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2014-01-08 18:36:40
제3장 수념처受念處
9.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의 확립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나'는 부르기 위한 명칭이며 '나'의 실재는 다섯 가지 무더기인 오온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실상實相은 색수상행식의 무더기가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단지 물질과 정신입니다.
그 중 색色은 물질이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정신입니다.
다시 정신은 식이라는 마음과 수상행이라는 마음의 작용으로 나눕니다.
수受는 대상과 촉할 때 일어나는 느낌으로 감성적이고 정서적 측면의 마음의 작용이며
상想은 여섯 감각기관이 촉하는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붙이는 지각작용으로
이성적이고 지적인 측면의 마음의 작용이며,
행行은 마음의 작용 중 수受와 상想을 제외한 여러 가지 심리현상으로
실제로 선하거나 불선한 행위를 일으키는 의지적 측면의 마음작용입니다.
식識은 수상행과 함께 일어나 대상을 아는 기능을 하는 마음입니다.
식은 반드시 수상행의 도움을 받아서 대상을 알며, 항상 수상행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집니다.
즉 정신 중에서 수상행受想行은 마음의 작용으로서 식識의 기능을 도와주는 참모역할을 하고
식은 참모들의 보고를 받아 대상을 아는 마음으로, 오온을 이끌어갑니다.
주석서에서 식은 왕이고 수상행은 왕을 수행하는 신하로 비유합니다.
즉 오온을 이끄는 것은 식識이며 마음의 작용에 따라 질이 결정되며 또 행위의 질이 결정됩니다.
이제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수념처受念處 수행에 대해 알아봅니다.
1. 느낌이란 무엇인가?
일체지一切知는 느낌입니다.
안다는 것은 대상과 부딪쳐 일어난 느낌을 마음이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느낌이 없는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며 안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뒷짐을 지고 서 있을 때도 마음이 뒷짐 진 자신의 손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거울로 뒷모습을 비쳐보지 않아도 어떻게 손을 잡고 있는지 손과 손이 닿아있는 느낌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무엇을 안다는 것은 대상과 촉할 때 일어나는 느낌을 통해서
마음이 대상이 어떻다고 아는 것이지 마음 단독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다는 것은 항상 느낌과 함께 하며 방금 일어난 느낌에 따라 마음은 어떤 행동을 결정합니다.
현재 부딪힌 대상에 따라 좋은 느낌이나 싫은 느낌이 일어나고
그러면 즉시 그 대상에 대해 어떻게든 신구의 3업으로 반응을 합니다.
2. 우리는 매 순간 느낌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마음은 지금 경험하는 느낌에 따라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없애려는 의도를 냅니다.
그 안에는 그 느낌을 느끼는 것이 '나'라고 아는 유신견이 있어서 즉각 느낌에 대한 어떤 반응이 일어납니다.
만일 부딪힌 대상이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면
바로 내 것으로 하고 싶은 갈애와 집착이 일어납니다.
이때 알아차림이 없으면 즉시 탐욕에 의한 행위를 하고
그 결과로 얻으면 내 것이라고 더욱 집착하게 되고, 얻지 못하면 화를 냅니다.
그래서 좋은 느낌은 탐욕의 성향을 키우며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모두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또 싫은 대상을 만나면 그 대상을 없애려는 욕망이 일어나 성냄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싫은 느낌은 성냄의 성향을 키우며 성냄은 그 자체가 괴로움이며
대상이 없어지거나 없어지지 않거나 간에 다시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또 어떤 대상을 만나면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덤덤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이런 느낌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래서 덤덤한 느낌은 깨어있지 못하는 무지의 성향을 키웁니다.
우리들은 좋은 느낌이 행복인 줄 압니다.
사실 우리들이 세속에서 추구하는 것은 바로 좋은 느낌입니다.
재물이나 이성이나 맛있는 음식이나 명예나 편안함 등이 모두 좋다는 것은
그것을 얻을 때 느끼는 느낌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담배나 술, 스포츠, 취미활동 등도 모두 그 행위를 통해서 얻는 즐거운 느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회 봉사활동조차도 그 일을 통해서 얻는 성취감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알아차림이 없으면 선한 행위를 한 주체가 ‘나’라고 생각하여 그 보상으로 명예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느끼는 모든 느낌은 집착의 대상이 됩니다.
만일 여기에 알아차림이라는 문지기가 없으면 바로 느낌의 노예가 되고 그것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결국 수념처는 현재의 좋은 느낌, 싫은 느낌, 덤덤한 느낌, 괴로운 느낌,
행복한 느낌, 선한 행위에서 얻는 즐거운 느낌조차도 모두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현재의 느낌에 속지 않고 느낌을 집착하지 않습니다.
즉 알아차린 힘으로 바른 행위를 하게 됩니다.
느낌을 알아차리면 모든 느낌은 단지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질 뿐 내 느낌이 아니라고
감각기관의 느낌이라고 느낌의 무상과 느낌의 괴로움과 느낌의 주인 없음을 아는 통찰지혜가 생깁니다.
그럴 때 수행자는 어떤 느낌도 붙잡지 않는 힘이 생겨서 느낌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3. 느낌의 종류와 느낌의 단계적 발전 과정
1) 느낌은 모두 11가지가 있습니다.
맨 느낌 6가지, 육체적 느낌 3가지, 정신적 느낌 2가지입니다.
그러나 분류 방법에 따라 2가지에서 108가지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불교의 108번뇌는 바로 108가지 느낌을 말합니다.
①
맨 느낌은 육근과 육경이 만나서 최초로 일어나는 여섯 감각기관의 느낌입니다.
이렇게 대상과 접촉하는 찰나에 일어나는 최초의 느낌을 맨 느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안식, 이식, 비식, 설식은 덤덤한 느낌이며
신식은 좋거나 싫은 육체적 느낌이며. 의식은 좋거나 싫은 정신적 느낌입니다.
②
육체적 느낌은 세 가지입니다.
몸의 감각기관이 대상과 촉할 때 일어나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덤덤한 느낌이며 맨 느낌에서 번뇌의 화살을 한 번 맞았다고 표현합니다.
만약 육체적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좋아 죽겠다거나 싫어 죽겠다는 정신적 느낌으로 빠르게 진행합니다.
그러나 육체적 느낌에서 알아차리면 더 이상 정신적 느낌으로 넘어가지 않고 알아차림이 있는 평온한 느낌이 됩니다.
③
정신적 느낌은 두 가지입니다.
지금 부딪친 대상이 좋아죽겠다는 느낌과 싫어죽겠다는 번뇌의 느낌입니다.
이것은 육체적 느낌에서 다시 무명과 갈애라는 번뇌의 화살을 맞아
정신적 즐거운 느낌과 정신적 괴로운 느낌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육체적 즐거운 느낌은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으로 발전하고 육체적 괴로운 느낌은 정신적 괴로운 느낌으로 발전합니다.
이와 같이 맨 느낌에서 번뇌의 화살을 한 번 맞으면
육체적 느낌으로 발전하고 육체적 느낌에서 다시 번뇌의 화살을 맞으면 정신적인 느낌으로 발전합니다.
느낌은 가만히 있지 않고 발전하여 느낌을 더욱 크게 확장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것이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는 과정입니다.
덤덤한 느낌은 느낌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無知의 느낌이라고 하며
특히 현대인들은 이 덤덤한 느낌을 참지 못하고 더 좋은 감각적 쾌락을 찾아갑니다.
현대인들이 더욱더 좋은 느낌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기분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며 느낌에 살고 느낌에 죽는 느낌의 노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느낌의 경우는 화살을 두 번 맞았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정신적 느낌은 화살을 셀 수 없이 계속 맞아서 그 느낌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 행동으로 넘어갑니다.
2) 느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느낌을 법으로 보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느낌을 단지 느낌으로, 알아차릴 대상인 법으로 보면 느낌으로 인한 번뇌를 막을 수가 있습니다.
느낌은 빠르든지 늦든지, 화살을 한번 맞았든 열 번 맞았든 상관없이 일단 알아차리면
그 순간 그 느낌은 사라지고 그 느낌을 알아차린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지속되면 더 이상 느낌에 의한 번뇌의 화살을 맞지 않습니다.
느낌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보면, 모든 느낌은 무상, 고, 무아라는 법을 보여줍니다.
느낌은 변화가 빠르고 일어남 사라짐이 분명하여 무상無常을 알기 쉽고
느낌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이 느낌을 경험하는 ‘나’는 없다는 무아無我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느낌을 알아차리면 느낌에서 무상, 고, 무아의 법을 통찰할 수 있고
이와 같이 느낌의 무상, 고 무아를 보면 그만큼 느낌에 대한 갈애와 집착이 줄어들고 느낌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단지 느낌의 생멸을 봅니다.
'經 > 비파사나 수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3장 11. 십이연기와 수념처 수행 (0) | 2023.01.31 |
---|---|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3장 10.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방법 (0) | 2023.01.30 |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3장 8. 오온五蘊.의 무아無我 (0) | 2023.01.30 |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3장 7. 육문六門과 육경六境의 상호작용 (0) | 2023.01.30 |
사념처 수행과 위빠사나 제2장 6. 좌선, 경행, 와선, 일상의 알아차림 (0) | 2023.01.30 |