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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詩/매월당집梅月堂集

매월당 시집 제4권 14-2

매월당 시집 제4권 14-2

14 문장文章

 

2 학시學詩 시를 배우다 2首

 

1

객언시가학客言詩可學 손님 말이 시는 배울 수 있는 거라 하기에

여대불능전余對不能傳 내 대답이 시는 전할 수 없는 거라 했네.

단간기묘처但看其妙處 다만 그 묘한 곳만 볼 뿐이지

막문유성련莫問有聲聯 소리 있는 연聯은 묻지 말아야 하네.

 

객은 시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하나

나는 전할 수 없다고 대답하네.

다만 오묘한 곳만 보고

소리와 연구 있음을 묻진 말게.

 

 

산정운수야山靜雲收野 산 고요하면 구름은 들에서 걷히고

강징월상천江澄月上天 강물 맑으면 달이 하늘에 오르느니

차시여득지此時如得旨 이런 때 만일 뜻을 얻는다 하면

심아구중선深我句中仙 나의 시귀[句] 속에서 신선을 찾으라.(深↔探)

 

산은 고요해 구름이 들판에서 걷힐 때

강이 맑아 달이 하늘에 떠오를 때

이때에 만약 뜻 얻는다면

나의 구절 속에서 신선 찾을 걸세.

 

 

2

객언시가학客言詩可學 손님 말이 시는 배울 수 있는 거라 하네만

시법사한천詩法似寒泉 시의 법은 찬 샘과도 같은 것이네.

촉석다오열觸石多嗚咽 돌에 부딪치면 흐느끼는 소리도 많네만

영담정불훤盈潭靜不喧 연못에 가득 차면 고요하여 떠들지 않네.

 

남들은 시를 배울 수 있다 말하지만

시의 법은 차가운 샘물과 같은 거라

돌에 부딪히면 목메어 울다가도

연못에 가득 차면 고요해 소리 없네.

 

 

굴장다강개屈莊多慷慨 굴원屈原과 장주莊周가 한탄도 많이 했네만

위진점나번魏晉漸拏煩 위魏·진晉나라는 점점 시끄러웠네.

초단심상격勦斷尋常格 보통 격조는 애써서 끊어야 할 것이지만

현관미이언玄關未易言 들어가는 현관玄關은 말하기 쉽지 않네.

 

굴원屈原과 장자莊子는 강개함 많았는데

위진魏晉에 이르러서는 점차 번다해졌지.

심상한 격조야 끊어 없앤다 해도

묘한 이치 말로는 전하기 어렵다오

 

 

►‘노곤할 초/끊을 초勦’ 노곤勞困하다. 괴로워하다. 괴롭히다

►심상尋常 대수롭지 않고 예사例事로움. 평범함.

 

구시왕사당전연舊時王謝堂前燕 옛적 왕사 대인의 처마에 들던 제비

비입심상백성가飛入尋常百姓家 이제는 평범한 백성의 집에 날아온다.

/유우석劉禹錫 <오의항烏衣巷>

 

●곡강曲 2首/두보杜甫(712-770 唐)

1

일편화비감각춘一片花飛減却春 한 조각 떨어지는 꽃잎에도 봄은 줄어드는데

풍표만점정수인風飄萬點正愁人 만점 꽃잎이 바람에 날리니 참으로 시름에 잠기네

차간욕진화경안且看欲盡花經眼 마음껏 보려고 하나 꽃잎은 눈을 스치고 지나가니

막염상다주입순莫厭傷多酒入脣 어찌 몸이 상할까 두렵다고 술을 마시지 않으리

 

강상소당소비취江上小堂巢翡翠 강가 작은 정자에는 비취새가 둥지를 틀었고

원변고총와기린苑邊高塚臥麒麟 부용원 뜰 가 높은 이들 무덤 기린 상 뒹구는구나

세추물리수행락細推物理須行樂 세상 이치를 따져 보건대 마땅히 즐거움 따를지니

하용부영반차신何用浮榮絆此身 어찌 헛된 영화에 이 한 몸 얽맬 필요가 있으랴

 

2

조회일일전춘의朝回日日典春衣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 저당 잡혀

매일강두진취귀每日江頭盡醉歸 매일 곡강에서 흠씬 취해 돌아오네.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몇 푼 안 되는 외상 술값은 가는 곳마다 깔려 있지만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사람이 일흔까지 사는 건 예부터 드문 일이라네.

 

천화협접심심견穿花蛺蝶深深見 꽃 사이 맴도는 호랑나비 보이다 말다하고

점수청정관관비點水蜻蜓款款飛 강물 차는 물잠자리는 유유히 나는구나.

전어풍광공류전傳語風光共流轉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잠시상상막상위暫時相賞莫相違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경치를 즐겨보자.

 

이 시에서 말하는 ‘몇 푼 안 된다.’라는 뜻의

‘심상尋常’은 원래 고대 중국의 도량형度量衡에서 길이를 뜻하는 단위였다.

 

심尋은 8자尺이고 상常은 그 2배인 16자尺를 뜻했다.

물론 두보가 살던 시기의 자尺는 지금과는 약간 다르다.

오늘날 도량형으로 계산해 보면

심은 대략 1.2m~1.6m, 상은 2.4m~3.2m 정도에 해당한다.

‘심상’을 합한 면적은 약 11㎡~13㎡에 해당하므로 평수로 따지면

겨우 서너 평 정도 남짓한 크기의 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당시에도 심상은 보잘것없다는 뜻으로

평범하면서도 일반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수많은 나라가 일어나고 사라졌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제후들이 패권을 잡는 데 혈안이 되었다.

<춘추좌씨전> 노魯나라 성공成公 12년 조에 보면

제후탐모諸侯貪冒 침욕불기侵欲不忌 제후들은 탐욕스러워 침략의 야망을 숨기지 않고

쟁심상이진기민爭尋常以盡其民 보잘것없는 땅이라도 빼앗으려고 백성들을 모두 동원한다.

 

당시 제후들은 ‘아주 작은(尋常) 땅’조차도 서로 차지하려고 이웃 나라를 공격하고 정벌하였다.

이처럼 심상은 짧은 길이를 나타내는 본래의 뜻이었지만

보잘 것 없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두고 ‘심상치 않다’라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되는 작은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심상의 반대어는 ‘수상殊常’이다.

이 말도 돌아가는 상황이 정상적인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뜻이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나라로 압송되던 김상헌金尙憲이 읊은 시조 속의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 동 말 동 하여라.’는 구절이 바로 그런 예다.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심상尋常치 않은 세월

 

►현관玄關

1)건물建物의 出入門이나 建物에 붙이어 따로 달아낸 어귀.

2)큰 都市의 驛이나 空港 또는 外國과 往來가 잦은 都市나 항구港口의 比喩

3)깊고 묘한 理致에 드는 문. 현묘玄妙한 道로 들어가는 關門.

 

무로별수도無勞別修道 수도하고자 따로 애 쓸 것 없나니

즉차시현관卽此是玄關 여기 이 죽각이 바로 현관일세.

/백거이白居易 <숙죽각宿竹閣>

 

상망편길장자거相望遍吉長者居 편길 장자 계시는 곳을 마주 바라보지만

수식법계현관벽誰識法界玄關闢 법계의 현관을 누가 열 줄 알 것인고.

/이장용李藏用 <삼각산문수사三角山文殊寺>

 

학비운동지선기鶴飛雲洞知仙起 학은 구름 낀 골에 날아 신선이 삶을 알겠고

동소현관대객래童掃玄關待客來 동자는 현관 쓸어 손님 옴을 기다리는구나.

/석굉연釋宏演 <제유선암題劉仙巖>

 

►이언易言 이언무책易言無責

이 말은 맹자 '이루離婁'장의 말이다.

인지이기언야人之易其言也 무책이의無責耳矣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나무람을 받지 않아서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上(22章) 이언易言 쉽게 하는 말>

맹자왈孟子曰 인지이기언야人之易其言也 무책이의無責耳矣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말을 쉽게 하는 것에 책망이 없을 뿐이다.”

 

<孟子集註>

인지소이경이기언자人之所以輕易其言者 사람이 그 말을 가볍게 함부로 하는 까닭은

이기미조실언지책고이以其未遭失言之責故耳 그가 실언의 책임을 아직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상인지정蓋常人之情 대개 보통 사람의 마음은

무소징어전無所懲於前 앞에서 징계하는 바가 없으면

즉무소경어후則無所警於後 뒤에 경계하는 바가 없으니

 

비이위군자지학非以爲君子之學 필사유책이후必俟有責而後

군자의 학문이 반드시 責望이 있기를 기다린 뒤에

 

불감이기언야不敢易其言也 감히 그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아니다.

연차기역유위이언지여然此豈亦有爲而言之與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豈=其) 또한 이유가 있어서 한 말(有爲而言)일 것이다.

 

<정약용丁若鏞>

사람이 덕을 잃음에 말을 쉽게 하는 것보다 없는데

조괄은 쉽게 말함으로 패배했고 마속은 쉽게 말함으로 참해졌다.

쉽게 말함은 목이 달아날 일인데 굳이 책망하려 할 필요가 없다 한다.

 

<朱子>는 이 말을 이렇게 풀이했다.

“사람이 그 말을 가볍게 하고 함부로 함은

실언에 대해 나무람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봐 주자가 덧붙였다.

“군자의 학문이 반드시 꾸짖음이 있기를 기다린 뒤에야

감히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연유가 있어 말한 것이다.”

 

맥락이 있어 한 말이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단서를 달았다.

다산은 <맹자요의孟子要義>(맹자를 주석한 책)에서

이 구절에 대한 주자의 풀이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사람이 덕을 잃는 것은 말을 경솔하게 하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다.

조괄은 경솔한 말 때문에 패했고 마속은 경솔한 말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면 이는 버린 물건일 뿐이니 그에게 무슨 벌을 준단 말인가?

이 때문에 꾸짖을 것도 없다고 말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맹자 ‘이루’장에 나온 ‘이언무책易言無責’은

“사람이 말을 쉽게(함부로)하면 나무랄 것도 없다”가 된다.

‘허를 찌르는 역발상의 해석’이라고 한양대 정민교수(고전문학)는 말한다.

/동양일보 2021.09.01

 

 

●매월당의 시론/임보(시인)

 

손님 말이 시를 배울 수 있느냐기에

내 대답이, 시는 전할 수 없는 거라 했네.

다만 그 묘한 곳만 볼 뿐이지

소리 있는 연聯은 묻지 말게나

 

客言詩可學 余對不能傳 但看其妙處 莫問有聲聯

山靜雲收野 江澄月上天 此時如得旨 探我句中仙

산 고요하면 구름은 들에서 걷히고

강물 맑으면 달이 하늘에 오르느니

이런 때 만일 뜻을 얻는다면

나의 싯구 가운데서 신선을 찾으리라.

/시를 배우겠다기에(허경진 역)

 

시에 능한 매월당에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지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했을 법하다.

대답이 시의 법은 전할 수 없는 거라고 했다.

내 시를 알고자 하거든 시의 오묘한 곳을 눈여겨보도록 하라.

표현된 소리(언어) 그 자체에 집착할 일이 아니다.

 

시는 구름 걷힌 들판을 말하기 위해 고요한 산을 읊기도 하고

하늘의 달을 얘기하기 위해 맑은 강물을 노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시는 직접 말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의탁해서 넌지시 암시한다.

 

그대가 만일 이러한 시의 취지를 알고 난 뒤에 내 시를 읽게 된다면

내 시 가운데 신선의 기상이 서려 있음을 알게 되리라.

대강 이런 내용이다.

 

시는 보통의 글(산문)과는 달라서 정해진 시의 형식을 지켜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그 표현이 간결하며 또한 말하지 않음으로 드러내는 암시,

적절한 비유, 옛 일을 넌지시 끌어다 쓰는 용사用事 등 다양하고 심오한 기법이 구사된다.

 

그러니 시를 쓰는 요령은 배워서 익혀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써 보는 가운데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리라.

 

客言詩可學 詩法似寒泉 觸石多嗚咽 盈潭靜不喧

屈莊多慷慨 魏晋漸拏煩 勦斷尋常格 玄關未易言

 

손님 말이 시를 배울 수 있느냐기에

시의 법은 차가운 샘물과도 같다고 했네.

돌에 부딪치면 흐느끼는 소리도 많네만

연못에 가득 차면 고요하여 떠들지 않는다네.

 

굴원屈原과 장자莊子가 한탄도 많이 했지만

위魏나라․진晋나라는 차츰 시끄러워졌지.

보통 격조야 애써서 끊어야 하겠지만

들어가는 문은 깊숙해서 말하기 어렵다네(허경진 역)

 

또한 시법은 차가운 샘물과 같다는 것이다.

옹달샘에서 비롯한 물줄기가 골짜기를 흘러내리다

돌에 닿으면 흐느끼듯 울부짖기도 하고

웅덩이를 만나면 잔잔해져 소리를 감추기도 한다.

 

시정은 우리의 성정이 천하 만물에 닿아 일어나는데, 만나는 대상에 따라 한결같지 않다.

어떤 때는 격렬한 시정이 일어나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호수처럼 잔잔히 가라앉기도 한다.

또한 개인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다르다.

 

굴원과 장자와 같은 비분강개에 기운 시정이 있는가 하면

위나라 진나라처럼 번거롭고 난삽해진 경우도 없지 않다.

 

심상한 격조야 단호히 끊어야 할 일임을 알지만

현묘한 시의 관문을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시정의 다양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한 개인의 감정도 시간과 처지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리 나타난다.

또한 개인의 특성에 따라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감정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역은 지역대로 시대는 시대대로 기풍의 차이를 지니게 마련이다.

따라서 시의 묘법을 일괄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리라.

 

매월당의 생각은 시는 오묘하고 다양한 글이기 때문에

그 묘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매월당의 시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첫 수의 끝 행 “나의 싯구 가운데서 신선을 찾으리라”는 대목이다.

이것은 매월당의 시정신이 ’신선사상‘임을 드러내고 있는 구절이다.

 

신선사상이란 무엇인가?

얼핏 보면 허황된 세상을 꿈꾸는 몽상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는 인간의 지상적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상주의적 사상이다.

 

세속을 넘어서고자 하는 탈속의 정신이며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무위의 정신이며

여유와 심미를 즐기는 풍류정신이며

전란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화평의 정신이기도 하다.

 

생래적으로 시인은 세상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상향을 꿈꾸며 살고 있다.

시는 곧 이들의 꿈의 기록물이다.

 

매월당은 시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꿈의 기록임을

신선을 빌어 넌지시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트리플3쏠림 블로그

 

 

●학시學詩

공자의 學詩는 <시경>을 말하고 그 외의 學詩를 펼친 사람들은 세상의 詩를 말한다.

 

►<論語 계씨편季氏篇> 13

진항문어백어왈陳亢問於伯魚曰 진항이 백어에게 물었다.

자역유이문호子亦有異聞乎 선생은 남다른 것을 배우셨습니까?

대왈對曰 미야未也 없습니다.

 

상독립嘗獨立 홀로 서 계실 때

리추이과정鯉趨而過庭 리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다가

 

왈학시호曰學詩乎 시를 배웠느냐 라고 물으실 때

대왈미야對曰未也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불학시不學詩 시를 배우지 않으면

무이언無以言 말할 수 없다고 하시길래

리퇴이학시鯉退而學詩 물러나 시를 배웠습니다.

 

타일우독립他日又獨立 다른 날 또 홀로 서 계실 때

리추이과정鯉趨而過庭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날 때

왈학례호曰學禮乎 예를 배웠느냐 라고 물으실 때

대왈미야對曰未也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했더니

 

불학례不學禮 예를 배우지 않으면

무이립無以立 설 수가 없다라고 하시길래

리퇴이학례鯉退而學禮 리는 물러나 예를 배웠습니다.

문사이자聞斯二者 이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진항퇴이희왈陳亢退而喜曰 진항이 물러나와 기쁘게 말했다.

문일득삼問一得三 하나를 물었는데 셋을 얻었도다.

문시문례聞詩聞禮 시를 알고 예를 알고

 

우문군자지원기자야又聞君子之遠其子也

또한 군자가 그의 아들을 멀리 하였음을 알았다.

 

 

►<論語 양화편陽貨篇> 9

자왈子曰 공자께서 말하셨다.

소자하막학부시小子何莫學夫詩 너희들은 어찌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詩 시는

가이흥可以興 사람에게 감흥을 돋우게 하고

가이관可以觀 모든 사물을 관찰하게 하며

가이군可以群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고

가이원可以怨 원망을 표할 수 있다.

 

이지사부邇之事父 가까이는 부모를 섬기고

원지사군遠之事君 멀리는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배울 수 있고

다식어조수초목지명多識於鳥獸草木之名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도 배우게 된다.

 

<논어집주>/주희朱熹(1130-1200)

‘소자小子’는 제자이다.

 

감발지의感發志意 의지를 감발感發하는 것이다.

고견득실考見得失 득실을 상고해 보는 것이다.

화이불류和而不流 화和하면서도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않는 것이다.

원이불노怨而不怒 원망하면서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다.

 

인륜지도人倫之道 시무불비詩無不備 인륜의 도가 詩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니

이자거중이언二者擧重而言 이 두 가지는 중한 것을 들어서 말씀한 것이다.

 

기서여其緖餘 우족이자다식又足以資多識

그 서여緖餘(부수적인 것)가 또 많은 지식을 자뢰할 수 있다.

 

학시지법學詩之法 차장진지此章盡之 시를 배우는 방법을 이 장에 다하였으니

독시경자讀是經者 소의진심야所宜盡心也 이 <詩經>을 읽는 자가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論語 양화편陽貨篇> 10

자위백어왈子謂伯魚曰 공자께서 아들 백어에게 말하셨다.

 

녀위주남소남의호女爲周南召南矣乎 ​너는 시경의 주남과 소남을 공부했느냐?

인이불위주남소남人而不爲周南召南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기유정장면이립야여其猶正牆面而立也與 담장을 마주보고 서있는 것과 같다.

 

<논어집주>/주희朱熹(1130-1200)

爲는 猶學也라 周南, 召南은 詩首篇名이니 所言이 皆修身齊家之事라

正牆面而立은 言卽其至近之地하여 而一物無所見하고 一步不可行이라

 

‘위爲’는 학學과 같다.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은 <詩經>의 첫머리 편명인데

그 내용이 모두 자기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일이다.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다.’는 것은 지극히 가까운 곳에 나아가서

한 물건도 보이는 것이 없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의 가족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시씨施氏=9 딸

↳(+)첩=맹피孟皮(다리 불구자)

 

아버지 숙량흘叔梁紇 72세(+)안징재顔徵在(18세)=공자

→징재徵在는 니산尼山에 있는 사당의 무녀巫女이다.

사당을 지키는 일을 맡은 무녀로서 남녀관계는 금지된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 여자가 아이를 낳았으니 그것은 하나의 야합이라서 정식 결혼으로 태어난 자식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백안시하고 공씨 가문에서 인지한 후에도 세상의 편견은 면하지 못하였다.

/<사기>

 

공자는 19세 때에 송宋 나라 사람인 견관씨幵官氏와 결혼하였다.

공자는 54세 때부터 14년 간 주유천하하고 각국을 유세하여 돌아다녔으므로

68세가 되어서 고국인 노나라에 돌아오기까지는 그 아내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귀국 직전에 그 아내는 공자보다 앞서 공자 68세에 사망했다.

 

아들로 공리孔鯉(백리伯鯉)와 딸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손자인 백리의 아들 자사子思가 있었다.

딸은 제자인 공야장에게 시집보냈다.

 

공자는 가족이나 가정에는 행복하지 못하였다.

20세 무렵 공자는 하급 관리로서 노魯 나라의 소공昭公을 섬기고 있었다.

 

아들 공리가 태어나자 소공은

“아들이 태어났으므로 선물로 이것을 주마.” 하고 잉어(鯉) 한 마리를 주었다.

 

마침 아내는 그 아들의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자는 그 아내의 뜻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주군인 소공이 선물한 잉어 한 마리에 인연을 두고 아들의 이름을 리鯉라 정했다

그의 자는 백어伯魚이고 나이 50세, 공자 69세 때에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백어는 급伋을 낳았는데 그의 자는 자사子思이고 62세까지 살았다.

자사는 일찍이 송宋나라에서 고생을 하였고 <중용中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