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山詩 128
장부막수곤丈夫莫守困 대장부大丈夫여, 곤궁困窮을 고집하지 말고
무전수경기無錢須經紀 돈이 없어도 모름지기 큰 뜻을 갖게.
양득일자우養得一牸牛 암소 한 마리만 길러도
생득오독자生得五犢子 송아지 다섯 마리는 얻을 것이고
독자우생아犢子又生兒 송아지가 또 새끼를 낳으면
적수무궁이積數無窮已 그 수가 자꾸 늘어 끝이 없으리라.
기어도주공寄語陶朱公 도주공陶朱公 범려范蠡에게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부여군상사富與君相似 내 넉넉한 재산도 그대의 부富와 비슷하다네.
장부여, 곤궁함을 고집하지 말고
돈 없어도 반드시 큰 뜻을 갖게
암소 한 마리만 길러도
새끼 다섯 마리는 얻을 것이고
새끼가 다시 새끼를 낳다 보면
그 수가 자꾸 늘어 끝이 없으리
도주공 그대에게도 한마디 함세
내 재산도 그대 것 못지않다네.
장부여, 계속 빈천하게 살지 말고
돈 없으면 경영하여 이익을 도모해야 하네.
암소 한 마리 기르면
송아지 다섯 마리를 나겠지.
송아지가 또 새끼를 낳으면
그 수가 불어 끝이 없으리.
도주공陶朱公에게 말을 전하노니
부富가 그대와 비슷하구려.
►수곤守困 빈천貧賤을 고수하다.
►경기經紀 기紀’ 벼리. 계획을 세우다.
경영하여 이익을 도모함. 어떤 포부를 갖고 일을 계획하고 처리함. ‘
►자우牸牛 암소. 어미 소.
►독자犢子 송아지.
►기어寄語 말을 기별奇別(소식을 전하여 알려줌)하여 보냄.
►도주공陶朱公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 범려范蠡(BC536-BC448)를 말한다. 부자를 가리킴.
자는 소백少伯이고 치이자피鴟夷子皮 혹은 도주공陶朱公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생졸 연도는 불확실하다.
<공총자孔叢子 진사의陳士義>에 도주공陶朱公이 나온다.
범려는 오나라를 치고 도陶라는 지방에 살면서
스스로 도주공이라 칭하였는데 수만의 재산을 가진 큰 부자였다.
의돈猗頓은 노魯나라의 가난한 선비였다.
농사를 지어도 늘 배고프고 뽕나무를 길러도 늘 헐벗었다.
도주공이 부자라는 말을 듣고 찾아가 부자가 되는 법을 물었더니
‘그대가 빨리 부자가 되고 싶거든 모름지기 암소 다섯 마리를 기르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곧 서하西河로 가서 의猗씨 마을 남쪽에서 소와 양을 많이 길렀다.
10년 후에는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천하의 부자를 말할 땐 도주陶朱, 의돈猗頓이라 일컫는다.
이 시도 이 고사에서 유래한다.
범려范蠡는 역사상 이른 시기의 유명한 정치가이며 군사 전략가이고 경제학자였다.
출신이 빈한했으나 총명하여 청년기에 이미 위로는 천문에서
아래로는 지리에 이르기까지 배움을 꿰뚫었고 문무겸비의 경륜을 갖췄다.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도와 오왕吳王을 격파하고
패업을 달성하게 한 후에는 이름과 성을 숨기고 다른 나라로 가버렸다.
월나라를 떠나 있던 범려는 월나라에서 함께 일한 대부 문종文種에게 서신을 보냈다.
고조이산高鳥已散 량궁장장良弓將藏 하늘을 날던 새를 잡고 나면 활은 거둬 감춰지고
교토이진狡兔已盡 량견취팽良犬就烹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하던 개는 삶아져 먹히게됩니다.
부월왕위인夫越王為人 장경조훼長頸鳥喙 응시랑보鷹視狼步
월왕은 목이 길고 입이 새의 부리를 닮았으며 매처럼 보고 이리처럼 걷습니다.
가여공환난이불가공처악可與共患難而不可共處樂
그런 사람과는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자약불거子若不去 장해어자將害於子
그대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장차 그대를 해하게 될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문종은 범려가 서신에 적은 대로 따르지 않았고
그는 결국 월왕의 의심을 사 목숨을 잃었다.
문종과 달리 세상 사는 이치에 밝았던 범려는 패업을 이룬 뒤에
권력의 주변에서 시비가 많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월나라를 떠났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바다로 나아가 제齊나라 땅에 도착한 범려는
그곳에서 경영과 농업과 상업으로 그때마다 큰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금전金錢’이라는 두 글자를 담백하게 여길 줄 아는 인물이었던 그는
세 차례 모두 일군 재산을 가난한 친구들과 소원한 친척들에게 나눠주었다.
최후로 큰 재산을 모은 범려는 도읍陶邑이란 곳에 거처를 정하고
스스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칭하며 살았다.
그가 큰 부를 이뤘을 때 노魯나라 사람 의돈猗頓이 그를 찾아와
부자가 되는 방법을 묻자 범려가
‘암소 다섯 마리를 기르라’고 알려주었고
이 말을 듣고 따른 의돈은 십 년 뒤에 큰 부자가 되었다.
이후로 사람들이 천하의 부자를 말할 때 도주陶朱 또는 의돈猗頓이라고 했다.
또 하나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이름을 바꿀 때
자기가 월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것을 생각해서 성을 ‘도陶(逃)’라 했고
높은 관직에 있을 때 항상 붉은 옷을 입었던 것을 생각해서 이름을 ‘주朱’라고 했으며
벼슬이 공작에 이르렀으므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억지스럽게 꾸며진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후대의 상인들이 범려의 상을 세우고 그의 공덕을 기리며 재신財神으로 받들어 모셨다.
한산의 시는 이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들돌
왜 자신은 入山하기 전에 도주공, 의돈처럼 하지 않았을까?
궁벽한 살림이지만 되던 안 되던
암수 염소 2마리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았을까?
이것이 검은 먹물이 골수에 박힌 소위 지식인의 한계였다.
출세하여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으쓱거리는 것이
가문을 빛낸다는 유가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이 문제였다.
유가의 교육은 계급사회의 정착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임금을 내세우고 자신은 그를 보위하여 生을 영위하는 것이다.
세상 그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고
하나를 고집하면 그 병폐는 깊게 된다.
한산 자신은 세상 것을 버림으로
‘내 재산도 그대 것 못지않다’고 하지만
해탈하지 못하면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는 자기기만이다.
아는가?
세상살이가 業의 굴레를 벗기 위한 旅程이라면
6道를 윤회하는 佛家의 無始無終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기독교 ‘神의 뜻’은 납득되지 않는다.
신은 無所不在 全知全能이라 한다.
無所不在 과거현재미래 어느 곳이든 존재하여
全知全能 모두 알고 못할 게 없는 신께서
도자기 만들 듯이 인간을 만들었다.
왜?
無所不在 全知全能의 신이
뭐하려고?
平地風波에
인간이 몸부림친다.
소멸되지 않는 영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