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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비파사나 수행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4장 13. 심념처 수행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2014-01-08 18:53:52

 

4장 심념처心念處

 

13. 심념처 수행

 

1, 심념처의 중요성

위빠사나 수행이란 현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물질적 정신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몸과 마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과 조건적 특성과 일반적 특성을 직접 통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릴 대상은 현재의 몸과 마음이며

실제 수행에서는 신수심법이라는 네 곳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심념처는 현재의 몸, 느낌, 마음, 법 중에서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위빠사나 수행 센터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마하시에서는 주로 몸을 대상으로 하는 신념처 수행을

고엔카에서는 주로 느낌을 대상으로 하는 수념처 수행을

쉐우민 센터에서는 마음보는 심념처 수행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지도합니다.

 

한국 명상원의 묘원 법사님은 마하시 방법의 수행을 거쳐

고엔카의 수념처 수행과 쉐우민에서 마음보는 수행을 다 하셨습니다.

 

특히 쉐우민에서 심념처 수행을 하실 때 마음을 알아차리면 그 자리에서 번뇌가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시고

모든 수행자들이 마음을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알아차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단계별로 체계화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한국명상원 방식의 마음보는 수행법을 기준으로 심념처 수행을 소개하겠습니다.

 

법구경 1번 게송은

"마음이 그들[五蘊]을 앞서가고 마음이 그들의 주인이며 마음에 의해서 모든 행위는 지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고통이 뒤따른다.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입니다.

 

이 게송은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신구의 三業의 행위는

그 순간의 마음이 시켜서 하고 다시 그 행위의 과보로 행복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행위를 하기 전에 행위를 하려는 마음을 보고나서 알아차림을 가지고 행위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마음이 탐진치라 해도 그 마음을 알아차리면

탐진치의 마음은 알아차림에 의해 소멸되고 현재는 알아차림이 있는 선한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이 마음 상태에서 행위를 하면 선업을 행하게 되며 선한 과보를 예약합니다.

 

다시 선업을 행한 마음을 알아차리면 그 마음도 알아차림에 의해 소멸되고

지금은 단지 선업에 대한 집착이 없는 아는 마음이 됩니다.

이것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以生其心입니다.

 

그래서 지금 어떤 마음이든지 그 마음을 알아차리면 그 순간의 행위는 선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있는 깨끗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몸과 마음은 정화되어 가볍고 평온합니다.

또 깨끗한 마음으로 행한 선업의 과보는 괴로움의 원인인 무명과 갈애를 소멸하는 지혜로 연결됩니다.

이것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의 이익입니다.

 

부처님은 대념처경에서는 수행자가 알아차려야 하는 마음의 종류를 16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 마음을 보는 수행에서는

탐심, 진심, 치심, 관용, 자애, 지혜의 여섯 가지 마음을 주로 알아차릴 대상으로 합니다.

 

사실 마음은 비 물질이라서 수행자가 물질을 보는 것처럼 마음을 쉽게 볼 수는 없습니다.

또 지금까지 마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수행자가 마음을 보려는 의도를 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처음부터 비물질인 마음을 보기보다는 신념처 수행으로 몸을 열심히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몸에서 좋고 싫은 느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다시 몸과 느낌을 알아차려서 알아차리는 힘이 쌓이면 마음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이 순간의 느낌, 기분, 생각, 행동 등을 알아차리게 되며 다시 그와 연계된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실제로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고 실 수행에서는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단계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

우리가 산다는 것은 매 순간마다 육근과 육경과 육식이 촉해서 대상을 느끼고, 인식하고

그래서 어떤 행위를 하려는 의도를 내며 실제로 그 순간의 마음에 따라 말이나 행위를 합니다.

 

1단계 마음보기는 지금 여섯 감각 기관이

어떤 대상을 만나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사실대로 그냥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마음을 두는 곳이 세 군데입니다.

즉 감각기관(육근)과 감각대상(육경)과 대상을 아는 마음(육식)입니다.

 

감각 대상인 밖에 마음을 두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대상에 대하여 저장된 정보가 빠르게 일어나

대상을 시비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상으로 인한 번뇌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그 꽃을 꺾고 싶다면 마음이 대상으로 가버린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알아차림은 없어서 대상에 휘둘려 자신의 마음 습관에 따라 탐심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인 안에 마음을 두고 알아차림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감각 기관에서 들어오는 밖의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육경에 마음을 두는 것보다 시비분별이 덜 일어나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알아차림이 육문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해서 탐진치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줍니다.

 

예를 들면 꽃을 볼 때 자신의 눈에다 마음을 두고 꽃을 봅니다.

또 코에다 마음을 두고 냄새를 맡습니다.

그래서 그냥 꽃이 예쁘다고 하는 것을 알고 꽃의 향기가 좋다고 하는 것을 알 뿐 꽃을 꺾으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알아차림이 감각기관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탐진치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준 것입니다.

 

현재를 알고 있는 마음에 알아차림을 두는 경우입니다.

이는 현재 꽃을 보고 있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수행자가 비물질인 마음을 대상으로 할 만큼의 집중력이 생겼을 때 가능한 방법입니다.

이 경우는 대상이 완전히 객관화 되어 그냥 꽃을 대상으로 볼 뿐 마음에 동요가 없습니다.

 

수행자는 우선 마음을 여섯 감각기관에 두고 대상을 알아차려야합니다.

그렇게 해서 알아차림이 이어지고 집중력이 생기면

그때 현재를 알고 있는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심념처입니다.

 

2) 2단계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

2단계 마음보기는 수상행을 통해서 수상행과 함께 일어난 마음을 보는 단계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자가 알아차려야 할 대상은 현재의 오온입니다.

그런데 이 오온은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고 구생법俱生法으로 항상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오온은 마음과 그 마음과 결합한 마음의 작용과 물질이 함께 있습니다.

 

비 물질인 마음은 왕처럼 뒤에 숨어있고 전면에는 신하인 수상행이 물질과 함께 나타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일어난 마음의 작용인 수(느낌), (생각), (신구의 3)을 통해서 현재의 마음을 보는 방법입니다.

 

느낌을 통해서 마음을 봅니다.

강렬한 느낌이 일어날 때는 그 느낌이 있는 자리에서 느낌과 연계된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먼저 강한 느낌이 나타나면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느낌을 알고 있는 그 마음을 보려고 새로 의도를 냅니다.

이때 그 느낌을 일으킨 원인이 된 마음이나 이미 일어난 그 느낌에 반응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을 통해서 마음을 봅니다.

좌선, 경행, 일상에서 생각을 할 때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생각하고 있는 그 마음을 보려고 마음을 새로 냅니다.

이때 생각을 일으킨 마음이나 생각에 반응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아니면 현재를 알아차린 깨끗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을 통해서 마음을 봅니다.

신구의 3업의 행위를 할 때 그 바탕에는 행위를 일으킨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행위를 할 때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현재의 마음을 보려고 하면 지금 일하고 있는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길에서 누구를 만나 악수를 하면서 그 순간 악수를 하는 자신의 마음을 보면

정말 반가워하는 마음인 경우도 있고 비록 악수는 하지만 마음은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악수라는 행위에 묻어있는 마음을 느껴서 안 것입니다.

 

신업身業

우리 몸은 잘라진 나무토막과 같아서 마음이 시키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눈을 한 번 떴다 감는 것도 마음에서 의도가 시켜서 일어날 뿐 몸이 스스로 알아서 떴다 감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행동에는 그 행동을 일으킨 마음이 있으므로

그 마음을 보려고 새로 마음을 내면 행위에 묻어있는 그 순간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구업口業

말을 할 때도 반드시 의도가 있어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하기 전에 말하려는 의도를 보면 어떤 마음에서 말을 하는지 알게 됩니다.

 

이때 탐진치의 마음이라고 알게 되면 그 말을 자제하게 됩니다.

또는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차리면 말하는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욕망으로 자기 말만 하고 있는지 아니면

고요한 마음으로 상대의 말을 다 듣고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의업意業

매순간 일어나는 의도는 마음이 짓는 업입니다.

의도에는 관용 자애의 선한 의도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불선한 의도가 있습니다.

 

의도는 몸에 명령을 하고 찰나에 사라져버리는 마음작용이므로 알아차리는 힘이 많이 쌓여서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집중하는 힘이 있을 때 마음자리에서 명령을 하는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3) 3단계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 : 아는 것을 다시 알아차리기

(notingwatching 하기 : 알아차림을 지켜보기)

 

이것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noting은 대상을 일차적으로 아는 마음이고 watching은 아는 마음을 다시 지켜보는 마음입니다.

수행자가 알아차림을 꾸준히 하다 보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집중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럴 때는 현재를 알고 있는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고 현재 일하고 있는 마음을 나중에 일어난 마음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즉 현재 상황을 알고 있는 마음을 새로 일어난 마음이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수행자를 항상 현재로 돌아오게 해서

알아차림을 이어가게 해주며 알아차림을 더욱 밀밀하게 해 주는 이익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가 알아차림이 잘 이어져 집중이 깨지지 않으면

한 시간 내내 또는 하루 종일도 notingwatching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수행이 한결 수월하게 진행되며 알아차림의 힘이 더욱 좋아집니다.

 

이렇게 notingwatching하는 동안

수행자의 의식 속에 어떤 번뇌도 일어날 틈이 없으며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조건에 의해 찰나 생멸하는 마음을 볼 수 있고

그 결과로 오온의 무상, , 무아를 보는 위빠사나의 지혜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notingwatching하는 알아차림이 이어져 항상 알아차림과 함께 행동하면 그 순간 이미 자연스럽게

계율을 지키게 되며 그 결과로 번뇌가 될 신구의 3업의 행위를 제어하고 선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