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4권 9-2
9 정수亭樹 정자
2 수산정修山亭 산정을 수리하고서 3首
1
최애자정호最愛慈亭好 이 정자의 좋은 것 제일 사랑하노니
청산영소첨靑山映小簷 청산이 작은 처마에 비치어 오는 걸세.
경행운거원經行雲去遠 길을 가니 구름은 멀리도 가고
온좌오래점穩坐烏來覘 조용히 앉았으니 새가 와서 들여다보네.
화초년년장花草年年長 화초는 해마다 잘도 자라나고
풍광세세첨風光歲歲添 풍광風光은 년년 더해만 가네.
주모갱수즙誅茅更修葺 띠 떠다가 다시 또 수리를 하니
유경최청념幽境最淸恬 그윽한 경지 가장 밝고 편안하다네.
이 정자가 좋아 마냥 마음에 드니
푸른 산이 자그만 처마에 걸려 있다오.
산길 걸으면 구름이 저만치 멀어가고
정좌하노라면 새가 다가와 훔쳐본다네.
해가 갈수록 화초가 쑥쑥 자라고
풍광은 세월이 갈수록 보는 맛을 더한다오.
띠 풀을 베어 지붕을 다시 이으니
그윽한 경치가 너무 맑고 평온하다네.
►온좌穩坐 듬직하게[꼼짝 않고] 앉다.
귀가온좌歸家穩坐 집에 돌아와 편안하게 앉는다.
●천거임고정遷居臨皐亭 임고정으로 옮겨 살면서
/동파거사東坡居士 소식蘇軾(1037-1101 北宋)
아생천지간我生天地間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나는
일의기대마一蟻寄大磨 맷돌 위에 붙어 있는 개미 같아서
구구욕우행區區欲右行 힘들여 오른쪽으로 가려고 해도
불구풍륜좌不救風輪左 오른쪽으로 도는 세상을 어쩔 수 없네
수운주인의雖云走仁義 인의仁義의 길 가겠다 말은 했지만
미면위한아未免違寒餓 추위와 배고픔을 면할 수 없어
검미유위취劍米有危炊 칼끝에서 밥 짓는 것처럼 위태로웠고
침전무온좌針毡無穩坐 바늘방석이라 편하게 앉을 수도 없었네
기무가산수豈無佳山水 아름다운 산수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차안풍우과借眼風雨過 비바람 지나듯 관심 둘 수 없게 바빴고
귀전부대로歸田不待老 귀향도 늙을 날을 기다릴 필요 없지만
용결범기개勇决凡幾個 용감하게 결단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네
행자폐기여幸玆廢棄餘 다행스럽게 이곳에 버려지고 나서야
피마해안타疲馬解鞍馱 안장을 푼 지친 말처럼 편히 지낼 수 있게 되고
전가점강역全家占江驛 식구들도 강변 역에서 함께 살 수 있게 되니
절경천위파絶境天爲破 하늘이 날 위해 선경의 벽을 깨준 모양 되었네
기빈상승제飢貧相乘除 배고픔과 가난을 서로 상쇄해놓고 보니
미견가적하未見可吊賀 슬퍼할 일인지 좋아할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담연무우락澹然無憂樂 담담히 걱정과 즐거움을 넘어서고 보니
고어불성사苦語不成些 고생스럽다는 말도 할 필요 없게 되었네
►엿볼 점(첨)覘 엿보다. 몰래 보다. 살펴보다
►년년年年 매년每年 한 해 한 해. 해마다.
►세세歲歲 여러 해를 끊이지 아니하고 계속繼續함.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백발을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해서 읊음
/유희이劉希夷(유정지劉庭芝 651-679?)
낙양성동도리화洛陽城東桃李花 낙양성의 동쪽 복숭아 오얏 꽃은
비래비거락수가飛來飛去落誰家 날려 오고 날려가기 뉘 집에 떨어지나
유규아녀석안색幽閨兒女惜顔色 깊은 방의 여아는 안색을 아끼어
좌견락화장탄식坐見落花長歎息 앉아 낙화를 보며 긴 탄식을 하네
금년화락안색개今年花落顔色改 올해 꽃 떨어지며 안색은 바뀌는데
명년화개복수재明年花開復誰在 내년의 꽃핌에는 다시 누가 있는가
년년세세화상사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피는 꽃은 그대로인데
세세년년인불동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사람 모습 같지 않구나
공자왕손방수하公子王孫芳樹下 공자와 王孫의 향기로운 꽃나무 아래
청가묘무락화전淸歌妙舞落花前 맑은 노래 묘한 춤이 낙화 앞은
단간고래가무지但看古來歌舞地 다만 보기를 예로부터 노래와 춤의 땅이
유유황혼조작비惟有黃昏鳥雀飛 오직 황혼에 새들만 날고 있네
<당재자전唐才子傳>에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이야기가 있다.
초당初唐 송지문宋之問(656?-712)은 五言詩에 훌륭한 재능이 있어
율시체律詩體 선구로 공이 큰 사람이다.
유희이劉希夷(651-679?)의 삼촌이 송지문이다.
사위라는 설도 있으나 두 사람의 태어난 시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
송지문이 유희이의 <백두음白頭吟>의 한 구절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을 보고서 심히 탐이 났다.
그래서 자기에게 달라고 했다
유희이가 승낙하고는 이를 발표해 버렸다.
이에 뚜껑 열린 송지문이 하인들을 시켜 흙 가마니로 유희이를 압살시켜버렸다.
유희이의 나이 고작 30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신빙성이 있을까?
세월이 하도 흘렀으니 증빙할 수 없다
이 같은 사건은 우리나라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과 정지상에게도 있었다.
책으로 동서고금을 열람하여 思慮하되 그 판단은 자기 자신의 몫이다.
►주모誅茅 띠 풀을 베어냄.
►‘편안할 념(염)恬’ 편안便安하다, 안일安逸하다. 평온平穩하다. 고요하다
2
수석청기처水石淸奇處 물과 돌이 맑고도 기이한 곳에
산정협야정山亭愜野情 산 정자가 野人의 마음에 흡족하다.
조귀정유적鳥歸庭有跡 새들 돌아가 뜰에는 자취만 남고
화락수무성花落樹無聲 꽃이 떨어져도 나무에선 소리가 없네.
유의연계상遊蟻緣階上 노는 개미 섬돌 따라 올라들 가고
비황적초행飛蝗趯草行 나는 메뚜기 풀에서 뛰어 다니네.
흥래간물화興來看物化 흥이 와서 만물의 조화 보노라니
돈각탈진영頓覺脫塵纓 티끌 묻은 갓끈 벗은 줄을 문득 깨닫네.
물과 돌이 깨끗하여 도드라진 터
산자락 정자는 野人의 마음에 든다네.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이 정자 뜨락에 흔적을 남기고
꽃잎이 떨어지건만 나무들은 멀거니 서있기만 하네.
부지런한 개미들은 줄줄이 섬돌을 오르고
메뚜기가 풀숲에서 폴짝거린다네.
흥취가 일어 사물의 변화를 살피나니
속세를 떠나왔음을 불현듯 깨닫는다네.
►‘쾌할 협愜’ 쾌快하. 만족滿足하다.맞다
►황적蝗趯 폴짝 뛰는 메뚜기
‘메뚜기 황蝗’ 메뚜기. 황충蝗蟲(풀무치)
‘뛸 적(약)趯’ 뛰다(≒躍) (발로)차다
►물화物化 사물事物의 變化. 생겨나고 죽어가는 과정過程
►진영塵纓 속세俗世의 때 묻은 관冠. 곧 관직官職을 말함.
►돈각頓覺 돈오頓悟. 갑자기 깨달음.
소승小乘에서 大乘에 이르는 얕고 깊은 次例를 거치지 아니하고
처음부터 바로 大乘의 깊고 妙한 敎理를 듣고 單番에 깨달음.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문득 콧구멍 없는 ‘소[牛]’라는 말을 듣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몰록 깨닫고 보니 삼천대천세계가 나라는 것을 알았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유월이라. 연암산鷰巖山 아랫길에서는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농부들은 한가롭게 태평가를 부르네.
1879년 동학사에서 시중을 들던 사미승 동은東隱은 속성이 이씨李氏였다.
그의 아버지는 수선하여 깨달은 바가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李處士라고 불렀다.
동은 사미의 스승 학명도일學明道一 스님이 이 처사의 집을 찾아가 법담을 나눴다.
이 처사가 스님에게 “승려는 마침내 소가 된다”고 말하자
스님이 “사문이 되어 견성하지 못하고 시주물만 받아먹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 시주자의 은혜를 갚게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처사가 힐난하며 말하기를
“사문이 되었음에도 어찌 그 대답이 도리에 맞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스님이 “나는 선지禪旨에 밝지 아니하니 한마디 일러 달라”고 말하자
처사가 말하기를 “어찌 소가 되어도 콧구멍 뚫을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라고 했다.
묵묵히 돌아온 스님이 사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사미는 지금 주실籌室 선사께 이 도리를 물어보라고 했다.
스님은 경허鏡虛 선사를 찾아가 이 처사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문득 선사는 공안의 오묘한 뜻이
곧바로 얼음 녹듯이 하고 기와가 깨지듯 화두를 타파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이때 선사의 나이가 31세였다.
이 게송의 주체는 무비공無鼻孔이다.
무비공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콧구멍은 얼굴 중앙에 있기에 本分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콧구멍이 없다는 표현은 본분을 깨닫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서장書狀’의 ‘답엄교수장자경答嚴敎授狀子卿’에 보면
“오늘날 도를 배우는 선비들은 다분히 한가하게 앉은 곳에 머물러 있나니
요즘 총림에서는 본분의 일도 모르는[無鼻孔] 무리를
‘묵조黙照’라고 부르는 수행이 바로 이것이다”라는 표현에 무비공이 나온다.
이외에도 ‘원오불과선사어록圓悟佛果禪師語錄’이나
‘여정어록如淨語錄’ ‘선가귀감禪家龜鑑’ 등에도 나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경허 스님은 ‘무비공’이라는 말을 듣고 몰록 깨달았다고 한다.
돈각頓覺은 단박에 진리를 깨달은 것을 말하기에 돈오頓悟와 같은 표현이다.
화엄종華嚴宗에서는 교판敎判을 오교십종五敎十宗으로 나눈다.
이 가운데 돈교頓敎가 돈각의 가르침에 해당한다.
오교는 다음과 같다.
①소승교小乘敎 부파불교
②대승시교大乘始敎 三論宗의 空사상과 法相宗의 唯識사상
③대승종교大乘終敎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능가경楞伽經의 교설 및 天台宗의 사상
④돈교頓敎 유마경維摩經의 교설
⑤원교圓敎 화엄경華嚴經.
三千은 온 세계를 말하는 삼천대천세계를 줄여서 표현하였다.
아가我家에서 가家는 접미사接尾辭로 쓰였기에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 구절을 통하여 경허 스님은 심조만유心造萬有를 말하고 있음이다.
유월은 경허 스님이 돈각한 시기,
연암산鷰巖山은 그 장소를 말하기에 곧 충남 서산에 있는 천장암天藏庵이다.
산하로山下路는 천장암에서 바라본 먼 곳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 만물을 있는 그대로 읊어서 실상의 도리를 나타내고 있음이다.
야인野人은 농부를 말함이다.
농부가 밭을 갈고 김을 매듯 수행자도 마음 밭을 갈아야 한다.
김을 매는 것은 번뇌를 뽑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太平歌를 부르는 것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2021년 11월3일자 법보신문
3
렬수천층벽列峀千層碧 줄지은 산 천 층이나 푸르러 있고
장강일대명長江一帶明 긴 강은 한 줄기 띠처럼 환히 보이네.
자여인세원自與人世遠 스스로 인간 세상과 멀리 한 것은
비애령원맹非愛嶺猿盟 산 고개 잔나비와의 맹세 때문이 아닐세.
소경연송곡小徑緣松曲 좁은 길은 소나무 때문에 구불구불하고
황계여초평荒階與草平 거친 층 뜰은 풀과 함께 평평하네.
차생수득의此生須得意 이 生에 모름지기 득의해야 하거니
무물불풍정無物不風情 물건치고 풍정風情이 아닌 게 없네.
줄지은 산봉우리 첩첩으로 푸르고
강줄기는 기다란 띠처럼 선명하다오.
내가 속세와 먼 곳을 좋아함은
산봉우리나 잔나비와 함께함이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오.
산속 오솔길은 구부러진 소나무가 두르고
널찍한 풀밭에는 거친 계단이 잇대네.
내 평생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니
모든 사물을 쳐다봄에 정감이 넘쳐야 한다는 것이네.
►열수列峀 산봉우리가 늘어 서 있다.
‘산굴 수峀’(=수岫,䜬) 산굴山窟. 암혈巖穴. 산봉우리
●소양정昭陽亭/송암松巖 양대박梁大樸(1543-1592 중종38~선조25년)
원객석방초遠客惜芳草 나그네 꽃 핀 봄날이 아쉬워
소양강상행昭陽江上行 소양강가에 나아가네.
고정림고도高亭臨古渡 높은 정자는 옛 나루를 내려보고
교목협비맹喬木夾飛甍 교목은 치솟아 처마를 끼고 있어라.
열수천변담列峀天邊淡 둘러친 산들은 하늘가에 담박하고
청파함외명晴波檻外明 안개 걷힌 파도는 난간 너머로 분명하다.
풍류감화처風流堪畫處 풍류는 그림처럼 빼어나고
어정대연횡漁艇帶烟橫 고깃배 안개 속을 가로지른다.
►득의得意 득심得心.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뽐냄. 뜻을 이루어 자랑함.
석일악착부족과昔日齷齪不足誇 지난날 궁색할 때는 자랑할 것이 없더니
금조방탕사무애今朝放蕩思無涯 오늘 아침에는 우쭐하여 생각에 거칠 것이 없더라
춘풍득의마제질春風得意馬蹄疾 봄바람에 뜻을 얻어 말을 세차게 달리니
일일간진장안화一日看盡長安花 하루 만에 장안의 꽃을 다 보았네.
/맹교孟郊(751-814)
►무물無物 아무 물건物件도 없음.
구득기양苟得其養 무물부장無物不長 진실로 잘 기르면 잘 자라지 않는 사물이 없고
구실기양苟失其養 무물불소無物不消 진실로 잘 기르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는 사물도 없다,
공자왈孔子曰 공자가 말하였다.
조즉존操則存 사즉망舍則亡 붙잡으면 보존되고 내버리면 없어지며
출입무시出入無時 나가고 들어오는 때가 없고
막지기향莫知其鄕 어디로 향하는 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유심지위여惟心之謂與 이는 오로지 사람의 마음을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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