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頌과 着語】
량갈여삼갈兩喝與三喝 두 번째 질러댄 소리와 세 번째 질러댄 소리여
뢰성호대雷聲浩大 우점전무雨點全無 우레 소리는 큰데도 빗방울은 전혀 없다.
자고지금自古至今 한유인임마罕有人恁麼 자고이래로 이 같은 사람이 드물다.
작자지기변作者知機變 작가 선객인지라 기연에 맞출 줄 알았다.
약불시작가若不是作家 쟁험득爭驗得 작가가 아니라면 어떻게 (상대를) 시험할 수 있으랴.
지공불임마只恐不恁麼 다만 이렇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약위기호두若謂騎虎頭 범 대가리에 올라탔다고 여긴다면
화㘞 할한瞎漢 와~ 아! 눈먼 장님아,
호두여하기虎頭如何騎 범 대가리에 어떻게 올라탄단 말이냐?
다소인임마회多少人恁麼會 몇 사람이나 이럴 수 있을까?
야유인작저견해也有人作這見解 그러나 그런 사람도 있다.
이구성할한二俱成瞎漢 둘 다 눈먼 장님이 되리라.
친언출친구親言出親口 자신의 말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다.
하지량개何止兩箇 어찌 둘만 되겠는가?
자령출거自領出去 냉큼 꺼져라.
수할한誰瞎漢 누가 눈먼 장님인가?
교수변教誰辨 누구더러 분별하게 할까?
뢰유말후구賴有末後句 다행히도 마지막 한마디가 있구나.
계호잠살인洎乎賺殺人 하마터먼 사람을 속일 뻔했다.
념래천하여인간拈來天下與人看 온 세상에 들추어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리라.
간즉불무看即不無 처착즉할覷著即瞎 보기는 하겠지만 마주치면 눈이 먼다.
도리약착안간闍梨若著眼看 즉량수부공則兩手掊空
그대들이 눈여겨보려 한다면 (그것은)두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는 꼴이다.
임마거恁麼舉 차도시제기기且道是第幾機
이처럼 거량하였으니 말해보라, 이게 몇 번째 기연인가?
►기변機變 국면(상황)의 급격한 변화. 그때그때의 상황에 적합한 수단·방법.
상대의 소질이나 능력에 따라 알맞게 구사하는 말솜씨.
선기변화禪機變化 기봉변화機鋒變化
►‘흙으로 길을 높일 자, 소리 화㘞’
놀랐을 때 지르는 외마디 소리. 힘 줄 때 내는 소리.
용동돌用同咄 화㘞=돌咄
표시용력지성表示用力之聲 힘쓰는 소리를 표시함.
<옥편玉篇> 화㘞 견선성牽船聲 배를 끄는 소리다.
정자통正字通 화㘞 진선성進船聲
정자통 화㘞 진선進船하는 소리다.
<려산련종보감廬山蓮宗寶鑑>10
차개화자此箇㘞字 일체세인一切世人 구중미상불설口中未嘗不說
이것 화자㘞字는 일체의 세인世人이 구중口中에서 일찍이 설하지 않음이 없다.
유여실물인홀연심견喩如失物人忽然尋見
유여喩如(비유로 예를 듦) 물건을 잃은 사람이 홀연히 심견尋見하고는
불각발차일성시화자야不覺發此一聲是㘞字也
불각에 이 일성一聲을 발함이 이 화자㘞字다.
종문다언차자자宗門多言此字者 종문에서 이 글자를 많이 말하는 것은
개심사방도지인蓋尋師訪道之人 대개 심사방도尋師訪道하는 사람이
참구삼이십년參究三二十年 3, 20년 참구하고는
홀연심화발현忽然心花發現 홀연히 心花가 발명하여
회득차사會得此事 이 일을 會得하매
불각화지일성不覺㘞地一聲 불각에 화지일성㘞地一聲함이
여실물득견如失物得見 잃었던 물건을 득견 함과 같아서
경쾌평생慶快平生 시기자의야是其字義也 경쾌慶快한 평생이니 이것이 그 字義다.
►말후구末後句=말후일구卽末後一句. 종문宗門의 활구
‘末後’ 구경, 필경, 구극, 지극의 뜻,
‘句’ 언구, 어구, 문구라는 뜻.
위도달철저대오지극처소언지지극어謂到達徹底大悟之極處所言之至極語
이르자면 철저히 대오한 극처極處에 이르러 말하는 바의 지극한 말이니
갱무기타어구능초월자更無其他語句能超越者
다시 기타의 어구가 능히 초월함이 없는 것.
차지차송말후적념래구此指此頌末後的拈來句
여기에선 이 송의 말후의 염래구拈來句를 가리킴.
●말후구末後句
말후구는 당나라의 선종을 배경으로 하는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라는 글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이다.
암두밀계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가장 난해한 최상승의 향상구 공안'이라고 묘사하는
사람이 있으나 공안(화두)의 재료는 아니다.
대부분의 화두와 선문답이 사고 관념을 '몸'으로 깨트리는 훈련이라면
말후구는 공부를 마친 사람들이 현상계에 다시 적응하는 자신에 대한 해석이다.
그래서 말후구는 화두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바른 이해이다.
말후구는 한국어 사전에 없는 단어이며 불교사전의 풀이는
"大悟의 철저한 극치에 이르러 지극한 말을 토하는 것으로
구경究竟ㆍ필경畢竟ㆍ구극究極ㆍ지극至極의 뜻"이라고 되어 있다.
말후구는 특별한 상태나 비결에 대한 설명이 아니며 공부를 마치고 다시
'나'로써 살아가는데 발생하는 일체의 착오를 벗어나는 최후의 과정을
가장 적절하게 가리키고 있는 상징적인 표현일 뿐이다.
그러함에도 말후구의 내용을 관통하지 않으면 퇴전할 수도 있다.
德山托鉢話를 읽으면 제자(巖頭)도 아는 末後句를 스승(덕산)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으며
또 그런 사람이 어떻게 大善知識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德山과 巖頭는 師弟지간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이미 工夫를 마친 상태이다.
<無門關 13則 덕산탁발德山托鉢>
덕산일일德山一日 덕산이 어느 날
탁발하당托鉢下堂 발우를 받들고 하당하자
견설봉문見雪峯問 설봉이 묻되
자로한者老漢 이 老漢이
종미명고미향鐘未鳴鼓未響 종鐘도 울리지 않았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탁발향심처거托鉢向甚處去 발우를 받들고 어느 곳으로 향해 가십니까?
산편회방장山便回方丈 덕산이 곧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봉거사암두峯擧似巖頭 설봉이 암두에게 이 일을 말했다
두운頭云 대소덕산미회말후구大小德山未會末後句
암두가 이르되 대소大小 덕산이 말후구를 알지 못하셨다.
산문山聞 령시자환암두래令侍者喚巖頭來
덕산이 듣고서 侍者를 시켜 암두를 불러오게 했다.
문왈問曰 여불긍로승나汝不肯老僧那
물어 가로되 네가 노승을 긍정하지 않느냐.
암두밀계기의巖頭密啓其意 암두가 몰래 그 뜻을 알렸다.
산내휴거山乃休去 덕산이 곧 쉬었다.
명일승좌明日陞座 과여심상부동果與尋常不同
명일 승좌하였는데 과연 심상과 같지 않았다.
암두지승당전巖頭至僧堂前 부장대소운拊掌大笑云
암두가 승당 앞에 이르러 부장하며 크게 웃고 이르되
차희득로한회말후구且喜得老漢會末後句
다만 노한이 말후구를 아셨음을 기뻐하노라.
타후천하인불내이하他後天下人不奈伊何
타후에 천하인이 그를 어찌하지 못함을 어찌하랴.
무문왈無門曰 무문이 가로되
약시말후구若是末後句 만약 이 말후구라면
암두덕산구미몽견재巖頭德山俱未夢見在 암두와 덕산이 모두 꿈에도 보지 못하였다
검점장래撿點將來 호사일붕괴뢰好似一棚傀儡
검점하여 가져오매 좋이 일붕의 괴뢰와 흡사하다 하노라.
송왈頌曰
식득최초구識得最初句 최초구를 알면
편회말후구便會末後句 곧 말후구를 아나니
말후여최초末後與最初 말후와 최초여
불시자일구不是者一句 이는 이 일구가 아니로다.
<덕산탁발화에 담긴 네 가지 문제>
첫째는
‘덕산德山이 어째서 설봉의 말 한마디에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을까’
진실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뜻이 있었을까?
천고에 이름난 덕산이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바리때는 들고 어디 가는가?”
설봉의 말 한마디에 어째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머리를 푹 숙인 채 방장으로 돌아갔을까?
실지로 몰라서 그랬다면 덕산을 어떻게 천고에 뛰어난 대조사라 할 수 있을까?
둘째는
‘덕산이 과연 말후구末後句를 몰랐을까,
말후구도 모르고서 어떻게 대조사가 되었을까’
암두가 덕산을 두고 “말후구도 모른다.”고 했으니 과연 그 뜻이 어느 곳에 있느냐.
덕산이 실지로 대답을 못하고 돌아갔으므로 “말후구도 모른다.”고 했는지
아니면 그 뜻이 다른 곳에 있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셋째는
‘은밀히 그 뜻을 말하였다 하니 무슨 말을 하였을까’
비밀히 그 뜻을 말씀드렸다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과연 암두는 덕산에게 무슨 말을 하였을까?
넷째는
‘덕산이 암두에 의해 말후구를 알았으며 또 그 수기授記를 받았을까’
암두는 덕산을 비밀히 만난 후 덕산의 법문이 예전과 달랐다 했고
암두는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젠 천하의 누구도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3년뿐이다.” 했는데 암두의 예견대로 3년 후에 돌아가셨다.
그럼 암두는 덕산보다 몇 배나 훌륭하였단 말인가?
이것이 덕산탁발화의 4가지 풀기 어려운 문제점이다,
이는 실지에 있어서 화두공부를 부지런히 해 확철히 깨쳐
정안을 바로 갖추기 전에는 절대로 모르는 것이다.
어떤 사량복탁思量卜度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자성을 바로 깨치기 전에는 덕산과 암두와 설봉 세 분 말씀의 근본 뜻은 절대로 모른다.
/성철 <무엇이 너의 본래면목이냐>(2020)에서 발췌
결국은 모든 도리는 하나(一)의 매듭으로 엮여있다.
이 자리는 最初句라 해도 되고 末後句라고 해도 된다.
<혜암현문惠庵玄門 스님의 말후구>
근현대 한국불교의 선지식이며 중흥조인 경허·만공스님의 선풍禪風을 계승하고
덕숭총림 수덕사 초대 방장을 역임한 혜암현문惠庵玄門(1886-1985)스님.
어느 날에 납자일인納子一人이 수덕사修德寺 조실祖室에 들어와서
혜암惠庵 노스님에게 예배禮排하고 묻기를
“소승이 노스님께 법문을 듣고자 하여
불원천리하고 찾아왔는데 법문 말씀을 하여 주시겠습니까?”
“늙은 사람이 무엇을 알겠나마는
성의가 고마우니 생각나는 대로 물어보게”
“그러면 묻겠습니다.
스님 저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라는 것이 선문에 있지 않습니까?”
“있지 있어 어디 말해 보게.”
“무문관無門關 제13칙에 보면
덕산德山스님이 어느 날에 발우를 가지고 조실에서 나와서
승당으로 가시다가 설봉雪峰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설봉이 부르되
이 노장 스님이 종소리도 아니 나고 북소리도 아니 났는데
때도 모르고 어디로 가시는 것이요 하였더니
덕산德山스님이 무참하여 조실로 돌아갔습니다.
설봉이 이런 이야기를 암두岩頭스님께 권하였더니 암두가 말하되
점잖은 덕산이 아직도 末後句를 몰랐구나 하였습니다.
덕산이 이 말을 듣고 시자를 불러서 암두를 오라고 하여 묻기를
자네는 이 노승을 인정하지 않는가? 하였더니
암두가 덕산에게 남이 듣지 못하도록 귓속말로 비밀하게 무슨 뜻을 말하였더니
덕산스님이 머리만 끄덕거리고 아무 말도 아니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에 덕산이 法座에 올라앉아서 설법을 하였는데 여느 때보다 달랐습니다.
암두岩頭가 승당 앞에 이르러서 손바닥을 치고 크게 웃어 말하되
덕산노장의 末後句 얻은 것을 기뻐하노니 이 뒤에는
천하 사람이 덕산 노장에게 어떻게 하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암두岩頭가 덕산스님에게 무슨 말을 귓속말로 하였건대
덕산은 그 이튿날에 설법이 이상하였으며
또 암두岩頭가 긍정하고 손을 치고 웃으며
덕산이 末後句를 얻었다고 긍정한 것이 무슨 뜻이냐는 이 공안에 대하여
고금에 여러 말이 많고 현재 우리 선학계에서도 이것을 한 연극으로 돌리는
종사까지 있으니 노스님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나도 近來에 유행되는 덕산탁발화를 往來하는 納子에게도 듣고
불교신문에서도 보았지만 암두말후구를 일렀다는 것이 석연釋然치 못하네.”
“그러시다면 노스님은 무엇이라고 이르시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이 혜암惠庵에게 암두말후구를 묻는다면
나는 유안불견有眼不見이요, 유이불문有耳不聞이라, 지자知者가 시수是誰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 아는 자가 이 누구인가 하리라.
또 이르되
운변탈토雲邊脫兎 향하지向何知냐
낙일落日 기응공자명飢鷹空自鳴이라 하리라.
구름 가에 날쌘 토끼가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이냐
서산낙일에 주린 매가 부질없이 스스로 운다 하겠네.”
혜암惠庵 노스님은 수덕사 선방 조실로 계시는데 금년 84세로
60년간을 선리禪理만 정진精進하신 선지식善知識이다。
/불교신문 2016년12월3일
►친언출친구親言出親口 그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
►계호잠살인洎乎賺殺人 하마터면 속을 뻔 했다. ‘물 부을 계(게, 기)洎’
‘기호洎乎’ 洎合 하마터면 ~할 뻔 했다
►사리闍梨 도리闍梨. 도려闍黎. 중들에게 덕행을 가르치는 스승.
범어아사리적간칭梵語阿闍梨的簡稱 우작도려又作闍黎
범어 아사리阿闍梨(梵 ācārya)의 간칭. 또 사리闍黎로 지음.
의위승인지사意爲僧人之師 뜻이 승인의 스승이 됨.
상용작대승인적칭호常用作對僧人的稱呼 상용하여 승인에 대한 칭호로 부름.
►량수부공兩手掊空 두 손으로 허공을 치다. ‘헛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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