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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비파사나 수행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대념처경을 중심으로) -부록․大念處經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대념처경을 중심으로)

2014-01-08 19:39:10

 

부록․1 대념처경大念處經

Maha satipatthana Sutta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큰 경

 

서언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꾸루스 지방의 깜마사담마라는 마을에 머무셨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습니다.

비구들은 ‘네, 세존이시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중생을 정화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게 하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올바른 길에 도달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다.

이것은 바로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느낌에서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그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身念處 몸을 알아차림

 

1. 出入息念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림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숲 속이나 나무 밑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상체를 반듯하게 세우고 앉아 전면에서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한다.

그리고 그는 숨을 들이쉬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는 숨을 내쉬는 것을 알아차린다.

 

숨을 길게 들이쉴 때는 나는 숨을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길게 내쉴 때는 나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쉴 때는 나는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쉴 때는 나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온 몸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들이쉴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하며

온 몸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내쉴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자연스런 호흡을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쉴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하며

자연스런 호흡을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쉴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도공이나 그의 제자가 물레를

길게 돌릴 때 나는 길게 돌린다고 알아차리고

짧게 돌릴 때 나는 짧게 돌린다고 알아차리는 것처럼.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숨을 길게 들이쉴 때 나는 숨을 길게 들이 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길게 내쉴 때 나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쉴 때는 나는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쉴 때는 나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온 몸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들이쉴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하며

온 몸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숨을 내쉴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자연스런 호흡을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쉴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하며

자연스런 호흡을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쉴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그는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그는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2. 네 가지 자세[行住坐臥]를 알아차림

 

그리고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갈 때는

나는 걷고 있다고 알아차리고 서 있을 때는 나는 서있다고 알아차리고

앉아있을 때는 나는 앉아있다고 알아차리고 누워있을 때는 나는 누워있다고 알아차린다.

또한 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3. 분명한 앎[正知]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로 돌아갈 때나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볼 때나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팔 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대가사와 다른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가고, 서고, 앉을 때도,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도, 말하거나 침묵하고 있을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 몸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厭逆作意]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은 아래로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덮여져 있으며

그 안에는 여러 가지의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즉 이 몸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과 발톱, 이빨,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위장,

소화 안 된 음식물, 대변, 뇌,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 눈물, 임파액,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마치 양쪽에 주둥이가 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 즉 밭벼, 보리, 녹두, 완두, 참깨, 논벼 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 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고

‘이것은 밭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완두, 이것은 참깨, 이것은 논벼’라고 아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은 아래로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덮여져 있으며

그 안에는 여러 가지의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즉 이 몸은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과 발톱, 이빨,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위장, 소화 안 된 음식물, 대변, 뇌,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계, 눈물, 임파액,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5. 네 가지 요소[四大]를 알아차림

 

다시 비구들이여,

이 몸을 현재 있는 그대로, 놓인 그대로, 네 가지 요소별로 알아차린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地大], 물의 요소[水大], 불의 요소[火大], 바람의 요소[風大]가 있다.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푸줏간집 주인이나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소를 잡아서 큰 길 사거리에서 부위별로 잘라서 쌓아 놓고 앉아 있는 것처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현재 있는 그대로, 놓인 그대로,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알아차린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6. 묘지에서의 아홉 가지 알아차림

 

첫째,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고, 문드러진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둘째,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 먹고, 솔개무리가 쪼아 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 먹고,

개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온갖 벌레들이 다 모여서 파먹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셋째,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있고 살점이 붙어있는 채로 해골로 변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넷째,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있고 살점이 없이 핏자국만 남은 채로 해골로 변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다섯째,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만 남아있고 살점이나 핏기가 없는 채로 해골로 변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여섯째,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사방으로 흩어져

여기에 손뼈, 저기에 발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골반, 등뼈, 두개골 등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일곱째,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조개껍질 색깔처럼 백골이 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여덟째,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백골로 변해서 무더기로 쌓여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아홉째, 다시 비구들이여,

그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삭아서 가루가 된 것을 보는 것처럼.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것에 비추어 본다.

이 몸 또한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에서 피할 수 없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몸에서 몸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몸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受念處 느낌을 알아차림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간의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세간의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출세간의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출세간의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간의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세간의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출세간의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출세간의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세간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세간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출세간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출세간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느낌에서 느낌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느낌에서 느낌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느낌에서 느낌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느낌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느낌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느낌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느낌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心念處 마음을 알아차림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1.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탐욕이 없는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2.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3.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4.

위축된 마음을, 위축된 마음이라고 안다.

산만한 마음을, 산만한 마음이라고 안다.

 

5.

커진 마음을, 커진 마음이라고 안다.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6.

향상될 수 있는 마음을 향상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더 이상 향상될 수 없는 마음을 더 이상 향상될 수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7.

집중된 마음을, 집중된 마음이라고 안다.

집중되지 않은 마음을, 집중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8.

자유로워진 마음을, 자유로워진 마음이라고 안다.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을,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마음에서 마음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마음에서 마음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마음에서 마음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마음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마음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마음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마음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法念處 법을 알아차림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法(dhamma)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1.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알아차림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안다.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惡意가 있을 때 내게 악의가 있다고 안다.

악의가 없을 때 내게 악의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악의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악의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나태와 혼침이 있을 때 내게 나태와 혼침이 있다고 안다.

나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게 나태와 혼침이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나태와 혼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나태와 혼침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나태와 혼침이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안다.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회의적 의심이 있을 때 내게 회의적 의심이 있다고 안다.

회의적 의심이 없을 때 내게 회의적 의심이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회의적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회의적 의심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회의적 의심이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법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비구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2.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五取蘊]를 알아차림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이 물질적 형상[色]이다. 이것이 물질적 형상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적 형상의 사라짐이라고 안다.

이것이 느낌[受]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라고 안다.

이것이 인식[想]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라고 안다.

이것이 마음의 형성[行]이다. 이것이 마음의 형성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마음의 형성의 사라짐이라고 안다.

이것이 의식[識]이다. 이것이 의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의식의 사라짐이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법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3.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十二處]를 알아차림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眼]을 알아차리고 형상[色]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귀[耳]를 알아차리고 소리[聲]를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코[鼻]를 알아차리고 냄새[香]를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혀[舌]를 알아차리고 맛[味]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몸[身]을 알아차리고 접촉[觸]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비구는 마음[意]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대상[法]을 알아차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나는 족쇄를 알아차린다.

비구는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족쇄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법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비구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를 알아차림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첫째,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가 있을 때 내게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둘째,

비구는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가 있을 때 내게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셋째,

비구는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가 있을 때 내게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넷째,

비구는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가 있을 때 내게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희열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다섯째,

비구는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가 있을 때 내게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는 내게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평안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여섯째,

비구는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가 있을 때 내게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일곱째,

비구는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가 있을 때 내게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안다.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내게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일어나면 그것을 안다.

일어난 평등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법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알아차림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은 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늙음은 괴로움이다. 죽음은 괴로움이다.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은 괴로움이다.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요약하면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五取蘊]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태어남은 무엇인가?

이런저런 생명의 무리가운데서 이런저런 생명들의 태어남, 출생, 도래함, 생김, 그것들의 수태,

그것들이 존재로 들어옴, 다섯 가지 무더기의 나타남, 감각 장소의 획득, 이것을 일러 태어남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늙음인가?

이런저런 생명의 무리가운데서 이런저런 생명들의 늙음, 노쇠함, 부서진 이빨, 희어진 머리카락, 주름진 피부, 활력의 감소, 감각기능의 쇠약, 이것을 일러 늙음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죽음인가?

이런저런 생명의 무리가운데서 이런저런 생명의 종말, 제거됨, 부서짐, 사라짐, 사망, 죽음, 서거, 오온의 해체, 몸을 버림, 생명기능의 파괴, 이것을 일러 죽음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슬픔인가?

이런저런 손실로 괴롭고 이런저런 고통스런 일들로 상처받은 사람의 슬픔, 슬퍼하는 것,

마음의 슬픈 상태, 내면의 근심, 내면의 깊은 슬픔, 이것을 일러 슬픔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비탄이란 무엇인가?

이런저런 손실로 괴롭고 이런저런 고통스런 느낌으로 상처받은 사람의 울부짖음, 한탄, 비탄, 울부짖고 비탄하는 상태,

이것을 일러 비탄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육체적 고통이란 무엇인가?

몸의 아픔과 몸의 불쾌함, 몸의 접촉으로 일어나는 고통스럽고 불쾌한 느낌, 이것을 일러 육체적 고통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정신적 고통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아픔과 마음의 불쾌함, 마음의 접촉으로 일어나는 고통스럽고 불쾌한 느낌, 이것을 일러 정신적 고통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절망이란 무엇인가?

이런저런 손실로 괴롭고 이런저런 불행으로

상처받은 사람의 실망, 절망, 절망의 상태, 심한 절망의 상태, 이것을 일러 절망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만나면 바람직하지 않고, 싫고, 불쾌한 대상이 있다.

또 나의 손실, 손상, 불안을 원하고, 굴레에서 해방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대상들과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그들과 함께 오는 것, 그들과 사귀는 것, 그들과 함께 섞여 있는 것,

이것을 일러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괴로움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만나면 바람직하고 기분이 좋고 유쾌한 대상이 있다.

 

또 나의 행복, 이익, 안락을 원하고, 굴레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사람,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 자매들, 친구들, 동료들, 친척들, 혈족들이 있다.

 

그런 대상들과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오지 못하고

그들과 사귀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섞여있지 못하는 것,

이것을 일러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태어나기 마련인 중생에게 이런 소원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태어남을 겪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 우리에게 태어남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늙기 마련인 중생에게 이런 소원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늙음을 겪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 우리에게 늙음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병들기 마련인 중생에게 이런 소원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병을 겪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 우리에게 병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죽기 마련인 중생에게 이런 소원이 일어난다.

아! 우리가 죽음을 겪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 우리에게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을 겪기 마련인 중생에게 이런 소원이 일어난다.

아! 우리에게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을 겪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 우리에게 슬픔, 비탄,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요약하자면,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의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에 대한 집착의 무더기[色取蘊], 느낌에 대한 집착의 무더기[受取蘊],

인식에 대한 집착의 무더기[想取蘊], 마음의 형성에 대한 집착의 무더기[行取蘊],

의식에 대한 집착의 무더기[識取蘊].

이것을 요약하면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의 괴로움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라고 한다.

 

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다시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런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롭게 태어남을 일으키는 갈애이다.

쾌락과 탐욕을 동반하고 항상 새로운 기쁨을 지금 여기저기서 찾으니 이른바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그리고 비존재에 대한 갈애[無有愛]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런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코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몸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마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보이는 형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소리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냄새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맛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감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안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이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비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설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신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코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보이는 형상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소리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냄새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맛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접촉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법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보이는 형상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소리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냄새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맛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접촉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법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에 보이는 형상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냄새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접촉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법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보이는 형상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접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보이는 형상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접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라고 한다.

 

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다시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그럼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코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혀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몸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마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감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안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이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설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신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눈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코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혀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몸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마음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눈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귀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코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혀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몸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마음의 인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접촉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에 관한 의지작용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접촉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에 대한 갈애는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접촉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에 대한 일으킨 생각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보이는 형상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소리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냄새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맛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접촉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법에 대한 지속적 고찰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가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라고 한다.

 

4)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다시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성스러운 道이니 즉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견인가?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지혜,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견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사유인가?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에 대한 사유,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사유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어인가?

거짓말을 삼가고 이간질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업인가?

살생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갖는 것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업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명인가?

성스러운 제자는 그릇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로 살아간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명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정진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한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이 일어나도록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한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계발하기 위해서 의지를 일으키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정정진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념인가?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느낌에서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하고 알아차려서 세상에 대한 욕망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정정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림으로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히고 내적으로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로 지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더 이상 없으며 마음집중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뿐만 아니라 희열까지 사라져서 평온하게 머물며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몸과 마음에서 행복을 경험하며 지낸다.

성자들이 평온하게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세 번째 선정을 얻는다.

 

다시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도 없앴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알아차림이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안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밖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에서 법을 안팎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그는 법이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혹은 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는 단지 법이 있다는 알아차림을 확립할 때까지 몸의 현상들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유지한다.

그는 갈애와 잘못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라고 한다.

 

깨달음의 보증

 

다시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들 네 가지 알아차림을 확립[四念處]하는 수행을 7년 동안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닦으면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최고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고 혹은 아직도 미세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7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들 네 가지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을

6년, 5년, 4년, 3년, 2년, 1년 동안,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닦으면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최고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고

혹은 아직도 미세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1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들 네 가지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을

7개월, 6개월, 5개월, 4개월, 3개월, 2개월, 1개월, 보름 동안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닦으면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최고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고

혹은 아직도 미세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들 네 가지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행을 7일 동안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닦으면 두 가지 결과 중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최고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고

혹은 아직도 미세한 집착이 남아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다.

 

중생을 정화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게 하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올바른 길에 도달하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