방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요기, 유식, 장궁, 마무 등은 광무제의 친위대 역할을 하며 중앙 정부를 강화한다.
서기 27년경, 이들이 모두 광무제 휘하에 들어오며 후한의 통일 과정이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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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관衛綰(?-?) 전한前漢의 무장.
문제와 무제를 섬기며 오나라,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워 건릉후建陵侯에 봉해지고 丞相에 올랐다.
►서추西樞 왕명의 출납, 병기, 군정, 숙위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
현직顯職이 없는 당상관堂上官들을 속하게 하여 대우하던 관아.
一定한 事務나 實權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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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공문무량우장喜公文武兩優長 희공께서는 문인 무인 둘 다 넉넉하고 우수했기에
공퇴위사취불광公退委蛇醉不狂 공이 물러나 구불구불 하나 취하여 미치지 않았네.
수점잔기분초한數點殘棋分楚漢 몇 점 두 다 남은 장기 초나라와 한나라를 나누니
일성장적롱이량一聲長笛弄伊涼 긴 피리 한 소리 이주와 양주의 악곡을 희롱하네.
증상어수조갱미曾嘗御手調羹味 손을 다스려 일찍 맛을 보니 국의 맛은 조화롭고
불관부유탕병장不慣腐儒湯餠腸 익숙지 못한 완고한 선비 마음으로 떡을 끓이네.
간어명시교제행看語明時交際幸 평화스런 세상에 교제함 다행이다 말하고 보니
수공수사곽분양樹功須似郭汾陽 나무 같은 공을 세움에 모름지기 곽분양 같구나.
►희공喜公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이 재위하는 동안 작은 제후국들은 모두 그의 명령에 따랐으나
남쪽의 초楚나라는 강대국인 데다 거리가 멀어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
제나라 환공의 부인 가운데 채희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채 땅에서 바친 공녀였다.
하루는 환공이 채희와 함께 뱃놀이를 나갔다.
채희가 성장한 곳은 물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그녀는 환공을 놀려 주고 싶어 일부러 배를 흔들었다.
겁에 질린 환공은 흔들지 말라고 했지만 채희는 재미있어 더욱더 세게 흔들었다.
이 일로 성이 난 환공은 궁궐로 돌아오자마자 채희를 친정인 채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채나라에서는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개가 시켰고 환공은 이것을 빌미로 공격하였다.
채나라를 공략한 환공은 제후들의 나라를 자주 침범한 초나라의 기세를 꺾기 위해
초나라 국경과 인접한 소릉까지 진군하였다.
이에 놀란 초나라 성왕은 사자를 보내 이렇게 물었다.
군처북해君處北海 과인처남해寡人處南海 유시풍마우불상급야唯是風馬牛不相及也
/<춘추좌씨전春秋佐氏傳 희공喜公>
"제나라는 황하 이북에 있고, 초나라는 장강 이남에 있으므로
암내 낸 말과 소도 서로 미치지 못하는데
제나라의 병마가 우리 초나라까지 달려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이에 관중이 나서서 공물을 제때 바치지 않은 일과 주나라의 소왕이 한수에서
익사한 일을 알기 위해 출동했다고 설명했다.
사자는 공물을 제때 바치지 않은 것은 자기 나라의 잘못이지만
소왕에 관한 것은 한수가로 가서 알아보라고 말했다.
환공은 초나라를 무력으로 공격할 생각은 없었고 다만 군사를 동원하여 체면만을
좀 세워 보고 싶었기 때문에 재상 관중을 보내 대응하게 했다.
그리고 양국은 강화를 맺었다.
►위사委蛇 구불구불한 모양, 순종하는 모양.
►이량伊涼 이주伊州와 양주涼州의 두 악곡樂曲,
악원樂苑에서 이주伊州는 상商에 해당한 곡조요, 양주涼州는 궁弓에 해당한 곡조이다.
►부유腐儒 생각이 낡고 완고하여 쓸모없는 선비
►명시明時 평화스러운 세상.
►수공樹功 군인 등이 공을 세움.
►곽분양郭汾陽 곽자의郭子儀(697-781) 唐나라 공신,
안녹산安祿山의 난亂을 토벌討伐하여 도읍都邑 長安을 탈환奪還하였고 뒤에
토번吐蕃을 쳐서 큰 功을 세워 사도司徒, 중서령中書令에 이어 분양왕汾陽王으로 봉封하여졌다.
이광필(708-764)과 더불어 일대의 명신이라 칭송받았다.
8명의 아들 7명의 사위가 모두 입신출세하여 장수 번영의 상징으로 화제畵題가 되었다.
곽자의郭子儀는 당나라의 명장이다. 그러나 그가 무측천부터 당덕종까지 7명의 황제를 거치면서
조정의 풍운이 무수히 변환했고 무수한 권시權臣, 현귀顯貴들이 부침하는 와중에 몰락했지만
곽자의는 시종 흘립부도하고 심지어 말년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그의 전공이 혁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지위에 초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자세히 살펴보면 진정 그가 난세에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사람들로 하여금 탄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처세의 지혜 때문이다.
7명의 황제를 거치면서 조정의 풍운이 변화하는 가운데 온전하게 생을 마칠 수 있었던
지혜로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처세술을 지니고 있었을까?(지면상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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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홀조천옥루장簪笏朝天玉漏長 잠을 꽂고 홀 들고 입궐해 물시계로 나아가니
소공납간부생광蘇公納諫復生狂 충고 받아들인 소공께서 황급하게 부활했구나.
취면영도춘풍난醉眠瀛島春風暖 영도에 술이 취해 잠드니 봄바람은 따뜻하고
시연피향궁금량侍宴披香宮錦涼 내실에 모시어 향기 헤치니 궁전 비단 서늘하네.
궐하초선요우로闕下初宣堯雨露 대궐 아래 처음 베푸는 요 임금의 비와 이슬
마전립토금심장馬前立吐錦心腸 말 앞에 서서 드러낸 비단 같은 마음과 시문들.
붕정일거부요원鵬程一擧扶搖遠 붕새가 갈 길 한 번 거동해 멀리 힘차게 일어나니
리견룡비구오양利見龍飛九五陽 이견대인에 용이 나르니 제왕의 태양이로구나.
►잠홀簪笏 벼슬아치가 冠에 꼽던 잠簪과 손에 들던 홀笏.
‘비녀 잠/빠를 잠簪’ ‘홀 홀笏’
►납간納諫 윗사람이나 임금이 아랫사람의 간언을 잘 받아들임.
왕이 신하의 충고를 잘 받아들임, 충고를 받아들이다.
►부생復生 부활復活. 살아져 없어졌던 것이 다시 생기어남.
►금심수장錦心繡腸 시문 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지은 글이 비단결같이 고운 것을 이르는 말.
►붕정鵬程 한 번에 구만리를 난다는 상상의 붕새가 날아갈 길.
►부요扶搖 힘차게 움직여 일어남.
►이견利見 이견대인利見大人(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용비龍飛 제위帝位에 오르다. 영웅이 뜻을 얻어 일어나다.
임금의 즉위卽位를 聖스럽게 이르는 말.
‘龍이 날고 鳳凰이 춤춘다.’는 뜻으로 山川이 수려秀麗하고 맑아 生動하는 神靈한 氣勢를 이르는 말.
►구오九五 역경易經 건괘乾卦의 효爻 이름.
건乾의 밑에서부터 다섯번째의 양효陽爻,
역경, 건괘에서는
"구오는 용이 하늘을 나는 것이니, 가장 좋은 괘로 大人이 나타남을 가리킨다.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고 하였다.
방술가들은 이것을 인군의 상징으로 여겨 구오를 제왕이나 황위皇位라 칭한다.
11
점득청산졸용장占得靑山拙用長 푸른 산 차지해 얻었으나 항상 쓸모없이 쓰고
로래무부소년광老來無復少年狂 늘그막엔 진취적인 소년으로 되돌릴 수 없구나.
요천고안수운원遙天孤雁水雲遠 아득한 하늘에 외로운 기러기는 멀어져 떠돌고
락일반산풍로량落日半山風露涼 산 가운데에 지는 해에 바람과 이슬 서늘하구나.
묘찰수행배아민妙札數行排我悶 오묘한 편지 두서너 줄에 나의 번민 물리치고
신시일수척인장新詩一首滌人腸 새로 지은 시 한 수로써 사람의 마음 씻어내네.
사공재략청반소似公才略淸班少 공과 같은 재략으로 젊어서 청반에 올랐으니
갱욱규심향대양更勖葵心向大陽 해바라기 마음 더욱 힘써 큰 태양을 향하시길.
►수운水雲 물과 구름, 대자연, 물과 구름처럼 떠돎.
►재략才略 재지才智와 책략策略, 재주가 있는 .
►청반淸班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규장각, 홍문관, 선전관청 등의 벼슬.
12
월백동림추야장月白東林秋夜長 달 밝은 동쪽 숲에 가을밤은 길어서
방음고소대소광放吟孤嘯大疏狂 마음대로 시 읊고 홀로 휘파람 불며 크게 멋대로 놀아본다.
금풍만리겸가로金風萬里蒹葭老 가을바람에 만리의 갈대들도 굳어가고
옥로일천성두량玉露一天星斗涼 흰 이슬에 온 하늘의 별들도 서늘해지네.
이허운하장로졸已許雲霞藏老拙 이미 구름과 놀 속에서 못생긴 늙은이로 숨어 살기로 했으니
갱장천석세간장更將泉石洗肝腸 또 다시 샘물과 돌로써 간과 창자를 씻어 보자.
서헌사의다정황西軒徙倚多情況 서쪽 난간을 배회하노라니 느낌이 많아서
한청장공안향양閑聽長空雁向陽 한가롭게 먼 하늘의 남행하는 기러기 소리 들어본다.
달빛이 깨끗한 동쪽 숲에 가을밤은 길기만한데
크게 읊다 홀로 읊조리며 사납고 거칠게 뽐내네.
만리의 가을바람에 갈대와 물 억새 쇠약해지고
온 하늘의 깨끗한 이슬에 별들마저 서늘하구나.
이미 맡긴 구름과 노을에 늙고 옹졸함을 감추고
문득 샘과 돌에 번갈아 간과 창자를 씻어내네.
서쪽 난간에 옮겨 기대니 딱한 상황만 늘어나
한가히 높은 하늘 향해 드러낸 기러기 소리 듣네.
►옥로玉露 맑고 깨끗한 이슬.
►성두星斗 별, 북두와 남두.
►정황情況 사정과 상황, 인정상 딱한 처지에 있는 상황.
‘소광疏狂’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며 ‘로졸老拙’은 늙고 못생김을 뜻한다.
‘사의徙倚’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다.
13
백발연수지마장白髮緣愁只麽長 흰 머리털로 인한 근심은 다만 가늘고 긴데
부생염염사풍광浮生冉冉似風狂 느리게 가는 덧없는 인생 미친바람 같구나.
막사신외공명뇌莫思身外功名惱 몸 밖의 공명과 괴로움은 생각하지 말게나
차박준전소어량且博樽前笑語涼 또한 큰 술통 앞의 우스운 이야기 쓸쓸하네.
고절벽중다두간苦節壁中多蠹簡 굳은 절개는 벽 가운데 좀먹은 책들만 많고
장심상상유어장壯心床上有魚腸 평상 위 훌륭한 뜻 물고기 창자에 넉넉하네.
년래백려성회랭年來百慮成灰冷 여러 해 전부터 온갖 생각은 식은 재 이루니
유향모첨배폭양猶向茅簷背曝陽 오히려 띠 집 처마에 나아가 등에 볕을 쪼이리.
►염염冉冉 나아가는 모양이 느림.
►고절苦節 어려운 지경에도 변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가는 굳은 절개.
►두간蠹簡 좀 먹은 서류와 책.
►장심壯心 마음에 품은 훌륭하고 큰 뜻.
►회랭灰冷 심회의랭心灰意冷의 준말, 소침해지다, 불이 꺼져 싸늘하게 시은 재, 마음의 의지가 식다.
14
아재사탁말사장我材似拆襪絲長 나의 재능은 긴 버선 실이 터진 것 같아
취소천공정아광醉訴天公呈我狂 천공께 취해 호소하며 나의 광기 드리네.
저산십년다호락樗散十年多濩落 쓸모없었던 십년에 텅 빈 것만 늘어나고
와려일세정황량蝸廬一世正荒涼 한 평생 초라한 집 황량해도 순일하였네.
면의고죽소소영眠依苦竹疏疏影 기대어 쉬는 참 대나무 그림자 성글고
음대수공즐즐장吟對愁蛩喞喞腸 마주 읊는 귀뚜리 시름 마음 소리 내네.
막위차신공로대莫謂此身空老大 이 몸 헛되이 늙어 권위 있다 이르지 마오.
성명응파고반양姓名應播考槃陽 성명은 응당 맑게 은거하는 집에 퍼트리네.
►‘버선 말襪’ 버선. 허리띠(女子들의 허리에 두르는 넓은 띠)
►천공天公 하느님, 우주 만물의 주재자..
►저산樗散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말하는 이가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호락濩落 확락廓落. 텅 비어 있음. 마음에 먹었던 뜻을 펴지 못함. ‘삶을 확, 퍼질 호濩’
►와려蝸廬 달팽이 집, 작고 초라한 집, 자기 집을 낮추어 이르는 말.
►소소疏疏 드문드문하고 성김.
►즉즉喞喞 풀벌레 우는 소리. ‘두런거릴 즉, 두런거릴 즐喞’ 두런거리다. 물을 대다
►노대老大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하며 권위가 있음.
►고반考槃 은거하는 집.
<詩經 국풍國風 위衛〉 고반考槃
고반재간考槃在澗 석인지관碩人之寬 개울가에 오두막 지으니 어진 사람이 너그럽구나.
독매오언獨寐寤言 영시불훤永矢弗諼 홀로 자나 깨나 말하기를 영원히 잊지 말자 다짐하네.
고반재하考槃在阿 석인지과碩人之薖 언덕에 오두막 지으니 어진 사람이 고달프구나.
독매오가獨寐寤歌 영시불과永矢弗過 홀로 자나 깨나 노래하기를 영원히 잘못말자 다짐하네.
고반재륙考槃在陸 석인지축碩人之軸 육지에 오두막 지으니 어진 사람의 아픔이구나.
독매오숙獨寐寤宿 영시불곡永矢弗告 홀로 자나 깨나 묵으며 영원히 아뢰지 말자 다짐하네.
15
절간초개반척장折簡初開半尺長 접힌 편지를 처음 열어보니 길이가 반자라
요두피독아여광搖頭披讀訝如狂 머리 흔들며 펼쳐 읽어 미친 듯이 맞이하네.
부운변화감비한浮雲變化堪悲恨 떠다니는 구름 변화하며 슬픈 한 참아내고
인사륭쇠위열량人事隆衰爲熱涼 사람 일이 크게 쇠하니 외롭고 바쁘게 되네.
이허금란통계적已許金蘭通桂籍 이미 허락한 두터운 우정을 계적에 알리니
나지금말납체장那知錦襪納栘腸 어찌 알고 비단 버선과 앵두의 마음 보냈네.
과문자저연하사過門趑趄緣何事 들르지 않고 망설임 어떤 변고의 인연인가
지공거저설리양只恐籧篨說李陽 다만 대자리서 거짓 재판관 말할까 두렵네.
►절간折簡 온 장을 반으로 접은 편지.
►금란金蘭 ‘쇠보다 견고堅固하고 난초蘭草보다 향기香氣롭다.’는 뜻으로
매우 친밀親密한 사귐이나 두터운 友情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易經 계사繫辭>
►계적桂籍 문과文科 방목榜目을 이르는 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명부.
►과문過門 아는 사람의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아니함.
►자저趑趄 머뭇거림, 망설임.
►거저籧篨 대자리, 대오리로 엮어 만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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