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왕손楊王孫(?-BC133?)
한중漢中 성고城固(지금의 陝西省) 출신으로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전한 중기의 무제 때 인물로 왕손은 字, 이름은 양귀楊貴이며 경조윤 사람이다.
행적 또한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고 <한서漢書> 本傳에 약간의 기록만이 전해진다.
일찍이 황로술黃老術을 익히고 양생법養生法을 닦아 상당한 경지에 올랐으나 귀신은 믿지 않았다.
한漢 나라 시절의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양왕손전楊王孫傳>에는 장례식에 대한 유명한 문장이 있다.
당시 한무제 때 후한 장례의 풍속이 날로 번성해서
당시의 귀족, 대신, 부호들이 너도나도 후장을 하면서 서로 비교하는 풍습이 만연했다고 한다.
양왕손은 이러한 풍조를 매우 싫어했는데 그는 스스로 나장裸葬(장례를 지낼 때 부장품을 넣지 않고 시신만을 묻는 간소한 장례)을 함으로써 그 폐습을 고치려고 했다.
자신의 집안이 부유함에도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하자 자식들에게 나장할 것을 부탁하였다.
“나를 알몸으로 장사지내 자연으로 돌려 보내거라.
그렇게 해서 사람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 하니 너는 나의 뜻을 거역하지 마라.
내가 죽은 후에는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시체를 넣어서 지하 7척 깊이에 판 무덤에 넣도록 해라.
시체를 안치한 후에는 몸을 담았던 천을 벗겨서 나의 신체가 직접 땅에 닿도록 해서 흙으로 덮거라.”
아들은 부친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았지만 부친의 유언을 거역하는 것이라서 마음에 걸렸고
또 부친의 유언을 그대로 따르자니 차마 그럴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서
부친의 친구였던 기후祁侯를 찾아가서 하소연했는데 기후는 양왕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그대의 아들에게 들으니 나장을 원한다지요?
하지만 사람이 죽어서 아무런 의식이 없다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그때까지 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지하에서도 자신의 시체를 욕보이는 것이 아니겠소?
벌거벗은 몸으로 자신의 조상을 뵈러 가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그대의 방법에 찬성할 수 없으니 왕손께서는 자세히 생각해보고 결정하도록 하시오."
양왕손은 그 편지에 답했다.
"장례는 원래 자신의 친족이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만든 것이라 들었소.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장례식의 규정과 한도를 초월하고 있으니
이 때문에 나장을 통해서 세속적인 풍속을 고쳐 보겠다는 것이오.
게다가 후장은 죽은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은데도 속된 자들은 서로 비교해 가면서 재물을 낭비하고 있소.
어떤 자는 오늘 매장했다가 내일 다시 파내기도 하는데 그 행위가 황야에 시체를 내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하물며 죽음 자체는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변화로서 사물의 최종적인 안식처이니
반드시 '돌아갈(歸)' 곳을 제대로 찾아야 하고 '변화(化)" 할 때 변화해야 하지 않겠소.
천하의 만물이 각자의 본질로 회귀함으로써 흔적도 소리도 남기지 않는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에 맞는 것이오.
화려한 장식으로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많은 재물을 함께 묻어서
시체를 흙과 분리시키는 것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을 저해하는 것이오.
즉 '돌아갈' 곳에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변화해야 할 때 제대로 '변화'하지 못하게 한단 말이오.
비단과 천으로 사람의 시체를 둘둘 말고 관으로 시체와 흙을 격리시키고
입에는 옥돌을 물린다면 변화하려고 해도 변할 수가 없소.
과거 요임금 때는 단지 나무로 곽을 만들고 등나무 줄기 같은 것으로 끈을 삼아서 묶었으며
그 다음 아래로는 샘물이 솟아나지 않을 정도로 하고 위로는 시체 썩는 냄새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묻었소.
이 때문에 죽은 후에는 장례 지내기가 쉬웠죠.
장례를 지내는데 쓸데없이 공만 들이고 아무런 이치도 없이 돈을 마구 써서는 안 되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많은 재산을 들여서 장례식 치르는데
그것은 고인이 가야 할 곳을 막는 것으로서 결국 격리시키는 것이오.
그 결과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피해를 당한 꼴이 되며
산 사람에겐 결국 돈 쓰고 헛된 일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으로서 이야말로 이중으로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그런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소."
양왕손이 글을 보고 난 뒤 후장의 무익함을 조목조목 따져 <논나장서論裸葬書>를 지었는데 기후도 이를 읽고 감탄하였다.
마침내 그 자식들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나장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중국 철학사상 처음으로 무귀신론을 주장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반고는 이 일에 대해서 "양왕손의 뜻은 진시황보다 훨씬 훌륭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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