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經/비파사나 수행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3장 8. 오온五蘊.의 무아無我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2014-01-08 18:35:14

 

3장 수념처受念處

 

8. 오온五蘊.의 무아無我

 

1. 위빠사나 수행의 지도地圖

 

1)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의 몸과 마음, 즉 오온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이해하는 작업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괴로움은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오온을 ''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알고

오온을 집착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수행자가 오온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2)

위빠사나 수행은 항상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직접 알아차려서 몸과 마음의 고유한 특성과 조건적 특성과

보편적 특성을 경험하면서 오온을 있는 그대로 보는 안목을 기릅니다.

 

이 몸과 마음은 단지 다섯 무더기인 색온色蘊과 수온受蘊과 상온想蘊과 행온行蘊과 식온識蘊의 모임이며 이것을 조절하는 실체는 없고 다만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의 흐름이라고 알게 됩니다.

 

3)

마음은 실제로 한 순간에 하나뿐이며

한 순간의 마음이 한 순간의 물질과 마음의 작용을 이끌며 함께 생멸하면서 계속 흐릅니다.

오온은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그 조건이 소멸할 때 오온도 소멸합니다.

그러므로 오온 안에 나의 실체나 주인은 없고 오직 그런 오온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만 있습니다.

 

4)

우리는 매순간 감각 기관과 감각 대상이 촉하면서 대상을 받아들이는데 바로 이 마음이 과보심입니다.

이 과보심이 사라지면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생각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의지 작용과 함께

업을 짓는 마음이 일어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일으킵니다.

이것은 지금 여기에서 새로 짓는 선업이나 불선업이 됩니다.

 

즉 지금 부딪치는 대상에 대한 감수작용, 지각작용, 의지작용의 보고를 받은 마음이 그 대상에 대하여

선하거나 불선한 의도를 일으키고 몸은 그런 마음의 명령을 받아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합니다.

 

5)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은 외부의 대상에 대하여

내부의 정보들이 종합되어 어떤 의지작용[行蘊]을 일으킬 때 깨어 있는 것입니다.

 

불선한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면 알아차림이 있는 선한 마음의 작용으로 바뀌어 행위를 합니다.

이 말은 과거에 지은 업의 과보로 나타난 현재를 알아차려서 과거에 행한 업의 과보는 받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괴로움을 만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알아차림으로 과거의 업을 잘 소화해낸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과 함께 일어난 깨끗한 마음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얻는 원인이 됩니다.

 

2. 오온에 대한 이해

 

1) 색온은 물질의 무더기입니다

물질은 마음과는 달리 모양과 형태를 갖추고 공간을 차지하여 분명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매순간 외부의 조건에 의해 변형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물질은 자신의 업에 의해 얻어진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모여서 물질의 무더기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 물질의 무더기는 끊임없이 조건에 따라 생멸하며 성장하고 또 늙어갑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 자체가 불만족이며

이런 불만족을 해결할 실체로서의 자아를 발견할 수도 없으면서 몸을 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몸에서 지수화풍이라는 사대 요소가 조건에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통찰해야 합니다.

 

2) 수온은 느낌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마음과 함께 반드시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납니다.

 

즐거운 느낌은 탐욕으로 괴로운 느낌은 성냄으로, 덤덤한 느낌은 그 느낌에 안주하는 어리석음으로 마음을 오염시킵니다.

이렇게 오염된 마음은 불선한 행위로 연결됩니다.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매 순간 느낌에서 갈애가 생기지 않도록 현재의 느낌을 법으로 알아차리고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고 그 느낌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조건에 의해서 생긴 한 순간의 느낌일 뿐이라고 있는 그대로 느낌의 성품을 통찰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느낌은 단지 알아차릴 대상일 뿐 내 느낌이 아닙니다.

 

3)

상온은 인식, 지각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마음과 함께

과거의 경험에서 생긴 인식, 지각, 표상작용이 일어나 대상을 관념화해서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想蘊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온을 내가 경험한 것이라고 집착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의 무더기는 자신만의 경험에 의한 견해일 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바른 정보가 아닙니다.

 

그 예로 어떤 한 물건을 100명이 보면 100개의 인식이 일어나며 그 인식의 내용은 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상도 자신만의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며 그 찰나에 사라지는 것으로 

내 것도 아니며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상을 나와 동일시하면

바로 자기 생각의 노예가 되며 자신만이 옳다는 아만과 독선으로 자신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상온이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통찰하여

자기의 상에 끌려가지 않으면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생기는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4)

행온은 의지작용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만나서 대상을 인식할 때 함께 일어난 느낌과 생각에 따라 새로운 의도가 일어납니다.

 

이런 의도에 의해 즉시 말이나 행위를 합니다.

그러므로 행온은 의업이며, 의업에 의해 구업과 신업이 일어납니다.

 

행온은 50가지로 깨끗한 마음의 작용 25가지, 선하지 못한 마음의 작용 14가지,

그리고 이 두 가지 마음의 작용과 함께 일어나 그와 같아지는 마음의 작용 11가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작용의 결과로 업이 생기고 이 업의 과보로 새로운 물질과 정신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 윤회의 주범입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가는 진정한 재산은 오직 자신의 업입니다.

 

5)

식온은 의식작용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의식작용은 조건에 의해 발생하고 조건이 변하면 그 자리에서 소멸합니다.

 

예를 들면 등잔에 기름을 넣고 심지에 불을 붙이면 불꽃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눈과 형상과 빛이라는 조건이 있을 때 안식이 생깁니다.

등잔의 불꽃은 세 가지 조건이 만나서 일어나며 그 중 한 조건만 사라지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불꽃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런 등잔불의 이치는 잘 알면서도 세 가지 조건에 의해 일어난 의식이나 느낌은 기억으로 저장하여

내 것으로 붙잡고 그 느낌이나 마음이 이미 사라진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대상을 경험하는 주체를 ''라고 알기 때문이며 바로 이것이 유신견이고 무명이며

이 무명을 바탕으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는 다시 집착과 업을 생성하여 괴로움을 일으킵니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대상을 아는 마음은 찰나적인 것으로 내 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다음 생으로 옮겨가는 윤회의 주체가 내 마음이 아니며 마음은 오직 조건에 의해 끊임없이 생멸하면서

흘러가는 다섯 무더기 중 하나이며 한 찰나만 실재하는 것이라고 알아 마음의 무상한 성품을 통찰합니다.

 

3. 오온의 실체 없음 -무아無我

 

우리는 흔히 몸과 마음을 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 안에는 라고 할 만한 실체는 없고 다만 라는 이름만 있습니다.

단지 조건에 의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물질과 정신을 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아無我라는 말은 물질과 정신의 작용은 분명하게 있지만

그 물질과 정신은 이름처럼 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매순간 경험하는 물질, 느낌, 지각, 의지, 아는 마음이 모두 내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도 아닙니다.

오온 중 어느 것도 경험하는 순간 반드시 사라집니다.

 

그래서 오온 중 그 어떤 것도 붙잡을 수는 없으며

또 아직 무명과 갈애가 남아있으면 오온이 계속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흐름을 멈출 수도 없습니다.

 

라는 관념을 오온이라는 법으로 해체하여

이 법의 무상무아를 보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아 갈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해탈이며 괴로움의 소멸입니다.

 

실제로 오온 자체는 매순간 생멸하도록 조건 지어져 있기 때문에 무상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데도

오온의 무상을 관찰하지 못하고 ''라고 하는 집착으로 갈애를 일으키고

그 과보로 일어난 괴로움을 피하려고 다시 업을 만들고 다시 그 업의 과보로 계속 윤회를 합니다.

 

이 과정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의 작용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오온이 무상, , 무아인 줄 몰라서 집착하였고

그 과보로 괴롭다면 지금부터라도 오온에 대한 알아차림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팔정도 위빠사나 수행이며

위빠사나 수행으로 소멸을 체험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이며 불교 수행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