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상설論語詳說
조선 후기의 학자 어유봉魚有鳳이 <논어>에 대한 주석들을 넓게 수집·정리한 책.
이 책은 본래 김창협金昌協이 편찬을 계획하여 목록과 편찬체제를 만들고 문인 김시우金時佑와 함께
편찬을 시작했는데 불과 수 편을 정리하고는 김창협이 세상을 떠나자 일이 중단되었다.
김시우는 이 계획이 완성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어유봉을 만날 때마다 이 책의 완성을 권하였다.
어유봉은 스승의 이 같은 권고를 받고 선생의 유업에 착수해 2년 만에 이와 같은 규모의 책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논어>의 편차순서에 따라 편·장의 체제에 맞추어 주석을 모아 편찬하였는데
<논어> 원문의 장구章句를 표출하고
다음 행을 바꾸어 한 자의 사이를 낮추고 원문 장구에 해당하는 <論語集註)>를 그대로 옮겨 실었으며
이어서 다시 행을 바꾸고 한 자를 낮추어 <朱子大全> 안에 담겨진
<논어> 각 편장에 관계된 논평과 해설에 관한 내용을 모두 추출해 요약·정리하였다.
논평과 해설 내용은 주로 붕우와 문인들과 주고받은 논의들로 인용 말미에는 반드시 서제書題를 부기하고 있다.
표출된 원문에 집주가 많은 곳은 논평·해설의 양도 자연히 많은데 대체로 이러한 부분은 <논어>의 내용에 있어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과 비례해 상세함과 간략함을 조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제1편 1장 ‘子曰學而時習之’에 관한 논평·해설은 2천자에 달하고 있으며
2장 ‘有子曰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에는 3천자의 논평·해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편장에 따라서는 40자에 불과한 논평·해설로써 한 장을 마친 간략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은 <논어> 원문 전체를 해석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주희朱熹의 <논어집주> 이외에서 토의된
<논어>의 각 편장에 대한 주희의 견해가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논어>에 대한 주희의 견해를 종합하여
이해할 수 있으며 주자사상의 한국적 전개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어유봉魚有鳳(1672-1744 현종13-영조20)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
어세공魚世恭의 9대 손이고 수운판관水運判官 어한명魚漢明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 어진익魚震翼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우윤 어사형魚史衡이며, 어머니는 유거柳椐의 딸이다.
경종의 장인 어유구魚有龜의 형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이다.
1699년(숙종 25)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는데 이때 과거 시험의 부정을 보고 대과의 응시를 단념하였다.
뒤에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으나 사퇴했다가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다.
1706년 우의정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를 받고 천안군수에 임명되었고
1718년 장령掌令을 거쳐 이듬해 집의執義에 올랐다.
경종이 즉위한 뒤 양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722년(경종 2) 신임사화로 스승 김창협이 화를 당하자 유생들과 함께 스승을 변호하다가 파직되었다.
영조가 즉위하자 관직에 다시 복귀해 집의·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하고
1734년(영조 10) 호조참의, 이듬해 승지가 되었다.
1738년 세자시강원찬선世子侍講院贊善이 된 뒤 영조로부터 지극한 대우를 받으면서 세자의 스승으로도 불렸으나
1742년 자신이 맡고 있는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고 사퇴하였다.
당대의 학자로 명망이 높았으며 학문적으로는 이른바 낙론洛論으로서
권상하權尙夏의 문인 이간李柬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지지하였다.
문하에는 이천보李天輔·홍상한洪象漢·윤득관尹得觀 등의 학자를 배출하였다.
저서로는 <기원집杞園集><경설어록經說語錄>
편서로는 <오자수언五子粹言><논어상설論語詳說><주자어류요략朱子語類要略閨誦>
<대월첩大越帖><풍아규송風雅閨誦> 등이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김창협金昌協(1651-1708 효종2-숙종34)
조선후기 문신. 서화가.
경기도 과천 출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 중화仲和, 호 농암農巖 삼주三洲, 동음거사洞陰居士, 한벽주인寒碧主人,
시호 문간文簡.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안정나씨安定羅氏로 해주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 동생 김창흡·김창업·김창집·김창립 모두가 서화에 능했던 것으로 전한다.
부인은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의 딸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에 출사하였다.
이어서 병조좌랑·사헌부지평·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이조좌랑·함경북도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이조정랑·
집의·동부승지·대사성·병조참지兵曹參知·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명에 의해
송시열宋時烈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교정하였다.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永平(지금의 경기도 포천시)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이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예조참판·홍문관제학·이조참판·대제학·예조판서·
세자우부빈객·지돈녕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김창협은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설을 절충하였다.
“사단四端은 善뿐이고 七情은 선과 악을 겸했으니 사단은 오로지 理만 뜻하고 칠정은 氣를 겸한 것이다.”
라는 이이의 설에 대해 다만 기까지 겸하였다는 한 구절에서 차이를 보인다.
“칠정이 비록 이와 기를 겸했더라도 그 선한 것은 기가 능히 이를 따랐음이요,
그 선하지 않은 것은 기가 능히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니 처음부터 기가 주된 것이다.”
라고 하여 이이의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을 지지하였다.
김창협은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에서도
“기의 맑은 것은 모두 선하지만 선한 情이 모두 맑은 기에서 나왔다 함은 옳지 않으며
정의 악한 것이 탁濁한 기에서 나왔지만 탁한 기가 발發해 된 정이 모두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또한 김창협은
“인심의 動함에 이가 비록 기에 탔어도 기가 또한 이의 명령을 듣는 것이다.
만약, 선악의 정을 모두 기의 청탁에 돌린다면 이의 실체와 性의 선함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악론변性惡論辨>에서 김창협은
“사람의 성은 본래 선한 것이나 순경荀卿이 인성을 악하다고 말한 것은 기요, 성이 아니다.
대체로 사람이 세상에 날 때 기는 質이 되고 이는 성이 되는 것인데 이에는 선만 있고 악이 없으나
기에는 선한 것도 있고 선하지 못한 것도 있으니 사람에게 선하지 못함이 있음은 기의 소위이다.”라고 규정하였다.
김창협의 문장은 단아하고 순수하여 구양수歐陽修의 정수를 얻었으며
김창협의 시는 두보杜甫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고상한 시풍을 이루었다.
특히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써서 <문정공이단상비文貞公李端相碑><감사이만웅비監司李萬雄碑>
<김숭겸표金崇謙表><김명원신도비전액金命元神道碑篆額> 등의 작품을 남겼다.
김창협은 숙부인 김수증이 자신의 별서지를 화가 조세걸에게 그리게 한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의 발문에서
세언호도화世言好圖畫 고왈핍진固曰逼眞 "세상에서 말하길 좋은 그림은 실제의 경치에 가깝고
이기칭호경계而其稱好境界 우필왈여화又必曰如畫 좋은 경계경치는 그림과 같다고 한다."라고 하면서
<곡운구곡도>를 대하는 자는 실경과 그림의 관계인 眞과 畵의 문제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김창업의 이러한 견해는 당대의 문예론 뿐 아니라 그림에 관한 새로운 예술론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는 <농암집農巖集><주자대전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논어상설論語詳說><오자수언五子粹言>
<이가시선二家詩選> 등이 있고
편저로는 <강도충렬록江都忠烈錄><문곡연보文谷年譜> 등이 있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영암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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