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 唱】
조동하유출세불출세曹洞下有出世不出世
조동 문하에서는 세간에 나왔니(方行) 나오지 않았니(把住) 하는 말이 있으며
유수수불수수有垂手不垂手
방편으로 지도를 해준 것이니(方行) 아니니(把住) 하는 말이 있다.
약불출세若不出世 목시운소目視雲霄 세간에 나오지 않으면 하늘을 우러르지만
약출세若出世 편회두토면便灰頭土面 세간에 나오면 머리에 더러운 재 묻고 흙 묻는 꼴이다.
목시운소目視雲霄 눈으로 구름 낀 하늘을 보는 것은
즉시만인봉두即是萬仞峰頭 곧 만 길 절벽의 봉우리에 서 있는 것이며
회두토면灰頭土面 머리에 재가 묻고 얼굴에 흙이 묻는 것은
즉시수수변사即是垂手邊事 이러쿵저러쿵 지도를 한 꼴이다.
유시회두토면有時灰頭土面 어느 때는 머리에 재 묻고 얼굴에 흙 묻은 채로
즉재만인봉두即在萬仞峰頭 만 길 봉우리에 서기도 하고
유시만인봉두有時萬仞峰頭 어느 때는 만 길 봉우리에 선 것이
즉시회두토면即是灰頭土面 곧 머리에 재가 묻고 얼굴에 흙이 묻는 꼴이다.
기실입전수수其實入鄽垂手 그러나 실은 저자에 들어가 방편을 부린 것이나
여고봉독립일반與孤峰獨立一般 높은 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귀원료성여차별지무이歸源了性與差別智無異
본원으로 돌아가 성품을 깨친 것과 세간의 지혜[差別智]는 차이가 없으니
절기작량궐회切忌作兩橛會
이를 서로 다르다(본질과 현상)고 알아서는 안 된다.
►差別智 모든 존재의 낱낱 특성을 모두 알 수 있는 직관력
소이도所以道 수수환동만인애垂手還同萬仞崖
그러므로 “손을 드리우면 그대로 만 길 벼랑과 같다”고 하였다.
직시무니주박처直是無你湊泊處 이는 곧 발붙일 곳이 없는 것이다.
정편하필재안배正偏何必在安排
(설두 송에서)“굳이 정위이니 편위이니 따질 것이 있겠는가?”라 한 것은
약도용시若到用時 자연여차自然如此
작용할 때 저절로 이와 같이 되는 것이지
부재안배야不在安排也
이리저리 따져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차송동산답처此頌洞山答處 이는 동산스님의 대답을 노래한 것이다.
후면도後面道 뒤이어 말한 송의 3句에서
류리고전조명월琉璃古殿照明月 “옛 유리 궁전에 비치는 밝은 달이여!
인준한로공상계忍俊韓獹空上階 우습게도, 영리한 사냥개가 괜스레 섬돌을 오른다.”는 것은
차정송저승축언어주此正頌這僧逐言語走
바로 질문한 스님이 동산의 말에 휘둘리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동하유차석녀洞下有此石女 조동종에서는 “애 못 낳는 여자[石女]·
목마무저람木馬無底籃 나무로 만든 말[木馬]·밑 빠진 바구니[無底籃]
야명주夜明珠 사사등십팔반死蛇等十八般
·야명주(夜明珠)·죽은 뱀[死蛇] 따위의 18가지의 얘기가 있다.
대강지명정위大綱只明正位 이는 대부분 정위正位(본성)를 밝힌 것이다.
여월조류리고전如月照琉璃古殿 사유원영似有圓影
옛 유리 궁전에 비치는 달은 둥그런 그림자가 있는 듯하다.
동산답도洞山答道 하불향무한서처거何不向無寒暑處去
동산스님은 “왜 추위나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고 대답했는데
기승일사한로축괴其僧一似韓盧逐塊
이는 그 스님이 마치 사냥개가 흙덩이를 좇아가는 것처럼
련망상계連忙上階 착기월영상사捉其月影相似
연거푸 섬돌을 오르락 거리며 달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우문又問 여하시무한서처如何是無寒暑處
또다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은 어디냐?”고 묻자
산운山云 한시한살사리寒時寒殺闍黎 열시열살사리熱時熱殺闍黎
“추울 때는 스님을 춥게 하고 더울 때는 스님을 덥게 한다.”고 말하였다.
여한로축괴주도계상如韓獹逐塊走到階上
이는 사냥개가 흙덩이를 좇아간 것처럼 섬돌 위로 달려가 보았으나
우각불견월영又卻不見月影
달그림자를 보지 못한 것과 같다.
한로韓獹 내출乃出 전국책戰國策 운云
사냥개[韓獹]는 <전국책戰國策>에서 나온 이야기로써 거기에 이르기를
한씨지로韓氏之獹 준구야駿狗也 중산지토中山之兔 교토야狡兔也
“한씨韓氏의 개는 날쌔고 중산中山의 토끼는 교활하였다.
시기로是其獹 방능심기토方能尋其兔
한씨의 개만이 그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설두인이유저승야雪竇引以喻這僧也 지여제인只如諸人
설두스님은 이를 인용하여 그 스님을 개에 비유한 것이다.
환식동산위인처마還識洞山為人處麼
그렇다 치고 여러분은 동산스님이 사람을 제접한 속뜻을 아는가?
량구良久 운云 (원오스님은) 말없이 한참 동안 있다가 말하였다.
토심토자討甚兔子 “토끼는 찾아서 뭐하려고?”
►출세出世 수수垂手(손을 드리움) 세상에 나와 중생교화를 하는 것.
►불출세不出世 불수수不垂手.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
►운소雲霄 구름 낀 하늘. 높은 地位를 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위고천謂高天 이르자면 고천高天임.
►회두토면灰頭土面=타니대수與拖泥帶水=화광동진和光同塵.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얼굴에 흙을 칠한다는 뜻으로
俗人과 같이 어울려 그 처지에서 말하며 같
이 고뇌를 나누어야 한다는 중생 교화를 위한 거리낌 없는 노력의 의미.
선림 중에서 가차假借(藉)하여 수행자가 오도한 후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군중 속으로 투신하여 진세의 오탁을 돌아보지 않음을 달게 원함을 형용.
►귀원료성歸源了性
근본지야根本智也 즉문수경계卽文殊境界
근본지니 곧 문수경계/벽암록불이초碧巖錄不二鈔
►차별지差別智 분별지分別智. 다양한 현상을 식별하는 지혜
차별지즉보현경계差別智卽普賢境界 차별지는 곧 보현경계며
근본지즉문수경계내귀원료성야根本智卽文殊境界乃歸源了性也
근본지는 곧 문수경계니 곧 귀원료성歸源了性/碧巖錄不二鈔
►십팔반十八般 18種. 여기에서는 ‘여러 가지’
中國에서 들어온 것으로 무예武藝 육기에다
죽장창竹杖槍, 기창旗槍,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 월도月刀,
협도夾刀, 쌍검雙劍,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권법拳法, 편곤鞭棍의
12가지 무예武藝를 더한 것.
조선朝鮮 영조英祖 35(1759)년부터 시행施行되었음.
►련망連忙 아주 바쁘다.
►전국책戰國策
시일부국별체사학저작是一部國別體史學著作
이는 1부部의 국별체國別體의 사학저작史學著作임.
우칭국책又稱國策 또 명칭이 국책이니
기재서주記載西周 동주東周 급진及秦
제齊 초楚 조趙 위魏 한 韓 연燕 송宋 위衛 중산각국지사中山各國之事
서주ㆍ동주 및 진ㆍ제ㆍ초ㆍ조ㆍ위ㆍ한ㆍ연ㆍ송ㆍ위ㆍ中山 각국의 일을 기재했음.
기사년대기어전국초년記事年代起於戰國初年
기사記事의 연대는 전국 초년에서 일어나
지어진멸륙국止於秦滅六國 약유約有 240년적력사年的歷史
진秦이 6국을 멸함에서 그치니 약 240년의 역사가 있음.
분위分爲12策 33卷 공497共篇
12책으로 구분했고 33권이며 공히 497편/百度百科
►지여只如 그건 그렇다 치고
/2014-09-09 05:20:11
●공훈오위송功勛五位頌/동산양개洞山良价
동산양개의 <군신오위송>과 <공훈오위송>은
신앙과 깨달음의 발전적 단계 또는 등급을 나타내는 것으로
<오위군신송>과 <공훈오위송>의 각 계위는 1:1로 대응하는데
아래 그것을 표로 정리한 뒤 <선학의 황금시대 The Golden Age of Zen>
(오경웅吳經熊 1997)에 실린 내용을 첨부했다.
<동산양개洞山良价의 공훈오위송功勛五位頌>
명칭 | 약어 | 각편 대응 |
1 군향신불공君向臣不供 | 向 | 正中偏 ↔ 凡夫位 |
2 신봉군일색臣奉君一色 | 奉 | 偏中正 ↔ 見道位 |
3 군시신공君視臣功 | 功 | 正中來 ↔ 修道位 |
4 신향군공공臣向君共功 | 共功 | 偏中至 ↔ 修道位 |
5 군향신공공君向臣功功 | 功功 | 兼中到 ↔ 究竟位 |
초기 단계인 ‘향向’에서
스승은 자신의 행동이나
지혜를 통해 제자들에게 사랑과 예찬을 심어주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제자들도 그것을 통하여 스스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이상理想에 대하여 찬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산은 이 단계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성주유래법제요聖主由來法帝堯 모든 임금들은 요堯 임금을 본받고
어인이례곡용요御人以禮曲龍腰 백성을 공경과 예의로 다스리는데
유시료시두변과有時閙市頭邊過 시간 나서 시장과 길거리 지날 때마다
도처문명하성조到處文明賀聖朝 어디서나 선정善政을 치하 받는다.
이것은 정치 무대에서라면 최고의 단계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 계층에서는 다만 시작이고 초보적인 매력에 지나지 않는다.
‘봉奉’의 단계에서는
제자들이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전심전력으로 참선할 것이 요구된다.
따라서 첫째 단계의 열정은 이 단계에 이르러 지속적인 불(火)로 변해야만 한다.
동산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세정농장위아수洗淨濃妝爲阿誰 누구 위해 화려한 옷 벗어 던졌나
자규성리권인귀子規聲裏勸人歸 소쩍새 소리 귀가歸家를 재촉하는데
백화락진제무진百花落盡啼無盡 꽃들이 다 진 뒤에도 끊이지 않고
갱향난봉심처제更向亂峯深處啼 깊은 산으로 들어갈수록 울음 더욱 짙어라
이 시구詩句는 약간의 보충 설명을 요한다.
첫째 줄에서 볼 때 학인은 이미 생존의, 즉 영원한 삶의 필생의 사업을 착수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모든 화려한 의상들을 제거하였다.
대관절 누구 때문에 그는 이런 행동을 감행하였는가?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이 둘째 줄에 보인다.
즉 그가 그렇게 하였던 이유는 스승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떤 신비한 소리가 ‘집’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계속 재촉하였기 때문이다.
그 신비한 소리는 여기서 소쩍새 소리로 상징되고 있다.
소쩍새는 한자로 자규子規라고 하는데 중국의 민간설화에 의하면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자귀子歸(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뜻)의 발음과 같게 들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리는 집을 떠나온 사람이 들으면 향수鄕愁에 잠기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이 소리는 누구의 것일까?
그것은 형님의 음성일 수도 있고 누이동생∙애인∙친구, 나아가서 부모님의 음성일 수도 있다.
어떻든 그것은 쓸데없는 방황일랑 걷어치우고
어서 돌아오라고 권유하는 사심 없는 매우 가까운 사람의 음성인 것이다.
그것은 명령조로 말하는 근엄한 목소리가 아니고
한여름에 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도 같은 온화한 음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드러워서 더욱더 호소력이 있는 음성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도대체 누구의 음성일까?
하지만 이 단계에서 제자의 관심은 누구의 음성이냐에 있기보다는 음성 자체에 있다.
그는 여전히 ‘신앙의 단계(信位)’에 있고 아직 ‘인격의 단계(人位)’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때에 음성은 곧 집으로 돌아오라는 부름이다.
그런데 승려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출가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소쩍새는 그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우는 것일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돌아갈 집이 대관절 그들에게 어디에 있느냐 말이다.
‘집’은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다.
마음의 수습은 내심생활內心生活의 시작이다.
마지막 두 줄에서 경험이 풍부한 스승은 ‘집’이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하는 것은 학인들뿐만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로는 정신 수양을 많이 쌓은 사람들조차도
아직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음으로써 학인은 주저치 않고 도리어 그 ‘집’을 향한 여로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고 좋은 동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위안을 받는다.
다음으로는 셋째 단계로 공功-결실의 단계로 들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휴식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이때 휴식이란 자기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즐거움이란 뜻밖에 얻게 되는 혜택이다.
동산의 다음 게송은 이러한 휴식과 즐거움을 호흡하고 있다.
고목화개겁외춘枯木花開劫外春 고목에 꽃이 피니 오히려 봄이 멀도다.
도기옥상진기린倒騎玉象趁麒麟 기린을 잡으려고 백옥으로 꾸민 코끼리를 거꾸로 타고 가네.
이금고은천봉외而今高隱千峯外 일천의 봉우리 너머 높은 집 짓고자 하나니
월교풍청호일진月皎風淸好日辰 밝은 달 맑은 바람에 좋은 날을 맞았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요한 정경인가!
내가 수식을 해보았자 원문을 더럽힐 뿐이겠고 다만 둘째 줄만 잠시 설명을 하겠다.
여기에 나타난 백옥으로 장식한 코끼리는 활동하며 작용하는 ‘도’를 상징하는 것이며
기린은 궁극적 목표로서의 ‘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제 구도자求道者는 자신에다가 ‘도’를 맞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도’에다가 자신을 맞추는 다시 말해서
‘도’의 지시에 따르는 완전한 ‘수동受動’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이른바 ‘거꾸로 탄다(倒騎)’라고 함은 어린애가 부모에게 완전히 믿고
자신을 맡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수동적 방법의 전형典型이다.
이제 우리는 더욱 원숙한 결실의 단계인 공공共功의 단계에 이르렀다.
앞의 단계에서는 고목에 핀 꽃이 스스로 봄을 만들고 구름 속에서 집을 지었으나
이번 단계에서는 신선한 샘물이 三界에 가득 차 흐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동산의 다음과 같은 게송에 잘 나타나 있다.
중생제불불상침衆生諸佛不相侵 중생과 제불은 서로 다투지 않고
산자고혜수자청山自高兮水自淸 산은 저절로 높고 물 또한 저절로 맑네.
만별천차명저사萬別千差明底事 천차만별은 무엇을 밝히는 것일까
자고제처백화신鷓鴣啼處百花新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만발 새롭네.
이 게송은 시적인 <장자 제물론齊物論>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산은 어디선가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부처님을 넘어서는 사람이 있음을 아는 자만이 나와 대담할 자격이 있다.”
이에 어떤 스님이 동산에게 누가 부처를 넘어서는 사람 초불인超佛人이냐고 묻자 그는
“부처님은 결코 아니다.”라고만 대답한 바 있다.
이러한 초불인의 눈에는 부처와 중생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첫째 줄의 내용이다.
둘째 줄의 중심 용어는 ‘저절로(自)’이다.
산 높고 물 깊은 것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것들의 본질적 성질들에 개입할 아무런 권리도 없으며
또 그것들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거나 그것들 사이에 차별을 둘 하등의 자격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무슨 자격에서 그것들을 주체에서 객체로 삼고 또 임의로 판단하는가?
자신들이 객체화되어 판단되는 것을
스스로도 원하지 않을진댄 남에게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대는 만물을 차별 짓는 성향性向과 습성을 떨쳐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백 가지 꽃을 새로이 피게 하는 자고새(鷓鴣)와도 같은 것이다.
마지막 단계인 다섯째 단계는 공공功功이라고 부른다.
셋째 단계에서는 단독으로 결실을 이루었고
넷째 단계에서는 우리와 삼라만상이 다 함께 결실을 이루었다.
그러나 동산의 정신은 결코 여기서 멈추려 하지 않았다.
아침나절의 종달새와도 같이 그는 하늘 끝 가는 데까지 계속 솟아오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경험을 결코 자신 있게 토로하지는 못한다.
두각재생이불감頭角纔生已不堪 촉각이 움직이는 순간, 이미 견디기 어려운 불행이 있노라
의심구불호수참擬心求佛好羞慚 조금이라도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초초공겁무인식迢迢空劫無人識 가이 없는 공의 흐름 속에서 아무도 아는 이 없나니
긍향남순오십삼肯向南詢五十三 뉘라서 53인의 도인을 찾으러 남쪽으로 갔는가.
완전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理想이냐는 것이 여기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자기도취와 독선은 그 기미가 희미할 때에 미연에 방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앞의 두 줄에 나타난 긴장은 뒤에 두 줄에서 완화된다.
만일 우리가 ‘진아’에 관해 명백하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태초 이래 실제로 그를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로써 위안을 삼을 수 있다.
그렇지도 않다면 그는 아마도 인간들에게 결코 대상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그는 인간의 ‘알아야 할(to know)’ 바의 것이 아니고 인간의 ‘알아야 할(to be)’ 바의 것이다.
동산이 이런 게송을 그의 정신 수양의 정점으로 지었다는 바로 그 사실은
‘모르는 것이 가장 가까운 친교이다(不知最親切)’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나한계침羅漢桂琛과 마음이 같았음을 보여준다.
/오경웅吳經熊의 <선학의 황금시대 The Golden Age of Zen>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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