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哲學/中國哲學

공자의 제자들 3 염경冉耕

염경冉耕(BC544년?-?) 염백우冉伯牛, 염자冉子.

 

1. 염씨 삼형제 중 장남

 

춘추시대 노나라의 도 출신이다.

자는 백우伯牛이고 ‘염백우冉伯牛’ 혹은 ‘염자冉子’도 불린다.

주 문왕의 열 번째 아들 염계재冉季載의 후예다.

 

<염씨가보冉氏族譜>에 따르면

염옹의 부친 염리冉離가 안씨顔氏를 아내로 맞아 맏아들 염경을 낳았는데

자가 백우이고 차남으로 염옹을 낳았는데 자가 중궁仲弓이다.

안씨가 죽은 후 공서씨公西氏를 아내로 맞아 염구를 낳았는데 자가 자유子有였으며 염유冉有, 염자冉子라고도 불렀다.

 

훗날 공서씨는 삼형제를 공자에게 맡겨 공부를 시켰다.

염씨 삼형제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공자의 격려를 받으며 학문적으로 성공하여 ‘一門三賢’으로 일컬어졌다.

 

2. 덕행으로 공자의 신임을 얻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덕행德行으로 안연(안회), 민자건(민손), 중궁(염옹)과 더불어 유명했는데

사람됨이 단정하고 정의로웠다고 한다.

 

일찍이 공자가 노나라 중도재中都宰라는 지방관을 거쳐 사공司空(재상)이 되었을 때 뒤를 이어 중도재로 임명되었고

공자가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할 때 그를 수행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요절했다.

 

그가 병을 앓을 때 병문안을 온 공자가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그를 망쳤구나, 숙명이로다!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라고 장탄식을 하며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3. 후대의 추앙

 

공자의 10대 제자를 가리키는 공문십철 중 한 사람이고 현자로서 공자 사당에 배향되었다.

당나라 현종顯宗 개원開元 27년인 739년에 ‘운후鄆侯’에 추봉되었고

송나라 진종 대중상부大中祥符 2년인 1009년에는 ‘동평공東平公’으로 추봉되었다.

남송 도종 함순咸淳 3년인 1267년에 ‘운공鄆公’으로 추봉되었고

명 세종 가정嘉靖 9년인 1530년에는 ‘선현염자先賢冉子’로 명칭이 바뀌었다.

 

 

4. 관련 유적

 

청 덕종德宗 광서光緖 17년에 편찬된 <비성현지肥城縣志>에 따르면

그의 고택故宅이 지금의 산둥성 페이청현의 서남쪽에 있는데 염가장冉家莊으로 불렸고

명나라 때 지현知縣(현령)이었던 왕유정이 쓴 비碑가 있다고 한다.

 

염가장에는 사당인 염자사冉子祠가 있고 그곳에서 20리 밖에 염자묘冉子墓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공자에게 천자의 예우를 받은 염경廉耕(염백우)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 중 안연·민자건·중궁과 더불어 염경冉耕을 덕행德行이 가장 뛰어난 제자라고 평가했다.

염경冉耕은 요절한 안연顔淵과 함께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안타깝고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인물이다.

 

안연은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학문에만 열중하다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고

염경은 성실하게 살면서 덕행德行을 쌓았지만 문둥병에 걸려 죽었다.

공자는 평소 염경의 덕행德行을 아끼고 칭찬했는데 그가 몹쓸 병에 걸리자 몹시 슬퍼하며 안타까워했다.

 

백우유질伯牛有疾 백우伯牛(염경)가 문둥병에 걸렸다.

자문지子問之 공자는 문병을 가서

자유집기수왈自牖執其手曰 남쪽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백우의 손을 잡으며 탄식했다.

 

망지亡之 명의부命矣夫 "가망이 없구나. 하늘의 운명이구나!

사인야斯人也 이유사질야而有斯疾也 이 사람이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사인야斯人也 이유사질야而有斯疾也 이 사람이 이런 몹쓸 병에 걸리다니!"

/<論語 옹야雍也>

 

옛날 중국에서 환자를 문병하는 예절禮節은 북쪽 창문 아래에 환자가 누워 있고

문병하는 사람은 북쪽을 향해 앉아 환자를 바라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천자에게 문병할 때는 남쪽을 향했다.

공자는 염경이 비록 제자였지만 그의 德을 높게 사 天子의 예우로 문병했던 것이다.

공자는 신분과 지위를 떠나 학문과 德이 높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었다.

 

 

►덕행德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빛낸 염경

 

공자는 德으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정치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孔子家語 弟子行>편에 실려 있는 자공子貢(단목사)의 말에 따르면

공자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정치 모델을 온전하게 실천할 수 있는 제자로

안연顔淵과 염경冉耕(염백우)을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일찍 잔다.

시詩를 외우고 예의禮義를 높인다.

잘못은 두 번 되풀이하지 않고 구차한 말은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법도法度에 맞춰 한다.

이것이 안연顔淵(안회)의 행실이다.

 

공자께서는 시詩를 인용해

"아름답구나! 이 사람이여.

오로지 덕德으로 삼갔구나.

길이 효도를 생각하니 곧 法이 될 것이다.

만약 덕 있는 임금을 만나면 그 덕을 물려받아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천자를 모시면 충분히 보좌할 수 있는 王者의 자질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아무리 부귀해도 교만하지 않고

이 사람에 대한 노여움을 저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어제의 원망을 오늘까지 갖고 있지 않고

과거 다른 사람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염경이다.

 

공자께서는

"염경은 나라를 맡겨도 마땅히 다스릴 수 있다.

나라를 소유한 후에 여러 사람을 등용해 형벌을 내리는 권한을 준다면

그 형벌에 따라 노여움의 정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또 시詩를 인용해 공자께서는

"시작이 나쁜 사람은 없지만 끝이 좋은 사람은 드물다.

필부匹夫에게 노여워하지 않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몸을 망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孔子家語 弟子行>

 

훗날 儒家의 학맥學脈을 이은 맹자孟子와 그 제자인 공손추公孫丑가 나눈 대화를 보아도

염경은 공자의 제자들 중 德行으로 명성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염경은 德行을 통해 스승의 가르침을 후세 사람들에게까지 전했던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다.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은 말을 잘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고

염백우冉伯牛와 민자건閔子騫과 안연安淵은 말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덕행德行에도 뛰어났다.

/<孟子 公孫丑上>

 

 

(나는) 예전에 자하子夏와 자유子游와 자장子張은 모두 聖人의 면모를 일부분 지니고 있고

염백우冉伯牛와 민자건閔子騫과 안연安淵은 聖人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약간 부족한 것이 있다고 들었다.

/<孟子 公孫丑上>/네이버 지식백과

'哲學 > 中國哲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자의 제자들 5 염구冉求  (0) 2023.06.20
공자의 제자들 4 염옹冉雍  (0) 2023.06.20
공자의 제자들 2 민손閔損  (0) 2023.06.20
공자의 제자들 1 안회顏回  (0) 2023.06.20
공문십철孔門十哲  (0) 202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