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2014-01-08 19:19:10
제5장 법념처法念處
21. 다섯 장애
1. 다섯 가지 장애[五蓋]
수행자가 수행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다섯 장애입니다.
그러나 법념처는 바로 이 다섯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려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수행자의 것이 아니며 단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수행자가 이런 다섯 장애를 법으로 맞이하지 않으면 다섯 장애에 휩쓸려 지혜를 계발하지 못합니다.
이때 이들은 장애가 됩니다.
그러나 법으로 알아차리면 이들은 생멸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스승이 됩니다.
1) 다섯 가지 장애
다섯 장애는 감각적 욕망, 악의, 혼침과 게으름, 들뜸과 회한, 회의적 의심이라는
정신적 현상으로 실제 수행자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실제 좌선을 하면 우리는 망상, 통증, 졸림, 싫증, 의심 등이 호흡보다 먼저 나타나고 수행자는 이것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이런 것을 법이라고 그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을 수행 대상으로 알아차려서 법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무상, 고, 무아라는 진리의 성품을 보라고 합니다.
수행자가 이 다섯 가지 장애를 없애려고 하거나 붙잡으면 수행을 할 수가 없고
이들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자가 이런 장애를 법으로 수용하여 알아차릴 때
수행이 발전하며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는 이 다섯 가지 장애를 알아차림으로써 다져집니다.
2) 오개는 우리의 근본 번뇌인 탐진치와 연결된 현상입니다.
수행자가 평소에 행한 탐진치라는 마음의 습관이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었다가 마음이 좀 고요해지면 망상, 통증, 졸음 또는 과거에 대한 회한, 이렇게 수행을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등의 의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들 탐진치의 힘은 거대해서 수행을 하지 못하도록 지혜를 가로막는 거센 물살이 됩니다.
그래서 수행은 매순간 올라오는 장애에 대하여 다시 탐진치로 반응하지 않고
그것을 법으로 알아차려서 장애의 거센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대단한 인내와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마음 습관인 탐진치의 거센 물살을 역류하여
새로운 마음의 습관인 관용, 자애, 지혜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3) 다섯 장애는 자신이 살아온 기본 습성입니다.
다섯 장애는 친구처럼 언제나 찾아옵니다.
수행자가 이것을 법이라고 알아차리면 다섯 친구는 그냥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수행자에게 알아차리는 힘을 키워주고 사라집니다.
이때의 장애는 수행자를 도와주는 도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오개가 나타날 때마다 알아차리면 알아차리는 힘이 쌓여서 장애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괴로운 현상에 대하여 탐진치를 내는 힘이 줄어듭니다.
중요한 것은 오개가 일어나는 순간이 바로 수행자가 알아차림을 할 기회라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오개가 일어날 때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수행자의 의무를 다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애를 없애려고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알아차릴 대상이라서 알아차리는 것뿐입니다.
그 결과로 수행자는 알아차린 만큼 장애에서 벗어납니다.
사실 수행자가 장애를 알아차렸다고 즉시 장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탐진치의 힘은 강하고 알아차리는 힘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같은 장애가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이때 싫어하지 말고 다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기서 장애가 다시 나타났다고 화를 내는 것은 성냄이며 장애가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탐심입니다.
이런 장애가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은 수행자의 알아차리는 힘이 결정하는 것이지 수행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장애는 곧 스승입니다.
수행자가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리면 그 순간 장애는 사라지고 장애를 알아차린 새로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장애도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이때 장애는 생멸의 법을 보여주는 스승입니다.
장애는 얼음에 비유됩니다.
갈증이 날 때 얼음은 물처럼 마실 수 없습니다.
시원한 물을 마시려면 일단 얼음을 녹여야합니다.
이때 얼음을 녹이는 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장애라는 얼음 덩어리에 알아차림을 하여 거기서 지혜의 시원한 물맛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를 반복해서 알아차리면 점차 장애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몸과 마음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가 나타납니다.
결국 장애가 나타나는 순간이 장애를 녹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것이 장애를 싫어하지 않고 법으로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처님은 대념처경에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안다.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안다.
일어난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안다.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하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장애가 이와 똑같은 문구로 반복되어 나옵니다.
장애가 있을 때 단지 장애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장애가 좋은 도반과 스승의 역할을 합니다.
수행자가 장애에 휩쓸리지 않고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려서 장애를 뛰어넘을 때 수행이 발전합니다.
그래서 장애를 장애로 만들거나 수행 도반으로 만들거나 스승으로 만들거나 하는 것은 수행자의 몫입니다.
수행자가 장애를 싫어하여 반응을 했는지 아니면 장애를 법이 왔구나! 하고 알아차렸는지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끊임없는 노력과 알아차림으로 현재의 대상을 법으로 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 다섯 장애五蓋를 살펴봅니다.
① 감각적 욕망
수행은 끊임없는 노력과 알아차림으로 현재의 대상을 법으로 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육근이 육경에 촉할 때 그것이 원하는 대상이면 감각적 욕망이 일어납니다.
감각적 욕망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또는 일어난 감각적 욕망을 없애려고 하면
오히려 그 마음이 자양분이 되어 감각적 욕망은 더 커집니다.
감각적 욕망은 여러 가지 물감을 섞어서 풀어놓은 물에 비유합니다.
이런 물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비춰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히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안목으로 왜곡시켜 받아들입니다.
감각적 욕망은 마치 빚을 지고 쫒기는 빚쟁이와 같고
감각적 욕망이 사라지면 빚을 다 갚고 빚에서 해방된 자유인과 같습니다.
② 악의惡意
육근이 육경에 촉할 때 원하지 않는 대상이면 악의가 일어납니다.
또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면 악의가 일어납니다.
그때 수행자는 이 악의를 법으로 알아차립니다.
만일 악의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의를 더 조장하며
이미 생겨난 악의도 더 드세게 만드는 자양분이 됩니다.
악의는 펄펄 끓는 물에 비유합니다.
펄펄 끓는 물에는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분노하는 사람은 현실을 바르게 판단하지 못합니다.
악의惡意는 마치 병든 것과 같고 악의가 사라지면 병이 다 나아서 건강을 회복한 것과 같습니다.
③ 혼침昏沈과 게으름
침체된 마음에서 나른함, 권태로움, 선하품, 기지개, 식곤증, 까라짐, 무기력함 등이 나타납니다.
이런 장애가 일어날 때 즉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혼침과 게으름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을 좋아하여 혼침과 게으름에 자신을 던져버립니다.
또 졸음을 싫어하거나 없애려고 하면 오히려 졸음에 휩쓸려버립니다.
수행자는 잠과 싸우거나 화내지 말고 잠이 오는 몸의 현상, 마음의 현상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삼아 지켜보아야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알아차리다가 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때 잠들기 전까지 얼마나 알아차렸는지가 관건입니다.
혼침과 게으름은 이끼와 풀로 덮여있는 물에 비유합니다.
이런 물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비쳐볼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혼침과 게으름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합니다.
혼침과 게으름은 마치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고
혼침과 게으름이 사라지면 감옥에서 해방된 것과 같습니다.
④ 들뜸과 회한
들뜸이나 회한이 있을 때 지금 들떠있다고 후회하고 있다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음이 들떠서 불안정할 때, 지난 일을 후회하거나 자책할 때
그 마음을 없애려고 하면 들뜸과 회한을 드세게 하는 자양분이 됩니다.
즉시 들뜸이나 회한이라는 정신적 현상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때 몸과 마음의 느낌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후회하거나 자책하는 마음은 불선심이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선심입니다.
들뜸과 회한은 바람에 출렁거리는 물에 비유합니다.
이런 물에는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볼 수가 없습니다.
들뜨고 근심하면 항상 마음이 불안정하여 현실을 바르게 볼 수가 없습니다.
들뜸과 회한은 마치 주인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노예와 같고
들뜸과 회한이 사라지면 노예에서 해방된 자유인과 같습니다.
⑤ 회의적 의심
회의적인 의심은 불법승 삼보와 계에 대한 의심입니다.
이런 의심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의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의심을 더욱 조장하고 이미 생겨난 의심을 더욱 키우는 자양분이 됩니다.
의심에 빠지기 시작하면 수행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수행을 시작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의심은 흙탕물을 휘저어 어두운 곳에 놓아둔 물에 비유합니다.
이런 흙탕물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의심은 마치 보물을 들고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보물을 뺏긴 것과 같고
의심이 사라지면 강도에게서 벗어나 보물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3. 다섯 가지 장애를 알아차려서 얻는 이익
1)
결국 다섯 장애는 장애가 아니고 알아차릴 대상으로서 수행의 재료입니다.
수행자가 다섯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리면 진리를 볼 수 있는 힘이 쌓이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계속 장애가 수행자를 휩쓸어 버립니다.
수행을 시작하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다섯 가지 장애를
수행자는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주고 그 순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몸으로 돌아와 가슴의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리다가 느낌이 사라지면
다시 수행의 주 대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해서 실천해야합니다.
이럴 때 수행자는 장애에서 알아차림의 힘을 키우고 결국 장애를 극복하게 됩니다.
장애가 찾아오는 이 과정은 수행자에게
알아차리는 노력과 알아차림을 실천하도록 도와주며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인내력을 키워줍니다.
이런 인내와 노력이 알아차림의 힘을 키워서
마음이 대상에 정확하게 집중되면 드디어 대상의 보편적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섯 장애를 법으로 알아차릴 만큼 알아차리는 힘이 쌓이면
이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정신적 현상을 법으로 맞이하는 오온에 대한 법념처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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