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2014-01-08 18:33:40
제3장 수념처受念處
7. 육문六門과 육경六境의 상호작용
위빠사나 수행은 알아차림이라는 깨끗한 마음의 작용으로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아는 수행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려보십시오.
우리의 하루를 살펴보면
매 순간마다 눈 귀 코 혀 몸이라는 감각기관이 외부의 대상인 형상이나 소리 냄새 맛 감촉들과 만납니다.
그러면 내부에서 마음의 작용인 느낌과 생각과 의도가 일어나 대상을 받아들이고
즉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어떤 행위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진행 과정은 수명이 매우 짧은 찰나라는 것입니다.
매순간 대상과 촉하면서 대상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을 찰나의 간격으로 하고 나면
그 현상은 무대 뒤로 사라지고 즉시 새로운 현상이 무대 위에 다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은 조건에 의해 한 순간 일어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면서 계속 흘러갑니다.
즉 물질과 정신은 조건에 의해 찰나생 찰나멸 하면서 계속 흐르기 때문에
실제로 물질과 정신은 어느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그냥 그 흐름에 떠밀려갑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렇게 머물지 않고 계속 흐르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깨어서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은 대상을 자기 고정관념으로 덧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깨끗한 마음의 작용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바른 생각과 바른 말과 바른 행위가 나옵니다.
그러나 보통은 알아차림이 없이 살아온 습관의 힘에 떠밀려 대상을 촉하는 순간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에 휘둘려 그 순간의 느낌과 생각이 시키는 대로 말과 행위를 합니다.
이것은 무명을 바탕으로 갈애에 떠밀려 사는 것으로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만약 매 순간 경험하는 대상을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질적 정신적 현상으로 알아차리면
느낌에 휘둘려 대상을 붙잡지 않습니다.
아니면 지금 대상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린 만큼 부적절한 행위를 제어하고 바른 말과 행위를 합니다.
예를 들면 홍길동이 금강산 유점사로 스승인 백운도사를 찾아갈 때를 연상해봅시다.
홍길동의 여섯 감각기관은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눈으로 보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귀로 듣고, 꽃향기 흙냄새를 코로 맡고, 입안에는 달달한 침이 고이고,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과 햇빛을 느끼며, 마음으로는 조금 후에 만날 백운도사를 생각하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아리따운 낭자가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홍길동은 어느새 백운도사의 생각이 멈추고 낭자라고 알아보는 순간
좋은 느낌에 이끌려 낭자에게 유점사 가는 길을 물어봅니다.
이와 같이 여섯 감각기관으로 어떤 대상과 부딪치면
그 대상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반응을 하는 마음의 작용이 매우 빠르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보통은 여섯 감각기관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처럼
느끼면서 이들을 모두 내가 보고 느끼고 내가 아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또 반응하는 것도 ‘나’라고 압니다.
이것은 몸과 마음을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알고 살아온 고정관념입니다.
여기서 홍길동은 알아차림이 없이 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따운 낭자를 보자마자 낭자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고
그 느낌을 추구하는 갈애가 일어나서 낭자에게 말을 붙이는 행위까지 순식간에 한 것입니다.
만일 홍길동이 알아차리고 있었다면 경치를 볼 때는 눈을 통해서 경치를 보는 마음을 알고
새소리를 들을 때는 귀를 통해서 소리를 듣는 마음을 알고
꽃향기를 맡을 때는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는 마음을 알고
피부에 부딪치는 바람을 느끼면서 때로 좋다 싫다 분별이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현재를 알아차리면 그 순간 마음은 들뜨지 않아 갈애나 집착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때 길을 모르면 낭자에게 길을 묻지만 다른 뜻이 없었으므로 갈애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다섯 감각기관이 있어 이와 짝을 이루는 외부의 다섯 대상과 만나면
대상과 관련된 생각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덤덤한 느낌이 함께 올라옵니다.
이때 생각과 느낌에 따라 어떤 반응을 하겠다는 의지작용이 일어나 실제로 몸으로 입으로 행위를 하여 업을 짓고 삽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루 종일 대상과 부딪치고 그것을 아는 마음과 함께 수상행이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조건에 의해 생멸하는 색수상행식의 다섯 무더기가 실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원인과 결과로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온은 식識이 앞에서 수상행受想行과 색色을 이끌며 오온은 함께 일어났다가 함께 사라집니다.
여기서 한 순간에는 하나의 감각기관만 작용하며
오관을 통하여 받아들인 대상을 의식이 조사하고 결정하여 업을 짓습니다.
즉 마음은 대상이 있으면 반드시 일어납니다.
지금 나타난 대상이 원인이 되어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 찰나에 대상과 함께 그 마음도 사라집니다.
마음은 한 순간에 두개의 대상을 접수하지 못하고 한 마음이 두 순간을 머물지도 못합니다.
어떤 마음도, 어떤 행위도, 어떤 느낌도, 어떤 지각작용도, 어떤 물질적 현상도
두 찰나를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온은 無常합니다.
그러므로 무상한 색수상행식 어디에도 나의 것이나 나이거나 나의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여러 조건이 모여서 그 순간의 물질과 정신을 만들고 사라질 뿐입니다.
수행자가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몸과 마음 안에 변하지 않는
‘나’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통찰 지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 것이라고 알고 있던 지독한 고정관념을 깨고
오직 조건에 의해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흐름의 연속이라고 바르게 인식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려 오온에 대한 집착을 소멸합니다.
그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며 열반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여섯 감각기관은 알아차림이 없으면
바로 매순간 번뇌를 생산하여 그 힘으로 윤회를 하며
알아차림이 있으면 매순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생산하여
열 가지 족쇄를 끊고 괴로움을 소멸하여 윤회의 수레바퀴를 멈춥니다.
'經 > 비파사나 수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3장 9.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의 확립 (0) | 2023.01.30 |
---|---|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3장 8. 오온五蘊.의 무아無我 (0) | 2023.01.30 |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2장 6.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 (0) | 2023.01.30 |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2장 6. 신념처 수행 (0) | 2023.01.30 |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2장 5. 사대 요소의 특성, 기능, 나타남 (1) | 2023.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