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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中國哲學

논어論語 제3篇 팔일八佾

논어論語 제3篇 팔일八佾

팔일편은 주로 예악禮樂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3-1) 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위계씨孔子謂季氏 공자가 계씨에 대하여 말했다.

팔일무어정八佾舞於庭 자기 집 묘당에서 팔일무를 추게 하다니

시가인야是可忍也 숙불가인야孰不可忍也 그것도 차마 못할 짓인데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계씨季氏 계손季孫씨, 노나라 대부. 공자 계우季友의 후예

►팔일무八佾舞 8명이 8열로 64명이 추는 춤으로 天子의 묘당廟堂에서만 출수 있다.

제후는 36명, 大夫는 32명이며, 사仕 16명이다.

 

►정庭 조상을 모신 묘당廟堂

►인忍 차마 못하다, 참다

►숙孰 누구, 무엇

 

팔일무는 천자의 묘당에서만 추는 춤인데 노나라 대부에 불과한 계손씨가 자신의 권세를 믿고

자기 집 묘당에서 팔일무를 춘 것을 두고 공자가 천자에게 무례를 범하는 행위라고 한탄한 것이다.

 

(3-2) 三家者以雍徹 子曰 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삼가자이옹철三家者以雍徹 자왈子曰 삼가 사람들이 옹철로 제사를 끝내자 공자가 말했다.

상유벽공相維辟公 천자목목天子穆穆 제후들이 서로 도와 받드니 천자는 흐뭇하다고 했는데

해취어삼가지당奚取於三家之堂 어찌 삼가의 사당에서 쓸 수 있는가,

 

►상유벽공相有辟公 여러 제후들이 서로 도와 받들다.

►천자목목天子穆穆 천자가 기뻐하여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노나라 환공桓公에게는 중경仲慶·숙아叔牙·계우季友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후손인 맹손孟孫·숙손叔孫·계손季孫을 삼가 또는 삼환三桓이라 한다.

 

옹철雍徹은 주 무왕이 부왕인 문왕의 제사 때 불렀던 노래로서 <시경 周頌> 臣十之什의 옹(雍詩)을 말한다.

앞 (3-1)에서와 같이 천자만이 행할 수 있는 예법을 삼가에서 사용하고 있어 그 무례함을 지적한 것이다.

이들 세 집안은 그 세력이 제후를 능가하여 오만방자하고 몹시 무례하였으므로 공자는 이들을 매우 못마땅해 하였다.

 

(3-3)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인이불인人而不仁 여례하如禮何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데 예법이 무엇이며

인이불인人而不仁 여악하如樂何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데 음악이 무엇이냐.

 

►인仁() 어질다, 어진 사람, 사람다워야 한다는 의미로 쓰였음.

►여如~하何 의문사의 강조형.

 

공자는 예禮와 악樂을 인仁을 실행하는 근간으로 여기고

예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규범으로 악은 화합을 위한 가치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모든 예악은 예법에 맞도록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3-1), (3-2)에서와 같이 일개 대부가 천자의 예법을 함부로 행하는 것은

신하된 도리를 망각한 사람답지 못한 처사라고 한 것이다.

 

(3-4) 林放 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寧儉 喪與其易也寧戚

 

임방林放 문례지본問禮之本 자왈子曰 임방이 예의 근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대재문大哉問 좋은 질문이다.

예여기사야영검禮與其奢也寧儉 예는 사치한 것보다 검소한 것이 좋고

상여기이야영척喪與其易也寧戚 장례는 형식적인 것보다 슬퍼해야 한다.

 

►임방林放 노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라고도 하고 비간(比干)의 후예라고도 하나 확실치 않다. 예에 관심이 많은 인물

►여與∼령寧 ∼보다는 차라리

►이易 형식을 잘 갖춤.

►척戚 친척, 겨레, 슬퍼하다.

 

예의 근본은 형식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러나 학이(1-12)에서는 예의 운용에 있어서 화합만 알고 예에 관한 절차나 질서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여 형식 또한 중요하다고 하였다.

 

앞의 (3-1), (3-2)에서 언급한 것처럼 삼가 사람들이 분수모르고 사치하면서

지켜야 할 절차나 질서를 따르지 않는 무례를 지적한 것이다.

 

(3-5) 子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이적지유군夷狄之有君 불여제하지망야不如諸夏之亡也

오랑캐나라에 군주가 있는 것이 중국 여러 나라에 군주가 없는 것보다 못하다.

 

►이적夷狄 중국에서 주변의 오랑캐를 낮춰 부르는 말로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을 말한다.

►제하諸夏 중국의 여러 나라를 말함. 중화中華.

 

공자는 군주가 없다면 세상이 혼란스럽고 백성들이 살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리고 오랑캐 나라에는 군주가 있더라도 질서가 없고 혼란스럽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의 생각은 점차 중국 중심의 中華思想으로 발전하게 된다.

 

(3-6) 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如林放乎

 

계씨여어태산季氏旅於泰山 자위염유왈子謂冉有曰 계씨가 태산에서 여제를 지내자 공자가 염유에게 말했다.

여불능구여女弗能救與 너는 말리지 못하였느냐?

대왈對曰 불능不能 염유가 대답하기를 “말리지 못하였습니다.”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오호嗚呼 증위태산曾謂泰山 불여임방호不如林放乎 오호, 일찍이 태산이 임방만도 못하였다는 것인가.

 

►여旅 산천에 지내는 고유제告由祭로 제후가 지낸다.

►泰山태산 노나라에 있는 산으로 五嶽의 하나로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염유冉由 성은 염冉, 이름은 구求, 자는 자유子有. 공자의 제자, 계손씨季孫氏의 가신이다.

►불弗 아니다(=不)

►구救 구원하다, 고치다, 못하게 하다.

►증曾 일찍, 이미, 이에, 더하다.

 

태산은 천자가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받던 명산이므로

대부가 제를 올리면 예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태산도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태산을 의인화하여

임방과 비교함으로써 계씨의 무례함과 함께 여제 올리는 것을 막지 못한 임방을 꾸짖은 것이다.

 

(3-7)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군자무소쟁君子無所爭 군자는 다투지 않는다.

필야사호必也射乎 있다면 활쏘기겠지.

 

읍양이승揖讓而升 하이음下而飮 기쟁야군자其爭也君子

읍하고 양보하며 오르고 (지더라도) 내려와 술을 마시니 군자다운 다툼이다.

 

►읍揖 상대방에게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의 한 가지

►양讓 사양하다, 양보하다, 겸손해 하다.

 

활쏘기 시합은 승부를 다투는 기예다.

따라서 군자라 하더라도 승부를 다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합에 임할 때는 서로 사양하며 승패가 갈리더라도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술을 권하고 예를 차리니 여느 다툼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승부욕이 없을 수 있을까?

 

(3-8)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문왈子夏問曰 자하가 물었다.

교소천혜巧笑倩兮 미목반혜美目盼兮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 하위야何謂也

방긋 웃는 입술, 아름다운 눈, 얼굴이 희어서 더욱 곱다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회사후소繪事後素 하얀 바탕이 있어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지.

 

왈曰 예후호禮後乎 (그러자 자하가) 말했다. 예는 나중이라는 것이군요.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기여자起予者 상야商也 나를 일깨워주는 이가 바로 상(자하)이로구나.

시가여언시이의始可與言詩已矣 이제 너와 더불어 시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자하子夏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공자의 제자

►교소천혜巧笑倩兮 방긋 웃을 때의 고운 보조개

►미목반혜美目盼兮 초롱초롱 빛나는 예쁜 눈동자

►소素 바탕, 흰 빛의 비단. 꾸미지 않은 수수한

►현絢 무늬, 문채

►기起 일어나다, 일으키다.

 

<시경 國風 위풍衛風 석인碩人>에 있는 구절을 인용하여

형식에 치우치는 예보다는 예의 바탕이 되는 덕을 먼저 닦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3-9) 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하례오능언지夏禮吾能言之 기부족징야杞不足徵也 하나라의 예는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기나라는 증거가 부족하고

은례오능언지殷禮吾能言之 송부족징야宋不足徵也 은나라의 예는 내가 말할 수 있으나 송나라는 증거가 부족하다.

 

문헌부족고야文獻不足故也 족즉오능징지의足則吾能徵之矣

이는 옛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문헌만 있다면 나도 증거를 댈 수 있다.

 

►기杞 하夏 왕조의 후예들이 제사를 모시는 소국

►미徵 작다, 많지 않다.

►송宋 은殷 왕조의 후예

►문헌文獻 문은 전적典籍, 헌은 현인賢人을 말한다.

►고故 원래, 옛날의, 이미 지나간 때

 

공자는 하·은·주의 예를 중시하였다.

그리고 이를 되살리는데 힘을 쏟았다.

공자의 무조건적 복고주의는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고증을 중시하는 학문적 태도는 본받아야 할 것이다.

위징 (2-23)에도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3-10)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체자기관이왕자禘自旣灌而往者 오불욕관지의吾不欲觀之矣

체제를 지내며 스스로 강신까지 마쳤으니 나는 보고 싶지 않다.”

 

►체禘 천자가 종묘에 나아가 시조에게 올리는 제사

►관灌 술을 땅에 뿌리며 강신을 비는 예식

►왕자往者 지난번, 말하는 때 이전의 지나간 차례나 때

 

周의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체제禘祭를 제후국인 노나라에서 지내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공자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3-11) 惑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혹문체지설惑問禘之說 자왈子曰 어떤 사람이 체제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부지야不知也 모릅니다.

지기설자지어천하야知其說者之於天下也 천하에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여시저사호其如示諸斯乎 천하를 다루는 것이 여기 보는 것 같을 것입니다.

지기장指其掌 (하면서) 자기 손바닥을 가리켰다.

 

►체지설禘之說 체에 대한 학설

►어천하於天下 평천하平天下함에 있어서

►저諸 앞의 어천하於天下함을 말한다.

►사斯 이, 이것, 가르다, 떨어지다.

►장掌 손바닥, 일솜씨

 

체제는 선조를 덕을 사모하는 제사로서

그 이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쯤이야 손바닥 보듯 쉽다는 것이다.

 

공자가 왜 이렇게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앞의 (3-11)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천자가 지내야 할 체제를 노나라에서 지내는데 이제 와서 체제를 알아서 무엇 하겠느냐?

세상의 이치를 잘 안다면 그럴 수 있겠는가 하는 탄식으로 들릴 수도 있다.

 

(3-12) 祭 如在祭神 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제祭 여재제신如在祭神 제사는 제사로 모시는 신이 계신 듯이 지내고

여신재如神在 다른 신도계신 듯이 지내야 한다.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오불여제吾不與祭 여부제如不祭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제신祭神 제사로 모시는 신, 조상신을 말함.

►여신如神 조상신 이외의 다른 신도 같다는 의미

 

공자는 신이 실제 존재한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효도의 연장으로 조상신에 대하여는 제사 지내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하늘과 산천에 대하여는 그 절대성을 인정하여 제사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다만 민간에서 믿고 있었던 무속 신들에 대해서는 모호한 것 같다.

 

(3-13)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왕손가문왈王孫賈問曰 왕손가가 물었다.

여기미어오與其媚於奧 영미어조寧媚於竈 하위야何謂也

방구석 귀신에게 비느니 부엌 귀신에게 비는 것이 좋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자왈子曰 공자가 대답했다.

불연不然 그렇지 않습니다.

획죄어천獲罪於天 무소도야無所禱也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마저 없습니다.

 

►왕손가王孫賈 위衛나라 대부. 당시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미媚 아첨하다. 아양 떨다.

►오奧 아랫목, 나라 안

►조竈 부엌, 부엌귀신

►획獲 얻다, 빼앗다.

 

허수아비 군주(방구석 귀신)에게 충성하는 것보다 실권자(부엌귀신)에게 기대라는 오만함을 나무라며

하늘을 두려워하고 천명에 따라야 한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다른 해석도 있다.

당시 위나라 군주인 영공은 정사에 관심이 없었고 실권은 영공의 처인 남자부인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영공을 방구석 귀신으로, 남자부인을 부엌귀신으로 보아서 허수아비 군주인 영공보다는

실제 권력을 쥔 남자부인과 정사를 논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물음으로 보는 것이다.

공자의 대답은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3-14)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주감어이대周監於二代 욱욱호문재郁郁乎文哉 오종주吾從周

주나라는 두 왕조(하·은)를 본받았으니 그 문화가 매우 찬란하므로 나는 주나라 문화를 따르겠다.

 

►감監 보다, 살피다, 거울삼다.

►욱郁 성하다, 문채가 나는 모양

 

공자의 존주사상尊周思想에 대한 연원을 밝히고 있다.

공자는 주나라 문화가 앞의 두 왕조인 하나라와 은나라의 문화를 바탕으로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고 보았다.

 

(3-15) 子入大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 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子聞子曰 是禮也

 

자입대묘子入大廟 매사문每事問 혹왈或曰 공자가 대묘에 들어가 모든 것을 묻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숙위추인지자孰謂鄹人之子 지례호知禮乎 누가 추의 사람이 예를 안다고 하였나.

입대묘入大廟 매사문每事問 대묘에 들어오면 모든 것을 묻는구나.

 

자문자왈子聞子曰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시례야是禮也 그것이 바로 예의니라.

 

►대묘大廟 주공의 묘를 말한다.

►추鄹 공자의 아버지 숙양흘叔梁紇이 벼슬 살던 노나라의 마을이름으로 추지자鄹之子란 공자를 얕보고 한 말이다.

 

아는 것도 다시 물어 신중을 기하려는 것이 좋다는 의미이나 향당 (10-14)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제후인 주공의 대묘에서 천자의 예를 쓰고 있었기에 물어본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3-16)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사부주피射不主皮 활쏘기는 과녁 맞추는 것을 주장하지 않으니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 실력에 차등이 있기 때문이다.

고지도야古之道也 이것이 예전의 도리다.

 

►피皮 활쏘기 과녁

►위爲 ∼ 때문에. 이유

►력力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실력을 의미한다.

 

활쏘기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대비한 무예 습득과정의 하나로서 당연히 과녁을 적중시켜야 한다.

공자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위 (3-7)과 같이 친목도모를 위한 것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있다.

활쏘기는 힘보다 기술을 높이 평가하듯 세상사도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3-17) 子貢 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공子貢 욕거고삭지희양欲去告朔之餼羊 자왈子曰 자공이 고삭에 쓰이는 희생양을 없애려하자 공자가 말했다.

사야賜也 이애기양爾愛其羊 사(자공)야,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아애기례我愛其禮 나는 그 예를 아끼고 싶다.

 

►자공子貢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공자의 제자

►고삭지희양告朔之餼羊 초하룻날 제례 때 바치는 희생양.

비록 형식뿐인 예라 할지라도 없애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미다.

 

매월 초하룻날 지내는 고삭에 제물로 양을 바치고 이를 손님에게 접대하는데

그 날은 손님이 없으므로 자공이 희생양을 생략하자고 한 것인데

공자는 희생양까지 없으면 고삭의 예가 사라질까 염려하여 그대로 두라고 한 것이다.

 

(3-18)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사군진례事君盡禮 인이위첨야人以爲諂也

예를 다하여 군주를 섬기는 것을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하는구나.

 

►사事 섬기다, 일, 정치

►진盡 정성을 다하다.

 

당시 노나라에서는 권력자들이 군주를 업신여겨서 예를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공자가 군주에게 하는 예를 가지고 아첨한다고 했으니 당시의 세태가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3-19) 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정공문定公問 정공이 물었다.

군사신君使臣 신사군臣事君 여지하如之何 군주가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군주를 섬기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대왈孔子對曰 공자가 대답했다.

군사신이례君使臣以禮 신사군이충臣事君以忠

군주가 신하를 부릴 때는 예의를 갖추고 신하가 군주를 섬길 때는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정공定公 노나라의 군주, 양공襄公의 아들, 소공昭公의 아우로서, 소공의 뒤를 이어 군주가 됨.

►예禮 제도적인 지위와 봉록俸祿

►충忠 진심에서 우러나는 충성

 

공자는 군신 간에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군신 간에 지켜야 할 예를 소홀히 하여

신하를 예로 대하지 않았기에 신하가 충성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3-20)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관저關雎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

관저(증경이)는 즐겁되 음란하지 않고 슬프지만 애태우지 않는다.

 

►관저關雎 물수리(수릿과의 새), 징경이(=물수리)

<시경 周南 國風>의 머릿편에 있는 시,

관관저명關關雎鳴 재하지주在河之洲 물가의 징경이는 암수 서로 우나니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호구君子好逑 아리따운 아가씨는 임의 좋은 짝이로다.

 

관저의 시는 남녀의 만남을 읊은 축혼시祝婚詩라 할 수 있는데

예에 엄격한 공자도 순수한 애정의 표현은 음탕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즐거움과 슬픔은 음란하지 않고 애태우지 않게 절제하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3-21)

哀公問 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 以松 殷人 以栢 周人 以栗

曰 使民戰栗 子聞之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애공문哀公問 사어재아社於宰我 재아대왈宰我對曰 애공이 재아에게 사직단에 대해 묻자 재아가 대답하였다.

 

하후씨夏后氏 이송以松 은인殷人 이백以栢 주인周人 이율以栗

하나라 왕은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은 측백나무를 심었고, 주나라 사람은 밤나무를 심었습니다.

 

왈曰 사민전율使民戰栗 말하자면 백성들이 밤송이 보듯 무섭고 두렵게 하기위한 것입니다.

자문지왈子聞之曰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성사불설成事不說 수사불간遂事不諫 기왕불구旣往不咎

다 된 일이라 말할 것 없고, 끝맺은 일을 간하여 무엇 하며, 지나간 일을 탓하여 무엇 하겠느냐.

 

►애공哀公 노나라 임금. 정공의 아들. 이름은 장蔣.

►사社 토지신土地神. 따로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재아宰我 이름은 여予, 자는 자아子我. 공자의 제자

►하후夏后 하나라 왕

►전율戰栗 몹시 무섭거나 두려워 몸이 벌벌 떨림, 전율(=戰慄)

►수遂 끝내다, 마치다, 성취하다.

►구咎 재앙, 근심거리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밤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된다.

보통사람이라면 사직단을 세우면서 그 토지에 맞는 나무를 골라 심었다고 보지 않았을까.

그러나 공자는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이미 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이런저런 허물을 들춰내지 말라고만 했을 뿐이다.

 

(3-22)

子曰 管仲之器小哉 惑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 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자왈子曰 관중지기소재管仲之器小哉 공자가 말했다. “관중은 그릇이 작다.”

혹왈惑曰 관중검호管仲儉乎 어떤 사람이 물었다. “관중은 검소하였나요?”

 

왈曰 공자가 말했다.

관씨유삼귀管氏有三歸 관사불섭官事不攝 언득검焉得儉

관중은 3명의 아내를 두었고, 수하는 겸직시키지 않아 많았으니 어찌 검소할 수 있겠나.

 

연즉관중然則管仲 지례호知禮乎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관중은 예를 알고 있나요?

 

왈曰 공자가 말했다.

방군수새문邦君樹塞門 관씨역수새문管氏亦樹塞門

군주가 내외하려고 문으로 가리면 관중도 역시 그러한 문으로 가리고

 

방군위양군지호邦君爲兩君之好 유반점有反坫 관씨역유반점管氏亦有反坫

군주가 다른 군주와 우호를 위해 대를 쌓으면 관중도 역시 그러한 대를 쌓았으니

 

관씨이지례管氏而知禮 숙부지례孰不知禮 관중이 예를 안다고 하면 누가 예를 모르겠는가.

 

►관중管仲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여 포숙아鮑叔牙와의 깊은 우정이 유명하다.

管子를 저술하였다.

 

►기器 그릇. 여기서는 한 인물의 포용력을 의미함.

►삼귀三歸 삼성녀三姓女를 취함. 세 부인을 거느린 것을 의미

►섭攝 끌어당기다. 겸임兼任

►수새문樹塞門 내외를 구별하기 위하여 중간에 세운 문

►반점反坫 서로 술잔을 나누기 위하여 쌓은 대臺.

 

관중管仲은 춘추시대 제환공齊桓公을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공자는 헌문 (14-17), (14-18)에서 관중을 높게 평가하였다.

그러나 관중이 덕이 아닌 군사의 힘에 의존하여 천하에 군림한 것에 대하여는 이를 좋지 않게 여겼다.

 

(3-23) 子語魯大師樂曰 樂 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자어노대사악왈子語魯大師樂曰 공자가 노나라 대사에게 음악에 대하여 말했다.

악樂 기가지야其可知也 음악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작始作 흡여야翕如也 종지從之 순여야純如也 교여야皦如也 역여야繹如也 이성以成

처음에는 화합으로 시작하고 진행되면서 조화를 이루며 또렷해지다가 여운을 남기면서 마치고 있군요.

 

►대사大師 악사장

►흡여翕如 여러 소리가 함께 나오는 모양

►종지從之 진행과정

►순여純如 조화, 정리되어 하나가 됨

►교여皦如 명백한 음절

►역繹 소리가 실처럼 이어지다.

 

공자가 대사에게 음악의 구성을 알만하다고 한 얘기로서 이는 공자가 음악에 매우 밝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공자가 예와 더불어 악을 얘기한 것은 이처럼 음악에 깊은 소양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24)

儀封人 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의봉인儀封人 청견왈請見曰 의지방의 벼슬아치가 공자를 만나길 청하며 말했다.

군자지지어사야君子之至於斯也 군자들이 이곳에 오실 때 마다

오미상부득견야吾未嘗不得見也 제가 만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종자견지從者見之 모시던 사람이 만나게 해주었다.

출왈出曰 (벼슬아치가) 나오며 말하기를

이삼자二三子 하환어상호何患於喪乎 그대들은 어찌하여 슬퍼하며 근심하고 있나요?

천하지무도야구의天下之無道也久矣 천하에 도가 없어진지 오래 되었으나

천장이부자위목탁天將以夫子爲木鐸 하늘은 장차 선생님(공자)을 지도자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의儀 위衛나라 국경지방의 마을이름

►봉인封人 국경지대에 근무하는 벼슬아치

►미상未嘗 그렇지 않은 ∼바가 아님.

►이삼자二三子 그대들, 여러분

►목탁木鐸 군주의 명령을 내릴 때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흔드는 방울(풍경).

무인에게는 혀가 쇠로 된 것을 문인에게는 나무로 된 것을 사용했다.

 

공자가 벼슬을 잃어 제자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데 비록 지방의 벼슬아치에 불과하지만 공자를 만나보고는

천하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하며 제자들에게 무엇을 걱정하고 있느냐고 나무라고 있다.

의봉인의 높은 안목이 돋보인다.

 

(3-25) 子謂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子謂韶 진미의盡美矣 우진선야又盡善也 공자가 소악에 대하여는 아름답고 좋다고 하였으나

위무謂武 진미의盡美矣 미진선야未盡善也 무악에 대하여는 아름답지만 부족하다고 하였다.

 

►소韶 순舜임금이 만든 곡으로 평화로운 음악이다.

►무武 무왕武王의 음악으로 전투적이다.

 

공자의 음악평이다.

순임금은 선양禪讓하였으므로 그의 덕은 진선진미盡善盡美)하지만

무왕은 방벌放伐에 의했기 때문에 살기殺氣가 있어 진미선盡未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있다.

순임금의 음악은 九成이라 완벽하고 무왕의 음악은 六成이라 부족한 것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3-26)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거상불관居上不寬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위례불경爲禮不敬 예를 행함에 공경스럽지 못하고

임상불애臨喪不哀 상을 당하여 슬퍼하지 않으니

오하이관지재吾何以觀之哉 내가 이런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겠느냐.

 

이는 공자가 당시 벼슬아치들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며 어지러운 세태를 한탄한 것이다.

윗사람은 자칫하면 관용을 잃거나 예를 행할 때 본질보다 형식에 치우치고

상례에도 진심으로 슬퍼하기보다 남을 의식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를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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