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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中國哲學

논어論語 제1篇 학이學而

논어論語 제1 학이學而

 

(1-1)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학이시습學而時習 불역설호不亦說乎 배우고 익혔으니 역시 기쁘지 않겠는가,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남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습學習 경험의 결과로 나타나는 비교적 지속적인 행동 변화나 잠재력의 변화, 또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불역不亦∼호乎 반어적 기법을 사용하여 느낌을 강조함.

►붕朋 벗, 친구, 무리 같은 부류

►온慍 성내다, 원망하다, 마음에 맺힌 서운함

►군자君子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학식이 높은 사람, 또는 전에 높은 벼슬에 있던 사람을 이르던 말

 

논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문장이다.

그러나 공자가 이 말을 할 당시 정황을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와 있다.

내용으로 보아서는 공자가 말년에 지난날을 돌아보며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말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강한 자부심의 표현인지

자신을 몰라준 세상을 향해 스스로를 위로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공자가 배우고 익혔던 학문은 당시 벼슬에 나가기 위해 익혔던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六藝였을 것이다.

 

시습時習은 배운 것을 몸에 익숙하도록 시간을 내어 지속적으로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를 찾아온 벗(朋)은 뜻을 같이하는 무리 또는 같은 부류로서 동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한 친구를 의미하는 벗(友)과는 다르다.

멀리서 찾아온다는 것은 공자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을 익히는 기쁨은 공자 혼자만의 감정이지만

벗들이 찾아오니 즐겁다는 것은 남들과 같이 즐거워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이다.

이를 두고 위령공 15-38에서 말하는 유교무류有敎無類의 정신이라 하기도 하지만 너무 비약한 것이라 생각한다.

 

공자는 학문적·사상적으로는 성공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외면 받았다.

공자의 정치사상이 당시 현실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때때로 멀리서 찾아오는 벗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은둔 아닌 은둔생활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군자라고 외친 것은 공자의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러나 겸양을 강조하던 공자가 자신에게는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1-2)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유자왈有子曰 유자가 말했다.

기위인야효제其爲人也孝弟 이호범상자而好犯上者 선의鮮矣

부모에게 효도하고 윗사람에게 공손한 사람이 윗사람을 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불호범상不好犯上 이호작란자而好作亂者 미지유야未之有也

윗사람을 범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난을 일으키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군자무본君子務本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근본이 서야 길이 트이기 때문이다.

효제야자孝弟也者 기위인지본여其爲仁之本與 효와 제는 인의 근본이다.

 

►유자有子 성은 유有, 이름은 약若, 공자의 제자

►선鮮 적다, 드물다.

►범犯 범하다. 어긋나다. 속이다.

►미未 아니냐?, 못하느냐?

►무본務本 근본에 힘쓰다.

►도道 길,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인仁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하는 행동

 

효孝는 부모에 대한 효도이며 제弟는 형제에 대한 우애로서 윗사람을 섬기는 도리이다.

효제는 1-4에서 증자가 말한 충·신과 함께 인의 근본이다.

 

道는 길 또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하지만 유가나 도가에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천지만물을 창조해 내는 근원이며 우주를 지배하는 진리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는 효제를 실천하여 사람답게 만들어 가는 방법(길)을 의미한다.

 

仁은 사람과의 관계이며 인간 당위의 길이다.

인은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1-3)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교언영색巧言令色 선의인鮮矣仁

교묘한 말과 보기만 그럴듯한 태도에는 남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이 부족하다.

 

교언巧言 <詩經 소아小雅>

우무정雨無正의 교언여류巧言如流에서 따온 말로서 겉치레로 예쁘게 꾸며서 하는 말을 뜻한다.

 

영색令色 <詩經 대아大雅>

증민烝民의 영의영색令儀令色에서 따온 말로서 겉보기만 번드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자태를 말한다.

 

남에게 환심을 사기위해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고 얼굴표정을 보기 좋게 꾸미는 사람은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양화 17-17에 같은 내용이 나온다.

 

(1-4)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謨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曾子曰 증자가 말했다.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나는 하루 3번 나 자신을 반성한다.

위인모이불충호爲人謨而不忠乎 남을 위해 일하면서 정성을 다하지 않았는가?

여붕우교이불신호與朋友交而不信乎 벗들과 사귀면서 믿음을 저버리지는 않았는가?

전불습호傳不習乎 배운 것을 몸에 익숙하도록 익히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증자曾子 성은 증曾, 이름은 삼參, 자는 자여子與, 공자의 제자

►모謨 꾀하다, 헤아리다

►충忠 충성, 공평, 정성스럽다

►붕우朋友 (1-1)에서 언급한 벗(朋)은 뜻을 같이 하는 부류이나 여기에서는 뜻을 같이하면서도 마음에 맞는 친구.

 

증자의 생활태도를 나타낸 것으로 수신修身이 얼마나 힘든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불습傳不習은 다음과 같이 3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전해 받은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

남에게 전하고도 스스로는 익히지 못했는가?

스스로 익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전하였는가?

 

위 3가지 해석 중에서 전이불습傳而不習으로 보아 전해 받은 것 즉 배운 것을 익히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앞 (1-2)에서 유자는 효와 제를 강조했는데 증자는 여기서 충과 신을 강조하였다.

효제충신은 모두 인의 근본이다.

 

(1-5) 子曰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而時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도천승지국道千乘之國 경사이신敬事而信 나라를 이끌어가려면 (윗사람을) 공손히 섬기고 믿음이 있어야 하며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 사민이시使民而時 씀씀이를 절약하고 사람을 아껴야 하며 백성들을 부릴 때는 시기를 가려야 한다.

 

►천승지국千乘之國 제후국을 가리키며 방邦이라고도 한다. 주나라를 말할 때는 天下라고 하였다.

1승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1대에 무사 3명과 병사 17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仕 10승, 대부大夫는 100승, 제후는 1,000승이다. 10,000승은 天子만이 거느릴 수 있었다.

 

위정자들이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점을 사례를 들어 강조하였다.

윗사람에게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섬기고 믿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지 못하면 상하 간에 신뢰가 없어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나라살림에 대한 절용주의는 시대를 막론하고 적용되는 원칙이다.

愛人의 대상은 정무를 담당하는 벼슬아치들을 말한다.

공자는 백성들을 지배대상으로 보고 있다.

 

사민은 국가가 백성들을 강제로 부역에 동원하는 것으로

농번기 등을 피해야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1-6)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제자입즉효弟子入則孝 젊은이는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출즉제出則弟 밖으로 나가면 공손하여야 하며

근이신謹而信 언행을 조심하고 신의가 있어야 한다.

 

범애중이친인汎愛衆而親仁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사람을 가까이 하라.

행유여력行有餘力 즉이학문則以學文 그렇게 하고도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라.

 

►근謹 삼가다,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학문學文 시서詩書·육예六藝를 배우는 일

 

先行後文을 주장하였으므로 학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仁의 실천이 글을 배우는 것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7)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자하왈子夏曰 자하가 말했다.

현현역색賢賢易色 미인 보듯 현명한 사람을 존경하고

사부모事父母 능갈기력能竭其力 부모를 섬길 때는 있는 힘을 다하며

사군事君 능치기신能致其身 군주를 섬길 때는 목숨을 바치고

여붕우교與朋友交 언이유신言而有信 벗과 사귈 때 말에 믿음이 있다면

수왈미학雖曰未學 오필위지학의吾必謂之學矣 비록 배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배운 사람이라고 하겠다.

 

►자하子夏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갈竭 다하다, 물이 마르다.

 

현현역색賢賢易色은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만나면 마치 여색을 탐하듯 존경한다는 뜻이다.

“비록 못 배웠다 할지라도”라는 문구가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알아보고 존경하며

효·충·신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서 당연히 군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8)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군자부중즉불위君子不重則不威 학즉불고學則不固 군자가 묵직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도 고루하다.

주충신主忠信 충실함과 신의를 으뜸으로 삼고

무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 나보다 못한 사람과는 벗하지 말며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허물을 고치기를 망설이지 말라.

 

►위威 위엄, 두려워하다.

►고固 굳다, 완고하다, 고루하다.

►과過 지나다, 허물, 잘못하다

►물勿 말라, 아니다, 없다.

►탄憚 꺼리다. 삼가다.

 

군자가 지켜야 할 덕목으로 충과 신을 강조하였다.

충과 신은 (1-2)에서 강조한 효제와 함께 공자사상의 근본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적인데 나보다 못한 사람과는 벗하지 말라고 하면 사실상 벗을 사귀기 어렵다.

이를 두고 사귀되 본보기로 삼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같은 내용이 자한 9-24에도 나온다.

반면 술이 (7-21)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였다.

 

(1-9)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증자왈曾子曰 증자가 말했다.

신종추원愼終追遠 장례를 극진하게 치르고 제사를 정성껏 모신다면

민덕귀후의民德歸厚矣 백성들의 덕성이 두터워질 것이다.

 

►신종愼終 부모가 돌아가시면 근신하고 애도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장례를 극진하게 치르는 것.

►추원追遠 조상들에 대한 제사를 정성을 다해 모심으로써 오래도록 그 은혜와 공덕을 기리며 추모하는 것.

►덕德 인격적 능력 또는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는 마음이나 행동

►후厚 두텁다, 후하다, 친밀하다.

 

유가에서는 부모나 조상에 대한 제례를 효의 연장으로 보고 있으며 가정을 축소된 국가로 보고 있다.

가정에서의 효를 국가질서의 출발점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효가 제대로 실천되면 백성들의 민심 또한 순후해 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으로 주나라는 왕실과 제후는 부모와 자식관계로

제후끼리는 형제관계로 연결되어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공자는 국가를 가정의 확대개념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살던 시절에 벌써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와해되고 있었는데도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뿐이다.

또 이 주장은 가정과 국가는 그 본질부터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원인에 대한 진단부터 다르니 올바른 해결책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1-10)

子禽 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 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자금子禽 문어자공왈問於子貢曰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부자지어시방야夫子至於是邦也 필문기정必聞其政 선생님께서는 어느 나라를 가시던 반드시 정치에 대해 들으시는데

구지여求之與 억여지여抑與之與 (선생님이) 요구한 것인가요, (그들이) 원해서 함께하시는 것인가요?

 

자공왈子貢曰 자공이 말했다.

부자夫子 온량공검양이득지溫良恭儉讓以得之

선생님께서는 온화하고 선량하며 공손하고 겸양하시기 때문에 얻는 것으로써

 

부자지구지야夫子之求之也 기제이호인지구지여其諸異乎人之求之與

선생님께서 구하시는 방법은 남들이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자금子禽 성은 진陳, 이름은 항亢, 공자의 제자, 공자의 제자가 아니라 자공의 제자라는 설도 있다.

►문聞 듣다, 가르침을 받다. 들려주다.

►자공子貢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 공자의 5덕이라고 한다.

이들 중 온·량·공·검은 공자가 주장하는 인격(德)의 본질이지만 양은 형식을 갖춘 태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제자들이 공자의 행동을 두고 나누는 내용이다.

자금은 공자가 정치에 적극적인지 소극적인지 알고 싶어 물었지만

대답하는 자공은 스승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제자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자체가 공자의 행동이 매우 정치적이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공자는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여러 나라를 찾아다녔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자공은 제자로서 스승이 행한 정치행위를 조심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승을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자공의 어려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자금은 공자를 완전히 믿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자장 (19-25)에는 자금이 공자보다 더 현명하다고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로 미루어 자금은 공자의 제자가 아니라 자공의 제자라는 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1-11)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부재父在 관기지觀其志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 뜻을 살피고

부몰관기행父沒觀其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행적을 살피니

삼년무개어부지도三年無改於父之道 삼년동안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고치지 않아야

가위효의可謂孝矣 비로소 효자라고 할 수 있다.

 

►관觀 자세히 보다, 드러내다.

►몰沒 가라앉다, 잠기다, 다하다.

 

공자는 효의 실천, 특히 돌아가신 후의 장례 및 제사에 대하여 지나치리만큼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었다.

3년이란 기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화 (17-21)에는 공자가 삼년으로 주장하는 이유가 언급되어 있으며 헌문 (14-43)에는 3년을 지낸 사례가 언급되어 있다.

같은 내용이 이인 (4-20) 자장 (19-18)에도 거듭 나온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바뀌어도 3년을 고집하는 것은 무책임한 가르침이라 생각 한다.

아버지가 남긴 폐단이 작다면 모르지만 나라가 위태로울 정도로 큰 폐단도 3년을 기다려야 하나?

돌아가신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말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부모의 유업을 함부로 바꾸지 말라는 좋은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1-12)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유자왈有子曰 유자가 말했다.

예지용禮之用 화위귀和爲貴 예를 차리는 데는 화합이 중요하다.

 

선왕지도사위미先王之道斯爲美 소대유지小大由之

선왕의 예법이 아름다운 것은 작고 큰 것이 모두 여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유소불행有所不行 지화이화知和而和 불이예절지不以禮節之 역불가행야亦不可行也

실행하지 않은 때도 있었는데 화합하고 화합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예에 관한 절차가 아니라면 역시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

 

►유由 말미암다. ∼에서부터

 

예에 관한 절차나 질서, 즉 형식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예의 본질은 정신에 있는데 마치 형식이 근본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禮는 본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어 점차 인간의 생활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변모하였다.

그 결과 종교적 관습은 물론 사회적 관습(五禮)과 국가 정치제도(周禮)까지도 예의 개념으로 설정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和는 서로 뜻이 맞아 사이좋은 상태로서

예에는 본질(근본정신)과 형식의 두 측면이 있는데 당연히 전자가 本이 되고 후자는 末로 인식해야 한다.

 

절節은 禮에 따른 절차나 질서를 말하며 詩歌와 관련이 있다.

예禮는 형식이 따르지만 궁극 목적은 화합에 있음은 물론이다.

 

(1-13)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유자왈有子曰 유자가 말했다.

신근어의信近於義 언가복야言可復也 남과의 약속도 의에 맞으면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근어례恭近於禮 원치욕야遠恥辱也 공손함도 예에 맞아야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인불실기친因不失其親 역가종야亦可宗也 그러면서도 친근함을 잃지 않는다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신信 진실함에서 우러나는 믿음, 사람과 사람사이의 약속

►근近 가깝다, 딱 들어맞다.

►의義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올바른 도리

►복復 되돌아오다. 뒤집다, 실천하다

►인因 말미암아, 연유, 까닭

►친親 친하다, 가까이 하다, 사이가 좋다

►종宗 우두머리, 뛰어난

 

약속의 이행은 義가 信에 우선하며 공손함(恭)이 지나치면 過恭이 되어 예가 아닌 것이 된다.

여기서 의와 예는 알맞아야 하므로 중용사상과 연결된다.

인因은 여러 가지로 해석을 달리 하는데 앞서 나온 구절을 받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한 것 같다.

 

(1-14) 子曰 君子 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군자君子 식무구포食無求飽 군자가 배불리 먹기를 바라지 않고

거무구안居無求安 편안하게 지내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민어사이신어언敏於事而愼於言 일은 빠르게 처리하고 말은 조심하며

취유도이정언就有道而正焉 도리를 아는 사람을 찾아 바른 가르침을 받는다면

가위호학야이可謂好學也已 참으로 학문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포飽 배부르다, 가득 차다.

►민敏 재빠르다, 애써 일하다.

►신愼 몸가짐이나 언행을 삼가다, 근신하다.

►취就 쫓다, 따르다.

►유도有道 성인 또는 현인을 가리킨다.

►가위可謂 한마디 말로 하면, 참으로, 그런 뜻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하는 군자의 태도를 가르치려한 것이다.

그러나 앞의 가르침은 스스로 마음먹기에 따라 실천할 수 있겠지만

성인이나 현인을 찾아 가르침을 받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1-15)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謂之謂與

子曰 斯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왈子貢曰 자공이 말했다.

빈이무첨貧而無諂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이무교富而無驕 하여何如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가야可也 미약빈이락未若貧而樂 부이호례자야富而好禮者也

좋다. 그러나 가난하여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다.

 

자공왈子貢曰 자공이 말했다.

시운여절여차詩云如切如磋 여탁여마如琢如磨 기사위지위여其斯謂之謂與

<시경>에 절차탁마라 한 것이 이것을 이른 말인가요?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사야斯也 시가여언시이의始可與言詩已矣 사야(자공), 이제 너와 시를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저왕이지래자告諸往而知來者 지난 것을 일러주니 다음 것까지 아는구나.

 

►첨諂 아첨하다, 부정한 짓을 하다.

►교驕 교만하다, 무례하다, 버릇없다.

►약若 이와 같다, 이에

►저諸 모두 제, 어조사로 볼 때는 저로 읽는다.

 

詩는 <詩經>을 말하며 <詩經>은 중국 최초의 시가집으로 공자가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공은 학문이나 인격, 기예 등을 갈고 닦는 등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詩經 위풍衛風 기오淇奧>편의 일부를 인용하여 말하였다.

 

여기서 인용한 절차탁마切磋琢磨는 뼈나 뿔을 자르고 갈며 옥돌을 쪼고 갈아서

공예품이나 도구를 만든다는 뜻으로 학습과정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많다는 의미다.

 

(1-1)에서 말한 학이시습學而時習의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고저왕이지래告諸往而知來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보아도 무난할 것이다.

 

(1-16)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환부지인야患不知人也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모르는 것을 걱정하라.

 

►환患 근심, 걱정, 병들다.

►인人 사람, 논어에서는 남을 가기키는 경우가 많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으로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할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내가 남을 모르면 자신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인 (4-14) 헌문 (14-32) 및 위령공 (15-18)에도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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