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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中國哲學

논어論語 제14篇 헌문憲問

논어論語 제14篇 헌문憲問

헌문편은 주로 위정자들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져 있다.

(14-1)과 (14-2)는 같은 사람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으로 둘을 묶어 1장으로 보기도 한다.

 

(14-1)

헌문치憲問恥 자왈子曰 헌이 부끄러움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했다.

방유도邦有道 곡穀 방무도邦無道 곡穀 치야恥也

“나라에 도가 있으면 녹을 받아야 할 것이나 나라에 도가 없다면 녹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헌憲 본성은 원原, 이름은 헌憲, 자는 자사子思,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와는 다른 인물이다.

►곡穀 국록, 벼슬살이

 

나라가 질서가 서있다면 벼슬길에 나아가 녹을 받을 수 있지만 나라가 어지러우면

신하로서 녹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므로 벼슬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14-2)

극벌원욕克伐怨欲 불행언不行焉 가이위인의可以爲仁矣

(헌이) 묻기를 “남에게 이기려하고 자랑하며 원망하고 욕심 부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면 어질다 할 수 있나요?”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가이위난의可以爲難矣 인즉오부지야仁則吾不知也

“(실행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진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구나.”

 

►극克 남을 이기기 좋아하다. 이기고 싶어 하다. ►벌伐 자신을 과시하다. 자랑하다.

►원怨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원망하다. ►욕欲 남이 갖고 있는 것을 탐내다.

 

원헌이 위 (14-1)의 부끄러움에 이어 극벌원욕에 대하여 물은데 대한 대답으로

극벌원욕이라는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은 克己라 할 수 있다.

반면 仁은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사람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극기가 곧 인이라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14-3)

자왈子曰 사이회거士而懷居 부족이위사의不足以爲士矣

공자가 말했다. “선비가 사는데 연연한다면 선비답지 못하다.”

 

►회懷 품다, 연연하다. ►거居 지내다, 살림살이

 

사람은 누구나 단란한 가정생활과 집안의 안락함을 좋아하고 오래 지속되길 원한다.

그러나 선비가 안일한 생활에 빠져있으면 학문에서 멀어진다는 뜻이다.

 

(14-4)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방유도邦有道 위언위행危言危行 “나라에 도가 있다면 말도 대담하고 행동도 대담하여야 하지만

방무도邦無道 위행언손危行言孫 나라에 도가 없다면 행동은 대담하지만 말은 겸손해야 한다.”

 

►위危() 대담하다. 위험을 무릅쓰다. ►손孫() 겸손하다. 순종하다.

 

행동은 언제 어디서든 과감함을 요구하지만 말은 때때로 침묵이 요구된다.

따라서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말을 가려 조심해서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14-5)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유덕자有德者 필유언必有言 유언자有言者 불필유덕不必有德

“덕 있는 사람의 말은 들을 만 하지만 들을 만한 말을 한다고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자仁者 필유용必有勇 용자勇者 불필유인不必有仁

어진 사람은 용기가 있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유언有言 도리에 맞아 남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말

 

말에는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 하고 용기는 신념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바탕이 없는 자의 말은 큰 소리만 치는 것에 불과할 뿐 이를 어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4-6)

남궁괄南宮适 문어공자왈問於孔子曰 남궁괄이 공자에게 물었다.

예羿 선사善射 오奡 탕주盪舟 구부득기사俱不得其死

“예는 활을 잘 쏘고 오는 배를 산으로 올린 장사였으나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하였습니다.

 

연然 우직禹稷 궁가이유천하躬稼而有天下 그러나 우왕과 직은 직접 농사를 지었음에도 천하를 얻었습니다.”

부자부답夫子不答 남궁괄南宮适 출出 자왈子曰 공자가 대답하지 않고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군자재君子哉 약인若人 상덕재尙德哉 약인若人 “군자로다, 젊은이가. 덕을 높이는구나, 젊은이가.”

 

►남궁괄南宮适 남용南容, 공자의 조카사위

►예羿 유궁有躬의 군주, 하나라 재상. 성은 이吏. 활을 잘 쏘았다.

►오奡 예를 죽인 한착寒浞의 아들

►우禹 곤鯀의 아들로서 순임금 때 치수를 담당하였으며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하나라의 시조가 됨.

►직稷 순임금의 신하로서 周의 원조遠祖, 이름은 기棄

►궁가躬稼 몸을 굽혀 농사짓다. 직접 농사를 지었다.

 

군자는 꾸준히 선행하며 하늘의 화복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간혹 하늘이 악한 자에게 부귀를 주거나 선한자도 빈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사례가 있지만

어진 사람은 결코 선행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공자는 남궁괄을 칭찬한 이유다.

남궁괄(남용)에 대하여는 공야장 (5-1)과 선진 (11-5)에도 언급되어 있다.

 

(14-7)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군자이불인자君子而不仁者 유의부有矣夫 미유소인이인자야未有小人而仁者也

“군자로서 어질지 않은 사람도 있으나 소인이면서 어진 사람은 아직 없었다.”

 

군자는 노력하면 어진 사람이 될 수 있으나 소인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어진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로써 일종의 숙명론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가르침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과 같아 평소의 공자 생각과 맞지 않는다.

 

(14-8)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애지愛之 능물로호能勿勞乎 “사랑한다면 수고를 아낄 수 있는가,

충언忠焉 능물회호能勿誨乎 진심이라면 잘못을 깨우쳐주지 않을 수 있는가.”

 

►회誨 가르치다, 인도하다, 회개하다.

 

자식이나 제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이 덕을 쌓고 학문을 닦는데 어떠한 수고도 아끼지 않을 것이요,

벗이나 윗사람에게 진정으로 충성한다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깨우쳐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14-9)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위명爲命 비심裨諶 초창지草創之 세숙世叔 토론지討論之 “명을 받아 비심이 초안을 작성하여 세숙이 검토하고

행인자우수식지行人子羽修飾之 동리자산東里子産 윤색지潤色之 외교관 자우가 다듬고, 동리의 자산이 부드럽게 꾸민다.”

 

►명命 외교문서 ►비심裨諶 정鄭나라 대부 ►세숙世叔 정나라 대부, 성은 유游, 이름은 길吉

►행인行人 관직명 ►자우子羽 정나라 공손휘公孫揮 ►동리東里 자산이 살던 마을 이름

►자산子産 정나라 대부 공손교公孫僑, 목공穆公의 손(孫)

 

정나라에서 외교문서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외교문서를 이처럼 치밀하게 작성하는 것으로 보아 정나라의 주도면밀周到綿密함을 알 수 있다.

 

(14-10)

혹或 문자산問子産 자왈子曰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했다.

혜인야惠人也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다.”

 

문자서問子西 왈曰 (어떤 사람이) 자서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했다.

피재彼哉 피재彼哉 “그저 그런 사람이다.”

 

문관중問管仲 왈曰 (어떤 사람이) 관중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했다.

인야탈백씨병읍삼백人也奪伯氏騈邑三百 반소식몰치飯疏食沒齒 무원언無怨言

“그 사람은 백씨의 병읍 삼백호를 빼앗아 죽을 때까지 나물밥을 먹게 하였으나 (백씨는)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자서子西 초楚나라 公子, 왕위를 아우에게 양보하여 소왕昭王으로 세웠다.

►피재彼哉 보잘 것 없다.

►관중管仲 제나라 재상으로 제환공을 도와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만들었다. 포숙아鮑叔牙와의 우정으로 유명하다.

►백씨伯氏 제나라 대부

►몰치沒齒 죽음

 

공자의 인물평이다.

정나라의 자산은 백성들을 사랑하여 나라를 잘 다스린 사람이고,

초나라의 자서는 나라를 아우에게 양보하였으나 나중에 난을 일으켰으므로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제나라 관중이 백씨 병읍을 차지한 것은 관중이 직접 빼앗은 것이 아니라

그가 공을 세우자 제환공이 백씨의 읍호를 관중에게 넘겨주라고 한 것이다.

공자는 관중에 대하여 호의적으로 평하였는데 팔일 (3-22)에서는 관중이 예를 모른다고 하였다.

 

(14-11)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빈이무원貧而無怨 난難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는 것은 어렵지만

부이무교富而無驕 이易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부유하더라도 조금만 수양하면 교만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가난하면 불평과 원망이 생기기 쉬운 것이다.

사람이란 가난할 때도 있고, 부유할 때도 있으니 가난하고 부유함 그 자체가 사람 됨됨이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학이 (1-15)에 비슷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14-12)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맹공작孟公綽 위조위로즉우爲趙魏老則優 불가이위등설대부不可以爲滕薛大夫

“맹공작은 조나라나 위나라의 신하가 되면 잘 하겠지만 등나라나 설나라의 대부가 될 수는 없다.”

 

►맹공작孟公綽 노나라 대부, 맹씨 일족

 

(14-10)에 이은 공자의 인물평이다.

노나라 대부 맹공작은 찬찬하고 욕심이 없으므로 조나 위나라 같이 큰 나라에서 신하 노릇을 할 수 있지만

경대부로서의 능력은 모자라기 때문에 등이나 설나라 같이 작은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직책은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이다.

 

(14-13)

자로문성인子路問成人 자왈子曰 자로가 성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했다.

 

약장무중지지若臧武仲之知 공작지불욕公綽之不欲 변장자지용卞莊子之勇

“만일 장무중의 지혜와 맹공작의 무욕과 변장자의 용기와

 

염구지예冉求之藝 문지이례악文之以禮樂 역가이위성인의亦可以爲成人矣

염구의 기예를 갖추고 예와 음악으로 꾸민다면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왈曰 (공자가) 말했다.

금지성인자今之成人者 하필연何必然 “요즈음 성인이란 어찌 꼭 그렇기야 하겠느냐.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이익이 생기면 의를 생각하고 위험을 당하면 목숨을 내놓으며

 

구요久要 불망평생지언不忘平生之言 역가이위성인의亦可以爲成人矣

​오래된 약속도 평생 잊지 않으면 역시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로子路=계로季路.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공자의 제자

►장무중臧武仲 노나라 대부. 장문중臧文仲의 손자. 이름은 흘紇. 삼환일파에게 밀려 제나라로 망명하였다.

►공작公綽 孟公綽맹공작

►변장자卞莊子 노나라 변읍의 대부. 호랑이를 잡은 장사

►염유冉由 성은 염冉, 이름은 구求, 자는 자유子有, 공자의 제자. 계손씨季孫氏의 가신이다.

►하필何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공자가 말하는 성인이란 사실상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예를 든 인물들 하나하나도 본받기 힘든데 이들을 모두 합친 인물에다가

또 예와 음악으로 꾸며야 한다니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14-14)

자문공숙문자어공명가왈子問公叔文子於公明賈曰 공자가 공숙문자에 대하여 공명가에게 물었다.

신호信乎 “믿을 수 있나요?

부자불언불소불취호夫子不言不笑不取乎 그 분이 말도 안하고 웃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는 것이.”

 

공명가대왈公明賈對曰 공명가가 대답했다.

이고자과야以告者過也 “얘기한 자가 지나쳤습니다.

부자시연후언夫子時然後言 인불염기언人不厭其言 그 분은 때가 되어서야 말을 하니 사람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으며

낙연후소樂然後笑 인불염기소人不厭其笑 즐거워야 웃으니 사람들이 웃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의연후취義然後取 인불염기취人不厭其取 올바르다는 것을 안 다음에야 받으니 사람들이 받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기연其然 기기연호豈其然乎 “그러합니까. 어찌 그럴 수 있나요.”

 

►공숙문자公叔文子 위衛나라 대부.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발發 또는 지枝. 文은 시호

►공명가公明賈 위나라 사람.

 

세간의 공숙문자에 대한 평가에 대하여 긍정적이다.

무조건 불언·불소·불취가 아니라는 것을 공명가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기기연호豈其然乎라는 말로서 이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4-15)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장무중臧武仲 이방以防 구위후어노求爲後於魯 “장무중이 방 지방을 점유하여 후계자를 세우려고 노나라에 요구했는데

수왈불요군雖曰不要君 오불신야吾不信也 비록 군주에게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나 나는 믿지 않는다.”

 

►방防 장무중이 점거한 고을 이름 ►위후爲後 후계자를 세우다. ►요要 요구하다, 위협하다.

 

장무중이 맹숙씨를 해하려다 실패한 후 노나라를 떠나게 되었을 때

그의 형 세위歲爲로 하여금 장손씨臧孫氏의 뒤를 잇게 하기 위하여 방 지방에서 버틴 일이 있었다.

이때 장무중이 군주에게 후계자의 승인을 요구한 것이 강요라고 여겨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14-16)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진문공晉文公 휼이부정譎而不正 “진문공은 속임수를 쓰니 바르지 않고

제환공齊桓公 정이불휼正而不譎 제환공은 바르기에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진문공晉文公 이름은 중이重耳, 헌공獻公의 아들.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다 돌아와 춘추오패의 한사람이 되었다.

►휼譎 속이다, 사기 치다.

►제환공齊桓公 이름은 소구小臼, 희공僖公의 아들.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최초로 패자.

 

두 사람 모두 춘추오패의 패자들이지만 진문공은 권모술수를 써서 세도를 누렸으나

제환공은 관중의 도움을 받아 대의명분을 내세워 군자답게 처신하였으므로 후하게 평가한 것이다.

 

(14-17)

자로왈子路曰 자로가 말했다.

환공살공자규桓公殺公子糾 소홀사지召忽死之 관중불사管仲不死 왈曰 미인호未仁乎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을 때 소홀은 따라서 죽고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말하자면 어질지 못한 것인가요?”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환공桓公 구합제후九合諸候 불이병거不以兵車 “환공이 제후를 규합할 때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다.

관중지력야管仲之力也 여기인여기인如其仁如其仁 그것이 어진 것이다. 그것이 어진 것이다.”

 

►공자규公子糾 환공의 이복형 ►소홀召忽 공자 규의 스승

 

제나라 희공이 죽자 당시 외국에 있던 공자 규와 환공이 먼저 제나라로 돌아가려고 다투었다.

이때 규의 스승이던 소홀과 관중이 동행했으나 소홀은 죽고 관중은 살아남아 환공을 도와 천하를 제패하였다.

관중은 비록 공자 규를 따라 죽지 않았으나 그의 정치적 공적은 제대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공자는 팔일 (3-22)에서 관중이 예를 모른다고 하였다.

 

(14-18)

자공왈子貢曰 자공이 말했다.

관중管仲 비인자여非仁者與 “관중은 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환공桓公 살공자규殺公子糾 불능사不能死 우상지又相之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을 때 따라 죽지도 못하고 더구나 돕기까지 하였습니다.”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관중管仲 상환공패제후相桓公覇諸侯 일광천하一匡天下 민도우금民到于今 수기사受其賜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들의 패자가 되어 천하를 하나로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도 그 은혜를 입고 있다.

 

미관중微管仲 오기피발좌임의吾其被髮左袵矣

만일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게 되었을 것이다.

 

기약필부필부지위량야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자경어구독이막지지야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어찌 평범한 사람들이 하찮은 의리를 위하여 구렁텅이에 빠져 목매어 죽어도 모르는 것과 같겠느냐.”

 

►자공子貢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공자의 제자

►상相 보필하다. ►광匡 바로잡다. ►도우금到于今 천하를 하나로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미微 부정사(=無) ►피발被髮 머리를 풀어 올리다 ►량諒 하찮은 의리

►경經 목매다 ►구독溝瀆 하수도 도랑,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

 

(14-17)에서 자로가 물은데 이어 이번에는 자공이 관중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한 것이다.

공자는 관중의 정치적 수완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작은 의리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그의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태도는 그의 정치사상과 다른 측면이 있다.

 

피발좌임被髮左袵을 오랑캐로 해석하고 있는데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것은 그들의 풍속으로서 공자는

관중이 없었다면 중국이 주변의 오랑캐들의 침입을 받아 오랑캐의 문물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史記>에 북융北戎이 연나라를 치자 연나라가 위급함을 제나라에 알려

제환공이 연나라를 구하고자 산융山戎을 친 기록이 있다.

이때의 북융과 산융이 곧 우리나라 고조선을 가리킨다는 주장이 있다.

 

(14-19)

공숙문자지신대부선公叔文子之臣大夫僎 여문자與文子 동승제공同升諸公

공숙문자는 가신인 대부 선이 문자(자신)와 같은 지위로 올려 조정에 나가게 하자

 

자문지子聞之 왈曰 가이위문의可以爲文矣

공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문이라는 시호를 줄만도 하다.”

 

►선僎 위나라의 대부. 본래 공숙문자의 가신이었다.

►승升 벼슬을 올리다. 천거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이 출세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공숙문자는 가신을 군주에게 추천하여 자신과 같은 등급의 신하가 되게 하였으니

그의 도량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으며 공자는 이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14-20)

자언위령공지무도야子言衛靈公之無道也 강자왈康子曰 공자가 위나라 영공의 무도함을 말하자 강자가 말했다.

부여시夫如是 해이불상奚而不喪 “그와 같은데 어찌 망하지 않을까요?”

 

공자왈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중숙어仲叔圉 치빈객治賓客 축타祝鮀 치종묘治宗廟 “중숙어는 외교를 맡고 축타는 종묘를 맡고

왕손가王孫賈 치군려治軍旅 부여시해기상夫如是奚其喪 왕손가는 군무를 맡고 있으니 어찌 망할 수 있겠습니까.”

 

►위령공衛靈公 이름은 원元, 남자부인에게 빠져 정사를 게을리 했다.

►季康子계강자 노나라 대부. 성은 계손季孫, 이름은 비肥, 강康은 시호, 계환자季桓子의 뒤를 이어 대부가 되었다.

►중숙어仲叔圉 공문자孔文子 성은 공孔, 이름은 어圉 또는 중숙어仲叔圉. 文은 그의 시호諡號. 위衛나라 대부

►축타祝鮀 위나라 제관, 이름은 타鮀, 자는 자어子魚,

►왕손가王孫賈 위衛나라 대부. 당시의 세도가

 

이러한 인물들은 비록 군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할 일을 했기 때문에

비록 위영공이 무도하다 하더라도 나라가 망할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역시 인사가 만사다.

 

(14-21)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기언지부작其言之不炸 즉위지야난則爲之也難

“말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 말을 실행하기 어렵다.”

 

►작炸 부끄럽게 여기다.

 

공자는 말을 앞세우고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언행불일치를 항상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14-22)

진성자시간공陳成子弑簡公 공자목욕이조孔子沐浴而朝 고어애공왈告於哀公曰

진성자가 제나라 간공을 시해하자 공자가 몸을 깨끗이 하고 조정에 나아가 애공에게 고하였다.

 

진항陳恒 시기군弑其君 청토지請討之 “진항이 그의 군주를 죽였으니 토벌하시길 청합니다.”

공왈公曰 고부삼자告夫三子 애공이 말했다. “삼환들에게 말하시오.”

 

공자왈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이오종대부지후以吾從大夫之後 불감불고야不敢不告也 “내가 대부의 일을 맡고 있어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는데

군왈君曰 고부삼자자告夫三子者 군주께서는 삼환에게 얘기하라 하시는 군요.”

 

지삼자고之三子告 불가不可 공자왈孔子曰

(공자가) 삼환에게 얘기하였으나 안 된다고 하자 공자가 말했다.

 

이오종대부지후以吾從大夫之後 불감불고야不敢不告也

“나도 대부의 일을 맡고 있어 감히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성자陳成子 이름은 항恒, 시호는 성成. 제나라 대부

►간공簡公 제 경공景公의 손자, 성은 강姜, 이름은 임壬

►애공哀公 노나라 군주, 정공定公의 아들, 휘는 장將

►삼자三子 노나라의 삼대가문인 계손·맹손·숙손을 말함.

 

제나라 환공 때 진陳나라 여공의 아들 완이 망명해 와 일가를 이루고 田씨 성을 얻게 되었으며

훗날 전국시대에 세력이 강해진 전씨가 제나라 군주를 죽이고 강姜씨 제나라에서 전씨田氏의 제나라로 바꾸게 된다.

 

진성자는 전걸田乞의 아들로 간공을 죽이고 간공의 동생을 군주에 앉힌 뒤 실권을 잡았다.

공자는 이웃나라의 하극상을 기회로 이를 토벌하자고 주장하였으나 당시 노나라 실권은

애공에게서 삼가에게로 넘어간 상태였기에 애공은 삼가에게 떠넘기고 삼가는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공자는 애공에게 고하고 다시 삼가에게 가서 얘기한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자신이 대부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러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다.

정치세계에서 실권 없는 처지가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4-23)

자로문사군子路問事君 자왈子曰 자로가 군주를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물기야勿欺也 이범지而犯之 “숨기지 말고 올바르게 간하여라.”

 

►기欺 남을 속이다.

►범犯 침범하다, 어기다, 위험을 무릅쓰고 옳은 말을 한다.

 

해치다 또는 침범하다는 뜻을 가진 범犯을 의역해서 면전에서 또는 위험을 무릅쓰고 간한다고 해석하였다.

진정으로 군주를 섬긴다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침범하다로 볼 경우에는 반역행위가 되버린다.

 

(14-24)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군자상달君子上達 소인하달小人下達 “군자는 위로 통하고 소인은 아래로 통한다.”

 

참된 삶에 뜻을 둔 군자는 자기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아 날로 인격이 높아지지만

잇속만 챙기는 소인은 날로 타락해 간다는 뜻이다.

 

(14-25)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고지학자古之學者 위기爲己 금지학자今之學者 위인爲人

“옛날에는 자기를 위해서 공부하였는데 지금은 남 때문에 공부한다.”

 

►위爲 ∼에게 도움이 되다.

 

학문은 자기 인격을 높이고 실력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 나를 위한 공부라 하더라도 결코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 공부하는 세상풍토를 개탄한 것이다.

 

(14-26)

거백옥遽伯玉 사인어공자使人於孔子 공자여지좌이문언왈孔子與之坐而問焉曰

거백옥이 사람을 공자에게 보내오자 공자가 함께 앉아 물었다.

 

부자夫子 하위何爲 “그 분(거백옥)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대왈對曰 (심부름꾼이) 대답하였다.

부자욕과기과夫子欲寡其過 이미능야而未能也

“그 분께서는 잘못을 줄이고 싶어 하시지만 잘 안되시나 봅니다.”

 

사자출使者出 자왈子曰 사자가 돌아가자 공자가 말했다.

사호사호使乎使乎 “훌륭한 심부름꾼이다. 훌륭한 심부름꾼이다.”

 

►거백옥遽伯玉 이름은 원瑗 자는 백옥伯玉. 위나라 대부

►부자夫子 거백옥을 가리킨다.

 

거백옥의 사람됨이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심부름꾼이

이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은 심부름꾼 또한 예사 심부름꾼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14-27)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부재기위不在其位 불모기정不謨其政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참견하지 말라.”

 

한 마디로 자기 분수를 알라는 것이다.

대부의 자리에 있으면 대부다운 정책을 논하고 아무 지위도 없으면 정책에 간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자가 주장한 정명론에 부합하는 말이다.

태백 (8-14)에 같은 내용이 나온다.

 

(14-28)

증자왈曾子曰 군자君子 사불출기위思不出其位

증자가 말했다. “군자는 생각이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증자曾子 성은 증曾, 이름은 삼參, 자는 자여子與. 공자의 제자

 

사람은 각자 자기의 자리가 있으므로 그 자리를 벗어나 일을 도모한다면 이는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 된다.

따라서 (14-27)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모든 일은 각자 자기가 맡은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14-29)

자왈子曰 군자君子 치기언이과기행恥其言而過其行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지나침을 부끄러워한다.”

 

군자는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중용에서 언고행言顧行 행고언行顧言이라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다.

말을 하고자 할 때는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을 하고자 할 때는 말한 바를 돌아보아야 한다.

말은 행실을 들여다보고 행실은 말을 들여다보란 말이다.

언행일치를 말한다.

 

(14-30)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군자도자삼君子道者三 아무능언我無能焉 “군자의 길은 셋이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인자불우仁者不憂 지자불혹知者不惑 용자불구勇者不懼

어진 자는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흔들리지 않으며 용감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공왈子貢曰 부자자도야夫子自道也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자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군자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 즉 인과 지와 용에 대하여 말한 것으로

중용에서 말하는 지천명, 행인, 항구불식이 곧 知·仁·勇이다.

자한 (9-28)에 같은 내용이 나온다.

 

(14-31)

자공子貢 방인方人 자왈子曰 자공이 남과 비교하자 공자가 말했다.

사야賜也 현호재賢乎哉 부아즉불가夫我則不暇 “사(자공)는 잘났구나. 나는 그럴 틈이 없었는데.”

 

►방方 비교하다. 견주다.

 

현호재賢好哉는 참으로 현명하다는 것이 아니라 잘난체한다고 비꼬는 말이다.

학문의 연마와 자기수양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남을 비교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자공을 꾸짖는 말로서

 

(14-32)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환기불능야患其不能也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이 걱정이다.”

 

모든 것은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므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온 힘을 다하여 실력을 쌓으면 저절로 남이 알아줄 것이라는 말이다.

학이 (1-16), 이인 (4-14) 및 위령공 (15-18)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14-33)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불역사不逆詐 불억불신不億不信 억역선각자시현호抑亦先覺者是賢乎

“속인다고 넘겨짚지 않고 의심한다고 추측하지 않으면서도 앞일을 먼저 안다면 현명한 것이다.”

 

►역逆 거역하다, (이르지도 않은 것을) 맞아들이다.

►억億 추측하다, 보지도 않은 것을 짐작하여 생각한다.

►억抑 누르다, 그러면서도

 

대인관계에서 무조건 남이 나를 속인다고 생각하거나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추측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지내다 보면 자기를 속이거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게 되어 있으므로 그때에 먼저 알아서 대처하면 된다는 말이다.

 

(14-34)

미생무위공자왈微生畝謂孔子曰 미생무가 공자를 일러 말하기를

구丘 하위시서서자여何爲是栖栖者與 “구(공자)는 어찌 그렇게 바쁘신가?

무내위녕호無乃爲佞乎 아무것도 없으면서 말재주나 부려 아첨하려는가?”

 

공자왈孔子曰 공자가 말했다.

비감위녕야非敢爲佞也 질고야疾固也

“감히 말재주로 아첨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루한 것을 미워하는 것뿐입니다.”

 

►미생무微生畝 노나라 武城에 살았던 隱者로서 공자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추정하나 상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음

►서서栖栖 바쁘다. 불안한 모습. ►녕佞 아첨하다.

►질疾 병이 나다. 미워하다. ►고固 고루한, 식견이 좁고 고지식한

 

은자 미생무가 천하를 돌아다니는 공자를 보고 특별한 재주도 없으면서

말로 아첨하여 벼슬자리나 탐하는 것으로 몰아붙인데 대한 공자의 반격이다.

공자는 세상은 혼란스러운데 미생무처럼 일신의 안일만을 꾀하여 은둔하는 것이야말로

식견이 좁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고루한 행동이라고 못마땅해 했다.

 

(14-35)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기驥 불칭기력不稱其力 칭기덕야稱其德也

​“천리마는 그 힘을 칭찬할 것이 아니라 그 길들여진 재주를 칭찬해야 한다.”

 

►기驥 천리마 ►덕德 잘 길들여진 재주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천리마조차도 겉으로 보이는 기력(힘)보다 잘 길들여진 재주를 보아 택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람도 겉으로 드러난 외모가 아니라 그동안 갈고닦은 덕으로 판단해야 된다는 말이다.

 

(14-36)

혹왈或曰 이덕보원以德報怨 하여何如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은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습니까?”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하이보덕何以報德 이직보원以直報怨 이덕보덕以德報德

“무엇으로 은덕을 갚나요. 원한은 바른 것으로 갚고 은덕은 은덕으로 갚아야 합니다.”

 

►덕德 은덕恩德, 은혜 ►직直 곧은, 속이지 않는, 바른

 

은덕을 은덕으로 갚으라는 말은 당연하지만 원한을 곧고 바른 마음으로 갚으라는 말은

기독교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된다.

 

(14-37)

자왈子曰 막아지야부莫我知也夫 공자가 말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자공왈子貢曰 하위기막지자야何爲其莫知子也 자공이 말했다. “어찌 선생님을 몰라준다고 하십니까?”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불원천不怨天 불우인不尤人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으며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차근차근 배워서 하늘에 이르니

지아자知我者 기천호其天乎 나를 아는 자는 저 하늘이리라.”

 

►우尤 탓하다, 원망하다. 멀리 떨어지다.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 아래에서 세상을 배워 올라가 하늘에 다다름, 즉 아래로부터 차근차근 배워 진리에 통달함.

 

사람들이 자기를 몰라주더라도 이를 원망하지도 탓하지 않고 세상의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

하늘의 진리를 깨우치려고 노력하였으니 하늘만큼은 자신을 알아주리라는 한탄조의 말이다.

공자도 역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싶은 명예욕이 강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4-38)

공백료소자로어계손公伯寮愬子路於季孫 자복경백이고왈子服景伯以告曰

공백료가 계손씨에게 자로를 비방하자 자복경백이 (공자에게) 알리며 말하기를

 

부자고유혹지어공백료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 “그 분(계손씨)은 확실히 공백료의 말에 속고 있습니다.

오력吾力 유능사제시조猶能肆諸市朝 내 힘으로 (공백료를) 처치하여 저잣거리에다가 내걸 수 있습니다.”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도지장행야여道之將行也與 명야命也 “도가 행해지는 것도 천명이요,

도지장폐야여道之將廢也與 명야命也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도 천명입니다.

공백료기여명하公伯寮其如命何 공백료인들 그 천명을 어찌하겠습니까.”

 

►공백료公伯寮 성은 공백公伯, 이름은 료寮, 자는 자주子周. 공자의 제자라 하나 확실하지 않다.

►소愬 참소하다, 비방하다

►자복경백子服景伯 노나라 대부, 성은 자복子服, 이름은 하何, 시호는 경景.

►사肆 찌르다, 방자하다.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하다.

 

삼환의 횡포가 극심하여 공자가 자로를 내세워 삼환의 세력을 꺾으려다 실패하여 망명길에 올랐을 때의 이야기다.

자로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는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은 천명이므로 자로를 비방하는 공백료 같은

일개 소인을 죽인다고 근본이 바뀌지 않으니 그대로 두라는 말이다.

 

(14-39)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현자피세賢者辟世 기차피지其次辟地 “현명한 사람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고 다음은 어지러운 지방을 피하고

기차피색其次辟色 기차피언其次辟言 다음은 군주의 눈치를 피하고 다음으로 말을 듣고 피한다.”

 

►피세辟世 이름도 자취도 숨기고 세상에 나서지 않는다.

►피지辟地 어지러운 나라를 떠나 질서가 잡힌 나라로 간다.

►피색辟色 눈치를 살피다(辟 피할 피, 임금 벽, 비유할 비, 그칠 미)

►피언辟言 들은 말로 어지러움을 짐작하여 피한다.

 

기차其次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

첫째, 다음으로 갈수록 더 똑똑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해석은 진정한 피세는 마지막까지 현실 속에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실천하는 것이라 믿는 것으로

세상이 어지러울 때 자신만을 생각하여 몸을 숨기는 은자를 가장 낮게 본다.

이러한 은자를 공자는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두 번째는 다음으로 갈수록 덜 똑똑하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에 미련이 남아 마지막까지 욕심에 매달리는 추한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충신의 모습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를 현명한 사람의 유형으로 보는 것이다.

어느 한 행동만으로 현명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현명한 사람은 세상이 어지러우면 은거하고 그 다음은 어지러운 나라를 떠나 질서가 잡힌 나라를 찾아간다.

그 다음은 군주의 태도가 옳지 않으면 물러나고 다음은 군주의 잘못을 간하다가 듣지 않으면 물러난다는 뜻이다.

 

(14-40)

자왈子曰 작자칠인의作者七人矣

공자가 말했다. “이것을 실천한 사람은 일곱 명이다.”

 

►작作 행동하다, 여기서는 떠나서 숨어 살다는 것으로 쓰였다.

 

위 (14-39)에서와 같은 이유로 물러난 현인이 일곱 사람 있었다는 뜻이다.

 

(14-41)

자로숙어석문子路宿於石門 신문왈晨門曰 자로가 석문에서 묵을 때 문지기가 말하였다.

 

해자奚自 “어디서 오셨습니까?”

자로왈子路曰 자공씨自孔氏 자로가 말했다. “공씨댁에서 왔습니다.”

 

왈曰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문지기가) 말하기를 “안 될 줄 알면서도 해보겠다는 사람 말인가요?”

 

►석문石門 제나라 도성

►신문晨門 새벽과 저녁으로 문을 여닫는 직책을 맡은 사람

►자自 종사하다, 일하다

 

석문을 지키는 문지기지만 隱者였던 모양이다.

공자를 세상이 어지러운 것을 걱정하여 부질없이 애만 쓰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다.

이 문지기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의견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4-42)

자격경어위子擊磬於衛 유하궤이과공씨지문자왈有荷簣而過孔氏之門者曰

공자가 위나라에서 경쇠를 치고 있을 때 삼태기를 지고 공자의 집 앞을 지나던 사람이 말하기를

 

유심재有心哉 격경호擊磬乎 “마음이 담겨있도다. 경쇠 치는 것을 보니.”

기이왈旣而曰 (지나가던 사람이) 다시 말하기를

비재鄙哉 갱갱호硜硜乎 “어리석구나. 딱딱거리는 소리가.

막기지야莫己知也 사이이이의斯已而已矣 자기를 몰라주면 그만두면 그뿐인데.

심즉려深則厲 천즉게淺則揭 물이 깊으면 벗고 건너고, 얕으면 걷어 올리고 건너면 될 것을.”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과재果哉 말지난의末之難矣 “과감하도다. 그렇게 산다면 어려울 게 없느니라.”

 

►격경擊磬 경쇠(악기)를 치다(연주하다).

►하궤荷簣 삼태기를 짊어지다.

►유심有心 예악으로 천하를 교화할 마음이 있다.

►갱硜 돌이 부딪치거나 깨지는 소리, 천박하다

►심즉려深則厲 천즉게淺則揭 <시경 국풍 패풍邶風>편 포유고엽匏有苦葉의 한 구절

►게揭 들다, 추어올리다.

 

은자가 공자를 평한 것 중 하나다.

삼태기를 멘 은자가 공자가 치던 경쇠에 자기를 알아달라는 속마음이 담겨있다고 한 뒤 다시 공자의 집착을 꼬집었다.

물이 깊으면 옷을 벗어 들고 건너고 물이 얕으면 바지를 걷어 올리고 건너면 된다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추세에 맞추어 융통성 있게 나아가고 물러나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자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은자의 말은 과감하지만 그 또한 어렵고 힘든 일 중의 하찮고 지엽적일뿐이라는 것으로 공자는 세상을 등지고 홀로 고고한 삶을 영위하는 은자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냄과 동시에 공자 자신의 정치적인 욕망을 재확인하고 있다.

 

(14-43)

자장왈子張曰 자장이 물었다.

서운書云 고종高宗 양음삼년諒陰三年 불언不言 하위야何謂也

“<서경>에 이르기를 고종은 삼년동안 말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무슨 뜻입니까?”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하필고종何必高宗 “하필 고종이냐.

 

고지인古之人 개연皆然 군훙君薨 백관百官 총기總己 이청어총재삼년以聽於冢宰三年

옛 사람들이 다 그러하였으니 군주가 죽으면 백관들은 각자 일을 맡아 삼년동안 총재의 지휘에 따랐다.”

 

►자장子張 성은 전손顓孫, 이름은 사師, 공자의 제자

►고종高宗 제소을帝小乙의 아들이며, 이름은 무정武丁이다.

►량음諒陰 임금의 삼년상 ►홍薨 제후가 죽다 ►총기總己 맡아 다스리다.

►총재冢宰 재상들의 우두머리, 곧 총리

 

은나라의 중흥 명군으로 알려진 고종은 왕위를 이어받은 뒤에도 3년 동안 여막에 거처하면서 정치에 간여하지 않고

총재가 대신 정사를 처리하였다는 것으로,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지만 공자도 계속 삼년상을 주장하여

후세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14-44)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상호례上好禮 즉민이사야則民易使也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을 부리기 쉽다.”

 

위정자가 먼저 법도에 맞게 처신하면 백성들이 스스로 따른다는 뜻이다.

공자는 백성들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예를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술의 하나로 보았다.

 

(14-45)

자로문군자子路問君子 자왈子曰 자로가 군자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했다.

수기이경修己以敬 “몸과 마음을 닦아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한다.”

왈曰 여사이이호如斯而已乎 (자로가) 말하기를 “그렇게 하면 됩니까?”

왈曰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 (공자가) 말했다. “몸과 마음을 닦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왈曰 여사이이호如斯而已乎 (자로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됩니까?”

왈曰 (공자가) 말했다.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 “몸과 마음을 닦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 요순기유병제堯舜其猶病諸

몸과 마음을 닦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요, 순도 오히려 어렵게 여긴 일이었다.”

 

►수기修己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음

►경敬 삼가다.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요堯 중국 신화 속 군주, 이름은 방훈放).

►순舜 오제의 마지막 군주, 성은 우虞, 이름은 중화重華,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요임금으로부터 천하를 물려받았다.

 

군자의 임무로서 修己治人을 얘기하고 있다.

군자는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다음이야 이웃들과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로서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14-46)

원양原壤 이사夷俟 자왈子曰 원양이 앉아서 공자를 맞이하자 공자가 말했다.

유이불손제幼而不遜弟 장이무술언長而無述焉 “어려서는 불손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잘 것 없으며

노이불사老而不死 시위적是爲賊 늙어도 죽지도 않았으니 그것을 도둑이라 한다.”

이장고기경以杖叩其脛 하면서 지팡이로 정강이를 툭 쳤다.

 

►원양原壤 공자의 친구인 듯하다. 모친상에 관을 타고 앉아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사俟 기다리다. ►고叩 두드리다. ►경脛 정강이

 

원양은 미친척하면서 농담을 잘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공자의 말에도 농담이 섞여있는 듯하다.

그런데 원양이 앉아서 맞이한 것을 두고 夷俟로 표현하여 주변 이족의 풍속을 따르는 것을 예에 어긋난다고 하였다.

주변 나라를 무시한 중화사상의 태도가 나타나 있다.

 

(14-47)

궐당동자장명闕黨童子將命 혹문지왈或問之曰 익자여益者與

궐 마을 동자가 심부름을 하자 어떤 사람이 묻기를 “학문에 진전이 있는 아이인가요?”

 

자왈子曰 공자가 말했다.

오견기거어위야吾見其居於位也 “나는 그 아이가 어른들 자리에 앉고

견기여선생병행야見其與先生並行也 선배들과 나란히 걷는 것을 보니

비구익자야非求益者也 그는 학문에 정진하려는 자가 아니라

욕속성자야欲速成者也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입니다.”

 

►궐당闕黨 노나라 마을이름 ►장명將命 명령 전달자. 명을 받다

►익益 더하다, 이롭다. 진보하다, 향상되다. ►거어위居於位 어른 자리에 앉는다.

 

행동거지를 보면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게 된다.

아마 공자문하에 들어온 동자가 차근차근 학문을 익히려고 하지 않고 빨리 어른이 되어 입신출세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공자는 이러한 학문태도를 좋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