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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도연명陶淵明

부賦 사辭 3. 귀거래사歸去來辭 ⓷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 귀거래사에 화답함/신흠申欽

귀거래혜歸去來兮 돌아가자

금야불귀하일귀今也不歸何日歸 지금 안 돌아가면 언제 돌아가랴

 

임화기지추천任化機之推遷 변천하는 조화의 기틀에 맡겨야지

호척척이공비胡戚戚而空悲 어찌 근심하며 부질없이 슬퍼하리오.

 

름여치지장모懍余齒之將暮 내 나이 늙어가는 것이 매우 슬프고

구세월지난추懼歲月之難追 세월을 따라잡기 어려움이 두렵도다.

 

이부영지역사伊浮榮之易謝 덧없는 영화는 쉬 물러가는 법이라

각전두이이비覺轉頭而已非 머리 한 번 돌리는 사이 이미 글러졌네.

 

복유정이득길卜幽貞而得吉 유정하면 길하다는 점을 얻고

건혜패혜하의謇蕙佩兮荷衣 아, 혜초를 차고 연잎으로 옷 지어 입었네.

 

면전수지일궤緬前脩之逸軌 전현들의 뛰어난 법도를 생각하니

귀지창이지미貴知彰而知微 드러남과 은미함을 다 아는 게 귀중하다오.

 

첨피교구瞻彼交衢 저 네 거리 길을 보니

거치마분車馳馬奔 말과 수레 달리는데

내세여가迺稅余駕 나는 수레를 멈추고서

중묘지문衆妙之門 중묘의 문에 들어왔네.

 

도비원인道非遠人 도는 사람에게서 머지않아

목격이존目擊而存 한번 보면 도의 소재 아나니

부재자전不材者全 부재한 자가 생명을 보전하거늘

기원희준豈願犧樽 어찌 희준 되길 바라겠는가.

 

수삼전이육령守三田而毓靈 삼전을 지키어 성령 기르고

련구단이열안鍊九丹而悅顔 구단을 만들면서 희색을 띄노라

 

시예리이상가時曳履而商歌 때로는 짚신을 끌며 상가를 부르지만

수종구이역안雖終窶而亦安 끝내 곤궁할지라도 마음은 편하다오.

 

반총계이상양攀叢桂而相羊 총계를 부여잡고 배회도 하고

읍백운이위관挹白雲而爲關 백운을 끌어다가 집을 삼기도 하면서

원청정이념막爰淸淨而恬漠 이에 청정하게 조용히 있노니

이과비지동관異夸毗之童觀 세상에 아첨하는 유치한 소견들과 다르다오.

 

유정로지재자惟正路之在玆 오직 바른길이 여기에 있는데

거중도이고환詎中途而告還 어찌 중도에서 되돌아서겠는가.

 

녕척지반우혜寗戚之飯牛兮 영척이 소를 먹이며 노래한 것은

도구구어제환徒區區於齊桓 한갓 제 환공에게 쓰이길 요구함이었네.

 

귀거래혜歸去來兮 돌아가자

절독악부천유竊獨樂夫天遊 나는 자연과 함께 자유자재하길 좋아하거니

녕위지지학가寧爲遲之學稼 차라리 번지처럼 농사일을 배울지언정

치작재지염구耻作宰之冉求 염구처럼 가신노릇 하기란 부끄러워

구내성이무구苟內省而無咎 참으로 반성해 보아 허물이 없다면

나외환지족우那外患之足憂 어찌 외환을 걱정할 것 있겠는가.

 

지인유여이비결至人遺余以祕訣 지인이 나에게 비결을 끼쳐 주었으니

약농부지역주若農夫之易疇 그것은 농부가 농사짓는 일과 같았네.

 

경도종험驚濤縱險 거센 파도가 비록 험난하지만

미복허주未覆虛舟 빈 배는 엎지 못하는 법이라

 

애조롱지채금哀雕籠之綵禽 새장에 갇힌 새가 애처롭구나.

숙방이어림구孰放爾於林丘 누가 너를 숲속에다 놓아 줄꼬

 

람소식지동원覽消息之同原 성하면 또한 쇠하는 이치를 보았거니

합조퇴어급류盍早退於急流 어찌 급류를 용감하게 물러나지 않으리오.

 

물이구이필폐物以久而必敝 물건이 오래되면 반드시 해지는 법인데

인해로이막휴人奚老而莫休 사람은 어이해서 늙어도 마지않는고.

 

이의호已矣乎 그만두어라

계세분분이조탁季世紛紛而稠濁 수다스럽고 탁란한 이 말세에

지지이지수득류知止而止誰得留 그칠 곳 알아 그치는데 누가 만류하며

호위호망망미소지胡爲乎莽莽靡所之 어이해 또 아득히 갈 바를 모른단 말인가

 

청풍혜명월淸風兮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여아유유기與我有幽期 나와 비밀한 기약이 있거니와

황남륙지청양况南陸之靑陽 더구나 따스한 봄 남녘의 토지에는

애의운이의자藹宜耘而宜耔 곡식 김매고 가꾸기 아주 알맞다오.

 

혹척헌이심방或陟巘而尋芳 혹은 산에 올라 꽃을 찾기도 하고

혹제호이영시或提壺而詠詩 혹은 술병을 차고 시를 읊기도 하노니

후원량개천사後元亮盖千祀 원량보다 천년이나 뒤에 났지만

탁신교이불의托神交而不疑 정신상의 교정을 결탁하여 의심치 않노라

 

►유정幽貞 유한정정幽閒貞靜의 준말로 그윽하고 정숙함을 뜻함.

►중묘衆妙 오만 가지 묘리妙理로서 즉 도道를 의미한 것.

►부재자전不材者全 부재한 자가 생명을 보전하거늘

나무가 재목감이 되지 못하여 누가 베어가지 않음으로써 제 명대로 살 수 있다는 뜻으로

즉 사람도 무능한 사람이 화를 면할 수 있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莊子 山水>

 

►희준犧樽 소의 형상으로 만든 종묘宗廟의 제기祭器. 여기서는 훌륭한 인재에 비유한 것.

►삼전三田 고대 의학용어로서 三丹田인 上元丹田(뇌腦))ㆍ中元丹田(심心)ㆍ下元丹田(정문精門)을 말한다.

►구단九丹 도가道家에서 단사丹砂를 아홉 번 고아 만든 선약仙藥을 말함.

►상가商歌 비통한 음조의 노래로서 진晉나라 영척寗戚이 소를 먹이면서 부르던 노래를 말함.

영척이 제齊 환공桓公에게서 벼슬을 하고자 하였으나 너무 곤궁하여 환공을 면회할 길이 없자

상려商旅가 되어 제 나라에 들어가 소를 먹이면서 소뿔을 두드리며 상가를 슬피 부르니

환공이 그 소리를 듣고 이상히 여겨 그를 데려오게 해서 등용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淮南子 道應訓>

 

►녕위지지학가寧爲遲之學稼 차라리 번지처럼 농사일을 배울지언정

번지樊遲는 공자의 제자로 일찍이 공자에게 농사짓는 일을 배우려고 청하자

공자가 “나는 농사에 대해 늙은 농부만 못하다.”고 대답하고

이어 그가 예를 힘쓰지 않고 세쇄한 일에 힘쓰는 것을 나무랐었다./<論語 子路>

 

►치작재지염구耻作宰之冉求 염구처럼 가신노릇 하기란 부끄러워

염구는 공자의 제자인데 일찍이 노魯나라 大夫로서 참례僣禮를 일삼던 권신 계손씨季孫氏의 家臣이 되어

그를 바로잡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방조한 일로 공자에게 견책을 받았었다./<論語 先進ㆍ子路>

 

►합조퇴어급류盍早退於急流 어찌 급류를 용감하게 물러나지 않으리오.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용감하게 물러난다는 뜻으로 즉

다사다난한 벼슬자리를 용감하게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원량元亮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원저자인 동진東晉 때의 고사 도잠陶潛의 자.

 

 

●신흠申欽(1566-1628)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본관은 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상촌象村·현헌玄軒·현옹玄翁·방옹放翁·여암旅庵·경당敬堂·남고南皐·백졸百拙.

 

조부는 신영申瑛, 부친은 신승서申承緖이며 모친은 송기수宋麒壽의 딸 은진송씨恩津宋氏이다.

아들 신익성申翊聖은 선조의 부마駙馬가 되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서 자라며 송기수와 이제민李濟民 문하에서 수학했다.

1585년 진사시와 생원시에 차례로 합격하고 158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이이李珥의 측근으로 배척받아 성균관 권지權知에 배정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都體察使 정철鄭澈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여 지평에 승진되고

이조정랑·집의·교리·응교 등을 거쳤다.

 

1599년 장남 신익성申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와 혼인함에 따라

동부승지에 오르고 이어 병조 · 예조 · 형조 참의 등을 두루 지냈다.

 

1601년 <춘추제씨전春秋諸氏傳> 편찬에 참여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고

예문관 제학이 되었으며 성균관 대사성·한성부 판윤·병조 판서·예조 판서 등을 역임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으로 세자를 수행하여 전주에 피난하였고 9월에 영의정에 올랐다.

신흠은 선조의 두터운 신망을 받으며 문한직文翰職을 겸임했고

외교문서와 각종 의례문서 작성과 시문 등에 참여하였다.

율법律法·산수算數·의복醫卜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이항복李恒福·이수광李睟光 등과 교유했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정귀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문장 4대가로 불렸다.

신도비와 묘지명 등을 많이 남겼는데 인조의 명을 받고 지은

<영창대군신도비永昌大君神道碑>와 <김제남신도비金悌男神道碑> 등이 대표적이다.

 

신흠은 글씨도 남달랐다.

김상헌金尙憲이 쓴 <행장行狀>에 따르면

"서법書法에 힘이 있고 아름다웠으나 사람들을 위해 붓을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서찰[札翰]을 얻기라도 하면 대부분 간직하여 보배로 여겼다."라고 하였다.

 

특히 김상헌은 신흠을

사지전용예술使之專用藝術 최자옥채백지문필崔子玉蔡伯之文筆

"예술에 전념하게 했더라면 최원崔瑗과 채옹蔡邕의 경지가 되었으리."라고 <유제문諭祭文>에 썼다.

/신흠申欽 <상촌고象村稿> 부록附錄二 하下

 

이수광도 <묘지명墓誌銘>에서

"필묵筆墨에 있어서 일정한 법도에서 벗어났으니 그의 품성의 고결함과 깊은 수양을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신흠의 글씨는 1596년 중추仲秋에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에게 보낸 서간과 서울대박물관에 소장된

'선초생천지행善初牲川之幸'에 부쳐 보낸 시문에서 볼 수 있다.

저서에 <상촌고象村稿>가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