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4권 12-5
12 채실菜實 과실
5 호도胡桃
석년장건사서융昔年張騫使西戎 옛날 장건張騫이 서융으로 사신 갔다 오는 길에
득차이과종진중得此異果種秦中 이 이상한 실과를 얻어다 진秦나라 안에 심었더니
후인애지점번자後人愛之漸蕃滋 후세 사람들이 이걸 아껴 점차로 크게 번식시켜
궐후차과영천동厥後此果盈天東 그 뒤론 이 과실이 하늘 동쪽에도 가득했네.
피박기다가충변皮薄肌多可充籩 가죽 얇고 살 많아 변籩에도 채울 수 있고
외강내유여고현外剛內柔如古賢 밖은 굳세고 안은 부드러워 옛 현인賢人을 닮았네.
황부진양파감미況復珍瓤頗甘美 게다가 또 진기한 속이 퍽도 달고 아름다운 것
가실리리청엽리嘉實離離靑葉裏 좋은 열매 주렁주렁 푸른 잎 속에 들었네.
추만풍상요락시秋晚風霜搖落時 늦은 가을바람 서리에 흔들려 떨어질 때면
탈각추정성가희脫殼墜庭聲可喜 깍지 벗고 뜰에 떨어지는 그 소리가 기쁘기도 하네.
벽쇄추처시일상擘碎麁處試一嘗 거친 곳을 쪼개어 시험 삼아 맛 한번 보니
송자백인나전미松子栢仁那專美 솔 씨나 잣알 따위가 어찌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랴.
►호도胡桃→호두. 호도수胡桃樹·강도羌桃·당추자唐楸子·핵도核桃
호두의 원산지는 페르시아.
서진西晉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권6)에 의하면 전한시대의 장건張騫이
서역에 사행할 때 호도胡桃 종자를 가져왔다고 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권971)에도 호도의 원산지는 강호姜胡라고 씌어 있다.
이 책에는 처음에는 진나라에서 재배하다가 점차 동전東傳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 代에 유청신柳淸臣(1257-1329)이 원나라 사신으로 가서
묘목과 씨를 들고 와 나무는 천안시 광덕면의 광덕사廣德寺 앞에 심고
씨는 광덕면 매당리 본인의 집 마당에 심었다는 기록이다.
<산림경제>에도 중국 서쪽이 원산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청신柳淸臣은 1321년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로 갔을 때
왕위를 노리는 심왕고瀋王暠에게 가담하여 충선왕을 모함하려 하였고
본국에 정동성征東省을 설치할 것을 원나라에 건의하는 등 반역 행위를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9년간 원나라에 머물다가 죽었다.
그는 말년의 심왕옹립운동瀋王擁立運動과 입성책동立省策動 때문에
<고려사>의 간신전姦臣傳에 수록되었다.
►장건張騫(?-BC114)
漢 武帝의 명령으로 흉노격멸을 위한 대월씨와의 공수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파견되었지만
그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종국에는 서역개통을 시킨 한의 외교관이다.
한 무제는 오랫동안 중국을 괴롭힌 흉노족을 치는 데
'以夷制夷 오랑캐끼리 서로 싸우게 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흉노에게 서쪽으로 쫓겨 간 대월지大月氏가 동맹국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월지국이 흉노에게 쫓겨 타클라마칸 사막 너머 파미르 고원에
대월지국을 세워 복수할 기회를 노린다는 것이다.
무제가 대월지국에 보낼 사신으로 뽑은 사람이 바로 하급 관리 장건이다.
기원전 139년 장건은 백여 명을 데리고 長安을 떠났다.
그런데 만리장성을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흉노 왕은 장건을 흉노인 여자와 결혼시켜 양치기 일을 맡겼다.
장건은 10년이나 붙잡혀 지내면서도 자기 사명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부하 간후甘父와 함께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장건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페르가나(大宛國)와 강거康居를 거쳐 오늘날의 아프카니스탄에 있는 대월지국으로 갔다.
기원전 129년
10년 고생 끝에 대월지에 도착했으나 그들은 어느덧 흉노를 칠 마음을 잊고 있었다.
기름진 땅을 많이 얻은 그들은 굳이 척박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전쟁을 할 까닭이 없었다.
비록 그의 사명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지만
장건은 대월지에 1년을 머무르며 부지런히 견문을 넓혔다.
중국의 역사서 〈사기史記〉에는 장건이 뒷날 무제에게 인도·파르티아는 물론
시리아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관해서도 보고했다고 적혀 있다.
서족으로 갈 때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으로 갔던 장건은 돌아갈 때는
사막 남쪽 길을 택했으나 곤륜산맥 북쪽에서 티베트족에게 붙잡히는 몸이 되었다.
그는 1년 만에 또 탈출하여 장안으로 돌아왔다.
기원전 126년의 일로, 장안을 떠난 지 13년 만의 환향이었다.
떠날 때 100명이던 일행은 장건과 그의 처자식 그리고 간후 뿐이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제기 이름 변籩’ 과일·건어 따위를 담는 데 쓰는 제기祭器.
대오리를 결어서 만들고 등나무오리로 아구리에 테를 둘렀으며 굽이 높다.
용량은 4되를 기준으로 하였다.
<이아爾雅> 석기釋器의 변에 대한 해설에도 이 같은 말이 보인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 서序에
“연燕나라의 옛 땅에서는 시골 사람들이 식사에 변두籩豆를 사용한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 중국에서는 변이 널리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종묘·서원·향교 등의 제향에 변을 쓴다.
►외강내유外剛內柔 내유외강內柔外剛.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나 속은 부드러움.
►‘박속 양瓤’ 박속(박의 씨가 박혀 있는 部分)
►이리離離 여럿의 구별區別이 또렷한 모양模樣.
곡식이나 벼 이삭이 고개 숙인 모양. 구름이 길게 뻗쳐 있는 모양.
초목, 꽃, 과실이 번성하고 늘어진 모양.
피서리리彼黍離離 저곳 기장은 더부룩하고
피직지묘彼稷之苗 저곳에 피가 그 싹 자라났도다./<시경詩經 왕풍王風 서리黍離>
이리원상초離離原上草 우거진 들판의 풀
일세일고영一歲一枯榮 한 해에 한 번 무성했다 스러졌다 하네.
/백거이白居易 <부득고원초송별賦得古原草送別>
계상이리초溪上離離草 시냇가에 풀 무성해
침인좌처생侵人坐處生 사람 앉는 자리마다 돋아났네.
/김부현金富賢 <삼청동三淸洞>
요옥참차벽수지繞屋參差碧樹枝 집을 두른 길고 짧은 푸른 나뭇가지에
추심결자정리리秋深結子正離離 가을 깊어 익은 밤톨들이 한창 풍성하구나.
/성현成俔 <김자고고양장金子固高陽庄 후원습률後園拾栗>
이리동실離離桐實 번성한 오동나무 열매. 악장樂章 이름.
●과송하옹묘過松下翁墓 송하옹의 묘소를 찾아오다/이복현李復鉉(1767-1853 영조43~철종4)
송하松下 이낙수李洛秀(1755-1833)
비막비혜영별리悲莫悲兮永別離 슬픔 중에 영원한 이별보다 더한 것 없으니
리리초숙십년지離離草宿十年遲 무성하게 자란 풀 십 년 늦게 찾아 왔구려
사양롱상일탄식斜陽壟上一歎息 비끼는 석양 무덤가에서 길게 탄식하노니
하처인간경견지何處人間更見之 인간 세상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지아자수공독로知我者誰空獨老 나를 안 이 누구였나 부질없이 홀로 늙어가니
사군비우즉오사似君非友卽吾師 그대와 같은 이 벗 아니요 나의 스승이라오
방황과객창주로彷徨過客滄洲路 지나는 손 창주362의 길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완독창가백로시宛讀蒼葭白露詩 무성한 갈대 흰 이슬의 시를 가만히 읊조리네.
/이복현李復鉉 <석견루시초石見樓詩鈔>
►요락搖落 흔들어 떨어뜨림. 늦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짐.
●요락搖落 나뭇잎은 흔들리며 떨어지고/두보杜甫(712-770)
其二
요락무산모搖落巫山暮 나뭇잎이 흔들리며 떨어지는 무산의 저물녘
한강동북류漢江東北流 차가운 강이 동북으로 흐르는데
연진다전고烟塵多戰鼓 연기와 먼지 속에서 전고 소리 잦고
풍랑소행주風浪少行舟 풍랑이 거세어 다니는 배 드물다.
아비희지묵鵝費羲之墨 거위는 왕희지의 묵적을 허비하고
초여계자구貂餘季子裘 담비는 소진의 해진 갖옷으로 남고 말겠지.
장회보명주長懷報明主 영명하신 군주께 보답하리라 늘 그려왔건만
와병부고추臥病復高秋 병들어 누운 몸 다시 기주의 늦가을을 맞았네.
/767년 가을 기주에서
●겸가蒹葭 갈대/두보杜甫(712-770)
최절부자수摧折不自守 부러지고 꺾이어도 제 자신을 못 지키니
추풍취약하秋風吹若何 가을바람 불어오면 저 갈대는 어찌할까
잠시화대설暫時花戴雪 짧은 순간 머리위에 하얀 눈꽃 이었지만
기처엽침파幾處葉沉波 언저리의 잎 파리는 강 물결에 잠겼구나
체약춘묘조體弱春苗早 봄날 싹이 일찍 나서 그 몸체는 허약하고
총장야로다叢長夜露多 줄기들은 길다보니 밤이슬이 가득하네
강호후요락江湖後搖落 강호에선 잎 시들고 지는 지만
역공세차타亦恐歲蹉跎 가는 세월 놓칠까봐 이게 또한 두것이 늦다렵다네
►탈각脫殼 탈피脫皮.
(식물(植物)이나 씨앗 따위의)꼬투리나 껍질 또는 껍데기를 벗기거나 벗어남. 또는 그 껍질.
<36界 중 제21계 금선탈각金蟬脫殼>
원형을 보존하고 그 형세를 완비하면 우군은 의심하지 않고 적군도 움직여 쳐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산풍고山風蠱 괘의 '공손히 그쳐있는 것이고'라는 것을 응용한 것이다."
약차인자若此人者 이처럼 도를 체득한 사람은
포소수정抱素守精 소박함을 품고서 정기를 지킨다.
선태사해蟬蛻蛇解 매미가 껍질을 벗고 뱀이 허물을 벗듯이
유어태청遊於太淸 태청太淸(도교의 하늘)에서 노닐고
경거독왕輕舉獨往 가볍게 거동하고 홀로 머물며
홀연입명忽然入冥 홀연히 어둠으로 들어간다.
/<회남자淮南子 정신훈精神訓>에서 유래되었다.
<선충오덕蟬蟲五德 매미가 지진 5가지 덕목>
서진西晉의 육운陸雲(262-303)은 늦가을의 매미를 주제로 한선부寒禪賦를 지었다.
서문에서 매미를 '지덕지충至德之蟲 지극한 덕을 갖춘 곤충'이라고 표현하면서
매미에게는 군자가 지녀야 할 5가지 덕목이 있다고 했다.
첫째, 문덕文德
두상유유즉기문야頭上有緌則其文也
평상시엔 감추고 있는 매미의 곧게 뻗은 입은
길게 늘어진 선비의 갓끈과 같아서 學文에 뜻을 둔 선비와 같다.
또한 매미의 반복적인 울음소리는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로 들린다.
둘째, 청덕淸德
함기음로즉기청야含氣飮露則其淸也
매미는 오로지 맑은 이슬과 수액만 먹고 사니 청렴淸廉하다.
셋째, 염덕廉德
서직불향즉기렴야黍稷不享則其廉也
농민이 애써 일군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염치廉恥가 있다.
넷째, 검덕儉德
처불소거즉기검야處不巢居則其儉也
매미는 여느 벌레들과는 달리 집조차 짓지 않고
그냥 나무에서 생활하니 욕심이 없고 儉素하다.
다섯째, 신덕信德
응후수절즉기신야應候守節則其信也
매미는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때에 맞춰 열심히 울며
물러날 때를 알고 지키니 신의信義가 있다.
그래서 매미는 '지료知了(안다, 알았다)'라는 또 다른 별명도 가지고 있다.
●부휴선사浮休禪師(1543-1615) 임종게臨終偈
칠십삼년유환해七十三年遊幻海 꿈같은 이 세상 노닐기 73 해
금조탈각반초원今朝脫殼返初源 오늘 아침 이 몸 벗고 본향으로 돌아가네.
확연공적원무물廓然空寂元無物 크고 큰 이 고요!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하유보리생사한何有菩提生死限 보리菩提는 어디 있고 生死인들 어디 있나?
►‘엄지손가락 벽擘’ 엄지손가락. 나누다. 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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