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山詩 29
륙극상영곤六極常嬰困 크게 나쁜 일은 늘 겹쳐 온다고
구유도자론九維徒自論 장치꾼들은 스스로 제 말들만 한다
유재유초택有才遺草澤 재능이 있어도 초야에 버려지고
무예폐봉문無藝閉蓬門 재주가 없는지라 초라한 집에 산다
일상암유암日上巖猶暗 해 떠올라도 바위굴 여전히 어둡고
연소곡상혼煙消谷尙昏 안개 걷힌 골짜기는 아직도 어둑하다
기중장자자其中長者子 그 속에서는 부잣집 아들이라도
개개총무곤個個總無褌 모두가 잠방이도 없어도 될 것이다
육극六極은 늘 얽어매 괴롭히고
구유九維를 자기들만 헛되이 토론하네.
재주 있어도 초야에 묻혀 있고
기예技藝 없어 봉문蓬門조차 닫혀버렸네.
해 떠도 바위는 여전히 어둡고
안개 걷혀도 골은 아직 어슴푸레하네.
그 속에서는 대부호大富豪의 아들도
모두 하나같이 잠방이 없으면 어때
►육극六極 여섯 가지 크게 불길不吉한 일.
단명, 질병, 근심, 가난, 추악함, 쇠약.
육극六極이란
㊀흉단절凶短折, ㊁질疾, ㊂우憂, ㊃빈貧, ㊄악惡, ㊅약弱이다.
첫째 흉단절凶短折은 흉사凶事를 만나 갑자기 죽는 것이다.
둘째 질疾은 항상 질병疾病을 안고 사는 것이다.
셋째 우憂는 항상 걱정을 많이 하는 것이다.
넷째 빈貧은 재물이 궁핍한 것이다.
다섯째 악惡은 용모가 추루醜陋(추하고 던지러움. 더럽고 지저분함)한 것이다.
여섯째 약弱은 의지와 힘이 열등한 것이다./<尙書·洪範>
►►영攖 얽히다. 묶다. 구속하다. (잡아당겨)매다.
곤困 괴로움을 겪다. 시달리다. 위태롭다. 난처하다. 괴롭다
►구유九維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篇>에 나오는 우禹 임금이 정한 정치도덕의 아홉 가지 원칙.
►도徒 헛되이, 보람 없이. 헛되다. 보람 없다.
►예藝 기예技藝. 기술技術에 대한 재주. 예술藝術.
►봉문蓬門 쑥으로 지붕을 이은 문. [비유] 가난한 사람이나 은거隱居하는 사람의 집.
►장자長者 윗사람. 어른. 덕망이 있는 노성老成한 사람.
거부巨富의 속칭. 老成하다: 많은 경험을 쌓아 세상일에 익숙하다.
►곤褌 잠방이(가랑이가 짧은 홑 고의: 남자의 여름 홑바지) 속곳.
이 시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시구는 마지막 두 행이다.
“그 속에 사는 대부호大富豪의 아들들
모두 하나같이 잠방이도 없네.”
여기서 ‘잠방이도 없’이 사는 ‘대부호大富豪의 아들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장자長者’는 거부巨富, 대부호를 일컫는다.
‘잠방이 하나 없’이 산다는 것은 궁핍하게 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장자자長者子’는 대부호의 아들이라는 뜻이 되며 그가 ‘잠방이도 없’이
궁핍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빈궁貧窮하게 된 아들 즉 궁자窮子이다.
장자長者의 아들인 궁자窮子에 대한 이야기는
<법화경法華經 신해품信解品>에 나오는 궁자窮子의 비유에 관한 것이다.
궁자란 원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집을 떠나
객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빈궁하게 된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 이야기에서 장자長者는 부처를 비유한 말이며
궁자窮子는 부처의 새로운 법을 아직 듣지 못한 자를 비유한 말이다.
석가모니불은 오랫동안 무수한 방편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우담바라 꽃이 때가 되어야 한 번 피는 것처럼’
이제 때가 되니 일불승一佛乘이라는 미묘한 법을 설한다고 했다.
그때 죄업이 무거워 믿지 못하고 떠난 자가 오천 명이었다.
이에 부처는 “이 대중은 가지나 잎은 하나도 없고 순전히 열매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 희유하고 미묘한 법을 듣고 수보리와 다른 제자 몇 명이
비유를 들어 석가모니불에게 말씀드렸다.
이 비유가 바로 궁자窮子의 비유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어려서 아버지를 떠나 객지에서 품팔이로 연명하며
몇 십년을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자기 아버지가 사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창고마다 금 · 은 등의 재물이 가득한 대부호 장자長者였다.
빈궁한 아들은 처음에는 자기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겁을 먹었으나
그 집에서 품팔이로 궂은일을 하게 되었다.
점차 여러 가지 일을 떠맡아 하며 오랫동안 지내다보니
마음이 열리고 커져 큰 뜻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가 임종할 때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가 자기 아들임을 선언하고 그의 재산을 모두 물려주겠노라고 말했다.
수보리와 다른 제자들은
“대부호 장자長者는 곧 여래이시고 저희들은 다 부처님의 아들 같사오니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을 아들이라고 하시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위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이 시를 살펴보자.
제1행의 ‘육극六極’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단명, 질병, 근심, 가난, 추악함, 쇠약 등 여섯 가지의 크게 불길한 일을 말한다.
‘육극六極은 늘 얽어매 괴롭히고’는 이런 6극은 3界 내에서 6道를 끊임없이
윤회하며 사는 중생을 항상 구속하여 부자유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는 뜻이다.
제2행의 ‘구유九維’는 우禹 임금이 정한 정치도덕의 9가지 원칙을 말한다.
“구유九維를 자기들만 헛되이 토론하네.”는
조정에서 관리들이 9가지 원칙을 아무리 토론해도 일반 백성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해 백성들은 절망적인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
“육극六極은 늘 얽어매 괴롭히고
구유九維를 자기들만 헛되이 토론하네.”를
부처에 귀의하여 해탈하거나 성불하면 대 자유를 누리고 무한히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중생이 그렇지 못하고 항상 고통 속에 살고 있음을 묘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제3행 ‘재주 있어도 초야에 묻혀 있고’는 재주와 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것들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해 이름 없이 초야에 묻혀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제4행 “기예技藝 없어 봉문蓬門조차 닫혀버렸네.”는 기술도 예술적 능력도 없어
궁핍하게 사니 찾는 이 없어 초라한 대문조차 닫혀버렸다는 말이다.
봉문蓬門은 쑥으로 지붕을 이은 대문이다.
이는 가난한 사람이나 은거隱居하는 사람의 집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니
집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외롭고 쓸쓸하게 살고 있음을 가리킨다.
제3-4행
“재주 있어도 초야에 묻혀 있고
기예技藝 없어 봉문蓬門조차 닫혀버렸네.”도
역시 아직 불성佛性을 찾지 못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중생의 모습을 읊은 시구로 볼 수 있다.
다음은 제5-6행의
“해 떠도 바위는 여전히 어둡고
안개 걷혀도 골은 아직 어슴푸레하네.”를 보자.
태양이 하늘에 솟아 밝아졌는데도 왜 바위는 여전히 어두운 것인가?
안개가 자욱이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골짜기에서 안개가 걷혔는데도
왜 아직도 어슴푸레하니 잘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도 역시 중생이 불성佛性을 찾지 못해 지혜 광명이 없어 어둡다는 것을 상징한 말이다.
<십지경十地經>에
“중생의 몸 안에 금강金剛과 같은 불성佛性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태양과 같아 그 체體는 밝고 원만하며 넓고 크기가 한이 없지만
다만 오음五陰의 먹구름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등불과 같아 드러날 수가 없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 속에 사는 대부호大富豪의 아들들
모두 하나같이 잠방이도 없네.”
모든 중생은 부처의 아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불자佛子라고 한다.
궁자窮子의 비유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호大富豪의 아들’은 ‘불자佛子’를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같이 ‘잠방이 하나 없’을 정도로 빈궁하게 살고 있다.
대부호인 아버지를 찾아 유산을 상속받아 저절로 부자가 된 궁자처럼,
중생이 부처에게 귀의하여 불성을 찾기만 하면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하늘의 보배 창고를 상속받아 지혜 광명으로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한산은 이 시로서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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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산
벗은들 부끄러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