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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錄/벽암록

벽암록 94칙 頌 着語

【頌과 着語】

전상전우예불수全象全牛翳不殊

온전한 코끼리[全象]와 온전한 소[全牛]를 봤다고 하더라도 눈병[瞖] 탓임에는 틀림이 없다.

 

반변할한半邊瞎漢 반쪽은 눈먼 놈이다.

반개반합半開半合 넌지시 일러주는군(반은 열렸고 반은 닫혔다.)

 

부리모벽작십마扶籬摸壁作什麼

울타리 붙잡으며 벽을 더듬거리며 (길을 가듯 남에 의지해서) 무얼 하느냐.

 

일도량단一刀兩段 단칼에 두 동강을 내라.

 

종래작자공명모從來作者共名模 예로부터 작가 모두가 껍데기만 더듬었네.

서천사칠당토이삼西天四七唐土二三 서천의 28대 조사와 중국의 여섯 명의 조사,

천하로화상天下老和尚 여마사속如麻似粟 천하의 노스님이 삼대처럼, 좁쌀처럼 많다.

유자소재猶自少在 그래도 조금은 남아 있구나.

 

여금요견황두로如今要見黃頭老 이제 누런 머리의 노인[黃頭老 부처]을 보려 하는가?

돌咄 쯧쯧!

저로호這老胡 할한瞎漢 이 늙은 오랑캐야, 눈먼 놈아!

재이각근하在爾腳跟下 그 눈먼 놈이 너의 발밑에 있다.

 

찰찰진진재반도剎剎塵塵在半途 이 모든 곳에서 부처를 봤다 해도 아직은 길 중간이다.

각근하차과료야腳跟下蹉過了也 발아래에서 빗나갔다.

갱교산승설십마更教山僧說什麼 다시 산승(원오)더러 무엇을 말하라는 것이냐!

려년환증몽견마驢年還曾夢見麼 나귀 해가 되면 꿈에서 볼 수 있을까?

 

 

►전상전우예불수全象全牛瞖不殊

코끼리와 소 전체를 본다 해도 눈병 탓에 있지도 않는 것을 봄에 지나지 않는다.

 

►전상全象 <열반경>에 나오는 설화

흔히 ‘群盲象評’ ‘衆盲摸大象’이라 한다.

결국 凡人이 佛性을 봄도 이와 같아서 불성의 전체를

완전히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 놓고 전체를 妄評하기 쉽다.

 

<조정사원祖庭事苑>2 全象

6도경六度經(六度集經8)云 육도경(육도집경8)에 이르되

경면왕령인군맹모상鏡面王令引群盲摸象 경면왕이 뭇 맹인을 인솔하여 코끼리를 더듬게 했다.

 

왕문지왈王問之曰 왕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여조견상호汝曹見象乎 너희들이 코끼리를 보느냐?

대왈對曰 아조구견我曹俱見 대답해 가로되 우리들이 다 봅니다.

 

왕왈王曰 상하류호象何類乎 왕이 가로되 코끼리가 어떤 종류인가?

지족자대왈持足者對曰 명왕明王 상여칠통象如漆桶

발을 잡은 자가 대답해 가로되 明王이시여 코끼리는 칠통漆桶과 같습니다.

 

지미자持尾者 상여소추象如掃箒 꼬리를 잡은 자는 코끼리가 쓰는 비와 같다 했고

지미본자언持尾本者言 여장如杖 꼬리의 근본을 잡은 자는 말하되 지팡이 같습니다.

지복자언持腹者言 여고如鼓 배를 잡은 자는 말하되 북과 같습니다.

지협자언持脇者言 여벽如壁 옆구리를 잡은 자는 말하되 벽壁과 같습니다.

지배자언持背者言 여고갱如高坑 등을 잡은 자는 말하되 높은 구덩이 같습니다.

 

지신자언持身者言 여파기如簸箕 몸을 잡은 자는 말하되 까부르는 키와 같습니다.

지두자언持頭者言 여괴如魁 머리를 잡은 자는 말하되 언덕과 같습니다.

지아자언持牙者言 여각如角 어금니를 잡은 자는 말하되 뿔과 같습니다.

지비자언 持鼻者言 여대색如大索 코를 잡은 자는 말하되 큰 동아줄과 같습니다.

 

부어왕전공송언復於王前共訟言 다시 왕 앞에서 함께 쟁송爭訟해 말하되

대왕大王 상진여아언象眞如我言 대왕이시여 코끼리는 진실로 나의 말과 같습니다.

 

시왕대소지왈時王大笑之曰 때에 왕이 크게 웃고 가로되

고호瞽乎 고호瞽乎 소경아, 소경아.

여유불견汝猶不見 너희는 오히려 보지 못했느니라.

편작게언便作偈言 바로 게偈를 지어 말하되

 

금위무안회今爲無眼會 금일 무안無眼의 會를 가졌더니

공쟁자위체空諍自謂諦 공연히 다투며 자기가 이른 게 진실이라 하네.

도일운여비覩一云餘非 하나를 보고 나머지는 그르다 이르고

좌일상상원坐一象相怨 한 코끼리 때문에 서로 원망하더라.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第49則

설두현송雪竇顯頌 설두현이 송하되

전상전우예불수全象全牛翳不殊 전상전우의 가림(翳)이 다르지 않나니

종래작자공명모從來作者共名模 종래로 작자가 모두 名模(名貌)한다.

여금요견황두로如今要見黃頭老 여금에 황두로黃頭老를 보고자 한다면

찰찰진진재반도刹刹塵塵在半途 찰찰진진이 반도半途에 있다.

 

<선문념송집禪門拈頌集>第49則 념송설화운拈頌說話云

전상자全象者 전상全象이란 것은

중맹모상衆盲摸象 뭇 맹인이 모상摸象하매

즉비전상則非全象 곧 전상이 아니니

견전상즉오야見全象則悟也 전상을 보면 곧 깨달음이다.

 

►전우全牛 <莊子> 養生主篇에 나오는 포정庖丁의 이야기.

<조정사원祖庭事苑>2 全牛/莊子(養生主)

포정위문혜군해우庖丁爲文慧君解牛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분해했다.

군왈君曰 희噫 선재善哉 군君이 가로되 희噫라. 잘하는구나.

기개지차호技盖至此乎 기술이 대개 여기에 이르는가?

 

포정석도대왈庖丁釋刀對曰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해 가로되

신지소호자도야臣之所好者道也 신臣이 좋아하는 바의 것은 道입니다.

진호기의進乎技矣 기술보다는 進境(진보한 경지)입니다.

 

시신지해우지시始臣之解牛之時 소견무비우자所見無非牛者

처음 신이 소를 분해할 때는 보이는 것이 소 아닌 게 없었습니다.

 

삼년지후三年之後 미상견전우야未嘗見全牛也

3년 후에는 일찍이 全牛를 보지 못했습니다.

 

방금지시方今之時 신이신우이불이목시臣以神遇而不以目視

방금의 때엔 신이 神으로써 만나고 눈으로써 보지 않습니다.

 

설자왈說者曰 물이유이애物以有而閡 도이허이통道以虛而通

설자說者가 가로되 物은 有를 써서 막히고 道는 虛를 써서 통한다.

 

인지미문도人之未聞道 즉소견무비물야則所見無非物也

사람이 도를 듣지 못하면 곧 보이는 것이 物이 아님이 없나니

 

유기소해우猶其所解牛 소견무비우야所見無非牛也

마치 그 소를 분해 하는 바 보이는 것이 소가 아님이 없음과 같다.

 

인지기문도人之旣聞道 즉소견무비도야則所見無非道也

사람이 이미 도를 들으면 곧 보이는 게 도가 아님이 없나니

 

유기삼년지후猶其三年之後 미상견전우야未嘗見全牛也

마치 그 3년 후에 일찍이 全牛를 보지 못함과 같다.

 

방금지시方今之時 이신우以神遇 불이목시不以目視

방금의 때에 神으로써 만나고 눈으로써 보지 않음은

 

유문도자지이심계猶聞道者之以心契 마치 도를 들은 자가 마음을 써서 계합하고

이불이지지이식식야而不以知知而識識也 지知로써 知하거나 識으로 識하지 않음과 같다.

 

<굉지광록宏智廣錄>4

상당거上堂擧 상당하여 擧했다.

승문수산僧問首山 여하시불如何是佛 중이 首山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산운山云 수산이 이로되

신부기려아가견新婦騎驢阿家牽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시어머니)가 이끈다.

 

사운師云 스님이 이르되

납승설두진개자유衲僧舌頭眞箇自由 납승의 혀는 진짜로 자유스럽다.

혼륜리허몰추구渾侖裏許沒錐鉤 혼륜渾侖한 속에 송곳과 갈고리가 없다.

륜편착공불수자輪扁斲工不授子 윤편輪扁이 깎는 工巧를 아들에게 전수하지 못했고

포정유인무전우庖丁游刃無全牛 포정庖丁이 칼날을 놀리매 全牛가 없었다.

 

►예불수瞖不殊

全象全牛라 하더라도 그 역시 맹인의 아류이다.

見, 不見이니 하고 어느 하나에 치우치는 것부터가 病이다.

 

►명모名模=명막名邈. ‘群盲摸象’에서 온 말.

손으로 더듬어 이름을 붙이다. 이름을 붙여 형상화하다.

 

안명묘모安名描摹 이름을 안치하고 묘사해 그림.

‘模’ 작용이 모摹(베끼다. 본뜨다)와 같음.

 

공연히 이름에 사로잡혀 이러쿵저러쿵하는 데에 지나지 않다.

禪이라 하면 선에 사로잡히고 깨달음이라 하면

또 깨달음에 사로잡혀 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유자소재猶自少在 오히려 적다(몇 명 안 된다)

‘猶自’ 猶 ‘在’ 의미를 강조하는 접미어.

 

►황두로黃頭老=부처.

►로호老胡 부처, 달마.

►찰찰진진재반도刹刹塵塵在半途

無量無數의 세계에 각기 부처님이 계신데 모두가 중도에서 망설이고 있다.

왜냐하면 석가도 달마도 수행 중이니까.

禪은 停滯를 꺼리는 것.

無限無數의 佛國土에 계신 諸佛에게도 구애되면 眞佛을 잃게 된다.

 

원오가 着語 한다.

각근하차과료야腳跟下蹉過了也 발아래에서 빗나갔다.

갱교산승설십마更教山僧說什麼 다시 산승(원오)더러 무엇을 말하라는 것이냐!

려년환증몽견마驢年還曾夢見麼 나귀 해가 되면 꿈에서 볼 수 있을까?

 

발밑의 불국토를 잘못 보지 마라.

도처가 佛土 아닌 곳이 없거늘 중도에서 망설이고 있다는

따위 수작을 山僧들에게 어찌 가르치겠느냐?

 

어디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려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금 밟고 있는 발밑도 잊어서는 안 된다.

 

찰찰진진刹刹塵塵=刹塵(화엄경) 먼지 티끌처럼 많은 세계.

‘刹刹’ 刹土. 불국토.

‘塵’ 감각에 닿는 모든 존재. 수없이 많은 불국토. 無量無數의 佛國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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