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제10篇 향당鄕黨
향당편은 주로 공자의 공사생활에서 보여준 행동거지를 기록한 것이다.
(10-1)
공자어향당孔子於鄕黨 순순여야恂恂如也 사불능언자似不能言者
공자는 사는 마을에서는 진실하고 마치 말도 잘 못하는 사람 같았으나,
기재종묘조정其在宗廟朝廷 변변언便便言 유근이唯謹爾
종묘나 조정에서는 말을 잘 하면서도 공손하였다.
►당黨 500가구 마을
►순순恂恂 믿음직하고 거짓이 없다, 진실하게 여기다.
►사似 같다, 닮다.
►변변便便 아무 불편 없이 편안하다, 편하다, 말을 잘하다.
►유唯 오직, 비록 ∼하더라도
►근謹 삼가다, 공손하다. 정중하다.
마을사람에게는 별로 말이 없던 공자도 공석에서는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인상을 심어주지만 이 또한 공자의 건실한 생활자세인 것이다.
(10-2)
조朝 여하대부언與下大夫言 간간여야侃侃如也 (공자는) 조정에서 하대부와 말할 때에는 편안하게
여상대부언與上大夫言 은은여야誾誾如也 상대부와 말할 때에는 조리 있게
군재君在 축적여야踧踖與也 여여여야與與如也 군주 앞에서는 언행을 조심하면서도 여유 있었다.
►간간侃侃 화락하다. 조용하고 편안하다
►은은誾誾 평온하게 토론하다
►축적踧踖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여여與與 여유 있는 모습
공자의 언행이 상대에 따라 다르다.
공자 개인의 특성은 완전히 숨겨 버린 셈이 된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예의 속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차이는 사람뿐 아니라 장소에서도 달라지는 점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예를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0-3)
군소사빈君召使擯 색발여야色勃如也 족곽여야足躩如也
군주가 불러 사신을 접대하라 하면 얼굴빛은 긴장하고 걸음도 조심하였다.
읍소여립揖所與立 좌우수左右手 의전후첨여야衣前後襜如也
나란히 서서 읍을 할 때에는 손을 좌우로 움직였고 옷깃은 앞뒤로 가지런히 하였다.
추진趨進 익여야翼如也 빨리 걸을 때는 날개를 편 듯하였다.
빈퇴賓退 필복명必復命 왈曰 사신이 물러간 뒤에는 반드시 복명하기를
빈불고의賓不顧矣 “사신은 돌아보지 않고 갔습니다.”하였다.
►발勃 발끈하다, 갑자기
►족곽足躩 바삐 가다, 발길을 돌려 나아가지 않는 모양
►첨襜 가지런히 하다
►추趨 빨리 가다. 성큼성큼 걷다.
공자가 외국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는 모습이다.
앞에서는 말씨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장은 모두 태도에 관한 것이다.
얼굴빛, 손가짐, 걸음걸이 등 모든 행동이 예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여야 하니
접대하는 내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10-4)
입공문入公門 공청 문으로 들어갈 때에는
국궁여야鞠躬如也 여불용如不容 허리를 굽혀 마치 용납되지 못한 것처럼
입부중문立不中門 행불리역行不履閾 문의 가운데 서지 않고 문턱을 밟지 않았다.
과위過位 색발여야色勃如也 족곽여야足躩如也 기언其言 사부족자似不足者
(군주가 계시는 자리를) 지날 때는 낯빛은 긴장하고 걸음도 조심하며 말씨도 부족한 듯하였다,
섭제승당攝齊升堂 국궁여야鞠躬如也 당에 오를 때는 옷자락을 잡고 허리를 굽히며
병기사불식자屛氣似不息者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숨결을 가리고
출강일등出降一等 령안색逞顔色 이이여야怡怡如也 한 계단 내려와서는 낯빛을 풀어 기쁜 듯하였다.
몰계추진沒階趨進 익여야翼如也 계단을 다 내려와 빨리 걸을 때는 날개를 편 듯하고
복기위復其位 축적여야踧踖如也 제 자리에 돌아와서는 몸가짐을 조심하였다.
►국궁鞠躬 윗사람 앞에서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힘
►이역履閾 문지방(문턱)을 밟다.
►섭제攝齊 가지런히 잡아당기다.
►병屛 가리다. 병풍
►령逞 근심을 풀다
►이이怡怡 기뻐하다
공자가 조정에 나갔을 때의 모습이다.
공청에서도 자리에 따라 행동거지가 다르다.
소위 설자리와 앉을 자리를 구별해야 한다는 까닭을 말해주고 있다.
(10-5)
집규執圭 국궁여야鞠躬如也 여불승如不勝 구슬(규)을 쥘 때는 허리를 굽혀 못이기는 듯하고
상여읍上如揖 하여수下如授 올릴 때는 읍하듯, 내릴 때는 주는 듯,
발여전색勃如戰色 얼굴은 두려워하는 듯
족축축여유순足蹜蹜如有循 발걸음은 총총걸음으로 그 뒤를 따르는 듯
향례享禮 유용색有容色 예물을 바칠 때는 얼굴을 폈으며
사적私覿 유유여야愉愉如也 사사로이 만날 때는 기뻐하였다.
►규圭 상서로운 구슬, 제후를 봉할 때 사용하던 홀
►전색戰色 몹시 무섭거나 두려워 몸이 떨림(=戰慄)
►축축蹜蹜 앞발치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가다.
►향례享禮 예물을 바치다.
►용색容色 편 얼굴빛
►적覿 보다, 만나다
►유유愉愉 기뻐하다. 부드러워지다.
공자가 외국사신으로 갔을 때의 모습이다.
처음에 군주를 만날 때는 감당하지 어려운 듯 행동하지만
일단 부임한 후에는 화평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10-6)
군자불이감추식君子不以紺緅飾 홍자紅紫 불이위설복不以爲褻服
군자(공자)는 감색과 검붉은 옷깃을 달지 않으며 평소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지 않았다.
당서當署 진치격袗絺綌 필표이출지必表而出之 한 더위에는 고운 베나 거친 베로 만든 홑옷을 껴입었다.
치의고구緇衣羔裘 소의예구素衣麑裘 황의호구黃衣弧裘
검은 옷에는 염소가죽으로, 흰옷에는 어린사슴 가죽으로, 누런 옷에는 여우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설구장褻裘長 단우몌短右袂 평소에 입는 옷은 길었는데 오른쪽 소매는 짧았다.
필유침의必有寢衣 장일신유반長一身有半 호맥지후狐貉之厚
잠옷이 따로 있었는데 길이가 한 키 반으로 여우나 담비의 두꺼운 털옷으로 지냈다.
이거以居 거상去喪 무소불패無所不佩 상이 지나면 안차는 패물이 없다.
비유상필쇄지非帷裳必殺之 수레에 치는 휘장이 아니면 반드시 줄이도록 했다.
고구현관羔裘玄冠 불이조不以弔 염소가죽옷에 검은 관을 쓰고는 조문하지 않았다.
길월吉月 필조복이조必朝服而朝 매달 초하루에는 조복을 입고 조정에 나갔다.
►감紺 감색, 검은 빛을 띤 푸른 빛, ►추緅 검붉다 ►식飾 꾸미다. 치장하다 ►설복褻服 사사로이 있을 때 입는 옷
►진袗 홑옷, 홑으로 된 여름옷 ►치絺 칡베, 고운 갈포, 갈포 홑옷
►격綌 칡베, 거친 갈포, 또는 그것으로 만든 옷 ►치緇 검다 검게 물들이다.
►고羔 염소새끼 ►예麑 사슴의 새끼
►몌袂 소매
►거상去喪 상이 지나면
►유상帷裳 수레에 치는 휘장
►길월吉月 월삭. 초하루 ►조복朝服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 입던 예복
공자의 의생활을 묘사하였다.
공자는 평상시에는 결코 호사스러운 옷을 입지 않았다.
속옷과 겉옷의 색깔이 다른 것은 아마 한 빛깔이 지나치게 짙은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오른쪽 소매가 짧은 것은 일하기에 간편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잠옷 길이가 긴 것은 발목을 보호하려고 한 것으로 보여 겨울에 입은 것 같다.
그런데 옷은 검소하게 입으면서도 패물은 가리지 않고 찼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벼슬아치나 사대부의 긍지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염소가죽에 검은 관은 길복이기 때문에 이를 입고 조문을 드리지 않은 것 같다.
조정에 나갈 때는 벼슬위계에 따라 정해진 조복이 있으므로 이를 따른 것이다.
공자의 의생활을 보노라면 요즘 영화에서 보듯이 화려한 비단옷은 없었던 것 같으며
오히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 널리 이용된 것을 알 수 있다.
(10-7)
제齊 필유명의포必有明衣布 목욕재계 때는 반드시 깨끗한 베옷을 입는다.
제齊 필변식必變食 거필천좌居必遷坐 목욕재계 때는 반드시 음식도 바꾸고 거처하는 자리도 바꿔 앉는다.
►명의明衣 명은 신과의 교제를 의미한다. 그래서 제사를 위한 목욕 후에는 명의를 입는 것이다.
►변식變食 술과 향기로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
►천좌遷坐 항시 거처하던 곳을 바꾼다.
제사를 지내기 전의 목욕재계는 심신을 깨끗이 함으로써 신을 공경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의에서는 형식과 절차를 특히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10-8)
식불염정食不厭精 회불염세膾不厭細 밥은 흰 것을 좋아했으며 회는 가는 것을 좋아했다.
식의이애食饐而餲 어뇌이육패불식魚餒而肉敗不食 밥이 쉬어 맛이 변한 것과 상한 생선, 썩은 고기는 먹지 않았으며
색악불식色惡不食 취악불식臭惡不食 색이 나빠도 먹지 않았고, 냄새가 나빠도 먹지 않았으며
실임불식失飪不食 불시불식不時不食 익지 않은 것도 먹지 않았고, 제 때가 아니어도 먹지 않았으며
할부정불식割部正不食 부득기장불식不得其醬不食 반듯하게 썰지 않으면 먹지 않고, 간이 안 맞아도 먹지 않았다.
육수다肉雖多 불사승식기不使勝食氣 고기가 비록 많더라도 밥 기운을 넘지 않았다.
유주무량惟酒無量 불급란不及亂 오직 술만은 끝이 없었으나 비틀거리지 않을 정도였다.
고주시포불식沽酒市脯不食 술집에서 파는 술과 시장에서 파는 말린 고기는 먹지 않았다.
불철강식不撤薑食 부다식不多食 생강은 치우지는 않았으나 많이 먹지는 않았다.
제어공祭於公 불숙육不宿肉 나라 제사에 쓰인 고기는 밤을 넘기지 않았으며
제육祭肉 불출삼일不出三日 집안 제사에 쓰인 고기도 삼일을 넘기지 않고
출삼일出三日 불식지의不食之矣 삼일을 넘기면 먹지 않았다.
식불어食不語 침불언寢不言 식사 때는 얘기하지 않았으며, 잠자리에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수소식채갱과雖疏食菜羹瓜 제祭 필제여야必齊如也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에 오이라 하더라도 제사를 지낼 때는 엄숙하였다.
►정精 정미, 흰쌀 ►회膾 잘게 저민 날고기
►식의이애食饐而餲 밥이 쉬어 맛이 변한 ►어뇌魚餒 썩은 생선 ►육패肉敗 썩은 고기
►실임失飪 익지 않은
►고주沽酒 술집이나 시장에서 파는 술
►철撤 거두다, 치우다. ►강식薑食 꿀이나 엿을 가미한 생강식
►어語 이야기하다, 의논하다.
►갱羹 국, 국물
공자의 식생활에 대한 모습이다. 식성이 매우 까다롭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술은 끝이 없었던 모양이나 스스로 알아서 적당히 조절한 듯하다.
제사를 지낼 때 비록 제물이 소박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엄숙하게 제사를 모셨다.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신의 은혜를 나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3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부모상을 치르는 기한도 3년인데 아무래도 제사의식과 3이라는 숫자는 무언가 연결점이 있는 모양이다.
(10-9)
석부정席不正 부좌不坐 자리가 단정하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별것 아닌 거 같은데 옛 성인들은 사소한 것까지 바르지 않은 것을 싫어했나 보다.
(10-10)
향인음주鄕人飮酒 장자출杖者出 사출의斯出矣 마을사람과 술을 마실 때는 노인이 먼저 나가야 따라 나가고
향인나鄕人儺 조복이립어조계朝服而立於阼階 마을사람들이 굿을 할 때는 예복을 입고 묘의 층계에 서 있었다.
►장자杖者 지팡이를 든 사람으로 노인을 가리킨다.
►나儺 역귀를 쫓다, 굿, 푸닥거리
►조복朝服 제복祭服을 말한다. ►조계阼階 묘의 계단, 동쪽의 섬돌
장유유서長幼有序라 하여 노인이 나가기 전에 나이 어린 사람이 먼저 나갈 수 없었다.
마을에서 굿을 하는데 공자는 예복을 갖추어 입고 참여하였다.
이를 두고서 공자가 무속신앙을 믿었다고 할 수도 있으나 공자는 굿을 조상신 또는 천신에 대한 제사로 보았다.
(10-11)
문인어타방問人於他邦 재배이송지再拜而送之 사람을 외국에 보낼 때는 2번 절하고 보냈다.
강자궤약康子饋藥 배이수지왈拜而受之曰 계강자가 약을 보내오자 (공자가) 절하고 받으며 말했다.
구미달丘未達 불감상不敢嘗 “나는 이 약에 대하여 모르므로 감히 먹지 못하겠다.”
►문인問人 대리인을 보내어 안부를 묻는다.
►재배再拜 외국으로 보낼 때는 재배한다.
►강자康子 노나라 대부로서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권력자. 성은 계손季孫, 이름은 (肥. 계강자는 시호이다.
►궤饋 음식이나 물건을 보내다
계강자가 보내온 약이 공자 자신의 병에 맞는지 여부를 모르므로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약을 잘못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이다.
삼대가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공자가 약에 독이 있을까 염려되어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10-12)
구분廐焚 자퇴조왈自退朝曰 마구간에 불이 타자 공자가 조정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상인호傷人乎 불문마不問馬 “사람이 상했느냐?”하며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구廐 마굿간
혹시 불이 나서 사람이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은 것은 사람의 목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를 예전에 “사람이 상하지 않았느냐고 먼저 묻고 다음에 말을 물었다.”고 해석하기도 하였다는데 어순이 안 맞는 것 같다.
(10-13)
군君 사식賜食 필정석선상지必正席先嘗之 군주가 음식을 내리면 반드시 자리를 바로하고 먼저 맛을 보았고
군君 사성賜腥 필숙이천지必熟而薦之 군주가 날고기를 내리면 반드시 익혀서 조상에게 올렸다.
군君 사생賜生 필축지必畜之 군주가 산 짐승을 내리시면 반드시 그것을 키웠으며
시식어군侍食於君 군제君祭 선반先飯 군주를 모시고 식사를 할 때는 군주가 제를 마치면 먼저 먹어 보았다.
질疾 군시지君視之 동수東首 가조복타신加朝服拖紳
병중에 군주가 문병을 오면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 조복에 띠를 둘렀다.
군명소君命召 불사가행의不俟駕行矣 군주가 부르시면 지체 없이 수레에 올랐다.
►성腥 날고기, 비린내가 나다.
►천薦 공물, 천거하다, 올리다.
►동수東首 군주는 남면하기 때문에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고 눕는다.
►타拖 끌어당기다. 속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띠가 땅에 끌린다.
►사俟 기다리다.
공자가 군주를 대하는 자세다.
군주가 내린 물건은 거기에 깃든 정의에 감사해야 한다.
병자는 아무리 군주가 문병오더라도 옷을 차려입을 수가 없으므로 이를 약식으로 걸쳐 최소한의 예를 갖추는 것이다.
신하는 군주의 부름에는 즉각 응해야 하지만 예를 갖춰 부르지 않는다면 이에 응하지 않거나 천천히 간다.
(10-14)
입태묘入太廟 매사每事 문問 태묘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물었다.
태묘太廟는 주공의 묘를 일컫는다.
태묘에 들어가서의 예법에 대하여는 아는 것도 다시 물어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상사와 제사에 철두철미한 공자의 성격상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제후인 주공의 대묘에서 천자의 예를 쓰고 있었기에 예법이 틀리지 않았나 물어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팔일 (3-15)에 같은 내용이 있다.
(10-15)
붕우사朋友死 무소귀無所歸 왈曰 벗이 죽었는데 상주가 없자 (공자가) 말했다.
어아빈於我殯 “내가 빈소를 차리겠다.”
붕우지궤朋友之饋 수거마雖車馬 비제육非祭肉 불배不拜
벗이 보내준 물건이 비록 수레와 말이라 하더라도 제육이 아니면 절하지 않았다.
►무소귀無所歸 친지가 없어 상주를 세울 수 없다.
►빈殯 장사 지내기 전 시신을 관에 넣어 안치하다.
►제육祭肉 제사에 쓰는 고기
상주도 없는 벗이 죽으면 공자 자신이 상주가 되어 뒷일을 보살펴주는 친애의 정이 엿보인다.
친구 간에는 제물을 주고받을 때 예를 생략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제사에 쓰이는 고기일 경우에는 신을 생각하면서 배례하는 것이다.
(10-16)
침불시寢不尸 거불용居不容 잠잘 때는 시체처럼 눕지 않았고 집에서는 몸을 꾸미지 않았다.
견제쇠자見齊衰者 수압雖狎 필변必變 상제를 만나면 아무리 친하더라도 낯빛을 바꾸고
견면자여고자見冕者與瞽者 수설雖褻 필이모必以貌
벼슬아치나 눈먼 사람을 만나면 자주 만나는 사이라도 반드시 예를 갖추었다.
흉복자凶服者 식지式之 상복 입은 사람에게는 수레에서도 예를 드리고
식부판자式負版者 귀중한 서류를 가진 사람에게도 예를 표하였다.
유성찬有盛饌 필변색이작必變色而作 큰 잔칫상을 받으면 반드시 낯빛을 고치면서 일어서고
신뢰풍렬迅雷風烈 필변必變 번개치고 바람이 몰아쳐도 반드시 낯빛이 변하였다.
►용容 얼굴, 몸을 꾸미다. 맵시를 내다
►압狎 익숙하다
►고瞽 눈먼, 소경
►설褻 자주 만나다
►모貌 예의를 갖추다
►식式 수레위의 횡목. 예를 드릴 때 의지한다.
►부판負版 국가의 중요문서를 등에 진 자
죽은 사람처럼 눕는 것은 절제가 없는 것이며 집에 있을 때까지 엄격하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경외의 정을 갖도록 한다.
성찬 앞에서 반색하는 것은 하늘이 내린 풍성에 대한 경외의 마음 때문이다.
번개치고 거센 바람 앞에서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느끼면 이로 인한 피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0-17)
승거升車 필정립必正立 집수執綏 수레에 올라서는 반드시 똑바로 서서 줄을 잡고
거중車中 불내고不內顧 수레 안에서는 이리저리 돌아보지 않았으며
부질언不疾言 불친지不親指 떠들지 않고 직접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았다.
►수綏 수레 손잡이
►고顧 사방을 둘러보다.
►질언疾言 빠르고 급한 말투
수레에 올라 줄을 잡는 것은 안정을 취하기 위한 것이며 돌아보지 않는 것은 사사로운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레에서 떠들거나 손가락질 하는 따위의 행동은 동승자나 수레를 모는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하므로 삼가야 한다.
(10-18)
색사거의色斯擧矣 상이후집翔而後集 (꿩이) 놀라서 날아오르더니 다시 모여들었다.
왈曰 (이를 보고 공자가) 말했다.
산량자치시재시재山梁雌雉時哉時哉 “산골짜기 다리 위의 암꿩은 때를 만났구나, 때를 만났구나.”
자로공지子路共之 삼후이작三嗅而作 자로가 잡으려고 하자 (꿩은) 3번 냄새를 맡더니 날아가 버렸다.
►색色 놀란 모습
►거擧 새들이 떠오르다
►산량山梁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다리
►자치雌雉 암꿩
►자로子路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는 자로子路 또는 계로季路.
뜻이 불분명한 구절이다.
꿩의 자유로운 모습을 노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지러운 난세에 군자가 세상을 등지고 숨는 것을 비유한 것 같기도 하다.
자로가 꿩을 잡아 공자에게 드렸는데 공자는 내키지 않은 듯 3번 냄새만 맡고 일어서 버렸다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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