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 수행에 대한 가르침 제 4장
2013-12-29 21:42:08
제 4장 네 가지 마음 챙김
마음 챙김 수행의 일곱 가지 이익을 설명하고 난 후 붓다는 이어서 4가지의 마음 챙김(四念處)에 대하여 설명했다.
1. 몸에 대한 마음 챙김(身念處 kāy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2. 느낌에 대한 마음 챙김(受念處 Vedan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3. 마음에 대한 마음 챙김(心念處 Citt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4. 법에 대한 마음 챙김(法念處 Dhamm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신념처는 몸에 대한 마음 챙김 또는 현재 발생하는 모든 육체의 과정에 대한 마음 챙김이다.
수념처는 느낌 또는 감각에 대한 마음 챙김이다.
이 느낌 또는 감각에는 3 가지 종류가 있다.
(a) 즐거운 느낌이나 감각,
(b) 불쾌한 느낌이나 감각,
(c) 즐겁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중간의 느낌이나 감각.
즐거운 느낌이나 감각을 수카-웨다나(樂受 sukha-vedana; sukha는 즐거움, vedana는 느낌 또는 감각)라고 한다.
불쾌한 감각이나 불쾌한 느낌은 팔리어로
두카-웨다나(苦受 dukkha-vedana; 여기에서 dukkha는 불쾌함을 의미함)라고 한다.
즐겁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중간의 느낌이나 감각은 우페카-웨다나
(사수捨受 또는 不苦不樂受 upekkha-vedana; upekkha는 즐겁지도 불쾌하지도 않은 중간을 의미함)라고 한다.
즐거운 느낌,
불쾌한 느낌,
중간의 느낌이 일어날 때 수행자는 그 느낌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어떤 수행자들은 불쾌한 느낌은 불쾌하기 때문에 관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모든 종류의 느낌을 실제로 발생하는 그대로 아주 주의 깊게 알아차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즐겁거나 불쾌한 느낌이나 감각을 관찰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즐거운) 느낌에 애착하거나 (불쾌한 느낌을) 물리치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느낌이나 감각을 좋아할 때 우리는 그것에 애착하기 시작한다.
그 애착 또는 탕하는 느낌이나 감각에 의존해서 생겨난다.
이 경우에 즐거운 느낌이 원인이고 애착은 그 결과이다.
만일 어떤 수행자가 굽히지 않고 참을성 있게 정진한다면 그의 마음 집중은 깊어지고 강해질 것이다.
수행자의 마음 집중이 깊어지고 강해졌을 때 그는 행복(樂 sukha)을 느끼고 희열(悅 pīti)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 집중이 이루어진 그 순간에는
그의 마음이 탐욕⋅성냄⋅어리석음⋅아만과 같은 모든 번뇌에서 분명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참을성 있는 수행자는
그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하며,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꿰뚫어 보는 앎의 아주 좋은 단계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수행자가 그 상태를 즐기고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에 만족한다면
이는 그가 그 단계에 애착하고 있음을 뜻하고 따라서 그는 더 높은 단계의 꿰뚫어 보는 앎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꿰뚫어 보는 앎의 네 번째 단계의 처음 부분에서 얻을 수 있다.
만일 그가 이러한 사실을 이해했다면 이 단계에서 자신이 얻은 경험을 단지 관찰해야만 한다.
만일 그가 아주 주의 깊고, 강하게 자신의 경험을 관찰한다면
이 단계에서 경험하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애착하지 않을 것이다.
수행자가 주의 깊고 지속적으로 그 경험을 알아차릴 때
행복감, 고요함 또는 평온함이 그의 마음 속에서 지배적이지(manifest)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 순간에 그가 알아차리고 있는 것은 단지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는 느낌일 뿐이다.
그는 즐거운 느낌과 불쾌한 느낌을 구별 짓지 않으며 그에 의해서
그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애착을 떠나 보다 높은 단계의 꿰뚫어 보는 앎을 향해서 정진해 나아가게 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는 이 (네 번째) 단계의 꿰뚫어 보는 앎을 넘어설 수 있다.
만일 수행자가 아주 마음 챙겨서 걷는다면 걸음의 6과정을 알아차리게 된다.
발을 들어 올림,
발가락을 들올림,
발을 앞으로 나아감,
발을 내려놓음,
닿음, 그리고
눌림.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의 마음 집중은 좋아지고, 깊어지고, 강해지며, 그는 발의 겉모양을 인식하지 않게 된다.
또한 그의 몸이나 몸의 모양도 인식하지 않게 된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발의 움직임뿐이다.
그 움직임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즉 공중을 걷고 있는 듯이 느낄 수도 있다.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이 단계에서 그는 아주 좋은 수행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가 이러한 경험들을 마음 챙겨서 관찰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경험들을 좋아하게 될 것이며 그 경험들을 보다 많이 원하게 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수행에 아주 만족하게 되어 이 경험이 열반(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상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경험이 그가 이제껏 겪어 온 경험 가운데 최상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들은 그의 즐거운 경험을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며
따라서 그 경험들에 애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 애착은 그의 좋은 경험에 대한 즐거운 느낌 또는 즐거운 감각에 의해서 생겨난다.
만일 수행자가 자신의 좋은 경험에 대한 즐거운 느낌이나 감각을 마음 챙김 없이 즐긴다면
그는 분명히 그 느낌에 애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는 이 단계에서 부딪히는 그 어떠한 경험에 대해서도 관찰하고 마음 챙겨야 한다.
그는 그 경험을 분석해서도 안 되며 그에 대해서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그는 단지 그 경험들이 일어나는 그대로 알아차려야만 하는데
이는 이러한 정신의 과정이나 정신의 상태에 대한 경험이 변하기 쉽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마음 챙겨 알아차릴 때 마다 그는 경험은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알아차리는 마음’이 지속적이고 한결 같고, 강하게 되면 이 마음은 그의 경험 즉 정신 상태의 본질로 꿰뚫고 들어간다.
경험은 생겨날 때마다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그 마음은 깨닫기 시작한다.
그때 그는 자신의 法(Dhamma)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無常의 본질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의 경험과 함께 즐거운 느낌도 무상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서 法(Dhamma)이란 육체적인 과정은 물론 정신적인 과정도 의미한다.
좋은 경험과 함께 즐거운 느낌이나 감각도 무상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에 애착하지 않을 것이다.
수행자가 좋은 정신적 상태나 좋은 경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때 애착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고리
애착이 생겨나지 않을 때 집착(取 upādāna)은 생기지 않는다.
집착이 일어나지 않을 때 언어적으로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온전하거나(善) 온전치 못한(不善) 어떠한 행위들도 없을 것이다.
집착에 기인하여 생긴 행동을 業(kamma-bhāva)이라고 한다.
이 업은 온전하거나 온전치 못한 것이다.
온전한 육체적인 행동을 身善業(kusala kāya-kamma)이라 한다.
온전치 못한 육체적인 행동을 身不善業(akusala kāya-kamma)이라 한다.
온전한 언어적인 행동을 口善業(kusala vacī-kamma)이라 한다.
온전치 못한 언어적인 행동을 口不善業(akusala vacī-kamma)이라 한다.
온전한 정신적인 행동을 意善業(kusala māno-kamma)이라 한다.
온전치 못한 정신적인 행동을 意不善業(kusala kāya-kamma)이라 한다.
이러한 행동이나 업은 즐겁거나 불쾌한 느낌이나 감각에 대한 애착의 결과인 집착에서 생겨난다.
어떠한 육체적, 언어적 또는 정신적인 행동이라도 취하게 될 때 그것은 원인이 된다.
이 원인에 의해서 이 生에서나 다음 생에서 결과가 생겨난다.
이런 식으로 한 존재는 자신의 온전하거나 온전치 못한 업을 통해서 생을 되풀이 한다.
그 행동은 애착을 뿌리로 하고 있는 집착에 의해 생겨난다.
차례로 애착은 感受(vedana)인 느낌이나 감각에 의해 조건 지워져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경험과 함께 즐거운 느낌을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갖가지 괴로움을 겪으면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
따라서 만일 수행자가 느낌들을 관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게 되고
갖가지 괴로움으로 고통을 겪게 되는 조건에 의한 발생 (緣起paṭiccasamuppada)의 고리를 따라서 지내게 될 것이다.
그 어떠한 즐겁거나 불쾌하거나 중간의 느낌이나 감각에 대해서도
마음 챙겨야 한다고 붓다가 우리들에게 가르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느낌에 대한 마음 챙김
감각에 대한 마음 챙김을 수념처受念處(Vedan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라고 한다.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일반적으로 수행자들은 정신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감각에서도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2가지 종류의 감각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1. 육체적인 감수(身受 Kayika-vedana)
2. 정신적인 감수(心受 Cetasika-vedana)
만일 느낌이나 감각이 육체적인 과정에 의존해서 생겨난다면 그것을 육체적인 감수라고 한다.
우리는 이 말을 육체적인 느낌이나 감각 또는 신체적인 느낌이나 감각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만일 느낌이나 감각이 정신적인 과정에 의존해서 생겨난다면 그것을 정신적인 감수라고 한다.
우리는 이 말을 정신적인 느낌이나 감각으로 번역할 수 있다.
실제로는 모든 느낌이나 모든 감각은 정신적인 과정이지 육체적인 과정이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느낌이나 감각은 육체적인 불편함 때문에 생겨난다.
수행자가 몸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 불쾌한 감각이 생긴다.
그 불쾌한 감각을 육체적인 감수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육체적인 과정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일반적으로 수행자들은 대부분 정식적·육체적으로 불쾌한 감각을 느낀다.
하지만 어떠한 감각을 경험하더라도 수행자는 그 감각을 매우 주의 깊게 힘차게 그리고 밀착해서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그는 느낌이나 감각의 참된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
느낌의 독특한 특성과 일반적인 특성을 완전하게 자각해야만 하며
그렇게 할 때 그는 그 느낌에 애착하거나 밀어내지 않게 된다.
이것이 수념처(Vedan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 느낌 또는 감각에 대한 마음 챙김이다.
느낌이 일어날 때마다 실제로 일어나는 그대로 관찰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수행자가 수행 도중에 경험하는 불쾌한 육체적인 감각을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고통스런 감각이 두려워해야 할 과정은 아니다.
통증은 그것이 실제로 생겨나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완전하게 이해해야 하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수행자가 참을성 있는 노력으로 성공적으로 통증을 관찰할 때
그는 통증의 참된 본질- 통증의 독특하고 일반적인 본질을 자각할 수 있다.
그때 통증 또는 불쾌한 감각의 참된 본질에 대한 꿰뚫어 보는 앎에 의해서
수행자는 보다 높은 단계의 꿰뚫어 보는 앎에 이르게 된다.
마침내 그는 이 고통스런 감각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마음에 대한 마음 챙김
세 번째의 마음 챙김은 心念處(Citt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이다.
이것은 마음과 마음이 함께 생겨나는 마음의 상태(心所 cetasika)에 대한 마음 챙김을 의미한다.
論書(Abhidhamma)에 의하면 이른바 모든 ‘마음’은 마음과 그것의 내용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물이란 여기서 마음에 부속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마음은 결코 독립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그 부속물과 함께 생겨난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의식이나, 어떤 마음이나, 어떤 마음의 상태나,
그것이 발생하는 그대로 마음 챙겨 알아차리거나 관찰해야 한다.
이것을 심념처(Citt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라고 한다.
마음의 상태가 좋고 감정적인 상태는 더 좋을 수도 있다.
그것들이 어떠하더라도 지간에 실제로 발생하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따라서 탐욕과 애착의 마음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 그 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성내는 마음이 생기면 성내는 마음이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대념처경에 의하면 성내는 마음은 ‘성냄, 성냄’ 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
마음 챙김이 강해지면 성냄은 사라지게 된다.
그때 수행자는 성냄이란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생겨났다가는 사라지는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성냄을 관찰함으로써 수행자는 2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1. 성냄을 극복하는 것.
2. 성냄의 참된 본질(성냄의 발생과 소멸 또는 성냄의 무상한 본질)을 자각하는 것.
마음 챙겨서 알아차리면 성냄이란 수행자를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하나의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법에 대한 마음 챙김
네 번째 마음 챙김은 법에 대한 명상 또는 법에 대한 마음 챙김을 의미하는 法念處(Dhamm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이다.
여기에서 법(dhamma)은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과정의 많은 범주들을 포함한다.
첫 번째 범주는 다섯 가지 덮개(5蓋 pañca nīvaraṇa)이다.
1. 欲樂(kāmacchanda) 감각적 욕망
보이는 대상(色), 소리(聲), 냄새 (香), 맛(味), 감촉(觸)의 (5가지) 대상에 대한 욕망.
2. 惡意(Vyāpāda). 성냄 또는 악의.
3. 昏沈-睡眠(thīna-middha) 졸음, 정신적인 침체, 무거움.
4. 들뜸-회한(도거掉擧-회한 Uddhacca-kukkucca) 후회, 근심, 과거의 행위에 대해 마음 아파함.
과거에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것이 첫 번째 양상.
두 번째 양상은 해서는 안 되는 일 즉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온전치 못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것.
5 疑心(疑 vicikicchā) 회의적인 의심.
마음에 번뇌가 있는 한 수행자는 어떤 정신적 과정 또는 육체적인 과정도 자각할 수가 없다.
마음이 수행의 대상(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에 잘 집중해 있을 때
마음은 모든 번뇌 또는 덮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은 더욱 명료해지고 꿰뚫어 보게 된다.
꿰뚫어 보게 됨으로써 마음은 정신적·육체적인 과정의 본질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자각한다.
따라서 5가지 덮개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수행자의 마음 속에 생겨날 때에는 그는 그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를 들면 어느 수행자가 밖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그에게 노래를 듣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날 수 있다.
그는 반복해서 이 노래를 듣고 싶어 해서 그 노래에 빠져들게 된다.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그 욕망이 감각적 욕망 - 욕락(kāmacchanda)이다.
따라서 어떠한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때라도 ‘들음, 들음’ 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마음 챙김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여전히 노래 소리에 휘말려 들게 될 것이다.
만일에 그가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감각적인 욕망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사태나 사건에 부딪히게 되거나
수행에서 향상하는데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강한 마음 챙김에 의해 그것이 사라져 버릴 때까지
그 감각적인 욕망을 ‘욕망, 욕망’ 하고 알아차린다.
마음 챙김이 순일해지고 강해질 때 그 욕망은 사라진다.
욕망은 아주 주의 깊고 강력하게 관찰되었기 때문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수행자가 마음 속으로 ‘욕망, 욕망’ 하면서 알아차리면서 그의 감각적 욕망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거나 마음 챙길 때
그는 대념처경에서 붓다가 가르친 가르침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마음 챙기는 것을 법념처 또는 마음의 대상에 대한 마음 챙김 즉 덮개에 대한 마음 챙김인 것이다.
혼침-수면은, 실제로는 졸리움을 의미한다.
혼침-수면은 수행자들의 아주 ‘오랜 벗’이다.
수행자가 졸리움을 느낄 때 그는 그것을 즐긴다.
만일에 다른 즐거운 감각이 그에게 생겨나면 그는 그것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졸음이 올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혼침-수면은 수행자들의 아주 오랜 벗’이라고 한 이유이다.
이것 때문에 그는 윤회의 굴레 속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왔다.
만일 그 졸리움을 관찰할 수 없다면 그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
만일 그가 혼침-수면 또는 졸리움의 참된 본질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는 그것에 애착해서 즐길 것이다.
졸음이 올 때 우리는 수행에 보다 강한 정진력을 쏟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보다 주의 깊게, 보다 강하게, 그리고 밀착해서 관찰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 마음을 활동적이고 기민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음이 활동적이고 기민해질 때 졸음은 사라져 버린다.
그때 수행자는 졸리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들뜸-회한은 네 번째의 덮개이다.
들뜸은 안정되지 못한 상태 또는 산만한 상태이고 회한은 후회이다.
여기에서 들뜸이란 마음의 산만함, 마음의 불안정, 마음의 헤매임을 의미한다.
마음이 헤매이거나 알아차려야 할 수행의 대상 대신에 다른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것을 들뜸이라고 한다.
여러분의 마음이 헤매일 때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수행자들은 그 (헤매는 마음을) 관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마음이 헤매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는 자기 마음이 수행의 대상인 배의 움직임이나 호흡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헤맴, 헤맴’ 또는 ‘생각, 생각’ 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이 들뜸-회한을 관찰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덮개는 의심이다.
여러분은 붓다(佛), 담마(法), 상가(僧) 또는 수행의 방법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다.
어떤 의심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아주 주의 깊게 관찰되어져야 하고 있는 그대로 마음 챙겨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을 法念處(Dhamm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법에 대한 마음 챙김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것들이 4가지의 마음 챙김이다.
1. 신념처(kāy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몸 또는 육체적 현상에 대한 마음 챙김.
2. 수념처(Vedan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느낌 또는 감각에 대한 마음 챙김.
3. 심념처(Citt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마음과 그 부수물 또는 부속물에 대한 마음 챙김.
4. 법념처(Dhammānupassanā Satipaṭṭhāna) 법 또는 마음의 대상에 대한 마음 챙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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