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4권 13-3
13 서화書畫 글씨와 그림
3 정궤독서淨几讀書 조촐한 책상에서 글을 읽다
세인분경의취허世人奔競倚吹噓 세상 사람은 분경奔競하며 추천[吹嘘]을 의뢰하여
불학무지보옥제不學無知步玉除 배우지 않아 무지한 이가 玉뜰을 거니네.
오국오민위후소誤國誤民爲後笑 나라와 백성 다 그르쳐 후세에 웃음거리 되니
하여정궤독경서何如淨几讀經書 조촐한 책상에서 경서經書나 읽는 것이 어떠하리.
세상사람 분주히 다퉈 과장되게 말함에 의지하고
배우지도 않고 아는 것도 없는데 조정에 올라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려 후세의 비웃음이 되니
어찌 책상을 깨끗이 하고서 경서를 읽는 것과 같으랴.
고지위사자古之爲仕者 옛날에 벼슬하던 자는
불욕조진不欲躁進 조급하게 나아가
이립기신以立其身 立身하려 하지 아니하고
단수천작이이但修天爵而已 다만 천작天爵을 닦을 뿐이었다.
옛적에 벼슬했던 사람들은
조급하게 그 몸을 세우려 하지 않고
다만 천작을 닦았을 뿐이다.
여이지경신如伊之耕莘 이윤伊尹이 신宰의 들에서 밭을 갈고,
려지조위呂之釣渭 여상呂尙이 위수渭水에서 낚시질한 것이
하상유심어구환재何嘗有心於求宦哉 어찌 벼슬을 구하는 데 마음이 있어 그러했다 하겠는가?
예를 들면 이윤이 들에서 밭 갈았던 것과
여상이 위수에서 낚시질한 것이
어찌 일찍이 벼슬 구하는 것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이겠는가?
연탕지삼빙然湯之三聘 그러나 탕湯이 3번 청하고
문지일견文之一見 문왕文玉이 한 번 보고서
출이편회풍운자出而便會風雲者 곧 풍운조화를 일으키게 된 것은
이기도덕숙착以其道德夙著 그 도덕이 일찍부터 나타나
능계옥인주能啓沃人主 능히 임금을 인도하고 도와준 것이어늘
하상위인주지출척재何嘗為人主之黜陟哉 어찌 임금의 내리고 올림으로 된 것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탕 임금이 세 번 초빙하고
문왕이 한 번 찾아옴에
나가 곧 임금과 신하가 만났고
도덕으로 일찍 드러내어
임금을 보필할 수 있었으니
어찌 일찍이 임금의 강등과 승진 따위의 조치로 한 것이겠는가?
금즉불연今則不然 오늘날은 그렇지 아니하여
의세취허倚勢吹噓 세력에 아부해서 선전하고 도와주어
구등사로苟登仕路 구차하게 벼슬길에 오르고
지유서사이성사자의至有筮仕而省事者矣 벼슬을 한 뒤에야 일을 배우는 자도 있기에 이르렀다.
즉기소여인어자則其所與人語者 그러니 그가 사람들과 말하는 것은
개위록위신야皆爲祿爲身也 다 녹祿을 위함이요 몸을 위함이니
하가계옥어인주재何暇啟沃於人主哉 어느 겨를에 임금을 인도하고 도와주겠는가?
지금은 그렇지 않다.
권세에 의지해 으스대고
구차히 벼슬길에 올라
처음 벼슬함에 일을 생략하는 사람에 이르면
남과 함께 말하는 것이라곤
모두 월급을 위하고 자신의 몸만을 위하니
어느 겨를에 임금에 보필하리오.
차여소년독서시此余少年讀書時 이것은 내가 소년 적 글 읽을 때에도
미상불엄권이장탄야未嘗不掩卷而長嘆也 미상불 책을 덮고서 깊이 탄식하던 것이다.
연구부득수도덕여이려然苟不得修道德如伊呂
그러나 진실로 도덕을 닦기를 이윤과 여상같이 하지 못한다면
필야독서호必也讀書乎 반드시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니
수불능신사독행雖不能慎思篤行 비록 삼가서 생각하고 독실하게 행동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기여무지其與無知 개유분의蓋有分矣 무식한 것과는 구별이 있을 것이다.
이에 나는 어려 독서할 때에
일찍이 책을 덮고 긴 탄식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진실로 도덕 수련하길 이윤이나 여상과 같이 할 수 없다면
반드시 책이나 읽을 것이로구나.
비록 삼가 생각하고 독실히 행동할 수 없다면
무지함과 비교하여 대체로 분별이 있을 것이다.
►분경奔競 엽관운동獵官運動.
관원이 전조銓曹의 대신이나 권문세가에 분주하게 찾아다니며 승진 운동을 하던 일.
지지 않으려고 몹시 다투는 일. 금품金品, 연줄 그 밖의 온갖 方法으로 벼슬자리를 求함.
이이와 이순신은 덕수德水 이씨李氏 종친이다.
율곡이 병조판서일 때 하급군관이었던 이순신에게 만나자고 전갈을 넣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방부장관이 일개 소대장을 부른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회동을 이순신은 거절한다.
아무리 문중 일가라 해도 인사권을 쥔 사람과 사사로이 만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조선시대 분경금지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권세가 높은 친척집을 드나들며 청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분경奔競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줄임말로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요즘으로 치면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하는
일명 '김영란법'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성종 때 완성한 '경국대전'에 친가는 8촌, 외가와 처가는 6촌 이내로
그것도 혼인한 자와 이웃에 가까이 있지 않으면서 당상관이나
주요 관원의 집을 출입하는 자는 분경으로 보아 장杖 100대와 유형에 처했다.
그래도 암암리에 분경이 그치지 않자
숙종 때에는 6촌 이내, 외가는 4촌 이내로 더 강화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문중제사 때에는 종친이면 누구나 참석해서 만날 수 있었다.
일년에 한두 번 이때 일가 챙기기가 시작된다.
흔히 하는 말로 '묘를 잘 쓰면 조상의 음덕을 입는다'고 했는데
조상을 빙자해 이루어지는 분경인 것이다.
조정에서는 관리들에게 사불삼거四不三拒의 정신을 청백리의 기준으로 삼았다.
사불四不은 부업하지 않고, 땅 사지 않고, 집 늘리지 않고,
부임지의 특산물을 착취하지 않는 것이다.
삼거三拒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일을 처리함에 답례를 거절하고, 경조사에 부조를 받지 않는 것이다.
민주주의 꽃인 선거가 끝났다.
이제부터 분경의 시간이다.
선거에 도움을 준 자에 대해 혜택을 주는 엽관제獵官制는
민주국가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깜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설치니 그게 문제다.
/거제신문 ‘22.06.28 윤일광 칼럼위원
조선의 대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형전刑典에 금제禁制라는 조문이 있다.
나라에서 각별히 금지시키는 일들을 명시한 조문으로
관리들과 백성이 따르지 말아야 할 풍속을 규정하고 있다.
이 금제에서 첫번째 조항이 분경자奔競者라는 조항이다.
[禁制][奔競者]
吏兵曹·諸將·堂上官·吏兵房承旨·司憲府·司諫院·判決事之家,
非同姓八寸·異姓妻親六寸·婚姻家·隣里人而出入者. 杖一百流三千里.
►취허吹嘘 남이 잘한 것을 과장되게 칭찬하여 천거함. 과장해서 말하다.
►옥제玉除 옥으로 꾸민 계단으로 조정을 가리킨다.
►정궤淨几 깨끗한 책상冊床
►경신耕莘 평민으로 있으면서 농사지음.
이윤경어유신지야伊尹耕於有莘之野 이윤은 유신의 들판에서 밭 갈면서도
이락요순지도언而樂堯舜之道焉 요순의 도를 즐겼다/<맹자孟子 만장萬章>上
►계옥啓沃
신하가 마음에 있는 좋은 의견을 임금에게 아뢰어 도움이 되게 하는 것.
임금에게 흉금을 터놓고 생각한 바를 바른 대로 말함.
은殷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계내심啓乃心 너의 마음을 열어서
옥짐심沃朕心 나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라/<서경書經 열명說命>上
계옥사후설啓沃司喉舌 임금과 흉금을 터놓고 말하는 사이라 승지 직책을 맡았고
봉망름막야鋒鋩凜鏌鎁 날카롭기는 名劍 막야의 칼날 같았네.
/어세겸魚世謙 <좌의정영선부원군만장左議政寧城府院君挽章>
►서사筮仕 처음으로 벼슬함.
원래는 처음 벼슬할 때에 길흉을 점쳐 태도를 결정하는 것을 말함.
지초출주관指初出做官 처음으로 관직에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
서사불기년筮仕不幾年 처음 벼슬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력제학대언歷提學代言 제학과 대언을 거쳤다
/이제현李齊賢 <송신원외북상서送辛員外北上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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