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 唱】
니불부도수泥佛不渡水 “진흙 부처[泥佛]는 물을 건너지 못하니
신광조천지神光照天地 신광神光이 천지를 비추네”라는
저일구송분명료這一句頌分明了 한 구절의 송은 분명하다.
차도위십마각인신광且道為什麼卻引神光
말해보라, 무엇 때문에 갑자기 신광을 끌어들였을까?
이조초생시二祖初生時 이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신광촉실神光燭室 긍어소한亘於霄漢
신비스러운 광채가 방안을 밝게 비추어 은하수까지 뻗쳤다.
우일석신인현又一夕神人現 위이조왈謂二祖曰 또 하루 저녁은 神人이 나타나 이조에게 말했다.
하구우차何久于此 “왜 여기에서 오래 머무느냐?
여당득도시지汝當得道時至 그대가 도를 얻을 시기가 다가온다.
의즉남지宜即南之 마땅히 남쪽으로 가도록 하라”
이조이신우수명신광二祖以神遇遂名神光 이조는 신인을 만났다 하여 마침내 神光이라 이름 하였다
구거이락久居伊洛 오랫동안 이수伊水·낙수洛水가에 살면서
박극군서博極群書 매탄왈每嘆曰 많은 서적을 널리 보았지만 매양 탄식하며 말하였다.
공로지교孔老之教 조술풍규祖述風規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六禮와 법도에 관한 것뿐이다.
근문달마대사주소림近聞達磨大師住少林 요즈음 소문을 듣자니 달마대사가 소림사에 주석한다던데
내왕피乃往彼 신석참구晨夕參扣 이내 그를 찾아가 조석으로 참례하고 물었으나
달마단좌면벽達磨端坐面壁 달마는 단정히 앉아 면벽面壁할 뿐이어서
막문회려莫聞誨勵 가르침을 들을 수 없었다.
광자촌왈光自忖曰 이에 신광이 자신을 반성하여 말하였다.
석인구도昔人求道 고골출수敲骨出髓 “옛사람은 도를 구하고자 뼈를 두드려 골수를 뽑고
자혈제기刺血濟飢 피를 뽑아 굶주린 아귀들을 제도했으며
포발엄니布髮掩泥 머리털로써 진흙을 덮어주고
투애사호投崖飼虎 절벽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 먹이가 되기도 하였다.
고상약차古尚若此 아우하여我又何如
옛 사람들은 이처럼 하였는데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어떠한가?”
기년십이월구일야其年十二月九日夜 대설大雪 그해 12월 9일 밤에 폭설이 내렸다.
이조립어체하二祖立於砌下 이조가 섬돌 아래에 서서 꼼짝 않고 있었는데
지명遲明 적설과슬積雪過膝 동이 트자 무릎 위까지 눈이 쌓였다.
달마민지왈達磨憫之曰 달마는 그런 이조를 가엾게 여기고서 말하였다.
여립설어차汝立雪於此 당구하사當求何事 “그대는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려느냐?”
이조비루왈二祖悲淚曰 이조는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유원자비惟願慈悲 개감로문開甘露門 광도군품廣度群品
“원하옵건대 자비로 감로문을 여시어 널리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주십시오.”
달마왈達磨曰 달마가 말했다.
제불묘도諸佛妙道 “모든 부처님의 오묘한 도는
광겁정근曠劫精勤 광겁曠劫토록 철저히 노력하여 얻은 것이다.
난행능행難行能行 보통 사람으로는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셨고
비인이인非忍而忍 참기 힘든 것도 다 참았다.
기이소덕소지豈以小德小智 어떻게 작은 덕과 작은 지혜
경심만심輕心慢心 경솔한 마음과 거만한 마음으로
욕기진승欲冀真乘 참 진리를 바라고자 하느냐.
무유시처無有是處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조문회려二祖聞誨勵 향도익절向道益切
이조는 가르침을 듣고서 도에 향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져서
잠취리도潛取利刀 자단좌비自斷左臂 치우달마전致于達磨前
가만히 예리한 칼을 들어 스스로 왼팔을 잘라 달마스님 앞에 바쳤다.
마지시법기磨知是法器 수문왈遂問曰
달마는 이조가 法器임을 알고 마침내 그에게 물으셨다.
여립설단비汝立雪斷臂 당위하사當為何事
“그대가 눈 속에 서서 팔을 끊은 것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냐?”
이조왈二祖曰 모갑심미안某甲心未安 걸사안심乞師安心
“저의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 스님께서는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십시오.”
마왈磨曰 장심래將心來 “그렇다면 불안한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여여안與汝安 너를 편케 해 주겠다.”
조왈 祖曰 멱심료불가득心了不可得 “이 마음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겠습니다.”
달마운達磨云 여여안심경與汝安心竟 “네 마음을 이제 편안해졌다.”
후달마위역기명왈혜가後達磨為易其名曰慧可 그 뒤 달마는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고쳐주었다.
후접득삼조찬대사後接得三祖燦大師 기전법既傳法 그 후 3祖 僧燦스님을 제접하고 전법이 끝나자
은어서주환공산隱於舒州皖公山 서주舒州의 환공산皖公山에 은거하셨다.
속후주무제파멸불법사태승屬後周武帝破滅佛法沙汰僧
때마침 후주後周 무제武帝가 불법을 파멸하고 승려를 배척하자
사왕래태호현사공산師往來太湖縣司空山 스님은 태호현太湖縣의 사공산을 왕래하며
거무상처居無常處 적십여재居積十餘載 무인지자無人知者
일정한 거처가 없이 십여 년을 지냈으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선율사고승전宣律師高僧傳 도선율사道宣律師의 <고승전高僧傳>에
재이조사불상載二祖事不詳 이조의 사적이 실리기는 했으나 자세하지 않고
삼조전운三祖傳云 <삼조전三祖傳>에 다음과 같이 기재돼 있다.
이조묘법二祖妙法 부전어세不傳於世 “이조스님은 오묘한 법을 세간에 전하지 않다가
뢰치말후賴值末後 의전오타당시립설依前悟他當時立雪
다행히도 끝에 가서 그가 당시에 눈 위에 서 있었던 것을 참으로 깨쳤다.”
소이설두도所以雪竇道 그래서 설두는 이렇게 읊었다.
립설여미휴立雪如未休 하인부조위何人不雕偽
“눈 위에 계속 서 있었더라면 어느 누가 흉내 내지 않았으랴”
립설약미휴立雪若未休 눈 위에 서 있는 것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족공첨사지인足恭諂詐之人 지나치게[足] 공손한 모습으로 아첨하고 속이는 사람들이
개효지皆效之 모두 그를 본받음으로써
일시지성조위一時只成雕偽 모두 아첨하고 허풍을 떠는 풍조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즉시첨사지도야則是諂詐之徒也 이는 아첨하고 속이는 무리인 것이다.
설두송니불부도수雪竇頌泥佛不渡水
설두는 진흙 부처[泥佛]는 물을 건너지 못함을 노래하면서
위십마각인저인연래용為什麼卻引這因緣來用
무엇 때문에 문득 이 인연을 인용하여 썼을까?
타참득他參得 의근하무일성사意根下無一星事
그가 참구한 것은 눈곱만치도 알음알이로 하지 않고
정라라지淨裸裸地 방송득여차方頌得如此
말끔한 경지였기에 이처럼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조심상五祖尋常 오조법연선사는 평소에
교인간차삼송教人看此三頌
사람들에게 조주의 삼전어에 대한 설두의 이 세 수의 송을 살펴보도록 권하였다.
기불견동산초화상豈不見洞山初和尚 유송시중운有頌示眾云
왜 듣지 못하였느냐. 동산수초洞山守初가 송을 지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오대산상운증반五臺山上雲蒸飯 오대산 위 구름은 밥을 짓고
고불당전구뇨천古佛堂前狗尿天 고불당古佛堂 앞 개는 하늘에 오줌을 싸네.
찰간두상전퇴자剎竿頭上煎䭔子 찰대간 끝에선 떡을 찧고
삼개호손야파전三箇胡孫夜簸錢 세 마리 원숭이는 밤에 노름을 하네.
우두순화상도又杜順和尚道 또 두순杜順 화상이 송했다.
회주우끽화懷州牛喫禾 회주懷州의 소에게 벼를 먹이니
익주마복창益州馬腹脹 익주益州의 말이 배부르다.
천하멱의인天下覓醫人 세상에 제일가는 의사를 찾아서
구저좌박상灸豬左膊上 돼지 왼쪽 허벅지 위에 뜸질을 한다.
우부대사송운又傅大士頌云 또 부대사傅大士가 송했다.
공수파서두空手把鋤頭 빈손에 호미를 잡고
보행기수우步行騎水牛 무소[水牛]를 몰고 간다.
인종교상과人從橋上過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노라니
교류수불류橋流水不流 다리는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
우운又云 석인기사여石人機似汝 또 락포원안洛浦元安은 이렇게 읊었다.
석인기사여石人機似汝 돌사람[石人]의 재주 그대와 닮아서
야해창파가也解唱巴歌 유행가를 부를 줄 아는군.
여약사석인汝若似石人 그대도 돌사람과 같다면
설곡응수화雪曲應須和 설곡雪曲(가곡)으로 화답하리라.
약회득차어若會得此語 편회타설두송便會他雪竇頌
만일 이 네 개 송의 참뜻을 안다면 설두의 송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소한霄漢 하늘
►신인神人
신화엄경新華嚴經42 여보살본업경소거적불십명지일與菩薩本業經所擧的佛十名之一
<신화엄경>42와 <보살본업경>에 든 바 불타 10名의 하나.
우속칭지신인칙다지구유신통력지선인又俗稱之神人則多指具有神通力之仙人
또 속칭의 신인은 곧 다분히 신통을 갖춘 선인仙人을 가리킴.
►이락伊洛=이락伊雒. 낙양 부근. 공자의 제자들이 모이던 곳.
이수여락수伊水與洛水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니
량수회류兩水匯流 다련칭多連稱 두 물이 匯流(모여 흐름)하는지라 다분히 連稱함.
역지이락류역亦指伊洛流域 또한 이락유역伊洛流域을 가리킴
►조술풍규祖述風規 ‘祖’=作, 爲.
<전등록傳燈錄>3 <오등회원五燈會元>1 등에는 모두 예술풍규禮術風規로 되어있다.
►참구參扣 스승을 찾아가서 道를 묻다.
알견선사謁見禪師 구문선법扣問禪法 선사를 알현하여 선법을 구문扣問함.
►회려誨勵 가르치고 격려해주다.
훈회격려訓誨激勵 훈회訓誨하고 격려激勵함.
►고골출수敲骨出髓
상제보살구법지고사常啼菩薩求法之故事/<대반야경大般若經>398
이시상제爾時常啼 작시어이作是語已 이때 상제가 이 말을 짓고는
즉신우수卽申右手 집취리도執取利刀 곧 오른손을 펴 예리한 칼을 가지고
자기좌비刺己左臂 령출기혈令出其血 자기의 왼팔을 찔러 그 피가 나오게 하고
부할우비復割右髀 피육치지皮肉置地 다시 오른쪽 넓적다리를 베어 피육皮肉을 땅에 놓고
파골출수破骨出髓 여바라문與婆羅門 뼈를 깨뜨려 골수를 내어 바라문에게 주었다.
부취장변復趣牆邊 욕부심출欲剖心出 다시 담장 가에 달려가 심장을 쪼개어 내려고 했다.
►자혈제기刺血濟飢
<현우경賢愚經>2 자력왕혈시품慈力王血施品
왕문시어王聞是語 심회애상甚懷哀傷 왕이 이 말을 듣고 심히 애상哀傷을 품었다.
즉자방맥卽自放脈 자신오처刺身五處 곧 스스로 방맥放脈하여 몸의 다섯 곳을 찔렀다.
시오야차時五夜叉 각자지기各自持器 래승혈음來承血飮
때에 다섯 야차가 각기 그릇을 가지고 와서 피를 받아 마셨다.
►포발엄니布髮掩泥
석가모니우전세증헌화공양연등불釋迦牟尼于前世曾獻花供養燃燈佛
석가모니가 前世에 일찍이 연등불에게 헌화獻花하여 공양했으며
우견로니又見路泥 수장두발포우지상遂將頭髮鋪于地上
또 길이 진흙임을 보고 드디어 머리카락을 가지고 지상에 펴면서
원차연등여래급성문중願此然燈如來及聲聞衆 원컨대 이 연등여래 및 聲聞衆이
족도아신급두발상足蹈我身及頭髮上 도어차니渡於此泥
나의 몸과 및 머리카락 위를 발로 밟고 이 진흙을 건너십시오 하자
연등불우시수기燃燈佛于是授記 연등불이 이에 수기授記하여
사석가모니종이성불使釋迦牟尼終而成佛 석가모니로 하여금 마침내 성불하게 하였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3
►투애사호投崖飼虎
<금광명경金光明經>4 사신품捨身品
전부전행견유일호轉復前行見有一虎 더욱 더 다시 앞으로 가자 한 범이 있음을 보았다.
적산칠일이유칠자適産七日而有七子 마침 출산한 지 7일이며 7子가 있었고
위요주잡기아궁췌圍繞周匝飢餓窮悴 위요주잡圍繞周匝하며 기아로 궁췌窮悴했다
(···)
이시제삼왕자작시념언爾時第三王子作是念言 이때 셋째 왕자가 이 사념을 지어 말하되
아금사신시이도의我今捨身時已到矣 내가 이제 몸을 버릴 때가 이미 이르렀다
(···)
즉이건죽자경출혈卽以乾竹刺頸出血 곧 마른 대로 목을 찔러 피를 내고
어고산상투신호전於高山上投身虎前 높은 산 위에서 범의 앞으로 투신했다.
►지명遲明 天明. 새벽. 동틀 무렵.
►감로甘露 범어梵語 아밀리다阿密哩多(amṛta)
역언감로譯言甘露 번역해 말하면 감로이다.
이명천주異名天酒 미로美露 다른 이름은 天酒ㆍ美露.
미감여밀味甘如蜜 천인소식天人所食 맛의 달기가 꿀과 같으며 天人이 먹는 것임.
►군품群品 군생群生. 중생衆生. 각기 다른 수준에 있는 중생들.
►진승眞乘 진실항 가르침. 진실한 교법敎法.
►무유시처無有是處 옳은 곳[是處]이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치우致于 ‘致’=둘 치置. ~앞에 놓다.
►법기法器 법을 전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
법을 담기에 충분한 역량이 있는 사람.
►삼조찬대사三祖燦大師 三祖僧燦大師(?-606)
►서주환공산舒州皖公山 안휘성 서북쪽에 있는 산. ‘환할 환晥=皖’
‘舒州’
안휘성안경부회녕현적고칭安徽省安慶府懷寧縣的古稱 안휘성 안경부 회녕현의 고칭.
당唐 무덕武德 4年(621)
칭서주稱舒州 천보초天寶初(742-755) 칭동안군稱同安郡
서주舒州로 호칭했고 천보(742-755)초 동안군同安郡으로 호칭했고
지덕초至德初(756-757) 칭성당군稱盛唐郡 후재칭서주後再稱舒州
지덕(756-757)초 성당군으로 호칭했다가 후에 다시 서주舒州로 호칭했음.
서주유김릉보지은서처舒州有金陵寶誌隱棲處
삼조승찬소주환공산산곡사三祖僧璨所住晥公山山谷寺
서주에 금릉 보지의 은서처隱棲處ㆍ3조 승찬이 거주한 바의 환공산 산곡사ㆍ
백운수단적백운산해회사白雲守端的白雲山海會寺
투자대동여투자의청소주투자산등投子大同與投子義靑所住投子山等
백운수단의 백운산 해회사ㆍ투자대동과 투자의청이 거주한 바의 투자산 등이 있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14 대청일통지大淸一通志76
►후주무제파멸불법사태승後周武帝破滅佛法沙汰僧
북주무제北周武帝 신납도사장빈여위원숭지론信納道士張賓與衛元嵩之論
북주의 武帝가 道士 장빈張賓과 위원숭衛元嵩의 論을 신납信納하고
유의폐불有意廢佛 폐불廢佛에 뜻이 있었는데
기시견란도안승면정애등其時甄鸞道安僧勔靜靄等 증위불교변호曾爲佛敎辯護
그때 견란ㆍ도안ㆍ승면ㆍ정애 등이 일찍이 불교를 위해 변호辯護했다.
건덕建德 2年(573)
제즉하령폐불도이교帝卽下令廢佛道二敎 훼괴경상毁壞經像
무제가 곧 下令해 佛道 2교를 폐廢하고 경상經像을 훼괴毁壞했으며
병령사문도사환속竝令沙門道士還俗
아울러 사문沙門과 도사道士들로 하여금 환속還俗케 했는데
근선명덕자일백이십인안치어통도관僅選名德者一百二十人安置於通道觀
겨우 名德者 123인을 선출해 통도관通道觀에 안치했음.
6年 북주멸북제北周滅北齊 6년(577) 북주北周가 북제北齊를 멸했다.
기시수유혜원배중항변其時雖有慧遠排衆抗辯
그때 비록 慧遠이 대중을 밀치고 抗辯함이 있었으나
연무종잉대북제지지然武宗仍對北齊之地 행배불정책行排佛政策
그러나 무제가 그대로 북제의 땅에 대해서도 배불정책을 행했음.
익년제붕翌年帝崩 불도이교시고부흥佛道二敎始告復興
다음해에 무제가 붕어崩御하자 불도佛道 2교가 비로소 부흥을 告했다.
/불조통기佛祖統紀38 불조력대통재권佛祖歷代通載卷10
►사태승沙汰僧 승僧들을 환속시키다.
►선률사宣律師 도선道宣(596-667) 당대률승唐代律僧.
남산률사南山律師. 남산대사南山大師. 남산률종지조南山律宗之祖
절강오흥인浙江吳興人 일설강소윤주단도인一說江蘇潤州丹徒人
속성전俗姓錢 자법편字法遍
16세출가歲出家 종지수법사수구계從智首法師受具戒
16세에 출가했고 지수법사를 좇아 구계具戒를 받았다.
후주어종남산방장곡後住於終南山倣掌谷(長安之南)
후에 종남산 방장곡倣掌谷(장안의 남쪽)에 거주하면서
영건백천사營建白泉寺 연구홍선사분률硏究弘宣四分律
백천사白泉寺를 영건營建하고 사분율을 연구하며 홍선弘宣했다.
기종파칭남산률종其宗派稱南山律宗 그의 종파를 일컬어 남산율종이라 함.
증지각지강설률학曾至各地講說律學 일찍이 각지에 이르러 율학을 강설했으며
역참여현장지역장亦參與玄奘之譯場 또한 현장의 역장譯場에 참여하기도 했다.
력주숭의사歷住崇義寺 풍덕사豐德寺 정업사淨業寺 숭의사ㆍ풍덕사ㆍ정업사를 歷住했다.
현경삼년顯慶三年(658) 봉칙임장안서명사상좌奉敕任長安西明寺上座
현경 3년(658) 칙명을 받들어 장안 서명사의 상좌를 맡았다.
미구未久 찬석문장복의撰釋門章服儀 석문귀경의등釋門歸敬儀等
오래지 않아 석문장복의ㆍ석문귀경의 등을 지었다.
건봉乾封2年3月
어정업사창립계단於淨業寺創立戒壇 위후세건축계단지법식爲後世建築戒壇之法式
정업사에 계단戒壇을 창립했는데 후세에 계단을 건축하는 법식이 되었다.
어시년於是年10月 입적入寂 세수世壽72 법랍法臘52 시호징조諡號澄照
이 해 10월에 입적했음. 세수 72, 법랍 52. 시호는 징조
/송고승전宋高僧傳14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5
►고승전高僧傳 <속고승전續高僧傳> 30卷.
당대도선저唐代道宣著 당대 도선道宣이 지었다.
우칭당고승전又稱唐高僧傳 또 명칭이 <당고승전唐高僧傳>
위함접량지고승전爲銜接梁之高僧傳 지당정관至唐貞觀19年(645)止
양梁의 고승전을 함접銜接(連接)하여 당 정관 19년(645)에 이르러 그침.
범凡144년간지승전年間之僧傳 수어대정장제收於大正藏第50冊
무릇 144년간의 僧傳이니 <대정장제50책>에 수록되었다.
전서립십과全書立十科 계본전計本傳414人 부전附傳201人
전서에 10科를 세웠으며 합계가 本傳이 414인이며 附傳이 201인.
연기자서위정전然其自序謂正傳340人 부전附傳160人
그러나 그의 자서에 이르기를 正傳이 340인이며 부전이 160인이라 했다.
개본서어탈고후蓋本書於脫稿後 루가증보屢加增補
대개 본서는 탈고脫稿한 후에 여러 차례 증보를 가했다.
소재실지어린덕所載實止於麟德2年(665)
실린 바가 실로 인덕 2년(665)에 그침.
고제본소록인수유이동故諸本所錄人數有異同
고로 여러 본에 수록된 바의 인수人數에 이동異同이 있다.
고려본중본전위高麗本中本傳爲414人 부전附傳201人
고려본高麗本 중에 본전이 414인이 되고 부전이 201인이며
구송본급송원명삼본칙본전舊宋本及宋元明三本則本傳489人 부전附傳213人
구송본舊宋本 및 송ㆍ원ㆍ명 3본은 곧 본전이 489인이며 부전이 213인임.
력래이본서급송대찬녕소찬지송고승전歷來以本書及宋代贊寧所撰之宋高僧傳30卷
역래歷來(경력해 오다)로 본서 및 송대 찬녕贊寧이 지은 바 송고승전 30권
명대여성찬대명고승전明代如惺撰大明高僧傳8卷
명대 여성如惺이 지은 대명고승전 8권
량대혜교찬량고승전梁代慧皎撰梁高僧傳14卷等 합칭사조고승전合稱四朝高僧傳
양대梁代 혜교慧皎가 지은 양고승전 14권 등의 합칭이 사조고승전四朝高僧傳임
/정원신정석교목록貞元新定釋敎目錄12 당서예문지唐書藝文志49
►족공足恭=족공足共, 주공足共. 아부하다. 아첨하다.
과도겸경過度謙敬 이취미어인以取媚於人
과도過度한 겸경謙敬으로 남에게서 아첨(媚 예쁘다. 아첨하다)을 취함.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교언령색족공巧言令色足恭 말솜씨가 좋고, 얼굴빛을 잘 꾸미며, 공손함이 지나친 것을
좌구명치지左丘明恥之 좌구명이 부끄러운 일로 여겼는데
구역치지丘亦恥之 나 역시 부끄럽게 생각한다.
닉원이우기인匿怨而友其人 원망을 감추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을
좌구명치지左丘明恥之 좌구명이 부끄러운 일로 여겼는데
구역치지丘亦恥之 나 역시 부끄럽게 여긴다/<논어> 공야장
▲벽암록제碧巖錄第96則 종전초種電鈔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자왈子曰 교언巧言 령색令色 족공足恭 좌구명치지左丘明恥之
공자가 가로되 巧言ㆍ令色ㆍ足恭은 左丘明이 그것을 수치로 여겼다.
구역치지丘亦恥之 구丘도 또한 그것을 수치로 여긴다.
공안국왈孔安國曰 족공足恭 편벽지모야便僻之貌也
공안국이 가로되 주공足恭은 편벽便僻한 모양이다.
모씨왈毛氏曰 족足 자우절子遇切
모씨毛氏가 가로되 주足는 자우절子遇切(주)이다.
사운과야私云過也 사운私云(개인의 생각으로 말함)하되 過(지나침)다.
►동산초洞山初 洞山守初(910-990)
►퇴자䭔子 ‘떡 퇴䭔’ 찐 떡. 증편. 빵의 한 가지.
병류식품餠類食品 촉인호증병위퇴蜀人號烝餠爲䭔 자子 조사助詞
떡 종류의 식품이니 촉인蜀人은 찐 떡을 호하여 퇴䭔라 함. 자子는 조사.
►호손胡孫 원숭이
►파전簸錢 도박(놀음)을 하다.
►두순杜順(557-640) 화엄종초조華嚴宗初祖
당대옹주만년인唐代雍州萬年人(陝西臨潼縣北) 속성두俗姓杜
18세출가歲出家 법호법순法號法順 18세에 출가했고 법호는 법순法順.
사사인성사지승진師事因聖寺之僧珍(도진道珍) 수습정업受習定業
인성사의 僧 진珍(道珍)을 사사師事하여 정업定業을 수습受習했다.
후주어종남산後住於終南山 선양화엄교강宣揚華嚴敎綱
후에 종남산에 거주하면서 화엄의 교강敎綱을 선양했다.
기언교다폄억부사其言敎多貶抑浮詞 창현정리彰顯正理
그의 言敎는 다분히 부사浮詞를 폄억貶抑하고 正理를 彰顯했다.
로견신수귀묘필분제지路見神樹鬼廟必焚除之
길에서 신수神樹나 귀묘鬼廟를 보면 반드시 태워 제거했다.
당태종문기덕풍唐太宗聞其德風 인입궁내례우지引入宮內禮遇之
당태종이 그의 덕풍을 듣고 궁내에 引入하여 그를 예우했다.
사부유력군국師復遊歷郡國 권념아미타불勸念阿彌陀佛
스님이 다시 군국郡國을 유력遊歷하며 아미타불을 외울 것을 권했으며
병찬오회문竝撰五悔文 찬영정토讚詠淨土
아울러 오회문五悔文을 지어 정토를 찬영讚詠했다.
정관십사년어남교의선사시적貞觀十四年於南郊義善寺示寂
정관 14년 남교南郊 의선사에서 시적했다.
수壽84 후인존위화엄종제일後人尊爲華嚴宗第一祖
나이 84. 후인이 존중해 화엄종 제1조로 삼았다.
세칭문수화신조世稱文殊化身 제심존자帝心尊者 돈황보살燉煌菩薩
세칭이 문수화신ㆍ제심존자帝心尊者ㆍ돈황보살.
제자중이지엄명성최착弟子中以智儼名聲最著
제자 중에 지엄智儼의 명성이 가장 드러났다.
저유화엄오교지관著有華嚴五敎止觀, 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觀門,
십문실상관十門實相觀, 회제종별견송등각일권會諸宗別見頌等各一卷
/속고승전續高僧傳25 화엄경전기華嚴經傳記3, 4
종남산두순선사연기終南山杜順禪師緣起 불조통기佛祖統紀29, 39
►회주懷州
금하남성무척현서남今河南省武陟縣西南 지금의 하남성 무척현 서남.
►익주益州 사천성수도四川省首都
위어성도평야남동位於成都平野南東 유환오극근도장소각사有圜悟克勤道場昭覺寺
성도평야成都平野 남동에 위치하며 원오극근의 도량 소각사昭覺寺가 있음.
석씨계고략삼운釋氏稽古略三云 익주益州 서천성도부야西川成都府也
<석씨계고략3>에 이르되 익주는 서천西川 성도부成都府다.
►부대사傅大士 雙林傅大士(497-569)
►우운又云
<오등회원五燈會元>6 락포원안洛浦元安(834-898)
상당어운上堂語云
석인기사여石人機似汝 석인石人의 기機가 너와 같다면
야해창파가也解唱巴歌 또한 파가巴歌도 부를 줄 알리라
여약사석인汝若似石人 네가 만약 석인과 같다면
설곡야응화雪曲也應和 설곡雪曲도 또한 응당 화응하리라.
►파가巴歌=俗歌. 유행가.
<조정사원祖庭事苑>4 파가巴歌
서한西漢 주운注云 서한西漢(전한) 注에 이르되
파巴 파인야巴人也 파巴는 파인巴人이다.
당고조초위한왕當高祖初爲漢王 고조가 처음 漢王이 되었을 때에
득파유인得巴兪人 파주巴州와 유주兪州 사람을 얻었는데
병교건竝趫揵(의건疑健)선두善鬬 모두 재빠르고 굳세며(揵; 健으로 의심됨) 잘 싸웠다.
여지정삼진멸초與之定三秦滅楚 그들과 더불어 三秦을 定하고 楚를 멸했으며
인존기무락야因存其武樂也 인하여 그 무악武樂을 존치存置했다.
즉금지파주유주卽今之巴州兪州 즉금의 巴州와 兪州니
송옥소위하리파가宋玉所謂下俚巴歌 송옥宋玉이 이른 바 하리파가下俚巴歌를
국중속이화자수천인의國中屬而和者數千人矣 국중에서 이어 화응하는 자가 數千人이라 한 것임.
►설곡雪曲 양춘백설陽春白雪. 陽春雪曲. 격조 높은 가곡
<조정사원祖庭事苑>3
양춘백설陽春白雪 고악부곡명야古樂府曲名也
당唐 현경顯慶 2年(657)
태상상언太常上言 태상太常이 상주上奏해 말했다.
례기가어운禮記家語云 예기(제19 樂記)와 家語(孔子家語)에 이르기를
순탄오현지금舜彈五絃之琴 가남풍지시歌南風之詩
순舜이 5현絃의 거문고를 탄주해 남풍南風의 시를 노래했다 했습니다.
시지금조곡롱是知琴操曲弄 개합어가皆合於歌
이로 알지니 거문고 가락(琴操)과 곡曲의 희롱이 다 가歌에 합당함.
우장화박물지운又張華博物志云 또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이르되
백설白雪 시대제是大帝(黃帝的尊稱) 백설白雪은 이 대제大帝(黃帝의 존칭)가
사소녀고오십현슬곡명使素女鼓五十絃瑟曲名
소녀素女로 하여금 50絃의 큰 거문고를 두드리게 한 곡명이다.
우초대부송옥又楚大夫宋玉 상대초양왕운嘗對楚襄王云
또 초楚의 대부大夫 송옥宋玉이 일찍이 초양왕楚襄王을 대해 이르되
객유가어영중자客有歌於郢中者 객이 郢中(郢은 楚의 수도)에서 노래하는 자가 있었는데
기시왈하리파인其始曰下俚巴人 그 처음에 가로되 하리파인下俚巴人이라 했습니다.
국중속이화자수천인國中屬而和者數千人 국중에 따라서(이을 촉屬) 화응하는 자가 수천인이었으며
기위양가해로其爲陽歌薤露 그가 陽歌와 해로薤露(曲名. ‘부추 해. 염교 해薤’)를 하자
국중속이화자수백인國中屬而和者數百人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수백 인이었으며
기위양춘백설其爲陽春白雪 그가 양춘陽春(曲名)과 백설白雪(曲名)을 하자
국중속이화자수십인이이國中屬而和者數十人而已
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수십 인이었을 뿐입니다.
인상각우引商刻羽 상商(五音 중의 하나)을 당겨 우羽(五音 중의 하나)에 새기고
잡이류치雜以流徵 섞어 치徵(五音 중의 하나)에 유입流入하자
국중속이화자불과수인國中屬而和者不過數人
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몇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시이창미고是以唱彌高 이 까닭으로 창唱이 더욱 높아지면
기화미과야其和彌寡也 그 화응이 더욱 적습니다.
시지백설금곡是知白雪琴曲 이로 알지니 백설白雪의 금곡琴曲은
본의합가本宜合歌 본래 의당 가歌에 알맞으며
이기조고以其調高 그 곡조가 높기 때문에
인화수과人和遂寡 사람이 화응함이 적습니다.
자송옥지후自宋玉之後 미유능화자未有能和者
송옥宋玉의 후로부터 능히 화응하는 자가 있지 않았고
오년五年 려재조금가백설등곡呂才造琴歌白雪等曲 제가사製歌辭 편입락부編入樂府
5년(660) 여재呂才가 琴歌인 白雪 등의 곡을 짓고 가사를 제작해 樂府에 편입했습니다.
'語錄 > 벽암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암록 96칙 頌 評唱 ② (0) | 2024.06.05 |
---|---|
벽암록 96칙 頌 着語 ② (1) | 2024.06.05 |
벽암록 96칙 頌 着語 ① (1) | 2024.06.05 |
벽암록 96칙 本則 評唱 (1) | 2024.06.05 |
벽암록碧巖錄 96칙 本則 着語 (1) | 2024.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