陶淵明詩에 나타난 自適의 意味
/윤수영尹壽榮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Ⅰ. 서언
전원시인 陶淵明, 그의 시는 屈原의 뒤를 이어 그와는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굴원이 死六臣과 유사한 인물형상이면 도연명은 生六臣과 유사한 인물형상이다.
굴원이 불의한 세상에 항거하다 산화해간 시인이라면 도연명은 불의한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듯이 쓸쓸하게 체념하면서 살아갔던 시인이다.
(도연명은 은둔을 택하여 귀거래한 이후에도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갈등과 고뇌를 부단히 겪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궁절固窮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선에서 현실적인 생을
유지시켜나갔던 인물이다.)
그 둘 모두 세상에 대한 한탄을 주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 같이 嘆世詩人이었지만 굴원에 비해 도연명은
상대적으로 완곡하고 온화한 기조를 유지한다고 생각된다.
도연명은 굴원처럼 정면으로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항거하는 길을 걸어가기를 거부하는 대신
난세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냉랭한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하며 자적하는 삶을 살아갔다.
자적은 그의 인생이라는 강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장한張翰은
인생귀득적지人生貴得適志 “人生은 자적하는 뜻을 얻는 것이 (가장) 귀중하다.”¹라고 말했는데
이는 도연명에 있어서 그대로 적용되는 그의 전 생애에 일관되는 주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 <晉書 卷92, <문원전文苑傳・장한전張翰傳>
한인견추풍기翰因見秋風起 장한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내사오중고채乃思吳中菰菜 순갱蓴羹 로어회鱸魚膾 문득 고향 吳의 줄나물・순채국・농어회가 생각이 났다.
왈曰 인생귀득적지人生貴得適志 그 생각이 간절해지자 ‘인생에서 가장 귀히 여겨야할 것이 자적하는 삶이다.
하능기환수천리이요명작호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乎
어찌 고향을 떠나 수 천리 타향에서 관직에 묶여 명리와 작위만을 바라고 살아갈 것인가?’라고 하고는
수명가이귀遂命駕而歸 마침내 수레를 준비하라고 일러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다.
소미교일小尾郊一은 <中國의 隱遁思想>가운데서
“도연명은 최초의 전원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가 자연계에 있는
정경 가운데에 진리가 담겨져 있다고 선언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老莊思想에 근거하는 진리이며 모든 자연 가운데에 진리가 담겨져 있다고
선언하였다는 것은 극히 주목할만한 점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표현상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후 중국인의 자연관에 있어서
하나의 전통을 이루면서 전해 내려가게 된다.”²라고 말했다.
►2) 小尾郊一著, 拙譯, <中國의 隱遁思想>(春川: 江原大學校出版部, 2008), 15쪽.
도연명은 자연 속에 담겨져 있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 자연이 허여하는 진리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을 자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비록 물질의 궁핍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무진장한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본고에서 필자는 도연명시를 중심으로 그 가운데 나타난 자적의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대체로 도전과 도피 가운데서 살아가게 된다.
도전은 먹이를 구하는 작업이고, 도피는 생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다.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는 생명체의 한계와 그러면서도 생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또 하나의 생명체의 한계 사이에서 모든 생명체는 갈등하면서 생명을 유지해나간다.
도연명시도 이와 같은 갈등과 유지를 전제로 구성되고 있다.
그에게 있어 도전은 관료사회로의 진출이다.
위험하되 부귀가 허여된다(물론 이는 현실적(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반대급부이고 이념적으로는
‘겸선천하兼善天下’ 곧 ‘治國平天下’의 꿈을 이룰 수 있는 場이 펼쳐지게 된다).
그에게 있어 도피는 관료사회로부터의 도피 곧 은둔이다.
안전하되 빈천이 뒤따른다.
이 양자 사이에서의 회의와 갈등이 도연명시 전반에 흐르고 있다.
도연명은 이를 자적의 추구로 해결하고자 했고 결국 그는 도전보다 도피를 선택했다고 생각된다.
도연명시에 나타난 자적은 그 자체로서 은둔의 목적일 수 있고 그 결과로 얻은 수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은둔자적隱遁自適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무리 없이 들리는 이유가 된다.
자적은 쉽게 말하면 마음의 平和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지고한 경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이어서 도연명은 은둔을 실천함으로서 자적을 추구하고자 했다.
Ⅱ. 자적에 대하여
국어사전은 ‘자적’에 대하여
‘무엇에 구속됨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마음껏 즐김.’³
‘무엇에 속박됨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즐김.’⁴
‘마음 내키는 대로 유유히 생활함’⁵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3) 신기철・신용철 편저 <새우리말 큰사전>(서울: 삼성이데아, 1989), 2,800쪽.
►4) <금성판 國語辭典>(서울: 금성교과서, 1994), 1,146쪽
►5) <東亞漢韓大辭典>(서울: 동아출판사, 1989), 1,491쪽
여기서 구속이나 속박으로부터의 탈피가 자적의 전제가 되며
마음 내키는 대로의 주체가 바로 自我라는 것이 전제가 된다.
<中文大辭典>은 자적에 대하여
“위유연한적이자득기락야謂悠然閒寂而自得其樂也
유연히 한적하게 지내며, 그 즐거움을 스스로 얻음을 말한다.”⁶라고 풀이한다.
►6)<中文大辭典>(臺北: 中華學術院, 1976), 1,191쪽
유연은 멀고 아득하다는 초현실적 의미이고 한적은 한가롭고 적막하다는 의미이다.
自得其樂은 그 즐거움을 얻는 주체가 자아임을 전제로 한다.
요컨대 자적은 분망한 현실세계 특히 관료세계에서 추구하기 어렵다는 의미를 그 이면에 담아두고 있다.
자적은 老莊思想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莊子>는 ‘자적의 해설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적의 경지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齊物論>편에 보이는
차오상시문호여且吾嘗試問乎女 내가 당신에게 묻겠소.
민습침즉요질편사民濕寢則腰疾偏死 추연호재鰍然乎哉
사람이 습하게 자면 허리 병이 나서 한쪽이 못쓰게 되는데 미꾸라지도 그러한가?
목처즉췌률순구木處則惴慄恂懼 원후연호재猿猴然乎哉
사람은 높은 나무에 올라가면 떨리고 두려워 정신이 없게 되는데 원숭이도 그러한가?
삼자숙지정처三者孰知正處 이 셋(사람·미꾸라지·원숭이) 중에 누가 바른 처소를 안다고 생각하시오?
민식추환民食芻豢 사람들은 기른 짐승을 먹고
미록식천麋鹿食薦 사슴과 고라니는 풀을 먹으며
즉저감대蝍蛆甘帶 지네는 새끼 뱀을 달다고 하고
치아기서鴟鴉嗜鼠 독수리와 까마귀는 쥐를 좋아 하는데
사자숙지정미四者孰知正味 이 넷 중에 누가 참 맛을 아는 것이냐?
원편저이위자猿猵狙以爲雌 원숭이는 편저猵狙로 짝을 삼고
미여록교麋與鹿交 순록은 사슴과 교미하며
추여어유鰍與魚游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함께 헤엄친다.
모장여희毛嬙麗姬 인지소미야人之所美也 모장毛嬙과 여희麗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들이지만
어견지심입魚見之深入 물고기가 보고는 깊이 숨어들고
조견지고비鳥見之高飛 새가 보고는 높이 날아오르며
미록견지결취麋鹿見之決驟 순록과 사슴이 보고는 급히 달아난다.
사자숙지천하지정색재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넷 가운데 어느 것이 천하의 올바른 미모를 아는가?”⁷
라는 기록은 자적이 각 개체별로 다른 것임을 설명한다.
자적에는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없으며 각 개체별 자아판단에 의해 자적여부가 결정된다.
►7) 莊子 著, 金昌煥 譯 <莊子>(서울: 을유문화사, 2010), 102-104쪽.
촌상가실村上嘉實은 난세와 노장사상과의 관계 그리고 노장적 자유 및
자적의 형성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노장사상은 원래 난세의 철학으로 태어났다.
사람은 난세에 처하여 강렬하게 자신을 내세우면 곧 생명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때 하나의 혈로를 뚫는 방법으로서 먼저 대상 및 환경에 수순隨順하는 태도가 취해진다.
그런데 이 수순의 가운데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자유의 경지가 발견되었다.
인간이 커다란 상해傷害에 갑자기 부딪치게 되었을 때 스스로를 虛하게 함으로서
그 대상에 패배하게 되면 오히려 거대한 힘이 부여된다.
이 수순에 의하여 참된 자유가 생겨남을 알았던 것이 노장사상의 맹아萌芽이다.
그런데 수순에 중점을 두었을 때는 노자의 자연으로 되고 자유에 중점을 두었을 때는 장자의 자적으로 된다.
그러므로 장자의 자적도 노자의 자연 없이는 태어날 수 없었다.”⁸
►8) 村上嘉實 <六朝思想史硏究>(京都: 平樂寺書店, 1976), 347쪽.
인생에서 자적처럼 소중한 것이 있을 수 없다.
마음의 평온 곧 자적이 사라지면 모든 행복의 요건들도 빛이 바래게 된다.
가난하되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부유하되 마음 불편하게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인생의 궁극적인 행복은 마음 편하게 사는 것, 곧 자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삶의 의미가 송두리째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村上嘉實은 같은 책에서 自適主義라는 용어를 언급하면서
“자적주의는 六朝에 있어서 특히 東晋 중기에 나타나게 된 정신이며 정서를 숭상하고 산수자연을
애호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개성을 존중하고 진솔을 즐거워하며 기지를 사랑하고 청담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대규戴逵의 간유찬間遊贊은 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 간유間遊는
노장적인 自由를 의미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⁹라고 말했다.
►9) 村上嘉實, 같은 책, 349쪽
이 자적주의는 육조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것이 하나의 이즘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 정도로
육조는 자적의 경지를 갈망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도연명시에 있어서도 강렬하게 추구되고 있다.
그는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시대의 역경에 철저히 수순했고 그 수순을 통하여 자유와 자적을 추구、터득했다.
또한 자적에는 자적의 주체가 품는 애락의 정서가 강렬한 색채로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逸話가 있다.
“자유子猷 왕휘지王徽之가 山陰에 살고 있었는데 큰 눈이 오는 밤에 잠에서 깨어 房門을 열고 술잔을 기울였다.
四方을 바라보니 교교皎皎하여 서성거리다가 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는데 갑자기 대안도戴安道가 생각났다.
當時에 戴安道는 섬계剡溪에 살고 있어 卽時 가벼운 배를 타고 戴安道를 찾아 나섰다.
밤을 새워 겨우 到達하였는데 門에 이르러서는 들어가지 않고 바로 돌아섰다.
누가 그 까닭을 묻자 왕자유王子猷가 對答하기를
“내가 本來興에 겨워 왔다가 興이 사라져 돌아가는 것이니 어찌 꼭 戴安道를 만나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¹⁰
►10) 김육 저, 허성도・김창환・강성위 역<유원총보역주>(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9), 91쪽.
여기서 말하는 興이야말로 자적의 경지를 설명함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요체가 된다.
순간적인 흥은 난세문인의 급시행락及時行樂의 정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Ⅲ. 우정 속의 자적
도연명은 전쟁과 기근으로 점철되는 난세 속을 살아갔다.
그는 난세현실을 응시하면서 이를 슬퍼하고 고뇌하는 심경을 고백한 시구들이 보이는데
도상향천재道喪向千載 도가 사라진지 천년이 다 되어간다.¹¹
공시시운경空視時運傾 시운의 기울어져 감을 하릴없이 바라보고만 있다.¹²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11) <시주속지조기사경이삼랑示周續之祖企謝景夷三郞>詩
►12) <九日閑居>詩
도연명은 이와 같은 각박하고 삭막한 난세현실 속에서도 더욱 사람다운 사람들을 그리워했으며
그는 심지어 사람이 그리워 이사하기까지 했다.
우정에 대하여 <수신고훈修身古訓>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냉난무정冷煖無定 추위와 더위는 정해진 바가 없는 것이다.
취난물기금의驟煖勿棄錦衣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다고 해서 비단옷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귀천무상貴賤無常 귀천은 무상한 것이다.
취귀물연고우驟貴勿捐故友 갑자기 고귀해졌다고 해서 옛 친구를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형원소어荊園小語>¹³
►13)(談文灴 編<修身古訓>(臺北: 臺灣中華書局, 1980), 71쪽에서 재인용)
고귀한 우정은 빈천과 무관하게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 우정을 도연명은 간절히 염원했고 그 우정 속에서 자적을 추구했다.
이제 도연명이 추구한 그런 우정에 대하여 먼저 방참군龐參軍과의 우정을 노래한 사언시 <答龐參軍>
제2수와 같은 제목의 오언시 <答龐參軍> 그리고 곤궁의 극한상황 속에서 걸식하러 갔던 도연명과 주인 사이의
우정을 노래한 <乞食> 등의 작품들을 예로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答龐參軍> 第2首
인지소보人之所寶 상혹미진尙或未珍 세상 사람들이 보배라 여기는 것을, 나는 그래도 별로 진기히 여기지 않는다.
불유동호不有同好 운호이친云胡以親 만약 서로 좋아하는 바가 없다면, 무엇으로 친밀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아구양우我求良友 실구회인實覯懷人 나 좋은 벗 찾았는데 정말로 생각던 이 많다네.
환심공흡歡心孔洽 동우유린棟宇惟隣 기쁜 마음 끝없는데 그 집은 바로 이웃이라네.¹⁴
►14) 孟二冬 <陶淵明集譯注>(長春: 吉林文史出版社, 1996), 21쪽.
明의 황문환黃文煥은 <도시석의陶詩釋義> 卷一에서 四言詩<答龐參軍> 6首를 두고
“이 여섯 장의 시는 기상이 우렁차다. <詩經>을 가장 닮아있다.”¹⁵라고 극찬했다.
►15) 육장기상성향六章氣象聲響 최초最肖 <三百篇>(<陶淵明資料彙編>
(北京: 中華書局, 2004, 1.) 下冊, 19쪽에서 재인용)
또 淸의 장훈蔣薰은 <평도연명시집評陶淵明詩集> 卷一에서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하여
상견한만相見恨晩 서로 만남이 너무 늦었음을 한탄한다.
상별한원相別恨遠 서로 이별함이 너무 먼 것을 한탄한다.
권련의의眷戀依依 정일호사情溢乎辭 그리움이 간절하고, 그리운 정이 글 가운데 넘쳐흐른다.
시<장사공시>視<長沙公詩> <長沙公詩>를 읽어보면
진천연의眞天淵矣 참으로 天淵함을 알 수 있다.¹⁶라고 말했고
►16)(<陶淵明資料彙編> 20쪽에서 재인용)
그 문체에 대해서는
사직의완詞直意婉 사詞는 곧되 意는 완곡하니
이기출호자연야以其出乎自然也 그것이 자연스러움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두보운<도사부지오>杜甫云<陶謝不枝梧> 종차간래從此看來
杜甫가 말한 <도사부지오陶謝不枝梧(陶淵明과 謝靈運의 詩는 가히 대항하기 어렵다)>
라는 말의 의미를 이로부터 알 수 있다.”¹⁷라고 말했다.
►17)(上同)
또 근등원수近藤元粹는 <평정도연명집評訂陶淵明集> 卷一에서
거연득居然得 안지락顔之樂 居然히(온전히 혹은 평온하게) 孔子나 顔回의 즐거움을 얻고 있다.
시연명지소이초절어후세사인是淵明之所以超絶於後世詞人
이것이 陶淵明이 후세 詞人들보다 아득히 빼어난 이유이다.¹⁸라고 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孔子와 顔回 사이의 깊은 情誼에 비교하기도 했다.
►18)(<陶淵明資料彙編> 21쪽에서 再引用)
이 작품 속에서 도연명은 방참군을 ‘同好’ 혹은 ‘懷人’이라 부르고 있다.
뜻이 같은 사람, 마음속으로 찾아 헤매던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고달픈 人生行路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우정이다.
그 어떤 시대상황 속에서도 사람에게는 역시 나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고 귀한 법이며
그때 느끼는 감정이 우정이다.
<左傳>에
인심지부동人心之不同 여기면언如其面焉
인심이 서로 다른 것은, 마치 그 얼굴이 서로 다름과 같다.”¹⁹라는 기록이 보인다.
►19) <左傳・襄公 31年>
사파육랑斯波六郞은 이를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얼굴이 서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²⁰라고 해석했다.
►20) 斯波六郞著, 拙譯 <中國文學속의 孤獨感>(서울: 東文選, 1992), 12-13쪽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 서로 다르므로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세상에서 그 차별성이 강조될 때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도연명은 진심으로 방참군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그는 방참군에 대하여 “서로 만나면 크게 기뻐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고
그래서 “집을 이웃하여 살아가게 된 기쁨이 있다.”고 했다.
도연명은 같은 시 제3수에서도 방참군을 두고 마찬가지로 ‘懷人’이라고 부르며
‘부지런히 덕업 쌓기를 즐거워하는(欣德孜孜)’ 인물이라고 묘사함으로서
그의 방참군에 대한 깊고 두터운 우정을 드러내었다.
그는 방참군과 더불어 술을 마셨고 시를 지었으며 진실한 말을 토로했고
하루라도 못 만나면 그리워지는 우정을 지녔다.
이는 도연명이 난세 속에서 참다운 인간의 정을 얼마나 갈망했고 그 가운데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즐거움을 추구하고 나아가 이를 통하여 자적의 경지를 추구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준다.
오언시 <답방참군>의 서문 가운데에는 도연명이 방참군에 대하여
삼복래황三復來貺 욕파불능欲罷不能 거듭 그대가 보내온 시를 읽어도, 읽기를 그만 둘 수가 없다.
자이린곡自爾隣曲 동춘재교冬春再交 이웃이 된 이래로 다시 겨울과 봄이 오게 되었고
관연양대款然良對 홀성구유忽成舊游 진지하고 즐거운 대화는 우리를 홀연히 좋은 친구로 만들어주었다.
속언운俗言云 속담에 말하기를
수면성친구數面成親舊 ‘몇 번 만나는 동안에 오래 사귄 친구처럼 되었다’고 했는데
황정과차자호況情過此者乎 하물며 우리의 우정은 또한 이보다 훨씬 더 깊고 돈후한 것이 아니었던가?”²¹
라고 하면서 그의 간절한 정을 표현한 기록이 보인다.
►21)(孟二冬, 같은 책, 77쪽.)
그는 오언시 중의 시구들 속에도
담해무속조談諧無俗調 그들 사이의 즐거운 대화에 속된 흐름이 없었으며
소설성인편所說聖人篇 그 내용이 모두 성인의 유편遺篇 같은 고매한 것이었다.”라고 했으며
혹유수두주或有數斗酒 어쩌다 몇 말의 술이라도 생긴다면
한음자환연閑飮自歡然 한가로이 마시면서 스스로 즐겁게 지냈다. 라고도 했다.
이와 같은 시구들로부터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매우 깊은 것이었음을 가히 짐작하게 된다.
이제 다시 <乞食>시를 살펴본다.
기래구아거飢來驅我去 굶주림이 나를 마구 내몰고 있었지만
부지경하지不知竟何之 막상 어디로 가야만 할지 나는 몰랐다
행행지사리行行至斯里 가고 또 가다가 마침내 이 마을까지 이르게 되어
고문졸언사叩門拙言辭 막상 대문을 두드리긴 했지만 말은 어눌하기 그지없었다.
주인해여의主人解余意 주인은 내가 왜 찾아오게 되었는지 금새 알아차려서
유증기허래遺贈豈虛來 필요한 것 주었으니 어찌 헛걸음질 친 것이랴?
담해종일석談諧終日夕 하루해 저물도록 정겨운 대화 나누었으며
상지첩경배觴至輒傾杯 술잔을 건네노라면 서로 즉시 비우곤 했다.
정흔신지환情欣新知歡 새로운 벗 사귀는 즐거움 얻었으니 마음 기쁘기 한량없었고
언영수부시言咏遂賦詩 말로 읊조리다 마침내 그것은 시로 되어 나타났다.
감자표모혜感子漂母惠 그대의 은혜 한신에게 베풀어준 漂母같은 것임을 내 깊이 느끼고 있지만
괴아비한재愧我非韓才 다만 부끄러운 것은 내게 韓信같은 재능이 없다는 점
함집지하사銜戢知何謝 마음 깊이 간직하지만 사례할 길 없으니
명보이상이冥報以相貽 명계冥界에서나 이 은혜 갚을 수 있으리라.
이 시는 극빈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아름답고 고매한 우정을 진솔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가난이 죄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긴 하지만 그러나 가난은 분명 이 시에서처럼 사람을 문밖으로 내몰게 할 수 있다.
가난을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는 유지할 수 있는 淸貧과 그조차도 불가능하게 하는 赤貧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지금 도연명은 적빈에 의하여 내몰리고 있다.
재진절량在陳絶糧 종자병從者病 막능흥莫能興
孔子가 陳나라에서 絶糧의 상태에 이르고 따르던 사람들이 병들어 침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자
자로온견왈子路慍見曰 군자역유궁호君子亦有窮乎
子路가 분개하여 “군자도 곤궁할 때가 있는가?”라고 물었던 상황과도 비슷하다.
공자는 그때 저 유명한
군자고궁君子固窮 군자는 곤궁해지면 이를 지켜나가지만
소인궁사람의小人窮斯濫矣 소인은 곤궁해지면 함부로 행동하게 된다. 라는 말을 했다.²⁴
►24) <論語・衛靈公>篇
바로 이 공자의 가르침처럼 도연명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온유하고 절제 있는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도연명과 주인은 이 참담한 상황을 오히려 아늑하고 정겨운 경지, 자적의 세계로 이끌어가게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심전심의 경지이다.
주인은 도연명이 걸식하러 올 수밖에 없었던 곤경을 당장 알아차렸을 것이고
도연명은 주인의 그 마음을 즉각 알아차렸다.
<修身古訓> 가운데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우정에 관한 말은 이와 같은 상황과 가장 적합하게 어울린다.
친우견방親友見訪 친구가 찾아와서
홀유욕언불언지의忽有欲言不言之意 무언가 이야기할듯하다가 또 못하면서 머뭇거리는 눈치를 보이게 되면
차필유부득의사此必有不得意事 이는 반드시 그에게 어려운 일이 생겨서 나를 찾아왔지만
욕구아이난어계치자欲求我而難於啓齒者 차마 입을 열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편당허심선문지我便當虛心先問之 그러할 때 나는 응당 텅 빈 마음으로 먼저 물어야 할 것이고
역지소능力之所能 있는 힘을 다하여 도와주어야 할 것이며
불가추위不可推諉 물리쳐서는 안 된다.²⁵
►25)(형원소어荊園小語) 담문홍談文灴 編 <修身古訓>(臺北: 臺灣中華書局, 1980), 72쪽.
明의 종백경鍾伯敬은 이 작품에 대하여
묘재무비분妙在無悲憤 비분함이 없다는 점에서 기묘하다.
역불시조희亦不是嘲戱 또 조롱도 아니다.
지작심상소위사只作尋常素位事 편고便高 편후便厚 편심便深
그저 평범하고 담담한 일을 기록한 것일 뿐인데도 높고 두텁고 깊다.”²⁶라고 말했다.
►26) 明, 鍾伯敬、譚元春評選<古詩歸>卷9(<陶淵明資料彙編> 下冊, 66-67쪽에서 재인용.)
이는 도연명과 주인이 지닌 인격의 깊이를 통하여 나타나는 고매한 경지를 지적한 말이다.
明의 담원춘譚元春은 또 이 작품에 대하여
기래구아거飢來驅我去 굶주림이 나를 밖으로 내몰았지만
고문졸언사叩門拙言辭 문을 두드리고는 말을 더듬었다.
주인해여의主人解余意 주인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명보이상이冥報以相貽 저승에 가서나 당신에게 갚아드리리다. 라는
사어四語 네 시구를 읽어보면
염치충후廉恥忠厚 일어언외溢於言外 염치충후廉恥忠厚함이 言外에 넘쳐흐른다.
각여자수자覺與者受者 행경부동行逕不同 주는 자와 받는 자에 있어서 가는 길이 다를 뿐이다.
석인칭연명유즉종일유빈昔人稱淵明有則終日留賓 무즉연문걸식無則沿門乞食
옛사람이 말하기를 淵明은 있으면 終日손님을 머물게 하고 없으면 집집마다 더듬어 찾아가며 걸식했다고 했다.
유무취여지간有無取與之間 개유이취존호기간皆有理取存乎其間
있는 자와 없는 자, 받는 자와 주는 자 사이에 한결같이 理致와 趣向이 그 사이에 서려져 있다.²⁷라고 말했다.
►27)(<陶淵明資料彙編> 下冊, 67쪽에서 재인용)
도연명이 주인에게 자신의 감사한 정을 韓信을 도와준 漂母의 은혜라고 말하고 그 은혜가 너무나 크고
자신의 재능이 한신에 훨씬 못 미쳐서 사후에나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데서 도연명의 겸손을 발견한다.
이 시에서 도연명은 새로운 벗을 사귀는 즐거움을 ‘신지환新知歡’이라 하고
그 속에서 그 자신의 심정이 欣然해지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것이 시로 되어 나타났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난세상황, 기근이 그를 대문 밖으로 내모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도연명이 끝까지 갈망했던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벗들과의 사귐을 통한 기쁨과 즐거움의 추구였고
인간의 고매한 품격에 대한 절조의 견지였으며
그것이 바로 그가 염원했던 우정 속의 자적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Ⅳ. 은둔 속의 자적
도연명은 그의 작품 전반을 통하여 은둔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은둔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은둔의 처소가 전원이어서 田園詩라고 부를 뿐 실지로 그가 추구한 것은 塵世로부터의 철저한 은둔이었다.
은둔의 역사가 유구한 중국에서 도연명은 물론 그 은둔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伯夷叔齊 등과 같은 은둔의 선현들에 대한 찬사와 경의를 표현했다.
은둔은 물론 정치현실로부터의 은둔이고 관료세계로부터의 은둔이다.
그러나 그는 실지로 농촌에서 살아갔고 직접 농사를 지었으며 주어진 납세의 의무도 감당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의 은둔은 다분히 관념적인 은둔、상상 속의 은둔일 가능성이 많다.
<讀山海經> 13수나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노래한 <桃花源記>를 보면
그가 관념적으로 혹은 상상 속에서 강하게 은둔을 추구하고 염원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은둔자적隱遁自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은둔은 자적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여기서는 몇 수의 작품만을 선택하여 그 가운데 나타난 은둔 속의 자적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구일한거九日閑居>詩를 본다.
세단의상다世短意常多 인생은 짧고 수심은 언제나 이리도 많지만
사인락구생斯人樂久生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 오래 살기 즐겨한다.
일월의신지日月依晨至 세월은 순서대로 흐르고 흘러 重九의 날 이르게 되었으니
거속애기명擧俗愛其名 온 세상 풍속이 그 이름을 사랑한다.
로처훤풍식露凄喧風息 이슬은 차가와지고 따스한 바람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서
기철천상명氣澈天象明 이제 날씨는 해맑고 하늘은 환하여 푸르다.
왕연무유영往燕無遺影 떠나버린 제비들은 이미 자취 찾아볼 수도 없고
래안유여성來雁有餘聲 돌아오는 기러기들만 끼룩끼룩 울어댈 뿐
주능거백려酒能袪百慮 술은 많은 근심걱정 없앨 수 있다 하고
국해제퇴령菊解制頹齡 국화는 일그러지는 연령 억누를 수 있다 한다.
여하봉려사如何蓬廬士 어찌 하리 봉려蓬廬의 빈사貧士여!
공시시운경空視時運傾 이 아름다운 重九의 날이 부질없이 사라짐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진작치허뢰塵爵恥虛罍 먼지 앉은 술잔은 텅 빈 술독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한화도자영寒華徒自榮 찬 계절 가을의 꽃 국화는 부질없이 스스로 활짝 피어있구나.
렴금독한요斂襟獨閑謠 나는 옷깃 여미고 홀로 한가로이 시를 읊고 있노라니
면언기심정緬焉起深情 아득히 깊은 정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
서지고다오棲遲固多娛 고요히 은둔하며 사는 삶이지만 참으로 즐거움이 많을지니
엄류기무성淹留豈無成 오랜 은둔생활에 어찌 이룬 바 없다 할 것인가?
孟二冬은 이 작품을 두고
九日은 곧 음력 九月九日, 重陽節이다.
이때 국화가 활짝 피어 옛 사람들은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으며
이렇게 술을 마시면 가히 수명을 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연명은 술에 대하여 남다른 기호가 있었으며 그는 <讀山海經> 제5수 가운데서
재세무소수在世無所須 이 세상에서 달리 필요한 바가 없다.
유주여장년惟酒與長年 오직 술과 장수뿐이다. 라고 노래했다.
그렇지만 이 重陽節이라는 명절을 맞아 그는 정원 가득히 자라고 있는
국화꽃을 바라보면서도 마실 수 있는 술이 없었다.
아마도 이미 생활이 매우 어려워져서 술을 빚을 쌀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리하여 도연명은 심히 감개하여 이 시를 지어 그 정회를 기탁했을 것이다.
이 시 가운데 보이는 ‘공시시운경空視時運傾’ ‘엄류기무성淹留豈無成’ 등의 시구들로부터 알 수 있듯이
설사 아무리 시인 도연명이 한거했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의 내심은 결코 완전히 평정을 찾지 못했으니
그는 여전히 특히 관심을 기울이던 바가 있었고 추구하던 바가 있었던 것이다.²⁸라는 평했다.
►28) 孟二冬, 같은 책, 52-53쪽.
이 평에서 보듯이 도연명이 세상에서 가장 염원했던 것 두 가지가 바로 長壽와 飮酒였다.
그것은 그가 비록 난세에 처하여 고달프게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주어진 생명을 몹시 사랑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술 마시기를 사랑했던 것도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극대화함으로서
주어진 생명을 가능한 범위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술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술을 통한 초현실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했다.²⁹
►29) 村上嘉實 著, 같은 책, 30쪽. 村上嘉實은
“홀드만 씨는 상기 논의 중에서 도연명에 대하여 언급하고
도연명이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환락을 확대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수단으로서 술을 사용하고 있는 점,
그에게 있어서 술이 이 세상의 비애와 환멸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스뻬로가 竹林七賢에 대하여, 술은 그들을 세상의 밖에
그리고 그 위에(en dehors et andes du des choses et monde) 두었다고 말하고 있음을 인용하고 있다.
이처럼 六朝人이 사용하던 술에, 사상적인 의미를 발견한 점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그의 작품에 나타난 자적의 의미를
飮酒自適이라는 부문으로 설정하여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음주야말로 인간이 가장 손쉽게 자적의 경지를 터득하고 향유하기 위해 고안해낸
경제적이고 유효한 방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초현실의 세계 역시 궁극적으로는 현실세계의 한계로 인하여
추구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³⁰
►30) 아무등화술我無騰化術 필이불부의必爾不復疑
나 또한 신선이 될 재주 없으니 반드시 언젠가는 그리 되리라/<形影神>의 제1수<形贈影>
그가 은둔을 통하여 얻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이 주는 심오한 의미를 깊이 체득하고 그 가운데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었다.
이 작품에서 도연명은 이를 ‘서지고다오棲遲固多娛 은거하는 몸에는 본래 즐거움 많거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娛’야말로 은둔 속의 자적 혹은 한적 속의 자적이 주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重九라는 이름을 좋아한 것도 가을의 경치와 가을이라는 계절을 포함한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이며
국화는 그 아름다운 가을의 자연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또 그가 아름다운 가을의 자연을 사랑하고 이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은둔을 통한 한적한 삶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가 되어 어쩌면 ‘엄류淹留’의 성취가 되어 후세에까지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적이란 이처럼 은둔과 그를 통한 한적이라는 전제 속에서 가능해지는 고일한 경지이다.
그 한적이 인생 전반을 고요히 응시하게 할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하고 그를 통하여 자적의 세계를 열어가게 한다.
도연명은 바로 이 자적을 누리기 위하여 욕망으로 얼룩진 관료사회를 떠나갔고 풍진으로 혼잡한 세상을 멀리했다.
宋의 탕한湯漢은 이 작품에 대하여
‘공시시운경空視時運傾 시절의 바뀜을 속절없이 바라보나’는
역지역대지사亦指易代之事 역시 역대지사易代之事를 가리킨다.
‘엄류기무성淹留豈無成 오래 머물며 어찌 이룬 것이 없는가?’는
소인어야騷人語也 시인 자신에 대한 말이다.
금반지今反之 위부득어피謂不得於彼 즉득어차의則得於此矣
자금 이를 거꾸로 뒤집어본다면 저기서 얻지 못한 것은 여기서 얻게 된다는 말이 된다.
후後 서지거위졸棲遲詎爲拙 역동亦同
뒤에 나오는 ‘서지거위졸棲遲詎爲拙 편안한 삶 누구라서 졸렬하다 할 것인가?’ 역시 마찬가지다”³¹라고 말했다.
►31)<陶淵明資料彙編> 下冊, 45쪽에서 再引用.)
또 淸의 진조명陳祚明은 이 작품의 풍격에 대하여
기의한원起意閒遠 기의起意가 한적하고 그윽하다.
중사경사정中寫景寫情 병청출並淸出 그중에 사경寫景・사정寫情했는데 모두 맑게 표출되고 있다.
엄류하소성淹留何所成 오랜 은둔생활에 어찌 이룬 바가 없다 할 것인가?
인생고유소야人生固有素也 人生이란 본래 質朴[有素]한 것이다.
<일월>이구작의신의<日月>二句作意新矣 <일월> 2句는 作意가 새롭다.
구九 구야久也 9는 久이다.
고애지固愛之 그래서 사랑하는 것이다.”³²라고 말했다.
►32)<陶淵明資料彙編> 下冊 46쪽에서 재인용
다시 그의 은둔자적을 노래한 작품인 <歸園田居>5首> 중의 제1수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소무적속운少無適俗韻 나 어려서부터 세속과 잘 어울리는 기질이 없었으니
성본애구산性本愛丘山 본성이 山만을 좋아했다.
오락진망중誤落塵網中 세속 그물 속으로 잘못 떨어지고 말았으니
일거삼십년一去三十年 한 번 세월 흘러 어느덧 13년이 흘러가버렸다.
기조연구림羈鳥戀舊林 새장에 갇혀 사는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지어사고연池魚思故淵 작은 못에 갇혀 사는 물고기는 옛 큰 못을 그리워한다.
개황남야제開荒南野際 남쪽 교외 끝에서 밭 갈고자 하니
수졸귀원전守拙歸園田 우졸愚拙을 지키고자 전원으로 돌아왔다.
방택십여무方宅十餘畝 집 주변 농토는 10餘畝이고
초옥팔구간草屋八九間 초가집은 8, 9間이다.
유류음후첨楡柳蔭後檐 느릅나무 버드나무는 뒷 처마에 그늘을 드리우고
도리나당전桃李羅堂前 복숭아나무 오얏나무는 대청 앞 마당에 늘어서 있다.
애애원인촌曖曖遠人村 저 멀리 촌락은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듯 아니 보이는 듯하는데
의의허리연依依墟里煙 굴뚝에서는 연기가 하늘하늘 날아오른다.
구폐심항중狗吠深巷中 개는 깊은 골목길에서 짖어대고
계명상수전鷄鳴桑樹巓 닭은 뽕나무 꼭대기에서 울어댄다.
호정무진잡戶庭無塵雜 마당에는 세속의 잡다한 먼지 하나 없으니
허실유여한虛室有餘閑 텅 빈 집에는 한가로움만이 넉넉할 뿐
구재번롱리久在樊籠裏 나는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혀 있었다가
부득반자연復得返自然 이제야 비로소 자연의 품속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맹이동은 이 작품에 대하여
‘이 연작시는 대체로 도연명이 팽택령의 직위를 버리고 은거한 그 다음 해,
곧 진晉 안제安帝 의희義熙2년(406)에 지은 것이며 그 당시 그의 나이 42세였다.
겨우 80여일 동안 彭澤令을 지낸 도연명은 이미 실로 도저히 관료사회 속의
오염된 분위기와 세속의 속박을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굳은 결심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귀은하여 전원에서 躬耕했으며
그 이후로부터 죽을 때까지 出仕하지 않았다.
관료사회를 벗어나는 홀가분함, 자연으로 돌아가는 기쁨, 또한 맑고 고요한 전원, 순박한 사람들과의 사귐,
궁경의 체험 등은 그로 하여금 이 연작시가 걸출한 전원시가 되게 했으며,
또한 집중적으로 도연명의 진박眞朴・정담靜淡・광달曠達한 풍격을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했다.”³³라고 평했다.
►33) 맹이동, 같은 책, 55쪽.
도연명은 이 작품 가운데서 은둔 이전의 그 자신을 두고
舊林을 그리워하는 기조羈鳥 고연故淵을 그리워하는 지어池魚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
그것은 속박되어 부자유한 존재이며 당연히 자적할 수 없는 존재이다.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속박 속에서 살아왔다고 후회한다.
설사 우졸하다는 世人들로부터의 비난을 받는다하더라도 감연히 자유와 자적이 있는 전원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른바 ‘反自然’이다.
비록 고달프기는 하지만 그러나 땀 흘려 노동하는 가운데 얻는 육신과 정신의 건강을 그는 염원했다.
이 작품 가운데 보이는 전원의 정경들은 그의 그러한 염원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집 뒤에서 자라며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고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대청 앞마당에서 늘어서 자라고 있다.
멀리 촌락이 보이고 굴뚝 연기가 하늘하늘 날아오르는 정경, 개가 짖어대고 닭이 울어대는 정경은
참으로 옛날 안락하고 평화로운 시대의 대명사로 불리던 화서지국華胥之國을 연상하게 한다.
明의 황문환黃文煥은 이 작품에 대하여
<반자연>삼자<反自然>三字 시귀원전대본령是歸園田大本領 제수지총강諸首之總綱
반자연反自然 3字는 원전園田으로 돌아가는 대본령大本領이자 제수諸首의 총강總綱이다.
절진상絶塵想 무잡언無雜言 시반자연기상是返自然氣象
진상塵想 무잡언無雜言은 自然으로 돌아가는 기상氣象이다.
의첨부족석衣沾不足惜 단사원무위但使願無違 시반자연방법是反自然方法
절의첨부족석絶衣沾不足惜 단사원무위但使願無違이라는 두 시구는 自然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지어생사자至於生死者 천지자연지운天地自然之運 비일호인력소득여非一毫人力所得與
生死에 있어서는 이는 天地自然의 운행이며 一毫라도 인간의 힘이 얻어내거나 줄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왈曰 종당귀공무終當歸空無 일일이자연청지一一以自然聽之
‘종당귀공무終當歸空無’라고 한 것은 하나하나 모두 自然의 섭리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전원중노사유하田園中老死牖下 득안정명得安正命 여일체사로형욕부동與一切仕路刑辱不同
田園에서 창문 아래에서 늙어죽고, 평안히 천수를 누리니, 一切仕路에서의 형욕刑辱과 다르다.
사역득소死亦得所 황존호況存乎 죽어서도 마땅한 곳을 얻을 수 있으니, 하물며 살아서랴?
지차즉청천우탁知此則淸淺遇濯 이를 안다면 청천淸淺을 만나 몸을 씻고
계주첩음雞酒輒飮 철야지단徹夜至旦 계주雞酒를 얻어 문득 취하며, 밤새워 새벽에 이르도록
소기이향용所期以享用 차자연지복자此自然之福者 기약하는 바를 누리게 되니, 이는 自然이 주는 복락이다.
하가일각착과何可一刻錯過 어찌 가히 일각이나마 놓칠 수 있을 것인가?”³⁴라고 말했다.
►34)<陶淵明資料彙編> 下冊, 49쪽에서 재인용.
위험을 무릅쓰고 부귀영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마땅히 얻어야 할 곳을 얻는 자적의 경지를 추구하기 위하여 도피할 것인가?
대다수가 전자의 길을 걸어갈 때 도연명은 과감하게 후자를 선택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위대한 시인으로 전해지게 되는 도연명을 산생하게 했다.
Ⅴ. 체념 속의 자적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마음대로 되는 않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이고,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다.
또 자식은 부모 말 안 들으려고 태어났다고 하고 친구도 신의를 저버리기가 십상이다.
이런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서히 체념을 배우게 된다.
예컨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본다든가, 보다 더 못한 경우를 상정해봄으로서 우리는 위로를 받고 체념하게 된다.
도연명 역시 울울불락하게 하는 난세상황 속에서 살아가면서 체념을 통한 자적의 경지를 터득해나가고자 노력했다.
그는 <責子>시 가운데서 자신의 염원과 어긋나게 자라고 있는 자식들에 대하여 탄식하다가
결국 술을 마시고 체념하고자 하며 그 체념을 통하여 자적을 추구하고자 한다.
맹이동은 이 시에 대하여,
“이 시는 대체로 진晉 안제安帝 의희義熙 4년(408). 陶淵明의 나이 44세 되던 해에 지어진 것이다.
責子는 곧 자식을 책망하는 것이다.
시인 도연명은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어조로 자식들이 향상을 추구하지 않아 그 자신의 소망하는 바,
곧 그들을 면려하여 好學하고 분발하여 정진하게 함으로서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소망하는 바와 차이가 너무 크다고 책망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 도연명의 자식들에 대한 심후深厚하고 진지眞摯한 골육지정骨肉之情이 드러나고 있다.”³⁵라고 평했다.
►35) 맹이동, 같은 책, 183쪽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평범한 인생의 진리 앞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 숙이고 있는 위대한 시인 도연명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백발피양빈白髮被兩鬢 하얀 백발이 이미 두 귀밑머리 덮고 있고
기부불부실肌膚不復實 피부도 더 이상 실하지 못하다.
수유오남아雖有五男兒 내게 비록 다섯 아들이 있기는 하지만
총불호지필總不好紙筆 모두 공부하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서이이팔阿舒已二八 나타고무필懶惰固無匹 서舒는 이미 16세이지만 그러나 게으르기가 필적할 바 없다.
아선행지학阿宣行志學 이불애문술而不愛文術 선宣은 15세가 되는데 책읽기만 좋아하지 않는다.
옹단년십삼雍端年十三 불식육여칠不識六與七 옹雍과 단端은 둘 다 나이가 13세인데도 6과 7조차 가릴 줄 모른다.
통자수구령通子垂九齡 단멱이여율但覓梨與栗 통通은 9살인데 오로지 하는 일이라고는 배와 밤을 찾아먹으려는 것뿐이다.
천운구여차天運苟如此 내게 주어진 天運이 이런 것일 뿐일진대
차진배중물且進杯中物 자, 그저 술잔이나 들기로 하자.
志學 곧 志於學은 15歲를 가리킨다.
孔子는 그의 나이 15세 되던 해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말했다.³⁶
►36) <論語・爲政>篇
자왈子曰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삼십이립三十而立 사십이불혹혹四十而不或惑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그 이후로부터 15세가 학문에 뜻을 품는 志學之年이 되었다.
자식은 이 세상살이가 쉽지 않고 이 세상에서 불여의한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태어난다고 하는 말도 있듯이 위대한 시인 도연명에게 있어서도 자식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시 속에 나타나 있듯이 그의 다섯 아들은 모두 도연명의 간절한 염원을 저버리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는 태연자약하다.
이는 체념 속의 자적이라 이를 법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을 만나고 부딪치곤 하는가?
그럴 때 그래도 더 고통스럽고 더 역경에 처한 경우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위로 받고 체념하면서 그 가운데서 자적을 추구하고자 한다.
예컨대 도연명의 시에서 달리 체념 속의 자적을 살펴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통한 그것일 것이다.
도연명은 죽음에 대하여 남달리 깊이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는 “종고개유몰從古皆有沒 념지중심초念之中心焦
예로부터 누구나 죽기마련, 이것을 생각하면 가슴속이 탄다.”³⁷라고까지 말하면서 생을 사랑했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 또한 인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를 체념함으로서 생의 자적을 누리고자 했다.
►37) <기유세구월구일己酉歲九月九日 기유년 중양절에>
<飮酒> 제15수를 그 예로 들어 살펴보기로 한다.
빈거핍인공貧居乏人工 가난하게 살다보니 일손이 모자랄 수밖에 없어
관목황여택灌木荒余宅 관목灌木들이 집 주변에 가득 자라고 있다.
반반유상조班班有翔鳥 뚜렷한 모습의 새가 날고만 있을 뿐
적적무행적寂寂無行迹 사람의 흔적 전혀 없어 쓸쓸하기만 하다.
우주일하유宇宙一何悠 저 우주는 그 얼마나 아득히 멀고 드넓은가
인생소지백人生少至百 우리 인생은 백세 사는 자도 드물구나.
세월상최핍歲月相催逼 세월이 서로 빨리 가라고 재촉하니
빈변조이백鬢邊早已白 귀밑머리는 벌써 허옇게 세어버렸다.
약불위궁달若不委窮達 만약 곤궁과 영달을 天意에 맡겨두지 않는다면
소포심가석素抱深可惜 평소 품었던 포부 심히 애석하게 되고 말 것이다.
맹이동은 이 시에 대하여
“이 시는 거친 집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정경과 노쇠가 장차 다가오고자 하는 슬픔을 묘사했다.
그러나 시인은 固窮으로 인하여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만약 자신의 숙원을 위배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깊이 통석한 일이라고 말한다.”³⁸라고 평했다.
►38) 맹이동, 같은 책, 165쪽.
우주는 참으로 아득하고 멀며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기 그지없다는
이 대비를 통하여 도연명은 체념을 배우고 터득하고자 한다.
그가 체념하고자 하는 것은 부귀공명、입신출세、영달 등 세속적 욕망에 대한 갈망이다.
그 대신 그는 영원한 도를 추구하고자 했다.
이 작품 가운데에 나타난 ‘소포素抱’가 바로 그것이다.
인생의 참된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지식인의 참된 의무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曾子가 말했던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³⁹의 경지에 비견될만한 지난하고 지엄한 포부였다.
►39)<論語・泰白>
증자왈曾子曰 증자가 말했다.
사불가이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 짐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이위기임仁以爲己任 불역중호不亦重乎 인仁으로써 자기의 짐으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사이후이死而後已 불역원호不亦遠乎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
그래서 그는 출사를 거절하거나 포기하고 은거궁경 했으며 그 가운데서 자적하는 삶을 추구했다.
그것은 그가 독자적으로 발견해낸 주어진 생을 가장 바람직하고 아름답고 진실 되게 꾸려나가는 삶의 방법이었다.
Ⅵ. 자연 속의 자적
老子가 “도법자연道法自然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⁴⁰이라고 말한 이후로부터
자연은 도를 능가하고 초월하는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40) <老子> 25장.
자연은 신의 존재처럼 이 세상을 다스리는 율법이고 진리가 된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났고 자연에서 살아가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숙명이자 한계이다.
또한 소미교일小尾郊一은 <중국문학에 나타난 자연과 자연관>의 서문에서
“동서양을 불문하고 문학과 자연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예부터 문학에 있어서 자연을 노래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며,
문인들 가운데서 자연을 노래하지 않았던 사람이 적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문학을 통하여 살펴볼 때, 중국인들은 자연이야말로 안주의 땅이며,
자연에서만 참된 아름다움이 있다고 여겼던 것으로 생각된다.”⁴¹라고 지적한다.
►41) 小尾郊一 著, 拙譯, <中國文學 속의 自然觀: 原題는 “中國文學에 나타난 自然과 自然觀”>
(春川: 江原大學校出版部, 1988) 序文.
자연은 어머니의 품안처럼 아름답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오직 거기에만 삶의 생생한 숨결이 담겨져 있고 우리는 거기서부터 생의 원기를 얻어 살아간다.
모든 것이 흙에서 나오고 자연에서 나온다.
거기서부터 육신의 먹이가 나올 뿐만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나오는 것이다.
자연은 특히 난세에 처하여 山林江海 혹은 林泉、山水 등의 형태로 중국문학에 나타나는 은둔의 장소이다.
은사들은 우리가 도연명의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그 가운데서 육신은 고달프되 정신은 평화로운 삶, 곧 자적의 삶을 살아갔다.
소미교일小尾郊一은 같은 책에서
“그러나 일단 은둔하게 되면 은둔생활, 다시 말하여 산중생활이 설사 아무리 고난으로 가득 찬 것일지라도
시인하고 미화하는 것이 당연한 추세일 것이다.
이리하여 은둔생활을 찬미하는 사상, 곧 산중생활을 찬미하는 사상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이 마침내 그와 같은 생활의 경지인 산중을 찬미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여가게 된다.”⁴²라고 말했다.
►42) 小尾郊一, 같은 책, 195쪽.
도연명 역시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적의 의미를 터득해나가고 있었으며
그의 작품 가운데서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의 품속에서 아늑한 평온을 추구하는 정경이 나타나고 있다.
<유사천游斜川 사천에서 유람하며>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한편의 아름다운 산문이라 할 수 있는 서문이 병기되어 있다
신축정월오일辛丑正月五日 신축년 5月 5日
천기징화天氣澄和 풍물한미風物閑美 날씨가 맑고 온화하며, 風光景物이 고요하고 아름다워서
여이삼인곡與二三隣曲 동유사천同游斜川 이웃에 사는 두셋 노인들과 더불어, 함께 斜川으로 놀러갔다.
임장류臨長流 망증성望曾城 길게 흘러가는 시냇물 곁에 서서, 曾城山을 바라본다.
방리약린우장석魴鯉躍鱗于將夕 방어와 鯉魚는 저녁 무렵 비늘을 드러내고 뛰어오르고
수구승화이번비水鷗乘和以飜飛 물새는 따뜻한 날씨 속의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피남부자彼南阜者 명실구의名實舊矣 저 남쪽의 산은 명실이 이미 오래되어서
불부내위차탄不復乃爲嗟嘆 더 이상 이를 위하여 차탄하지 않으리라.
약부증성若夫曾城 방무의접傍無依接 저 曾城山은 그 곁에 이어지는 산이 없어,
독수중고獨秀中皐 홀로 수려하게 평평한 못 속에서 솟아 있다.
요상영산遙想靈山 저 신선이 산다고 하는 崑崙의 曾城을 아득히 생각하노라면
유애가명有愛嘉名 더욱 눈앞에 있는 이 산의 아름다운 이름을 사랑하게 된다.
흔대부족欣對不足 이처럼 흔연히 曾城山을 마주 바라보며 경치를 감상하지만
솔이부시率爾賦詩 그래도 흥을 다하기 부족하기에, 이리하여 즉흥적으로 시를 짓고, 情懷를 발산한다.
비일월지수왕悲日月之遂往 세월의 흘러감을 슬퍼하고
도오년지불류悼吾年之不留 내 인생의 머물지 못함을 깨닫는다.
각소년기各疏年紀 향리鄕里 이기기시일以記其時日
각자가 나이、籍貫을 기록하고, 아울러 이 잊기 어려운 하루를 기록한다.⁴³
►43) 맹이동, 같은 책, 63쪽.
맹이동은 이 시에 대하여
“이 시는 宋 武帝 永初2년(421), 도연명의 나이 57세 되던 해에 지어진 것이다.
시가는 斜川 일대의 자연풍경을 찬미하는 동시에, 시인의 만년에 접어들어 생겨나는 고민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비록 及時行樂의 소극적이고 불만스러운 정서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러나 시인의 고고불군孤高不群하고 견정정발堅貞挺拔하는 정서와 지조는 탁연卓然하여 가히 볼만하다.
이 시의 서문은 한편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山水遊記이다.
언정병무言情並茂하고 시정화의詩情畵意가 가득 차 있다.
시가와 더불어 서로 찬연히 빛을 발하고 있으며 매우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⁴⁴라고 평했다.
►44) 上同
이제 그 시를 살펴본다.
개세숙오일開歲倏五日 새해도 빨리 흘러 벌써 오월 오일 단오절이 되었고
오생행귀휴吾生行歸休 내 생명도 장차 영원한 휴식 쪽으로 다가가려 하고 있다.
념지동중회念之動中懷 이를 생각하노라면 가슴속이 격렬히 뛰게 되어
급신위자유及辰爲玆游 이 좋은 날을 맞아 봄날 유람을 떠나간다.
기화천유징氣和天惟澄 날씨는 따사롭고 하늘은 맑으며
반좌의원류班坐依遠流 멀리 흘러가는 강가에서 순서대로 앉아 있다.
약단치문방弱湍馳文魴 천천히 흐르는 개울에는 紋魴이 치달리고
한곡교명구閑谷矯鳴鷗 한가한 골짜기에는 우는 물새 높이 난다.
형택산유목逈澤散游目 드넓은 호수 아득히 멀리 바라보기도 하고
면연제증구緬然睇曾丘 깊은 생각에 잠겨 曾城山바라보기도 한다.
수미구중수雖微九重秀 비록 崑崙山 九重의 수려함에는 못 미치나
고첨무필주顧瞻無匹儔 주위를 돌아보면 이 산과 필적할 다른 산이 없다.
제호접빈려提壺接賓儷 술 주전자 들고 같이 유람 온 벗들에게 술 권하니
인만갱헌수引滿更獻酬 술잔에 가득가득 부어준다.
미지종금거未知從今去 당복여차불當復如此不 지금 이후로 다시금 이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중상종요정中觴縱遙情 술잔을 반쯤 비우며 아득히 초연한 정서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며
망피천재우忘彼千載憂 저 천년의 근심을 잊어버린다.
차극금조락且極今朝樂 자, 이제 이 아침의 즐거움을 만끽해야만 하리니
명일비소구明日非所求 내일이 어떨지는 내가 구할 수 있는 바 아니리라.
도연명은 이 작품 서두에서
“새해도 빨리 흘러가 벌써 오일이 되었고 내 생명도 장차 영원한 휴식 쪽으로 가고 있다.”
라고 하면서 인생무상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그 무상한 인생의 슬픔을 달래기 위하여 그는 자연의 품안으로 안기고자 했다.
그는 ‘급신위자유及辰爲玆游’라고 노래했다.
及辰의 及은 及時行樂의 及이고 及辰의 辰은 량신미경良辰美景의 辰이다.
“이 좋은 날을 맞아 봄날의 유람을 떠나간다.”라고 해석한다.
그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이를 큰 기쁨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이 다섯 글자를 통하여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벗과 더불어 술잔을 나누면서 曾城山을 바라보는 도연명은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가 진실로 염원했던 것은 이처럼 자연 속에서 자적하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것은 李白이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에서 노래한 경지와도 비슷하다.
이백은 敬亭山이라는 자연을 두고
상간양불염相看兩不厭 서로 바라보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⁴⁵이라고 말했다.
►45)
중조고비정衆鳥高飛靜 뭇 새들이 하늘 저 높이 고요히 날고 있다.
고운독거한孤雲獨居閒 흰 구름이 홀로 閑暇로이 떠돈다.
상간양불염相看兩不厭 서로 바라보고 있어도 싫증나지 않는 것은
지유경정산只有敬亭山 오직 저 敬亭山 뿐이다.
또 그것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시조에 나타난 경지와 비슷하다.
고산은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⁴⁶라고 노래함으로서 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자연을 인식하고 있다.
►46)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든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
말삼도 우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하노라.
도연명은 이 작품 가운데서 “차극금조락且極今朝樂 명일비소구明日非所求”라고 노래했다.
자, 이제 이 아침의 즐거움을 다 하리니, 내일이 어떨지는 내가 구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했다.
이는 물론 그 자신이 항상 절감하고 있었던 인생에 대한 무상감을 노래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하여 우리는 거의
모든 시인들이 그러했듯이 그가 얼마나 세상과 인생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작품 가운데 나타나는 천년의 근심을 잊게 하는 아득히 초연한 정서의 세계,
술을 통하여 이끌어지는 정서의 세계야말로 그가 추구해온 자적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구 속에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의 한계와 이를 초극하고자 하는
인생 최대한의 몸부림이라 할 급시행락及時行樂의 관념을 발견하게 된다.
Ⅶ. 결 론
지금까지 필자는 도연명시에 나타난 자적의 의미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우정과 은둔, 체념, 자연 등의 주제와 연관시켜 살펴보고자 했다.
자적이란 자아가 판단하여 결정한 자아에게 가장 적합한 경지이다.
“평양감사도 제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은 자적의 주체가 자신임을 보여준다.
<장자・제물론>편 가운데에 나타난 例, 사람과 미꾸라지와 원숭이 사이의 거처에 대한 견해,
사람과 사슴과 지네와 올빼미와 까마귀 사이의 음식에 대한 견해,
원숭이와 순록과 마꾸라지와 사람 사이의 미모에 대한 見解등에서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질문 역시 자적의 의미를 근원적인 측면에서부터 생각하게 한다.⁴⁷
►47) <莊子・齊物論>篇.
정답은 없다. 모두 각자가 알아서 결정해야만 한다.
김창환金昌煥은 <陶淵明의 文學과 思想> 가운데서
“이러한 때에 사람들은 자포자기하거나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변절하기 쉽다.
그러나 도연명은 참된 삶의 이치를 추구하면서 진지하고 일관된 가치관을 견지하였다.
그것은 현실과 사회를 중시하는 儒家思想과 자연을 숭상하고 개인을 중시하는 道家思想으로부터
각각의 장점을 계승, 발전시키고 승화시킨 결과였다.”⁴⁸라고 말했다.
►48) 金昌煥 <陶淵明의 思想과 文學>(서울: 乙酉文化社, 2009), 13-14쪽.
이러한 그의 가치관이나 그가 이루어낸 결과의 이면에 도연명이 추구하였던 자적의 경지가 숨 쉬고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도연명은 그가 선택한 삶의 길이 바르고 정확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세에 처하여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참된 모습이다.
시인 이형기李炯基는 <가을變奏曲>이라는 시 가운데서
“언제는 戰國時代 아닌 때가 있었던가?”⁴⁹라고 노래하면서 탄식했다.
►49) 이형기李炯基 <돌베개의 詩>(서울: 韓國詩人協會, 1971), 34-35쪽.
난세는 결코 중단되는 법이 없다. 영원히 지속된다.
그런 난세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는 자적하는 법을 배우고 터득해야만 한다.
우리의 자적을 깨뜨리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도저히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난세는 또한 우리 욕망이 정도를 넘치게 흘러서 마침내 범람하는 시대, 폭발하는 시대라고 생각해도 좋다.
욕망의 최소화가 자적의 비결이다.
노자가 말한 “지족자부知足者富 족함을 아는 자가 부자이다.”⁵⁰라는 지적이야말로
자적을 추구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0) <老子> 33장.
도연명이 彭澤令의 사직은 이런 의미에서 욕망의 최소화를 향한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어진 생을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과제일 것이다.
특히 빵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는 특히 그러할 것이다.
도연명의 시를 읽으면서 그 가운데 나타난 자적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는데 읽다보니
도연명시 전반에 걸쳐 자적을 추구하는 내용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나하나 좀 더 자세히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며 후일의 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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