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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비파사나 수행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2장 6.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2014-01-08 18:23:41

 

제2장 신념처身念處

 

6.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

위빠사나 수행은 실제로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이때 어떤 수행이든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은 수행자의 마음에 바라는 마음이나 성냄이 없는 상태에서 알아차림을 시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좌선에서는 눈꺼풀, 입술, 손, 엉덩이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경행에서는 서있는 몸의 자세를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죽 알아차리며 내려갑니다.

 

이것은 몸의 긴장을 푸는 과정으로 신념처 수행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이든지 알아차리겠다는 마음으로 수행을 시작합니다.

 

수행을 시작할 때는 우선 몸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대상으로 알아차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되면 그 다음 단계로 움직임과 함께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느낌이 나타나면 알아차리고 느낌이 없으면 그냥 모양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느낌을 보기 위해 느낌을 찾으면 인위적인 수행으로 대상의 자연적 성품을 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수행은 잘하려고 마음에 힘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알아차려야합니다.

수행자가 힘을 준다는 것은 잘하려는 욕망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라서 바른 알아차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마음을 가볍게 하고 다 수용하는 마음으로 알아차리면

점차 알아차리는 힘이 커져서 더 많이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1. 좌선

좌선은 몸의 네 가지 자세인 행주좌와 중 움직이지 않을 때 몸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합니다.

 

주로 들숨 날숨에 의한 물질적 현상이지만 때로는 가려움이나 통증 등도 알아차릴 대상이며

좌선 중 경험하는 정신적 현상으로 망상, 졸음, 싫증, 의심 등도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좌선은 달아나는 마음을 일단 몸에 붙이는 것으로

몸이라는 기둥에 마음을 알아차림이라는 끈으로 묶어서 여기저기 헤매는 마음을 길들이는 작업입니다.

 

좌선을 시작할 때

 

1) 바른 자세로 앉습니다.

몸의 긴장을 다 풀고 편안하면서도 바른 자세로 앉으십시오.

턱을 약간만 아래로 당기고, 허리는 편안하게 펴십시오.

손은 무릎 위에 편하게 올려놓으십시오.

발은 반가부좌를 하거나 두 발을 나란히 바닥에 놓는 평좌를 하십시오.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만큼 부담 없는 자신만의 편안한 자세로 앉으십시오.

 

2)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지금 내 마음에 바라는 것이 있는가, 미워하는 것이 있는가,

하기 싫어하는가, 졸리는가, 들떠있는가, 의심하고 있는가를 알아차리십시오.

어떤 마음이 있든지 그냥 ‘그런 마음이 있네!’하고 알아차리십시오.

 

3) 몸의 느낌을 직접 알아차려갑니다.

마음으로 눈꺼풀, 입술, 손, 엉덩이의 접촉된 부분의 느낌을 느끼고 내려갑니다.

이처럼 접촉된 부위에 있는 느낌들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해서 그 느낌들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자, 먼저 눈꺼풀이 있는 것을 아십시오.

눈꺼풀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이 느낌입니다.

이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십시오.

눈꺼풀이 서로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점차 닿아있는 부분에 따스함, 가벼움, 무거움, 떨림, 빛 등을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 인식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계속 그 느낌의 변화를 얼마동안 주시하십시오.

 

이제 입술로 갑니다.

입술이 닿아있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이제 입술에 있는 따뜻함, 촉촉함, 떨림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 변화를 보십시오.

또 느낌이 변하는 것을 얼마동안 주시하십시오.

 

다음은 손으로 갑니다.

손이 어딘가에 닿아있습니다.

손이 닿아있는 부분에 마음을 두고 그 모양이나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손에 있는 따스함, 쑤심, 진동 등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그중 한 느낌의 변화를 보십시오.

그 느낌의 변화를 얼마동안 주시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엉덩이로 갑니다.

엉덩이가 방석에 닿아있는 것을 아십시오.

그리고 닿아있는 부분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무거움 단단함 떨림 등의 느낌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지금 알고 있는 느낌을 대상으로 그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그 느낌의 변화를 얼마동안 주시하십시오.

 

4) 현재를 알아차립니다.

이제 마음을 현재로 가져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그냥 지켜보십시오.

현재 내 마음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마음이 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거나 고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이 아는 마음도 현재와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대상과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도 계속 생멸하면서 흐르고 있습니다.

얼마동안 이 마음의 흐름을 주시하십시오.

 

5) 몸의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다시 몸으로 돌아와 좌선을 하고 있는 자신의 자세를 전체적으로 크게 느껴봅니다.

가만히 몸 전체의 느낌을 주시합니다.

몸의 어디선가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호흡입니다.

 

호흡은 코, 가슴, 배, 몸의 일부에서 몸의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하나를 선택해서 그 자리에서 호흡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십시오.

호흡은 자연스런 호흡을 해야 합니다.

복식 호흡이나 단전호흡으로 호흡을 일부러 만들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호흡의 움직임 중에서 ‘일어남' 하나만을 알아차리십시오.

어느 정도 대상에 마음이 집중되면 이제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십시오.

좀 더 집중이 되면 일어남, 꺼짐, 쉼까지 알아차리십시오.

 

이렇게 처음에는 호흡의 일어남과 꺼지는 모양을 알아차리다가 점차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고 그 변화를 주시하면서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6) 장애를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호흡을 알아차리는 중에 마음은 어느덧 망상이나 통증 졸림 싫증 의심에 빠집니다.

이런 장애들을 없애려하거나 싫어하지 말고 나타나는 대로 알아차리고

즉시 몸으로 돌아와서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십시오.

 

7)

좌선 중에 이따금씩 앉아있는 자세가 바른지 몸의 자세를 살펴보고 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알아차려서

몸의 긴장을 풀고, 알아차림을 놓쳤더라도 시비하지 말고 다시 알아차림을 시작합니다.

 

또 이따금씩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가?’ 하고 현재를 알아차려보십시오.

만일 알아차림을 놓쳤다면 ‘놓쳤네!’라고 알아차리고 지금부터 다시 알아차림을 하면 됩니다.

 

좌선 중에 나타나는 대상은 무엇이든지 다 알아차릴 대상인 법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이 잘되길 바라거나 장애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나타나는 대로 모두 받아들여 알아차림으로 수용하십시오.

 

2. 경행

우리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움직이면서 지내는데 경행은 몸이 움직일 때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움직이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경행은 일상생활에서

가고, 서고, 눕고, 구부리고, 돌고, 허리를 펴고 등등으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할 때 알아차림을 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우리들은 어디를 갈 때 대부분 마음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현재의 몸에 있지 않고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미래로 달아나버려 현재를 놓친 것입니다.

때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 마음이 들뜨거나 근심걱정을 합니다.

 

이것은 현재에 깨어있지 못하고 대상에 빠져있는 것으로 불선심 상태입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경행을 하면서 알아차림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일상생활 속에서 움직일 때도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가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센터 수행시간표는 좌선과 경행이 1:1의 비율로 짜여있습니다.

좌선과 좌선 사이를 경행으로 알아차림을 하면 움직일 때나 움직이지 않을 때나 모두 알아차림이 이어집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모든 비밀이 경행에 있다고 할 만큼 경행은 중요합니다.

경행은 움직임의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므로 순간순간의 집중력을 길러줍니다.

그래서 경행으로 생긴 집중은 좌선으로 생긴 집중보다 오래 지속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좌선과 경행을 같은 비율로 수행했다고 합니다.

수행자들이 건강을 위한 특별한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오직 경행으로

다리의 근력을 키우고, 소화를 돕고, 혈액순환을 돕고, 체력을 길렀으며

탁발이나 전법여행을 나갈 때도 경행을 해서 알아차림을 유지했습니다.

그만큼 경행은 위빠사나 수행에서 법을 얻는데 반드시 필요한 수행입니다.

 

경행하는 방법

 

경행도 좌선과 마찬가지로 단계적으로 하는데

처음에는 알기 쉬운 것부터 가볍게 알아차리다가 점차 자세하게 알아차립니다.

경행의 순서는 서고, 가고, 서고, 돌고, 가고를 반복합니다.

 

1)

수행자는 먼저 왕복할 수 있는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서 몸의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정면을 향하여 섭니다.

몸의 긴장을 풀고, 두 손은 앞으로 모아 잡거나 뒤로 뒷짐 지듯이 잡습니다.

 

2)

경행을 하려는 현재의 마음을 한 번 알아차립니다.

바라는 마음, 하기 싫은 마음, 들뜬 마음, 아무 것도 없는 마음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3)

현재 서 있는 자세에서 마음으로 얼굴, 어깨, 손, 종아리, 발바닥 등 몸의 느낌을 직접 알아차리면서 죽 내려갑니다.

마음이 발까지 내려오면 발바닥이 바닥에 닿은 것을 알아차립니다.

 

4)

이제 한발 한발 걸으면서 발바닥이 닿는 것만 알아차립니다.

그다음 단계로 발뒤꿈치가 들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놓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것이 잘 이어지면 한 발 전체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그 다음 단계로 들어서 앞으로 놓음으로 한 걸음을 좀더 세밀하게 알아차립니다.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하고, 앞으로 갈 때는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걷습니다.

 

5)

끝에 가면 반드시 멈추어 서서 서있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다시 몸의 긴장을 풀고 현재의 마음을 한 번 봅니다.

 

6)

그다음 다시 돌면서 몸이 돌고 있는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돌아 설 때도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천천히 돌면서 발의 움직임을 모두 알아차리거나 혹은 어깨에 마음을 두고

어깨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다시 서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가려는 의도에 의해 앞으로 나가는 발을 알아차립니다.

 

7)

경행을 할 때 처음에는 발의 움직이는 모양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다가 점차 움직임에서 무겁고 가볍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잡히면 그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며 그 느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또 경행 중에 망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망상이라고 가볍게 알아차리고

다시 발의 움직임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이어갑니다.

 

8)

경행을 할 때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시선은 서너 걸음 앞의 바닥을 봅니다.

처음에는 약간 빨리 걷다가 차츰 적당한 속도를 유지합니다.

 

경행을 할 때 지나치게 천천히 걸으면 몸에 힘이 들어가므로

나중에는 피곤해져서 좌선하려고 앉으면 잠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9)

길을 걸으면서 혹은 운동장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을 때에는

발이 닿는 것만 알아차리거나 몸 전체의 움직임을 크게 주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마음이 집중되면 전면에서 발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경행을 이렇게 설명하지만 이것은 이론이고

실제로는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알아차려지는 만큼 알아차립니다.

 

수행자가 한 번에 너무 많은 대상을 완벽하게 다 알아차리려고 힘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완벽하게 다 보려는 마음 때문에 몸이 긴장하며 마음이 들떠서 대상에 마음이 붙어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려지는 만큼만 꾸준하게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입니다.

 

3. 와선臥禪

와선은 누운 자세의 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주로 아침에 잠에서 깰 때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또는 저녁에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자리에 누운 채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잠들기 전에 알아차리는 것은 그날 하루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마음이며

이런 알아차림을 통해 깨끗한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우면 몸이 최대한으로 이완되기 때문에 호흡이 잘 나타나서 호흡을 보기가 쉽고

또한 누웠을 때는 잠을 자는 일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욕망이 일어나지 않아 마음을 집중을 하기가 좋습니다.

 

이렇게 매일 자기 전에 알아차림을 하는 것이 숙련되면 죽을 때, 즉 정신이 혼미해질 때 알아차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수행자가 죽음을 맞이할 때 알아차림으로 깨어있는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면

다음 생을 결정하는 재생연결식이 맑고 청정합니다.

 

재생은 반드시 전생의 죽는 순간의 마음상태와 같은 파장의 몸과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생에서 닦은 알아차림의 힘은 바로 다음 생의 질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와선하는 방법

 

1) 아침에 일어날 때 알아차리기

① 누운 자리에서 먼저 잠을 깬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② 누운 상태에서 일어남, 꺼짐의 호흡을 얼마간 알아차리다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립니다.

 

사실 아침에 마음을 보면 벌써 근심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도 그 마음을 먼저 보아주고 현재로 돌아와 잠깐이라도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를 가장 좋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루를 좋게 시작하면 이 좋은 파장이 다음 마음에 영향을 주며 계속 좋은 파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저녁에 자기 전에 알아차리기

① 자리에 누운 상태로 먼저 잠을 청하는 현재의 마음을 한 번 알아차립니다.

② 침대 바닥에 닿아있는 몸의 아랫부분을 알아차려 내려갑니다.

③ 그 다음 몸의 윗부분으로 얼굴, 목, 가슴, 배를 알아차리다가 배에서 호흡이 잡히면 배의 일어남, 꺼짐을 알아차리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듭니다.

 

보통 와선을 하면 금방 잠이 드는데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잠이 들면 숙면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알아차림에 의해 마음에 번뇌가 없는 깨끗한 상태에서 잠들었기 때문에 악몽을 꾸거나 선잠을 자지 않습니다.

 

만일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잠을 못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고, 일어나 앉아서 좌선을 합니다.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면 자연스럽게 잠을 자면 됩니다.

 

보통 잠이 오지 않으면 지금 잠을 못자면 내일 힘들 것이라는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고 이 두려움이 자꾸 생각을 일으키고, 점차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불면증일 때는 반드시 불안해하는 현재의 마음을 먼저 보아주고 바로 몸의 호흡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가 낮 동안에 알아차림이 잘 이어져 의식이 명료하게 깨어있었으면

그 힘으로 밤에도 잠이 들지 않고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계속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수행센터에서 하루 종일 알아차림을 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아침까지 와선으로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잠을 자지 않았어도 아침에 몸이 가볍고 모든 피로가 풀려있습니다.

밤새 깨끗한 마음의 작용인 알아차림을 이어갔기 때문에 몸도 깨끗한 상태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4개월간 주무시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4. 일상생활에서의 알아차림

 

1) 일상생활이 모두 알아차릴 대상

우리들은 보통 하루 15시간 이상 활동을 하는데

그 중 한두 시간의 좌선과 경행을 해서는 알아차리는 힘을 쌓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활동하는 모든 시간을 알아차림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위빠사나 수행은 알아차릴 대상이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이므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하는 데는 돈이나 시간이 들지 않습니다.

단지 알아차리겠다는 의지만 필요합니다.

 

수행자에게 일상의 알아차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날그날의 평범한 일상 중에서 몸과 마음이 하는 모든 일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말을 할 때도 말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말을 해야 합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도 하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해야 합니다.

명상원에서 수행을 할 때 보다 일상생활에서는 알아차림을 더 놓치기 쉽기 때문에 더욱 알아차리려는 마음을 내야합니다.

 

2) 아침에 일어날 때와 저녁에 잘 때

아침에 잠에서 깨면 마음이 고요한가, 들떠 있는가, 깨끗한가, 깨끗하지 않은가 하는 것들을 알아차립니다.

그러고 나서 호흡을 몇 번이라도 알아차린 뒤에 일어납니다.

일어날 때부터 내 몸이 움직이는 느낌들을 하나하나 봅니다.

이때는 움직임보다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저녁에 잠을 잘 때도 아침에 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호흡을 주시하면서 잠을 자야 합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방문을 열고 닫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 세면장에서 양치질과 세수를 하는 것, 목욕을 하는 것을 모두 알아차립니다.

 

또한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주위를 둘러보거나 할 때

옷을 입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먹고 마시고 대소변을 볼 때까지도

그 순간순간에 하고 있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 모두 알아차리면서 해야 합니다.

 

지금 마음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고 현재에 마음을 두고 몸과 마음이 하는 일을 다 알아차리면서 행동을 합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다만 알아차리는 마음을 두기만 하면 됩니다.

 

3) 일상에서 알아차리는 노력이 필요

일상에서 알아차림은 뭔가 할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뭘 잡을 때마다 항상 알아차리면서 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 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 수행을 오래 하게 되면 내가 무엇 때문에 하는지, 왜 하는지, 이런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이익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지혜가 뒤따라옵니다.

자꾸 알아차리는 습관을 많이 들인 사람들은 지혜의 힘이 좋아져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좋은 업이 됩니다.

 

알아차림을 하는 사람들은 위빠사나의 지혜가 아주 높아지지 않아도

나쁜 행동을 하지 않게 되고 나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생각과 말과 행위로 불선업을 짓지 않는 정도가 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을 하는 것도 항상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생각이 이익이 있을 것 같으면 하고 이익이 없으면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마음이 벌써 먼저 다 생각을 한 뒤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면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 알아서 적절하게 행동하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탐심이 많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먹을 때는 항상 탐심을 가지고 먹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도 알아차리면서 먹어야 합니다.

수행자는 먼저 음식을 먹으려는 마음가짐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무슨 마음으로 먹는가’를 알아차린 뒤에 먹어야 합니다.

만약 탐심이 있다면 먹는 것을 중지하고 다시 그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한 뒤에 다시 ‘지금 무슨 마음으로 먹는가’를 알아차려서 탐심이 없을 때 식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탐심을 먹는 것입니다.

 

이처럼 먹을 때 먹는 동작을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탐심으로 먹는가’ ‘성급한 마음으로 먹는가’ 아니면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가’를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꼭 식사 시간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음식을 봤을 때

과자를 먹을 때, 그럴 때마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먹을 때 ‘성급한 마음이 일어나는가’ ‘탐심이 일어나는가’

‘더 먹으려고 하는가’ ‘배가 부른데도 많이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서 먹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알아차리는 습관은 약하고 탐심은 아주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마음을 알아차려서 마음에 급한 마음이 없고 편안해졌을 때 먹어야 합니다.

그다음 음식을 뜰 때 뜨는 것을 알고, 수저를 들 때 그것을 알고, 입에 넣을 때 넣는 것을 알면서 먹습니다.

그리고 씹을 때 씹고 난 후에 삼키는 것까지 모두 알아차림을 합니다.

 

식사 중에도 자주자주 마음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합니다.

성급한 마음이 있으면 음식을 먹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기 때문에 자꾸 마음을 점검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마음이 편안한가, 긴장해 있는가 하는 것들을 자꾸 점검해 봐야 합니다.

 

먹을 때 음식에 마음을 두지 말고 자신의 몸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즉 눈과 코와 혀에 마음을 두고 먹어야 합니다.

마음이 여러 반찬들로 왔다 갔다 하면 자꾸 탐심이 일어나서 성급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젓가락을 들고 이것저것을 탐색하며 음식을 밥상에 흘리기도 합니다.

 

또는 몇 번 씹지도 않고 성급하게 삼키거나 아직 삼키지도 않았는데 다시 음식을 입에 넣기도 합니다.

또한 남의 몫까지 먹습니다.

이 모두가 탐심을 가지고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탐심을 먹는 것입니다.

 

음식은 탐심으로 먹지 말아야 하고, 음식의 모양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닭고기, 돼지고기, 과일 등 음식의 모양이나 이름을 먹지 말고 그 음식의 고유한 맛을 먹어야 합니다.

닭고기라는 생각에 빠져 먹으면 알아차림을 놓칩니다.

닭고기는 관념이고 맛은 실재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하는 수행자들은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맛을 먹어야 합니다.

음식의 맛을 먹는다는 것은 맛의 변화를 알아차리며 먹는다는 것입니다.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냐 싫어하는 음식이냐에 따라 탐심과 성냄이 일어납니다.

이때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 없이 알아차리며 먹어야합니다.

단지 일어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알아차리기만 하면 좋거나 싫거나 하는 마음 없이 차분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법을 알아차리면서 먹게 되고 적당히 알맞게 먹게 될 것입니다.

 

5) 낮에 일을 하면서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자신의 발걸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다가 일을 생각하면 생각한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발걸음을 알아차립니다.

 

직장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말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직원들의 언행에 반응하는 경우 자신을 먼저 알아차릴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어 직장에서 가장 바르고 적절한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실수가 적어지고,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림이 없다면

대상과 부딪쳐 일어난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넘어가서 자신도 모르게 탐욕과 성냄으로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없는 순간이 많아지고 괴로움의 양과 질도 커집니다.

 

그 외에도 일상에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모든 행위와

거기에서 나타나는 느낌과 생각과 의도의 마음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이렇게 현재를 알아차리려고 노력만 하면 하루 종일 업무와 수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수행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실제로 선원에서 좌선이나 경행으로 알아차림이 숙련되면 일상에서 알아차림을 유지할 수 있고

이렇게 알아차림이 이어지는 수행자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현상을 알아차림으로 다 수용하는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수행자를 평화롭고 안락하게 살도록 이끌어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자주 알아차리려는 의도를 내어, 실제로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알아차림을 생각으로만 하고, 실제 알아차리는 행위가 없다면 이는 망상이지 수행이 아닙니다.

 

이때라도 현재 생각만 한 것을 알고

즉시 몸으로 돌아와 몸의 실재하는 느낌을 알아차리면 그때부터 위빠사나 수행이 시작됩니다.

 

6) 일상에서 알아차리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수행자가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집중하여 알아차리고 있다면 마음에 번뇌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곧 마음은 정화되고 고요해져서 오온의 성품을 볼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수행의 시작은 마음을 현재 자신의 몸에 붙이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처럼 일상에서 항상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 주의를 집중해서 알아차림을 이어가면

괴로움을 소멸하는 팔정도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 알아차림은 열반을 얻을 때까지 지속해야하는 깨끗한 마음 작용입니다.

수행자가 항상 알아차림이라는 티켓을 지니고 있으면 언젠가는 불사不死의 문 즉 열반에 도착하는 열차를 타게 됩니다.

 

7) 일상의 알아차림은 분명한 앎과 함께

일상에 알아차림은 분명한 앎과 연결됩니다.

대념처경의 신념처 중 분명한 앎 편에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로 돌아갈 때나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볼 때나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팔 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대가사와 다른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대 소변을 볼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

 

가고 서고 앉을 때도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도

말하거나 침묵하고 있을 때도 그는 분명한 앎을 하면서 행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한 앎은 현재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네 가지 분명한 앎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 이익이 있는가?

둘째, 시기 상황이 적절한가?

셋째, 지금 대상이 알아차릴 대상인 실재인가?

넷째, 지금 지혜로 대상을 보고 있는가?

 

이것이 네 가지 분명한 앎입니다.

결국 완전한 알아차림(正念)은 분명한 앎(正知)과 함께 하여 스스로 괴로움이 없는 삶을 선택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